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버니스 킹은 마틴 루터 킹의 가르침에 다시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4월 4일은 마틴 루터 킹의 암살 50주기였다.

  • 김태우
  • 입력 2018.04.05 18:28
  • 수정 2018.04.05 18:32
ⓒThe Washington Post via Getty Images

버니스 킹은 갓 다섯 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의 암살 소식을 들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1968년 4월 4일 오후 7시 1분, 멤피스의 한 모텔에서 총에 맞았다. 버니스가 잠자리에 들 무렵이었다. 버니스 킹은 결국 이 비극적인 소식을 다음 날에야 듣게 됐다. 킹 목사의 아내인 코레타 스콧 킹은 다음날 애틀랜타로 돌아왔고, 버니스를 비롯한 자녀들은 공항에서 어머니를 만나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아빠와의 저녁 식사는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출장에서 돌아온 아빠에게 뽀뽀를 퍼붓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버니스는 그렇게 ‘죽음’을 처음 접하게 됐다. 스콧 킹에게 

버니스 킹은 최근 허프포스트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어머니는 그 순간 내게 죽음에 대처하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머니는 그제야 ‘아빠가 돌아가셨어. 아빠는 관 안에 누워 계실 거야. 너에게 말을 걸 수 없지. 아빠의 영혼은 신의 곁으로 갔단다’라고 설명하셨다.”라고 말했다.

킹 목사가 암살된 지 5일째 되던 날, 고인을 기리는 장례식이 열렸다. 이날 코레타는 자신의 남편이 불과 두 달 전, 에벤에셀 침례교회에서 했던 설교의 한 부분을 재생했다. 마치 자기 죽음을 예견이라도 한 듯한 내용이었다. 킹은 자신의 장례식에서도 시기적절한 연설을 할 수 있었다. 

코레타는 딸을 안아주며 ”엄마는 너를 사랑한단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빠는 신의 곁으로 가셨으니 앞으로 대화를 나누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장례식장에서는 킹 목사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버니스는 장례식장을 둘러보며 아버지를 찾기 시작했다.

코레타 스콧 킹의 품에 안긴 버니스 킹. 
코레타 스콧 킹의 품에 안긴 버니스 킹.  ⓒBettmann via Getty Images

과거 암살 시도, FBI의 감시, 끊임없는 위협 때문에 킹은 어쩌면 자신이 암살당할 것을 예측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마틴 루터 킹의 가르침은 그 시절부터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시기적절하고 유효하다.

킹이 지금의 세상을 본다면 뭐라고 말했을까 하는 의문은 이미 논의의 주제가 된 지 오래다. 그 의문은 최근 들어 그 어느 때보다도 자주 제기됐다.

마틴 루터 킹이 살아남았다면 지금 이 세상을 보고 뭐라고 말했을까? 

버니스 킹은 아버지가 살아생전 그 대답을 했다고 말했다.

버니스는 허프포스트에 ”킹 박사는 빈곤, 인종차별, 군국주의를 ‘해악’이라고 부르며 이에 맞서 싸웠다. 우리는 지금도 이 해악을 겪고 있다. 우리는 그가 우리와 함께 있었을 때 알려주려 했던 것들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라고 전했다.

버니스의 말 대로, 킹은 생전에 여러 가지 싸움에 참여했다. 그가 미국 남부에서 인종차별에 맞서 벌인 연좌 농성이나 행진 등은 이제 ‘킹의 비폭력주의’라고 불린다. 킹은 이런 시위에 10년 이상 참가했으며, 시민 평등권과 투표권 관련 법 제정에 큰 역할을 했다.

멤피스 행진에서 포착된 마틴 루터 킹 목사. (1966)
멤피스 행진에서 포착된 마틴 루터 킹 목사. (1966) ⓒUnderwood Archives via Getty Images

킹을 그저 몽상가라고 생각했다면 오해다. 그는 일 년에 연설만 약 450번 정도 했으며, 책을 다섯 권이나 썼다. 특히 사망하기 전 3년 동안은 사회주의, 반군국주의(베트남전 당시), 시민 평등권을 위한 전 세계적 혁명에 대해 급진적인 사상을 밝히는 등, 많은 기록을 남긴 바 있다. 

권력을 무척이나 중요시했던 사람들은 킹을 위협으로 간주했다. 그의 영향력이 억누르기 힘들 정도로 커졌기 때문이다.

킹의 가족은 제임스 얼 레이가 킹을 죽인 것이 아니라 조직적인 이뤄진 암살이었다고 믿는다. 1999년 열린 재판에서는 배심원 전원이 킹의 암살이 음모에 의한 것이라는 데 동의했다. 

킹의 암살 당시 버니스에게 죽음은 낯선 개념이었다. 하지만 버니스는 곧 죽음에 익숙해졌다. 그다음 해 삼촌인 A.D. 킹이 수영장에서 사체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몇 년 뒤에는 할머니가 교회에서 총에 맞아 숨졌다. 

버니스 킹은 결코 견디기 쉽지 않은 비극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족을 하나로 묶어 버티게 해준 건 어머니였다고 밝혔다. 코레타는 킹이 그랬듯, 계속 흑인 인권 운동에 참여했고, 개인적인 트라우마에 힘들어하면서도 매일 평등을 위해 싸웠다.

어머니는 진정한 슈퍼우먼이었다. 미국의 성장을 돕고, 지속되어 온 폭력을 막으며 네 아이를 길렀다. 아버지가 살해당한 뒤에는 폭동이 일었지만, 아버지가 이끌기로 했던 4월 8일 멤피스 행진에 어머니가 대신 나서 했던 발언이 긴장 해소에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Bettmann via Getty Images

버니스는 이어 ”아버지는 당시 많은 증오를 받았다. 암살 당시에는 사실 미국에서 가장 증오받던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러나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사람 중 하나다. 그건 매일 같이 노력한 어머니 덕이다”라며 코레타 스콧 킹에게 공을 돌렸다.

버니스는 어머니가 ‘킹’이라는 이름의 무게에 대해 부담을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네 아버지나 내가 될 필요가 없다. 그저 네가 될 수 있는 최고의 네가 되어라”라는 조언과 함께 말이다. 

그렇지만 버니스는 부모님이 하던 일을 계속 이어갔다.

네 남매 중 막내인 버니스는 어린 나이로 성직자의 길을 선택했다. 에벤에셀 침례교회에서 목사로 임명된 두 번째 여성이 되었고,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남부 그리스도교도 지도회의(Southern Christian Leadership Conference:SCLC)의 의장으로 지명되었으나 거절했다.

코레타가 설립한 킹 센터의 CEO인 버니스는 지금도 자신의 아버지가 전했던 비폭력 메시지를 지키고 있다. 그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지키기 위해 어머니가 논의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하고 있다. 

버니스는 5살 때 어머니에게 배운 교훈을 지금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실천하고 있다.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의 전면에 나섰던 활동가들에게 찬사를 보냈고, 최근에는 총기 반대 운동인 ‘다시는 안된다(Never Again)’ 운동을 지지한 바 있다.

시대는 바뀌었지만 킹 목사의 교훈은 지금도 유효하다.

아버지는 분쟁과 양극화에 대처하기 위해 아주 중요한 가르침을 주셨다. 비폭력에 대한 아버지의 가르침은 지금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긴장이 고조된 상태다. 분열이 더욱 심해져 되돌리지 못할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우리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기억하고 우리가 전 세계 인류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버니스는 킹 목사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증오와 어둠을 사랑과 빛으로 밀어내려 한다. 그는 킹 목사가 정의한 3대 해악에 맞서려면 사랑과 빛, 그리고 법적 조치가 필요하다는데 사람들이 공감하기를 바란다. 

ⓒParas Griffin via Getty Images

버니스 킹은 끝으로 ”당신의 가장 강한 지지자와 적 역시 인류의 일부라는 것을 늘 기억하라. 그들에게 단점이나 힘이 있다고 해도, 그들은 여전히 인류의 일부다. 진실과 정의를 지키는 과정에서라도 그들을 해치지는 마시라. 인간의 삶을 신성하게 지키는 것이 당신 삶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가르침이다.”라고 말했다. 

 

허프포스트US의 ‘Bernice King Believes It’s ‘Critical’ To Heed Martin Luther King’s Lessons Today’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인권 #마틴 루터 킹 #인권 운동 #흑인 인권 #버니스 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