국제
2020년 11월 23일 14시 17분 KST

바이든이 북핵 해법으로 '이란 핵합의 모델' 제안했던 블링컨을 국무장관으로 지명한다

트럼프 식의 '북미정상회담 담판'은 없을 것이라는 신호다.

ASSOCIATED PRESS
(자료사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오랜 측근인 토니 블링컨 전 국무부 부장관을 국무장관으로 지명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국무부 부장관을 지냈던 토니 J. 블링컨을 국무장관으로 지명할 예정이라고 미국 언론들이 22일(현지시각) 일제히 보도했다.

블링컨은 바이든이 상원 외교위원장을 맡았던 시절에 보좌관을 지낸 것을 비롯해 오바마 정부 1기에서 바이든 당시 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 등을 맡으며 20여년 가까이 바이든의 외교안보 분야 측근으로 활동해왔던 인물이다. 이번 대선캠프에서는 외교정책 고문을 맡았다.

블링컨은 과거에 북핵 문제 해법으로 오바마 정부 시절 체결된 이란 핵합의를 제안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이란 핵합의는 이란의 핵무기 보유를 차단하는 대신 경제제재를 해제해 이란을 국제 경제에 편입시키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 협정을 ‘재앙’으로 규정하며 일방적으로 탈퇴한 바 있다.

ASSOCIATED PRESS
(자료사진) 중국, 프랑스, 독일, 유럽연합, 이란, 영국, 러시아, 미국의 외교 장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역사적인 이란 핵합의 협상을 마친 뒤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비엔나, 오스트리아. 2015년 7월14일. 

 

더 이상 ‘아메리카 퍼스트’는 없다

블룸버그뉴욕타임스(NYT) 등 미국 언론들은 바이든 부통령이 블링컨을 새 정부 국무장관으로 지명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언론들은 국제적 협력과 공조를 중시하는 그의 면모에 주목하며 바이든 정부가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웠던 트럼프 정부와는 정반대의 외교 정책을 펼치게 될 것이라는 데 초점을 맞췄다.

블링컨의 기본적인 외교정책 철학은 지난 7월 허드슨연구소 강연에서 나온 발언에서 잘 드러난다. 

″(...) 간단히 말해 우리가 국가적으로, 지구적으로 마주하고 있는 큰 문제들, 그게 기후변화이든 팬데믹이든, 나쁜 무기의 확산이든, 이 중 어떤 것도 일방적인 해법은 없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미국처럼 강력한 국가조차도 그 문제들을 홀로 다룰 수는 없다.” 미국이 ”더 효과적으로 (각국 정부 및 국제기구들과) 공조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면서 그가 한 말이다.

그는 무역 등 다양한 분야에서 ‘1대 1 대결’을 통해 중국을 견제해보려던 트럼프 정부의 시도가 실패했다고 지적하면서 국제 공조 복원을 강조했다. 중국의 도전에 맞서기 위해서는 ”동맹들 및 파트너들을 소외시키는 게 아니라 결집해야 한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무역을 보면, 미국 혼자서 전 세계 GDP의 25%를 차지한다. 우리가 동맹국들 및 파트너들과 함께한다면, 우리가 어느 국가를 끌어들이드냐에 따라 (전 세계) GDP의 50%, 60%가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중국 압박에) 무게가 훨씬 더 실리게 되고 중국으로서는 이를 무시하기가 훨씬 더 어려워질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블링컨이 인도태평양 지역과 아프리카에서 영향력을 확대해온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이 지역들에서 외교 관계 구축에 공을 들이는 한편, 트럼프 정부와 마찰을 빚었던 유럽을 핵심 파트너로 복원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JUNG YEON-JE via Getty Images
(자료사진) 서울에서 한미일 외교차관 회담을 가진 뒤 (왼쪽부터)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부장관, 임성남 외교1차관, 사이키 아키타카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이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2016년 4월19일.

 

북핵 협상의 모델 : 이란 핵합의

한국으로서는 대북 정책에 관한 블링컨의 과거 입장에도 관심이 쏠린다. 블링컨은 오바마 정부 후반인 2015년부터 2017년까지 국무부 부장관을 지낼 당시 대북제재 강화를 통한 대북 압박을 이끌었다. 위안부 문제로 악화됐던 한일 관계를 중재하기 위해 2015년에 한국·미국·일본 외교차관협의회를 만들어 공조를 강화하는 한편, 중국의 대북제재 동참을 압박했다.

다만 오바마 정부의 대북 압박 캠페인을 주도했다는 이유 만으로 그를 ‘대북 강경파’로 단순히 분류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는 2017년 한미일 외교차관 회담 직후 연 기자회견에서 ”(대북제재의) 목적은 북한 정권의 무릎을 꿇리는 게 아니라 진정성 있고, 신뢰할 만한 비핵화 조치를 위한 협상장으로 끌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눈 여겨 볼 부분은 블링컨이 북핵 문제 해법으로 거듭 이란 핵합의 모델을 제안했다는 점이다. 이란 핵합의는 미국이 나머지 유엔 안전보장이사국(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들과 독일을 참여시켜 도출한 것으로, 단계적 비핵화와 경제제재 해제를 맞바꾸는 게 핵심이다.

블링컨은 2017년 한미일 외교차관 기자회견에서 이란 핵합의를 북한 비핵화의 모델로 언급했다. 그는 미국이 이란에 대한 제재를 지속적으로 시행하고 국제사회를 동참시킨 끝에 한 때 무용론이 제기됐던 대이란 제재가 효과를 발휘해 결국 이란을 협상장으로 끌어냈다고 평가했다.

″(이란 핵합의를 통해) 우리는 기존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동결시키고 일부는 되돌리기 시작했으며, 감찰관들을 들여보냈다. 이를 통해 전 세계 안보에 매우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다 준 종합적인 합의안을 협상하기 위한 시간과 공간을 벌 수 있었다. 나는 북한이 그 사례에서 영감을 얻기를 바란다.” 당시에 그가 했던 말이다.

POOL New / Reuters
(자료사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담판 협상'을 통해 비핵화 합의 타결을 이끌어내려는 '탑다운' 방식의 외교를 추진했지만 결과적으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사진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싱가포르에서 역사상 최초의 북미정상회담을 개최했을 당시의 모습. 2018년 6월12일.

 

블링컨은 2018년 1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트럼프 정부가 ”재앙”으로 묘사했던 이란 핵합의로부터 거꾸로 교훈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이란이 선제적으로 핵 능력을 포기하도록 하고, 핵 개발 및 핵물질 생산 전 과정에 걸친 전방위적 국제 감시 체계를 도입했던 점을 언급하면서다.

그는 미국 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제거를 협상의 최우선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여러 차례 비핵화 약속을 어겼던 북한의 전력을 거론하며 북한의 선제적인 조치 없는 합의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트럼프 정부는 ‘한방의 협상’을 통한 극적인 타결을 시도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이와는 달리 바이든 정부는 이란 핵합의를 복원한 뒤 북한과도 보다 체계적이고 단계적인 협상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같은 블링컨의 기본적인 입장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1차 정상회담 이후인 2018년 5월 기고문에서도 잘 드러난다. 블링컨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란 핵합의의 기본적인 얼개를 채택할 것을 권고하면서 이렇게 조언했다.

″첫째, 북한의 현재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동결하고, 감축을 시작하도록 하고, 감찰관들을 현장에 주재하도록 하며 (그 대가로) 보통 정도의, 신중히 계산된 경제적 지원을 제안하는 잠정 합의안을 도출하라. 그런 다음 그렇게 벌어들인 시간 동안 가능하다면 비핵화와 평화 협정이 포함된 보다 종합적인 합의를 도출하라.”

비비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