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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5월 06일 16시 05분 KST

[옷장 꽉 찬 쪽박 할머니 탈출 프로젝트②] 당신이 팔로우하는 '그 언니'가 구독자들을 가스라이팅하는 방법

인플루언서는 '가부장제를 파는 이중 스파이'일 뿐이다.

게티 이미지
자밀라 자밀/자료사진.
Westend61 via Getty Images
자료사진.

[옷장 꽉 찬 쪽박 할머니 탈출 프로젝트]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20세기 프랑스 작가이자 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가 한 말이다. 보부아르는 여자들이 평생 살아가며 추구하는 ‘여성스러움’이 여성을 수동적인 틀에 가둬놓고, 눈요기에 좋은 이등시민으로 머물게 하기 위해 남성들이 사회적으로 만든 허상일 뿐임을 지적했다.

 

그러니까, 여자는 ‘물건‘이기 때문에 어떻게 치장하느냐에 따라서 그 가치가 달라지며, 그들이 어떻게 꾸미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는 그 사회적 관념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여자들은 여자로 ”만들어지기” 위해 숨을 옥죌 만큼 조이는 불편한 옷과 신발, 화장품에 돈을 써가며 재정난에 시달리게 된다. 노년의 삶은? ‘여성스러움’도, 경제력도 잃은 채 쓸쓸하게 눈 감게 되겠지.

 

더 이상 허상만 좇다가 ‘옷장 꽉 찬 쪽박 할머니’로 생을 마감하기는 싫어 ‘허프포스트’가 기획했다. 한 번 사는 인생, 인형처럼 사는 대신 멋지고 끝내주게 살고 싶다.

 

넷플릭스
'굿 플레이스' 스틸컷.
자밀라 자밀 인스타그램
카다시안을 저격하는 자밀라 자밀.

가부장제를 파는 이중 스파이

 

“나이팅게일이 현대 간호학을 세웠을 때 몸무게가 얼마였을까? 흑인 인권 운동가 로자 파크스가 백인 승객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지시를 무시하고 버스 좌석에 앉았을 당시 몸무게는? 파키스탄의 여성 교육 운동가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말랄라 유사프자이가 탈레반 지배 지역 파키스탄 소녀들의 삶에 대해 쓰기 시작했을 때는? 모른다고? 당연하다. 몸무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으니까.”

 

넷플릭스 시리즈 ‘굿 플레이스’의 타하니는 친언니에게 쏠린 관심과 사랑 탓에 사회적 시선에 연연하게 되는 애정결핍 캐릭터다. 하지만 타하니를 연기한 자밀라 자밀은 정확히 그 반대의 인생을 살아간다. 겉모습이 아닌 내면에서 자신의 가치를 찾고, ”어린 여성들에게 끔찍한 악영향을 미치는” ”가부장제를 파는 이중 스파이” 킴 카다시안 가족의 폐해를 위와 같은 발언을 통해 낱낱이 짚어낸다.

자고 일어난 후의 모습을 상상해보자. 퉁퉁 부은 눈과 헝클어지고 눌린 머리, 흐트러진 모습이 기본일 것이다. 그런데 관찰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연예인들은 마치 다른 종족이라도 되는 양 정돈된 모습을 보인다. 세팅된 머리와 피부, 방금 그린듯한 눈썹으로 카메라 앞에 선 그들에게서 현실성을 찾아보긴 힘들다. 얼마 전 관찰 예능에 출연해 비현실적으로 ‘예쁜’ 기상 모습을 보여준 한 여자 아이돌 그룹은 한술 더 떠 화보 촬영 당일, 아침식사로 마라샹궈를 주문한다. 아침부터 마라샹궈를 먹는 그들의 몸무게는?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정상 체중에 한참 못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연예인뿐만이 아니다. 인플루언서들은 SNS에 ”살이 쪘다”고 주장하며 누가 봐도 마른 몸을 찍어 올리고, 마치 ‘이렇게 많이 먹어도 마른 나’를 자랑이라도 하듯 푸짐한 식사 메뉴 사진을 업로드한다. 팔로어가 일정 숫자에 도달하면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몸매 관리에 효과를 봤다는 효소, 다이어트 보조제의 공동 구매를 진행하기 시작한다. 

클로이 카다시안 인스타그램
클로이 카다시안 인스타그램 게시물.
클로이 카다시안 인스타그램
"배가 납작해졌다"며 식사 대체 셰이크 공동 구매를 진행하는 클로이 카다시안.
클로이 카다시안 인스타그램
자밀라 자밀의 댓글.

그런데, 그들의 마른 몸이 과연 제품 덕분일까? 자밀라 자밀은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한다. 다음은 대중에게 ”뚱뚱한 카다시안”이라고 불리던 클로이 카다시안이 식사 대체 셰이크 공동 구매를 진행하자 자밀라 자밀이 댓글을 통해 한 말이다.  

 

″당신이 아래와 같은 사실을 명시하지 않을 정도로 무책임하니 제가 대신 글을 씁니다.

a) 당신은 아름다움을 얻기 위해 이 보조 제품이 아닌 PT 지도사, 영양사, 셰프, 시술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b) 의사들은 식품의약처의 허가를 받지 않은 이 제품이 건강에 미치는 부작용이 해롭다고 말합니다. 배가 납작해진 이유는 경련, 복통, 설사, 탈수증 등의 부작용 때문입니다. 

이 업계(연예계)가 당신을 외모에 이렇게까지 집착하도록 괴롭힌 건 정말 끔찍한 일입니다. 그것은 미디어의 잘못입니다. 하지만 그걸 여자아이들한테 전파하지 말아 주세요. 당신이 받은 상처를 다른 어린 여자들에게 주지 말아 주세요.”

 

이렇게 조언하는 자밀 또한 미디어가 주입한 사회적 미의 기준의 피해자였다. 영국 채널4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가 자랐던 90년대는 ‘헤로인 시크’, 즉 건강미와 반대되는 병약미와 퇴폐미가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케이트 모스, 조디 키드 등의 슈퍼모델이 우상화되던 당시, 뼈만 남았던 모델들은 패션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옷을 걸치지 않은 채 거울 앞에서 식사를 하고, 배가 나온 것 같으면 먹는 것을 그만둔다”는 말을 서슴없이 했다. 그들의 말에 영향을 받은 자밀의 친구들은 체중계 위에서 점심을 먹을 정도로 몸무게에 대한 강박 관념이 심했고, 자밀 또한 거식증에 걸려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밀은 당시엔 SNS가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아 유해성을 차단할 기회라도 있었다며 오늘날 뷰티 인플루언서와 셀럽들이 가지는 문제점에 대해 지적한다. 그들은 자신의 몸과 정신을 학대할 뿐만 아니라, ‘가부장제를 파는 이중 스파이‘를 자처하며 어린 여성들을 착취한다. 자밀이 정의한 ‘가부장제를 파는 이중 스파이’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부장적 이야기를 세상에 하는 여성을 의미한다. 사회의 가부장적 시선에서 ”이상적인 몸매를 팔면서 주름, 노화, 몸무게, 지방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만드는 것이 그들의 주 역할이다. 그들은 당신도 이 보조제를 먹고, 이 병원에서 시술을 받으면 ‘나’처럼 될 수 있다며 끊임없이 꼬드긴다. 

채널4 유튜브
자밀라 자밀.
채널4 유튜브
자밀라 자밀.

당신은 가스라이팅 당하고 있다

 

어원 ‘influence(영향)’에서 알 수 있듯이 인플루언서란 소셜 미디어에서 많은 팔로어를 가진 사용자를 지칭하는 단어로, 대중에게 연예인 못지않은 ‘영향력’을 행사한다. 

셀럽들이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해 제품을 홍보하고 금전적 이득을 취하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SNS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다이어트 보조제, 효소, 땀복에 더해 이제는 성형 시술마저 홍보하며 팔로어들이 끊임없이 ‘사회적 미의 기준’에 맞출 것을 호소하는 중이다. 이로부터 초래된 불규칙적인 생리 주기와 불면증, 우울증, 건강 저하 등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철저히 숨긴다. 

직접적으로 금전적인 이득을 보지 않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과거 꾸준한 운동만이 몸매 유지 비결이라 밝혔던 테일러 스위프트는 추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미스 아메리카나’를 통해 당시 운동을 열심히 한 것은 맞지만, 음식을 거의 먹지 않고, 섭취한 음식을 강박적으로 기록했던 사실을 숨겼었다고 밝혔다.   

그들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나이에 비해 어려 보여서도, 마른 몸매를 가지고 있어서도 아니다. 다만 외모를 가꾸기 위해 했던 노력을 대중들에게 숨기고 별다른 노력 없이도 ‘사회적 미의 기준에 도달할 수 있다고’ 끊임없이 세뇌하기 때문이다. 이는 인플루언서의 홍보 제품을 따라 사고 ‘뷰티 팁‘이라는 생활 습관을 따라 하는 소녀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언니들처럼 되지 않는다’며 자괴감에 빠지게 되는 이유가 된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일반 학생들은 피부과와 성형외과를 집처럼 드나들지도, 하루를 바나나와 계란으로만 버티지도, ‘꾸민 듯 안 꾸민 듯’ 보이기 위해 메이크업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지도 않는다. 하지만 SNS 주 이용자인 10대에서 20대 초반의 어린 학생들이 이 사실에 대해 알 리 없다. 그들에게 인플루언서가 끼치는 영향력은 생각보다 더 해롭다. 

허프포스트 미국 인스타그램.
나이, 무게, 셀룰라이트로 여성들에게 수치심을 주지 말라. 이는 피할 수 없으며, 완전히 평범한 일이다. 우리가 이를 두려워해서 '고치도록' 하는 것은 여성들의 실패를 바라서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페이스북은 자사 소속의 인스타그램이 특히 10대 학생들에게 유해하다는 사실을 이미 오래전 파악했다. 조사에 따르면 10대 소녀 중 32%는 자신의 몸에 만족하지 못할 때 인스타그램에 접속하면 더 나쁜 감정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너싱타임스 또한 ”소셜미디어 사용자들은 남들이 꾸며낸 이상적인 모습을 보고 부정적인 비교에 빠지게 된다”며 SNS 사용이 증가할수록 정신건강은 악화된다는 사실을 짚었다.

지난 4월, 미국의 NBC는 SNS를 통해 성형외과를 홍보하는 대신 무료 혹은 할인된 가격으로 해당 병원의 시술을 받는 인플루언서들에 대해 다뤘다. 뷰티 유튜버 로리 힐은 실제로 최근 몇 년 동안 인플루언서를 통해 병원을 홍보하는 업체가 늘었다는 사실과 함께 인플루언서가 최고의 성형 홍보 수단이 되었음을 전했다.

게시물이 대가를 지불받은 광고성 글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비포&애프터 후기로 둔갑시키는 등 홍보를 극대화하고 인플루언서로서의 영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중엔 본인의 영향력에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 이가 대다수다. 한 인터뷰이는 ”내가 원해서 시술을 받는 것이지, 누군가에게 원치 않는 시술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합리화하며 본인이 가진 ‘인플루언서’로서의 영향력을 애써 무시하기도 했다. 

결국 낮아진 자존감과 망가진 정신건강, 온갖 부작용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구독자들의 몫이다. 당신이 ‘팔로우‘하고 ‘따랐던’ 인플루언서는 ‘팁’과 ‘정보공유’의 탈을 쓴 가부장제를 수입원으로 삼아 열심히 구독자들을 착취했을 뿐이다.

밤비걸 유튜브
밤비걸.
밤비걸 유튜브
밤비걸.

세상이 규정한 아름다움은 사라진다

 

″더 이상 필요 이상으로, 자기만족 이상으로 꾸미는 것이 즐겁지 않다.” 한 때 뷰티 유튜버로 활동하던 밤비걸이 뷰티 콘텐츠 생산 중단을 선언하며 한 말이다.

주름과 나잇살은 노화의 자연스러운 과정인데, 굳이 그걸 왜 감추려고 하는 걸까? 밤비걸은 ”세상이 규정한 아름다움은 결국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는 결론에 도달하며 ”나를 계속 매력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고민에 ”나라는 사람 그 자체”라는 답을 도출해냈다. 

″사회에서 다시 보고 싶었던 이들은 단순히 예쁘고 잘생긴 사람이 아닌, 꿈이 있고, 눈빛이 빛나고, 에너지가 있는 사람”이었다고 밝힌 밤비걸은 본인과 구독자들도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치며 2018년 6월, 라이프스타일 크리에이터로의 전향을 선언했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 세상의 잣대는 계속해서 우리를 흔들고 구슬릴 것이다. 화려하고 행복해 보이는 모습만 골라 게시하는 인플루언서들이기에 그들처럼 가부장제가 녹아든 사회에 편승한다는 것은 어쩌면 더욱 달콤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10년, 20년 후 ‘세상이 규정한 아름다움’을 잃은 그들의 모습은? 더 어리고, 더 ‘예쁜’ 사람들에 의해 끊임없이 대체되지 않을까?

역사책에 기록되는 것은 당신의 얼굴도, 몸무게도 아닌 사회적인 업적이다. 자밀라 자밀은 말한다. ”가부장제 문화가 여성들의 발전을 방해하기 위해 이런 짓을 꾸미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매일 외모 단장에 시간을 보낸다면 비즈니스, 공부, 건강에 신경 쓸 겨를이 없을 테니 발전도 할 수 없다. 여성들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면, 외모를 단장하기 위해 남편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나기를 그만두면, 덜 먹고 더 많이 자는 습관을 버리면 어떻게 될까? 더 많은 에너지를 얻고 능력을 키우게 될 것이다. 가부장제 문화의 사람들은 그걸 경계하는 것이다.”

 

 

문혜준 기자: huffkore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