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남성 뷰티 산업 붐은 평등이 아닌 퇴보다

진정한 자기돌봄은 자본주의를 버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진 속 남성은 필자가 아닙니다)
(사진 속 남성은 필자가 아닙니다)

솔직히 인정하는데, 나는 스킨케어에 엄청나게 집착한다. 먼저 포밍 클렌저부터 쓰는데, 구루들이 추천한 대로 60초 동안 피부에 마사지한다. 다음에는 하이드레이팅 토너를 스프레이로 뿌린다. 그리고 펩타이드 세럼을 바르고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활성산소를 상쇄하기 위해 항산화제가 풍부한 알로에 베라 베이스 하이드레이팅 세럼을 바른다. 아침에만.

저녁에는 레티노이드 2% 솔루션, 나이아시나마이드 10%와 아연 1%, 비타민 C 트리트먼트를 번갈아가며 사용한다. 피부를 부드럽게 하고 콜라겐 생성을 돕기 위해서다. 밤에 하는 이유는 이것이 피부를 햇빛에 굉장히 민감하게 하기 때문이다. 낮의 SPF가 아주 중요하다. UVB와 UVA로부터 피부를 보호해야 한다.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박피(물리적으로, 화학적으로)를 한다. 보통 젖산을 쓰지만 가끔 살리신 산도 섞는다. 그냥 재미로.

이걸 읽고 내가 미쳤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내가 미친 건 사실이지만, 나 같은 사람이 많다.

최근 몇 년 동안 뷰티에 대한 남성들의 관심이 아주 커졌다. 미국의 조사에 의하면 2022년에는 시장 규모가 1660억달러에 달할 것이라 한다. 남성 스킨케어 매출이 작년에 7% 늘었다.

누구 때문일까? 유튜브 뷰티 브이로거들(제임스 찰스 등), 유명한 방송인들(탠 프랑스, 조너선 밴 네스)이 젠더 퍼포먼스에 대한 경직성을 어느 정도 무너뜨려, 뷰티와 웰니스의 말끔한 시장에 살짝 발을 들이는 것이 사회적으로 훨씬 더 용납받을 수 있는 행동이 되었다. ‘러브 아일랜드’(영국에서 시작된 리얼리티 TV 프로그램) 역시 영향을 주었다. ‘러브 아일랜드’는 “8월 12일까지 12주 동안 남성 스킨케어 제품 판매를 16% 늘렸다”고 한다.

외모에 대한 남성의 관심이 최근에만 국한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지나치게 순진한 것이다. 남성 탈모 제품 성장에 대한 인스타일 글에서 대니얼 프레드먼은 “밀레니얼의 신체 긍정과 포용 추구에도 불구하고, 외모의 한 영역에는 아직도 오명이 뒤따른다. 탈모다.”라고 주장한다. 이 시장은 ‘웰니스’라는 시대정신에 맞춰 옷을 갈아입었고, 과학을 내세워 마케팅이 가능한 해결 방안과 중력을 거스르는 기적을 판다.

하지만 역사를 돌아보면 남성들은 언제나 탈모에 대한 혁신적인 해결책을 찾아왔다. 남성들이 가발을 많이 쓰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지만, 율리우스 카이사르도 탈모를 가리기 위해 부분 가발을 썼다고 알려져 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율리우스 카이사르

그렇다면 피부과학에 대한 현대 남성들의 집착은 어떻게 다른 걸까? 남성들이 얼굴에 로션을 바르는 것을 편안하고 안전하게 느끼게 하기 위해 사용하는 마케팅 전략들을 관찰해보면 아주 흥미롭다. 제품 패키징(보통 검은색이고 볼드하다)은 원초적 야수성을 전하려는 시도가 아닐까 싶다. 우리의 정신을 붙잡고 있는 깨지기 쉬운 남성성에 대한 어필인 것이다. 2019년에 남성 메이크업 브랜드는 ‘워 페인트’(War Paint) 캠페인을 선보여 좋지 않은 이유로 관심을 끌고 바이럴되었다. 타투를 많이 한 근육질 남성이 등장하는 이 광고는 남아있는 오명을 떨치려 했다지만, 남성들이 조금이라도 여성적인 행동을 시도하기조차 어렵게 만드는 엄청나게 군대화되고 남성적인 표현을 과하게 사용했다.

남성 뷰티 시장이 커지는 것이 드디어 남성들이 ‘스스로를 돌보고 있다’는 징후라고 주장하기가 참 쉽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여성들이 자신의 아름다움과 신체에 대해 갖고 있는 불안을 남성들에게도 불어넣는 기업들의 솜씨가 좋아진 것이다. 기업은 그런 다음 해결책을 우리에게 판매한다.

파고들기 시작하면 ‘뷰티’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담론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서로에게 나누는 우리 자신에 대한 대화이다. 하지만 똑같은 대화를 더 많이 나눌수록, 우리가 매력적이고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의 경직성은 더 커진다. 뷰티는 그러므로 전적으로 계급을 통해 구성된다. 뷰티는 우리가 본의 아니게 스스로를 비교하게 되는 이상적인 기준이다. 하지만 이 기준은 매스 미디어를 통해 너무나 쉽게 재생산되며, 광고주들은 조작하고 착취한다. 그들은 우리의 건강, 젊음, 치장은 결코 완벽하지 못하다고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물건을 판다.

다시 만들어진 ‘퀴어 아이’와 같은 메이크오버 쇼는 이런 불안, 참가자를 미와 소비의 규범적 기준에 동화시키려는 자본주의의 힘에 기반을 두고 있다. 여러 참가자들이 자신감을 되찾는다는 건 분명 사실이지만, 그건 현상태(status quo)에 의거한 자신감이다. 팹 파이브(fab five)는 사람들을 고치려 하지, 애초에 그들이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게 만든 시스템을 고치려 하지 않는다.

젊음과 아름다움을 지나치게 미화하는 사회에서 여성이(점점 남성도) 편안함과 자신감을 느끼기 위해 돈을 더 내야 하나? 뷰티에 대한 남성의 관심이 폭발하는 것은 물론 평등의 징후일 수도 있다. 하지만 거기엔 비용이 따른다. 문자 그대로의 의미다.

‘자기 돌봄’의 궁극적 형태는 자본주의를 아예 버리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분이 좋고 싶다는 사람을 누가 비난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존재하는 유일한 게임을 할 수 밖에 없을 때가 많고, 그 게임은 5단계 + 일주일에 박피 한두 번으로 구성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