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벤앤제리스는 '브랜드 액티비즘'의 길을 개척했다. 이미 40년 전부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회 변화를 위한 행동에 나서는 새로운 흐름이 주목받고 있다. 벤앤제리스는 이 분야의 선구자로 꼽힌다.

  • Marie Solis
  • 입력 2020.08.04 15:01
  • 수정 2020.08.04 17:44
벤앤제리스는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팔고, 백인 우월주의 종식을 외친다.
벤앤제리스는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팔고, 백인 우월주의 종식을 외친다. ⓒBen & Jerry's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 이후 미국의 다른 수많은 브랜드들이 공식 소셜미디어 계정에서 인종차별에 대해 조심스러운 입장을 밝히던 6월2일, 벤앤제리스는 훨씬 더 직접적인 메시지를 게시했다. 이 아이스크림 회사는 검정색 사각형 안에 큰 글씨로 이런 문구를 적어넣었다.

“WE MUST DISMANTLE WHITE SUPREMACY(우리는 백인 우월주의를 종식시켜야야 한다).”

단조롭고도 상투적인 기업들의 뻔한 메시지를 사이에서, 이 포스트는 단연 돋보였다. 이건 요행 섞인 소셜미디어의 인기를 노린 게 아니라, 수십 년 동안 사회적 액티비즘을 중심으로 브랜드를 구축해왔던 그 모든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우리는 아이스크림을 팔기 위해 필요한 모든 수단을 활용하고, 그 수단들을 풀뿌리 운동가들을 돕는 일에 쓴다.” 벤앤제리스의 기업 액티비즘(corporate activism) 매니저인 크리스 밀러가 말했다. 밀러가 맡은 일은 미국 기업에서 드문 직책이다.

인종차별에 대해 목소리를 내려는 기업들의 노력은 모호하거나 어설픈 경우가 적지 않으며, ‘깨어 있는 척’한다고 오히려 비판받는 사례도 많다. 진심으로 사회의 변화를 바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 단지 고객을 잃거나 매출에 타격을 입을 거라는 두려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말이라는 비판이다.

때로는 기업의 이런 ‘새로운 선언’들이 정작 실제로는 사내 인종차별적 규정이나 임금차별, 위험한 작업환경과 배치되는 모순이 드러나 거센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벤앤제리스는 이런 상황에서 할 말을 확실히 하는 기업이다.

″조지 플로이드 살해는 백인 우월주의 문화가 뿌리 깊은 비인간적인 경찰의 잔혹성이 낳은 결과이다”

″조지 플로이드에게 일어난 일은 미꾸라지 한 마리 때문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흑인을 적으로 취급한 인종차별적이고 편견 가득한 현재의 사회 시스템과 문화에서 비롯된 예견된 일이었다.” 밴엔제리스가 공식 웹사이트에 게재했던 성명에 나오는 말이다.

지난 30년 동안 벤앤제리스는 동성결혼에서부터 형사 사법제도 개혁, 선거자금법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사회적 문제에 항상 목소리를 높여왔다. 또한 서플라이체인 전반에 걸쳐 윤리적 제품을 공급하고 (첫 번째 매장이 들어섰던) 버몬트 직원들에게 높은 수준의 생활임금을 지급함으로써 내부적으로도 그와 같은 ‘사회적 윤리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벤앤제리스는 자신들이 세운 목표들을 달성하기까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이 아이스크림 브랜드는 단지 이윤을 남기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진보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수단으로 자신들의 제품을 대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갖춤으로써 시대의 흐름에 저항하고 있다.

″벤앤제리스는 아마도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들 중에서 인종차별에 대해 가장 활발하고 강력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곳일 거라고 본다.” 펜실베이니아대 와튼 경영대학원의 스테파니 크리리 교수가 말했다. 그는 기업 아이덴티티와 다양성을 집중적으로 연구해왔다. ”그들이 기준을 무척 높여놓은 게 현실이다.”

다른 기업들이 자신들의 약속이 진심이라는 점을 고객들에게 납득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벤앤제리스가 ‘백인 우월주의를 끝내야 한다’고 말하면 고객들은 대부분 진심으로 그 말을 믿는다. 이 회사가 걸어온 길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벤앤제리스는 미국 버몬트주 벌링턴의 한 옛 주유소 건물에서 시작됐다.
벤앤제리스는 미국 버몬트주 벌링턴의 한 옛 주유소 건물에서 시작됐다. ⓒBen & Jerry's

 

1988년 ‘평화 아이스크림’의 탄생

1978년, 공동 창업자이자 어린 시절부터 친구인 벤 코헨과 제리 그린필드는 버몬트주 벌링턴의 한 주유소를 개조한 곳에서 벤앤제리스를 시작했다. 두 사람은 처음에는 그저 좋은 아이스크림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이후 10년 동안 그들은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 이상으로 사회에 긍정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영향을 미치기 위해 노력해야 할 필요를 느끼기 시작했다.

1988년, 두 사람은 첫 번째 ‘강령(mission statement)‘을 작성했다. ”‘우리의 사회적 사명은 비즈니스의 힘을 이용해 사회적, 환경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되어있었다. 아니면 그런 비슷한 거였을 거다!” 제리 그린필드가 허프포스트에 말했다.

그러나 벤과 제리는 그런 말들은 너무 막연해서 효과가 없다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좀 더 구체적일 필요가 있었다.” 그린필드가 말했다. 고민 끝에, 그들은 새로운 쪽으로 포커스를 맞추기로 했다. 진보적 가치, 특히 평등과 지속가능성을 우선시하기로 한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벤앤제리스는 사회적 발언에 나섰다. 미국 어린이 다섯 명 중 한 명이 빈곤에 허덕이는 상황에서 핵무기에 수십억달러를 지출하던 레이건 정부에 항의하고 나선 것이다. 

당시 벤과 제리스는 초콜릿으로 덮인 아이스크림 바를 개발 중이었다. 벤은 제품 포장지에 ‘연방정부는 국방예산의 1%를 평화촉진 사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요구를 담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1988년 ”평화 아이스크림”이 탄생했다. 벤앤제리스가 처음으로 자사 제품을 액티비즘과 연결시킨 결과물이었다. (* 편집자주 - 기업 액티비즘은 사회적 이슈들에 대한 정부 정책 변화를 주장하고, 이를 위해 적극적인 행동에 나선다는 점에서 흔히 말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social responsibility’과 구분된다.)

논란도 있었다. 일부 직원들은 소비자들이 이 브랜드를 정부 정책을 비난하는 ‘비애국적인’ 제품이라고 생각하여 제품을 보이콧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벤은 (이같은 우려에) 단호히 맞서며 ‘이렇게 목소리를 내는 게 우리 회사가 할 일이야’라고 말했다.” 그린필드가 당시 상황을 회상하면서 말했다. ”정작 제품을 출시하자, 그런 나쁜 일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다.”

벤앤제리스의 창업자, 벤 코헨(오른쪽)과 제리 그린필드(왼쪽)가 유엔본부 앞에서 자사 최신 제품인 '평화 아이스크림(the Peace Pop)'을 들고 있는 모습. 1998년 8월17일.
벤앤제리스의 창업자, 벤 코헨(오른쪽)과 제리 그린필드(왼쪽)가 유엔본부 앞에서 자사 최신 제품인 '평화 아이스크림(the Peace Pop)'을 들고 있는 모습. 1998년 8월17일. ⓒAP Photo/Mario Suriani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 기업이 사회적 이슈에 대해 공개적으로 어떤 입장을 취한다는 건 생소한 일이었다. 기업들이 기후변화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때로는 고객들을 속여가면서) 자신들의 제품과 서비스가 친환경적이라며 고객들을 안심시키고는 했다. 그러나 사업주들이 자신들의 사업과 직접 관련이 없어보이는 사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경우는 없었다.

회사 소개에 나선 벤과 제리스에게 ”논쟁적인” 문제에 의견을 말하면 회사의 이익에 타격이 있을 것이라고 조언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벤앤제리스는 번창하고 있으며, 여전히 활발히 사회적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형사 사법 개혁 필요성을 홍보하기 위해 개발한 맛인 ’저스티스 리믹스드(Justice ReMix’d)‘, 반(反)트럼프 운동을 지원하는 맛의 ’피칸 저항(Pecan Resist)’처럼 정치적이고도 도발적인 이름을 붙인 제품들이 이 회사의 시그니처 메뉴가 됐다. 고객들도 이제는 이런 식의 제품 명칭에 익숙해졌다.

″내가 볼 때 근본적으로 벤앤제리스는 어쩌다가 아이스크림을 팔게 된 활동가들이다.” 와튼 경영대학원의 아메리커스 리드 교수(마케팅)이 말했다. ”사람들이 ‘나는 벤앤제리의 고객이다‘라고 말할 때, 그들은 단지 ‘나는 이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고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그런 가치들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트럼프 반대 운동을 지지하는 의미로 개발된 '피칸 저항(Peacan Resist)' 맛을 홍보하는 트럭.
트럼프 반대 운동을 지지하는 의미로 개발된 '피칸 저항(Peacan Resist)' 맛을 홍보하는 트럭. ⓒASSOCIATED PRESS

 

‘연결된 성공’

벤앤제리스는 지난해 미국 전국 수백 개의 매장과 슈퍼마켓에서 파인트와 바를 판매해 6억8150만달러(약 8124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현재 벤과 제리는 더 이상 경영에 관여하지 않는다. 첫 번째 CEO였던 벤은 1994년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두 사람은 2000년에 벤앤제리스를 다국적기업 유니레버에 매각했다. 벤앤제리스 이사회의 승인이 있긴 했지만, 당시 벤은 회사가 독립 기업으로 남아있는 걸 선호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매각으로 두 사람은 돈만 밝힌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수십억 달러의 다국적 대기업에 인수됐음에도 벤앤제리스는 진보적인 기업이라는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힘썼다. 인수 계약서에는 액티비즘에 관련된 예산으로 연간 최소 110만달러(약13억1131만원)를 지출해야 한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이후 회사 내에 사회 정의(social justice)를 위한 활동을 전담하는 부서가 신설됐다. 기업 액티비즘 매니저 밀러가 담당하고 있는 바로 그 부서다. 밀러는 6년 전 벤앤제리스에 합류하기 전에 당시 버몬트 하원의원이었던 버니 샌더스 사무소와 그린피스 아메리카에서 일했다. 다른 팀원들도 정치나 사회단체 활동 경력을 가지고 있다.

밀러가 이끄는 부서는 다른 기업들이 ‘우리도 사회 정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하는 일회성 거액 기부 뿐만이 아니라, 여러 풀뿌리 단체들과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있다. 그 단체들의 활동에 힘을 실어주고, 운동을 증폭시키는 데 기업의 자원을 투입하는 것이다.

″단체들을 지원하기 위한 기부도 한다.” 밀러가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프레이밍, 커뮤니케이션, 언론 홍보, 디지털 사용, 소셜미디어 채널 운영 등에 있어서도 전문가다.”

벤앤제리스가 인종 간 불평등과 형사 사법제도 개혁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건 다양성이 결여되어 있는 내부 상황에 대한 일종의 반작용이기도 하다. 버몬트주가 그렇 듯, 벤앤제리스 사무실 직원들의 95%가량은 백인이다. (매장 직원들은 훨씬 더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미국에서 백인과 흑인이 서로 다른 경험을 하면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밀러는 설명했다.

2019년 벤앤제리스가 사법 형사제도 개혁 운동을 홍보하기 위해 개발한 신제품 '저스티스 리믹스드(Justice ReMix’d)를 공개하고 있다. 벤앤제리스는 세인트루이스와 마이애미 등지에서 관련 활동을 공동으로 진행했던 'Advancement Project National Office'와 파트너십을 맺고 몇 년 동안 이 캠페인을 진행할 예정이다.
2019년 벤앤제리스가 사법 형사제도 개혁 운동을 홍보하기 위해 개발한 신제품 '저스티스 리믹스드(Justice ReMix’d)를 공개하고 있다. 벤앤제리스는 세인트루이스와 마이애미 등지에서 관련 활동을 공동으로 진행했던 'Advancement Project National Office'와 파트너십을 맺고 몇 년 동안 이 캠페인을 진행할 예정이다. ⓒEric Kayne/ AP Images for Ben & Jerry's

 

지난해, 전국적인 단체들을 작은 풀뿌리 단체들과 연결시켜주는 시민권 단체 ‘어드밴스먼트 프로젝트 내셔널 오피스‘는 벤앤제리스를 ‘클로즈 더 워크하우스(Close the Workhouse)’와 연결시켜줬다. ‘워크하우스’라고 알려진 세인트루이스의 이 감옥은 수용자의 90%가 흑인이며, 대다수가 보석금을 낼 여유가 없어 미결 재판을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클로즈 더 워크하우스(Close the Workhouse)’의 활동가인 이네즈 보르도는 벤앤제리스의 ”사회적 활동 역사” 때문에 이 기업과 협업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벤앤제리스가 와서는 ‘우리는 당신들이 이런 방식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해‘라고 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대신 그들은 ‘무슨 일을 하고 있어? 우리가 어떻게 더 도울 수 있을까?’라고 항상 물어봤다.” 그가 말했다. ”이런 사람은 흔치 않다. 이런 메이저 기업은 흔하지 않다.”

이 단체가 직접적인 행동(이를 테면 예산 심의를 앞두고 있는 의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의견을 표출해달라고 주민들에게 요청하는 것)을 촉구하는 운동을 조직하던 그 때, 벤앤제리스 직원 10여명은 이 캠페인을 소셜미디어에 널리 알리는 데 투입됐다. 2019년 6월 벤은 직접 세인트루이스 시청을 방문해 시장에게 감옥 폐쇄를 요청했다. 보르도에 따르면, 언론의 주목이 도움이 됐다. 올해 7월17일, 세인트루이스 의회는 2020년 말까지 워크하우스 감옥을 폐쇄하는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보르도는 이 성공이 ”열심히 노력한 활동가들 덕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때 벤앤제리스가 직접 와서 시장을 만난 건 이 캠페인의 성공에 많은 도움이 됐다.”

벤앤제리스는 버몬트주의 최저임금 7.17달러(약 8551원)보다 높은 시간당 18.13달러(약 2만1623원)을 신입 직원들에게 지급하고 있으며, 노동자들이 매일 퇴근할 때 아이스크림 세 파인트를 집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입사지원서에 흔히 등장하는 범죄경력 관련 항목을 없애자는 전국적인 운동에 동참하는 의미로 2015년 입사 지원 첫 단계에서 범죄경력조회도 폐지했다.

 

벤 코헨과 제리 그린필드가 버니 샌더스 행사장에서 아이스크림을 서빙하고 있다. 두 사람은 첫 번째 매장이 있는 벌링턴을 지역구로 둔 버니 샌더스를 지지한다. 레이몬드, 뉴햄프셔주. 2019년 9월1일.
벤 코헨과 제리 그린필드가 버니 샌더스 행사장에서 아이스크림을 서빙하고 있다. 두 사람은 첫 번째 매장이 있는 벌링턴을 지역구로 둔 버니 샌더스를 지지한다. 레이몬드, 뉴햄프셔주. 2019년 9월1일. ⓒSOPA Images via Getty Images

 

벤앤제리스는 2012년 사회적·환경적 긍정적 영향을 수익 창출 못지않게 중요하게 여기자는 구상을 공식화했다. 기업이 투자자들뿐만 아니라 관계된 모든 사람을 위한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 비영리 인증을 받은 ‘B 법인’이 된 것이다.

″벤앤제리스는 비즈니스에 사회적 가치를 깊이 새기는 일에 있어서 선구자 중 하나로 독보적이었다.” B랩 미국&캐나다의 마케팅 이사 비나 하바우가 말했다. ”이제 그들은 수많은 ‘B 법인’들 중에서도 그들이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의 폭과 깊이에 있어서 독보적이다. 사회 변화를 만드는 행동을 끌어내고, 기업들이 인종 간 평등에 대한 책임을 자각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B 법인인 벤앤제리스의 협력업체들도 비슷한 기준을 두고 있다. 벤앤제리스의 아이스크림에 들어가는 브라우니를 만드는 그레이스톤 베이커리는 취업 장벽을 겪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채용 기회를 주기 위해 면접, 이력서, 지원서를 받지 않고 신원조사도 하지 않는다. 그레이스톤 베이커리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은 직접 매장을 방문해서 채용 리스트에 이름을 적어야 한다. 일자리가 나면, 그레이스톤 측은 상단 리스트에 있는 사람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자리를 제공한다.

대다수의 미국인이 비상금으로 쓸 500달러조차 저축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벤앤제리스의 쿠키 반죽 공급업체인 라이노 푸드는 직원들을 위해 사실상 내부 대출 제도인 소득 증대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벤앤제리스는 이러한 사업 방식을 ”연결된 성공(linked prosperity)”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직원에서부터 공급 업체, 고객에 이르기까지 생산 공정에 관여하는 모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으로부터 출발한다.

″벤앤제리스는 꽤 공정한 자본주의를 구현하고 있다.” 자선활동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에릴리 바먼 보스턴대 교수(사회학)가 말했다. ”그들은 직원과 고객들을 잘 대우한다는 평판을 유지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계속되는 한, 그들도 잘 해나갈 거다.”

이주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을 촉구하는 운동 'Milk With Dignity'에 참여한 낙농장 노동자들과 단체 활동가들이 2017년 버몬트주에 위치한 벤앤제리스 공장으로 행진하고 있다.
이주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을 촉구하는 운동 'Milk With Dignity'에 참여한 낙농장 노동자들과 단체 활동가들이 2017년 버몬트주에 위치한 벤앤제리스 공장으로 행진하고 있다. ⓒAP Photo/Wilson Ring

 

쉽지 않은 길

그러나 이런 칭찬받을만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벤앤제리스 역시 비판을 받을 때가 있다.

벤앤제리스가 낸 ‘블랙라이브스매터’ 성명은 벤앤제리스의 이스라엘 공장과 두 개의 매장에 대한 오랜 비판에 불을 지폈다. 버몬트의 한 친(親)팔레스타인 단체는 논란이 되는 이스라엘 분쟁지역에서 벤앤제리스가 아이스크림을 팔며 돈을 벌고 있는 건 위선적인 행위라고 비판했다. 벤앤제리스의 대변인은 허프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현지 시장(에서 사업을 벌이는 것)이 얼마나 복잡한지 잘 알고 있다”고 말하며 제조 공장과 매장은 모두  이스라엘 분쟁지역에서 지리적으로 벗어나 있다고 밝혔다.

벤앤제리스는 일부 공급업체들의 잘못된 관행에 대해서도 비판을 받아왔다. 2015년, 버몬트 낙농장의 이주 노동자들은 낙농 산업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주 차원의 운동에 동참하며 벤앤제리스의 플래그십 매장인 벌링턴 매장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벤앤제리스가 우유 공급업체들에게 노동자 휴가 보장, 휴일 확대 등을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벤앤제리스는 2017년이 되기까지 노동자들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품격있는 우유’ 운동을 선도한 풀뿌리 단체의 활동가 마리타 카네도는 지난 달 버몬트 공영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설득에 몇 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벤앤제리스는 당시 비공식적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었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최초이자 여전히 유일하게 ‘품위 있는 우유’ 운동에 동참한 기업이다. 우리는 이것을 성공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그로 인해 나타난 진정한 변화에 자부심을 느낀다.” 회사 대변인이 허프포스트에 말했다.

벤앤제리스의 생활 임금 정책에서 제외된 사람들이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실제로 시간당 임금과 복리후생비는 각 주의 법률과 가맹점주에 따라 적용된다. 이 때문에 정작 미국 전역의 여러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일하고 있는 가맹점 직원은 벤앤제리스가 약속한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에 대해 벤앤제리스의 대변인은 이렇게 해명했다. ”대부분의 가맹점주들은 직원들을 엄청나게 아끼며, 고객 경험을 선사하는 데 있어서 직원들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 (다만) 다만 매장에서 일하는 직원은 제조 부서 직원들과 비교하면 대체로 주당 1~2일 정도로 더 짧게 일하는 경우가 많다.”

고객들이 벤앤제리스 세 가지 맛 신규 출시를 기념하며 팝업트럭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할리우드, 캘리포니아주. 2018년 1월16일.
고객들이 벤앤제리스 세 가지 맛 신규 출시를 기념하며 팝업트럭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할리우드, 캘리포니아주. 2018년 1월16일. ⓒASSOCIATED PRESS

 

벤앤제리스가 만들어가는 가치

늘 모든 게 순탄했던 건 아니라고, 제리는 말했다.

벤앤제리스가 채택했던 야심 찬 정책들은 종종 폐기됐다. 예를 들어 임원급의 급여가 최저임금을 받는 직원의 급여를 5배 이상 넘기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은 벤이 경영에서 손을 뗀 후 더 좋은 경영자를 영입하기 위해 폐기됐다.

유니레버가 벤앤제리스를 인수한 후에는 성장통을 겪었다. 정리해고들이 있었고, 벤앤제리스의 액티비즘에 대한 거부 반응도 있었다.

그 모든 일들을 거치는 동안, 벤앤제리스의 경영진들은 이 아이스크림 회사가 사회적 변화를 위한 운동의 선봉에 서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제리가 벤과 함께 회사를 차렸을 때를 돌아보면, ’사회정의를 추구하는 기업’이라는 개념은 시대를 앞서갔던 것이었다. 40년이 지난 지금, 많은 기업들은 벤앤제리스의 사례를 모범으로 삼고 있다. 유니레버는 벤앤제리스를 인수한 이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보다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사회적 이슈에 대해) 입장만 내놓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아 맹렬한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기업의 사회적 활동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알고 싶은 기업이라면, (벤앤제리스를) 참고할 만하다.” 크리리 교수의 말이다.

리드 교수의 생각도 이와 같다. ”그들은 이 분야의 기준(gold standard)이나 마찬가지다.” 그가 덧붙였다. ”(사회적 이슈들에) 깨어있으면서 매일 스스로의 가치에 따라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는 거다.”

제리는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시위에 불이 붙은 상황에서 벤앤제리스가 ‘블랙라이브스매터’ 입장문을 내는 것을 보고 핵심적인 기업의 정신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느꼈다.

″벤은 벤앤제리스가 논쟁적인 이슈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내놓고 행동할 수 있도록 운영했다.” 제리가 말했다. ”우리는 다른 기업들이 얼씬도 하지 않았던 4년전에도 ‘블랙라이브스매터’ 운동을 지지했다.”

″유니레버가 회사를 인수한 이후 잘 안 되었던 때도 있었는데, 요즘은 일이 잘 풀리고 있어서 기쁘다.” 제리가 덧붙였다. ”회사가 백인우월주의를 종식하자는 성명서를 들고 나오는 걸 보면 정말이지 뿌듯하다.”

 

* 허프포스트US의 Ben & Jerry’s Showed America What Real Corporate Activism Looks Like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국제 #브랜드 액티비즘 #미국 #아이스크림 #벤앤제리스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