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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적인 남성들과 가부장제에 대해 말하는 방법

Beyond Gender|호주 3 - '남성 행동 변화 프로그램' 만드는 No To Violence

  • 박수진
  • 입력 2019.10.17 13:43
  • 수정 2019.11.05 17:14
ⓒOscar Wong via Getty Images

*편집자 주: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배운 성별 고정관념이 훗날 성차별이나 여성혐오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들이 있습니다. 전문가들이 성평등 교육의 중요성에 주목하는 이유입니다. 허프포스트가 직접 다녀온 인도, 스웨덴, 호주의 성평등 교육 현장 이야기를 4주 동안 전합니다.

″가정폭력을 ‘여성 폭력’ 아닌 ‘남성에 의한 폭력‘이라고 부름으로써, ‘여성들은 두려움 없이 어디든 다닐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가정폭력 가해자로 판결 난 이들에게는 형사 처벌 외에도 피해자로부터의 분리, 치료프로그램 이수 명령 등이 떨어진다.

호주 빅토리아주의 ‘노 투 바이얼런스(No To Violence, 이하 NTV)’는 이런 가운데 가정폭력의 주된 가해자인 남성들을 대상으로 폭력 재발 예방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단체다.

20주짜리 그룹 교육 ‘남성 행동 변화 프로그램(Men’s Behavior Change Program)’에는, 가정폭력이 가해자와 피해자의 성별과 매우 관련성이 높은 범죄라는 판단이 들어있다. 성평등, 건강한 리더십, 실제 삶에서의 변화, 존중하는 인간 관계가 이 프로그램의 주요 가치다.

교육 프로그램은 경찰, 법원, 피해자 지원단체들과 연계되어 있다. 폭력 성향이 의심되는 가족이나 친구가 있다면, 개인적인 상담을 요청할 수도 있다. 폭력 가해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NTV 직원들을 지난 6월 호주 멜번에서 만났다.

가해자들에게, ‘때리지 말라’는 말 외에 어떤 말을 할 수 있는 걸까?

 

1. ‘가정폭력은 성별 불평등 문제다’

폭력 사건이 일어날 때 ‘좌절된 남성성’이 언급되는 이유

'가해자들은 폭력이 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필요하다면 폭력을 써도 상관 없다고 생각한다'
"가해자들은 폭력이 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필요하다면 폭력을 써도 상관 없다고 생각한다" ⓒGetty Images

기자: 남성의 행동을 바꾸는 데 집중하는 단체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는 어떻게 시작됐나?

미셸 페리(연계 서비스 담당, 교육 진행, 전화상담. 이하 미셸): 가정폭력이나 데이트폭력은 흔히 ‘여성 폭력’으로 불리지만, 사실 ‘남성에 의한 폭력’으로 부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피해자들은 남녀가 모두 있는 데 반해, 가해자들의 성별은 대부분 남성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피해자들에게는 “여자는 밤에 돌아다니면 안된다”, “여자들이 조심해야 한다”, “그 여자가 더 잘했으면 괜찮았을 거다”, “진작에 자기가 헤어졌어야지”와 같은 시선이 존재했다.

불행이 일어난 건 스스로의 안전을 지키지 못한 피해자들의 책임이라는 식이었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가해자의 폭력을 용납하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이런 폭력을 더 부추긴다.

우리는 가정폭력을 ‘남성에 의한 폭력’으로 부름으로써 “아니다, 여성들은 학대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없이 어디든 다닐 수 있어야 하고, 입고 싶은 옷을 입을 수 있어야 하고, 자기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뒤집어 말하고자 한다.

우리가 만난 가해 남성들은, 폭력이 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여성에게 폭력을 써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단지 폭력적인 남성 몇 명의 문제가 아니다. 폭력을 용인하는 사회 분위기가 존재하고 있다. 이를 바꾸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이 그런 세상에서 자라게 된다.

감정적인 학대와 경제권 통제도 가정폭력의 형태다.
감정적인 학대와 경제권 통제도 가정폭력의 형태다. ⓒappleuzr via Getty Images

카멜 파디(개발 담당, 교육 진행, 전화상담. 이하 카멜): 사회에는 분명 성별간 권력 구조가 있고 불평등이 존재한다. 가정폭력은 단지 ‘때렸다’는 폭행의 문제에서 그치지 않는다.

가정폭력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권력을 행사하고 통제하려는 관계에서 발생한다. 육체적 폭력 뿐 아니라 감정적이고 심리적인 학대가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전통적인 성역할에 따라 남성이 경제권을 틀어쥐고 여성을 조종하는 경우가 자주 보고된다. 가정에서의 학대 관계에는 남성 가장으로 파트너 위에 군림하고자 하는 태도 문제가 엮여 있다.

물론 폭력적인 행동에는 가부장제 말고도 다른 원인들도 작용한다. 가해자의 정신건강, 마약과 알코올 중독 등이 무시할 수 없는 큰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어떤 요인이 있어도 행동의 책임은 결국 그 행동을 한 사람에게 있다. 그래서 우리는 ‘남성 행동 변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남성들에게 자기의 폭력적 행동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라고 말하고 있다.

ⓒVonkara1 via Getty Images

일반인 대상으로 시작한 ‘남성 행동 변화 프로그램’은 그 효과가 알려지면서 정부 연계 프로그램으로 발전했다.

교육은 주 1회, 2시간, 총 20회 진행한다. 회당 교육 진행자로 남녀 각 1명씩 2명이 들어가며, 폭력 가해자는 대략 15명 정도가 함께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가해자가 정말 변화했는가’를 평가하고 이 결과를 재판에 참고하는데, 이 평가에는 피해자들의 의견도 포함된다. 이 의견에 따라 가족과의 분리 명령이 풀리는 경우도 있다.

알코올 중독 문제가 있는 사람의 경우 ‘음주 후 일정 시간 동안은 가족과 접촉할 수 없다’는 처분이 내려지는 등 개인마다 매우 구체적인 결과물이 나온다.

 

2. ‘성별 고정관념 해체는 그들의 세계를 흔드는 일이다’

가부장적인 남성들과 가부장제에 대해 말하는 방법

“아이와 애정 넘치는 관계가 되고 싶은데 왜 안 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하는 가해자들을 종종 본다. 본인이 원하는 것과 다른, 가부장적인 남성상을 따르다가 생긴 일이다.'
“아이와 애정 넘치는 관계가 되고 싶은데 왜 안 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하는 가해자들을 종종 본다. 본인이 원하는 것과 다른, 가부장적인 남성상을 따르다가 생긴 일이다." ⓒTeamDAF via Getty Images

기자: 남성으로 살면서 갖는 특권이나, 전통적인 성역할의 나쁜 점 같은 것들은 설명하기가 매우 어려운 주제다. 가정폭력 가해자들에게 이런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꺼낼 때는 어떻게 하나?

미셸: 가부장적인 남성들에게 남성의 특권에 대해 말할 때는 그 방법을 매우 신경써야 한다. 말하는 방법이 효과적이지 못하면, 교육에 온 남성들은 우리가 그저 ‘남성을 혐오하고 있다’고 생각해 버린다. 그래서 스스로를 피해자라 여기고 즉시 방어적인 태도를 갖는다.

우리가 하는 이야기는 결국 “당신이 살면서 가치있게 여겼던 것들은 잘못되었다”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 말을 듣기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평생 갖고 살아온 가치관을 비판적으로 보라고 말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안타깝게도 모두에게 먹히는 완벽한 방법은 없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남성성’이 개인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스스로 알아보도록 마음의 준비를 하게 하는 데서 출발한다.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의 의미에 대해 물어라”

 

카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이 남성들이 언짢게 느끼지 않으면서, 쉬운 방식으로 젠더 불평등이라는 복잡한 개념에 대해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한다. 방법 면에서는 가볍게 접근할 수 있는 대화하기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

‘좋은 아버지가 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좋은 남편이 된다는 건 어떤 것인가?’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 여러가지 답변을 듣는 것이 그중 하나다.

‘남자는 나가서 돈을 벌고, 여자는 남자를 따라야 한다’는 전통적인 가치관을 가진 남성들도 여러가지를 나열하다보면 “상대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 “세심해야 한다”는 답을 내놓는다.

이 과정에서 자기가 진짜로 원하는 게 무언지 알게 되기도 한다. 쉽게 말해, 지금까지 추구해온 ‘강한 남성상’, ‘남자다움’은 사회의 기대에 맞춘 것일뿐이었다는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호주 노던준주 폭력예방 포스터. [왼쪽] '엄마들도 강할 수 있어요' [오른쪽] '아빠들도 부드러울 수 있어요'
호주 노던준주 폭력예방 포스터. [왼쪽] "엄마들도 강할 수 있어요" [오른쪽] "아빠들도 부드러울 수 있어요" ⓒHuffPost Korea/Sujean Park

맷 애디슨(정책 및 연구 담당. 이하 맷): 우리는 이 사회를 ‘덜 가부장적’이고, 여성이 더 안전하고, 젠더 평등이 사회 전반에서 이뤄지는 사회로 만드는 것이 목표이다. 이것은 개인개인의 발전 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개인개인이 공감을 느껴야 변화할 수 있다고 본다.

“아이와 애정 넘치고 가까운 관계를 맺고 싶은데 왜 안 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하는 참가자들을 종종 본다. 본인이 원하는 것과 다른 가부장적인 남성상을 따르다가 생긴 일이다.

한편으로는 남성들의 정신건강과도 관련 있는 문제다. 남성은 여성에 비해 우울증을 겪을 때 병원을 찾는 대신 과음이나 마약 남용으로 해결하려 하며, 도움을 구하기보다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경향이 더 높다. 개인개인이 마음을 열고, 자기 감정을 표현할 줄 알면 문제 해결을 위해 폭력을 사용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본다.

미셸: 여성에게는 ‘배려심‘, 남성에게는 ‘통제력‘과 ‘공격적인 성격’이 가치 있다는 사회적 통념이 있다. 요즘 세상에서는 통하지 않는 말 아닌가. 우리는 그 통념을 가르친 결과를 감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3. ′정말 변화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가해자와도, 피해자와도 대화를 계속해야 한다

초기 상담실 모습. 전화를 걸어온 남성들이 더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도록 한때 남성 상담원들만이 전화를 받았지만, 몇해 전부터 여성 상담원들도 함께 전화를 받고 있다.
초기 상담실 모습. 전화를 걸어온 남성들이 더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도록 한때 남성 상담원들만이 전화를 받았지만, 몇해 전부터 여성 상담원들도 함께 전화를 받고 있다. ⓒSUJEAN PARK/HUFFPOST KOREA

NTV의 출발점은 1992년 호주 적십자사의 ‘폭력 초기예방을 위한 남성 상담 전화’ MENTIR였다. 이후 지금까지 28년째 전화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전화를 걸어오는 이들은 파트너의 가정폭력 성향이 의심된다는 여성들, 가정폭력 피해를 입은 남성들, 혹은 가족의 권유로 스스로의 폭력 성향을 점검하고자 하는 남성들이다.

하루 70통 정도를 소화하는데, 어느 경우든 ‘더 많은 폭력 피해를 막는 것’이 목표다. “자발적으로 전화를 걸어온 사람이라면 누구도 절대 그냥 되돌려 보내지는 않는다”는 게 이곳의 원칙이다.

다만 최근에는 전문인력을 활용하고자 하는 경찰의 요청으로 재판에 넘겨진 가해자들과의 상담 통화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1992년 호주 적십자사의 MENTIR 홍보 포스터
1992년 호주 적십자사의 MENTIR 홍보 포스터 ⓒSUJEAN PARK/HUFFPOST KOREA

기자: 교육이 성공적이었던 사례도 보았나?

드니스 맥얼룬(교육 진행, 전화상담. 이하 맥얼룬): 물론이다. 15명이 함께 하는 그룹 수업에서 빨리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그룹 전체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같은 메시지도 교육 진행자인 나에게서 듣는 것 보다는, 동료 남성 그룹으로부터 듣는 것이 훨씬 더 효과가 있다.

카멜: 물론 왜 그룹 상담을 하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남성들도 있다. 변화는 강요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성과는 사람마다 다를 수 밖에 없다.

왼쪽부터 드니스 맥얼룬, 카멜 파디, 미셸 페리, 맷 애디슨
왼쪽부터 드니스 맥얼룬, 카멜 파디, 미셸 페리, 맷 애디슨 ⓒSUJEAN PARK/HUFFPOST KOREA

기자: ‘정말 변화했는가’는 어떻게 알 수 있나?

드니스: 우리는 ‘가족 안전 노동자’라는 별도의 피해자 지원 인력을 프로그램과 함께 운영한다. 여성 사회복지사와 상담사 등 전문가들이 피해자들의 안전과 가해자들의 근황을 정기적으로 묻고 확인한다. 프로그램을 이수한 후 가정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처분을 받은 경우에도 계속 연락을 유지한다.

 

″어떤 이유가 있어도 폭력의 책임은 결국 폭력을 쓴 사람에게 있다”

 

미셸: “나는 이제 새 사람이 되었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경우는 변화가 그다지 되지 못 했다고 본다. “이번주에는 정말 많은 내용을 배웠다”, “이렇게 해보려 했는데 잘 안됐다”와 같은 말을 하는 경우는 변화의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하룻밤만에 쉽게 ‘변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뭐가 변해야 하는지 이해를 못 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을 진행해온 몇 년 동안, 폭력의 원인이 상대에게 있지 않음을 강조하고 비뚤어진 남성성의 허상을 깨뜨리고자 하는 우리의 방식을 통해 크게 달라진 사람들 역시 보았다.

같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지만 그중 누가 달라질 건지, 누가 그대로일지를 예측하기는 우리에게도 어렵다. 여전히 고민 중이다.

NTV 멜번 사무실과 프로그램 리플렛들
NTV 멜번 사무실과 프로그램 리플렛들 ⓒSUJEAN PARK/HUFFPOST KOREA

*번역 도움: 이원열

*인터뷰 답변은 명료한 전달을 위해 편집됐습니다.

 

[Beyond Gender Project] 

1편. 인도

‘여성에게 위험한 나라 1위’ 인도의 ‘페미니즘 학교’를 찾아갔다

18세에 억지로 결혼해야 했던 소녀는 ‘위대한 교육자’가 되었다(인터뷰)

”남자가 성평등 교육을 받는 이유는 ‘더 나은 남자의 삶’을 위해서다”

2편. 호주

”맞을만해서 때렸다”는 말에 호주는 이렇게 대처했다

- “여성을 일상적으로 비하하는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이 일어난다”

가부장적인 남성들과 가부장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법

”포르노가 성교육을 대신해서는 안 된다”

호주 학교들은 어린이들에게 ‘젠더 공교육’을 한다

조카에게 사주는 핑크색 머리띠가 왜 문제인 걸까?

3편. 스웨덴

- ’라떼파파’들은 아이 키우기를 피하지 않는다

- “나는 여자 안 때린다”고 말하는 남자들 뿐이라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스웨덴 남성 페미니스트 단체 MÄN(맨)

- 세계 최초로 ‘페미니스트 정부’ 표방한 나라의 장관이 한국인에게 전한 말

- 이 나라의 유치원에는 ‘남자아이’, ‘여자아이’가 없다

4편. 한국

- ”유치원부터, 교대부터 바뀌어야 한다” 현직 초등교사들이 말하는 성평등 교육

- ”남자는 우는 거 아니야” 어린이집 교사들에게 이 교육이 필요한 이유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취재 지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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