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본질적 메시지 전달하는 영국 드라마 'BBC 시대극' 7선

제인 오스틴, 윌리엄 셰익스피어, 톨스토이, 엘리자베스 개스켈샬롯 브론테

답이 필요한가? 고전이 유행한다는 건 존재론적 질문에 해답이 필요할 때다. 사랑이 무엇이고, 삶이란 무엇인지 알고 싶을 때. 얄밉게도 영국 대표 공영방송사인 BBC는 그런 걸 참 잘한다. 고전을 현대적으로 해석해내고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필요한 남다른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들 말이다. 5명의 세계 문학을 각색한 BBC 시대극 7선을 골랐다. * 해당 콘텐츠는 약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남과 북 North & South(2004)

스토리 산업화, 사회적 갈등 작가 엘리자베스 개스켈(Elizabeth Gaskell)

'남과 북'
'남과 북'

무려 BBC 홈페이지를 마비시켰다. 드라마의 첫 번째 에피소드가 방영되자마자 남자 주인공인 ‘존 숀튼(John Thornton)’ 역을 맡은 배우, ‘리처드 아미티지(Richard Armitage)’의 이름을 알고자 하는 수많은 이들이 홈페이지로 몰리면서 서버가 다운되었던 것.

제2의 ‘제인 오스틴‘이라고도 불리는 작가 ‘엘리자베스 개스겔‘의 작품 ‘남과 북‘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19세기 영국 산업혁명기를 무대로 여유롭고 아름다운 남부에 살던 여성 ‘마가렛 헤일(Margaret Hale)’이 아버지를 따라 공업도시인 북부로 이사 오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다. 마가렛은 냉정하지만 옳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지켜나가는 성공한 사업가 존 숀튼을 만나면서 기존의 계급과 관습이 달라지는 모습을 목도하고 충격에 빠진다. 산업화 과도기에서 벌어지는 사회적인 갈등이 남과 여, 남과 북 등 성별과 지역에 따라 보여준다.

“Look back, look back at me”

‘남과 북’ 바로 보기 왓챠플레이/ 웨이브

엠마 Emma(2009)

스토리 성장, 사랑 작가 제인 오스틴(Jane Austen)

'엠마'
'엠마'

얼마 전 개봉했던 ‘엠마‘의 드라마 판이다. 영국 아카데미(BAFTA)에서 상을 받았으며, ‘남과 북‘, ‘제인 에어’ 등을 각색한 유명 작가 샌디 웰치(Sandy Welch)가 맡은 작품으로 제작 전부터 화제가 됐다. 그녀의 터치로 말미암아 엠마는 화려하고 장난기 넘치며, 재치 있는 스타일의 작품으로 변화했다.

줄거리야 모두 알겠으나 부유하고 아름다운 주인공 엠마가 작은 시골 마을인 하이버리를 배경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다. 21살의 명랑한 엠마는 어릴 적 어머니가 죽은 이후로 아버지의 과민증 때문에 하이버리를 떠나 본 적이 없다. 하나밖에 없는 언니는 결혼 후 런던으로 가버렸으나 그녀는 아버지의 곁을 지키며 결혼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오로지 그녀의 관심은 마을 사람들을 중매해 결혼을 성사시키는 일이다. 하지만 무지와 순수에서 비롯된 오해는 사람들을 오히려 갈라놓기만 할 뿐이다. 천진난만한 엠마의 좌절, 그 과정에서 성장하는 모습은 보는 이들을 언니 오빠로 만들어버린다.

“My dearest, most beloved Emma.”

‘엠마’ 바로 보기 왓챠플레이(X) / 웨이브

할로우 크라운 The Hollow Crown(2012)

스토리 권력의 무상함, 인간의 고뇌 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할로우 크라운'
'할로우 크라운'

″내 심장과 가장 가까이 있는 건 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가 아직 곁에 있는 한 전 너무 행복해요” 10대 문학 소년이 말했을 법한 이 문장들은 톰 히들스턴(Tom Hiddleston)의 입에서 나왔다. 셰익스피어의 열렬한 팬으로 알려진 그는 천문학적인 금액이 투자된 마블 영화에 출연했지만, 여전히 셰익스피어의 작품이라면 기꺼이 무대로 향한다. 그런 그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다룬 BBC의 역사극 ‘할로우 크라운’에 출연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할로우 크라운’은 2012년 런던 올림픽 개최와 셰익스피어 타계 400주년을 기념으로 제작됐다. 셰익스피어의 역사극인 리처드 2세, 헨리 4세, 헨리 5세의 이야기로 총 4부작으로 제작됐으며, 독특하게도 3명의 감독이 3명의 왕을 각자의 시선으로 해석해 만들었다. 톰은 그중에서 헨리 5세를 맡았으며, 어려운 고어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완벽하게 소화해낸다. 드라마는 방탕했던 헨리 5세가 왕위에 올라 ’100년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결혼까지 이르는 과정을 모두 다루는데, 톰이 보여주는 연기력이 꽤 놀랍다. 토르의 ‘로키’ 또는 미드나잇 인 파리의 ‘스콧 피츠제럴드’로 기억하며 그의 아주 일부분밖에 보지 못했다는 사실에 안타까움마저 든다.

“If thou would have such a one, take me.”

▶ ‘할로우 크라운’ ″왓챠, 넷플릭스, 웨이브 여러분, 여러분은 하실 수 있잖아요. 데리고 와주세요.”

전쟁과 평화 War & Peace(2016)

스토리 전쟁, 평화 작가 톨스토이(Lev Nikolaevich Tolstoi)

'전쟁과 평화'
'전쟁과 평화'

제목 그대로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각색한 작품이다. BBC가 2016년 신년 기획으로 선보인 드라마로 약 230억 원을 들여 3년간 제작했다. 사실 영국이나 러시아나 우리와는 먼 외국이니 별 감흥이 없을 수 있으나, 영국의 대표 방송 BBC가 외국 작가의 작품을 3년간이나 공을 들여서 만들었다는 점은 놀랍다. 배경은 러시아지만 사람들은 영어로 대화하는 점은 어쩔 수 없었겠지만. 어쨌거나 우리나라로 치면 중국 작가의 작품을 KBS에서 야심 차게 선보인 것이니 큰 결심이 아닐 수 없다. 러시아 내에서도 이 같은 BBC의 도전적 결과물을 두고 호평과 혹평이 번갈아 쏟아져 나왔었다.

작품의 각색은 30년 이상 BBC와 함께 오만과 편견(Pride & Prejudice), 베니티 페어(Vanity Fair), 센스 앤 센서빌리티(Sense And Sensibility) 등의 고전 소설을 각색한 극작가 ‘앤드루 데이비스(Andrew Davies)‘가 담당했다. 책 속 이야기처럼 나폴레옹의 침공을 받아 혼란한 러시아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리얼한 ‘사랑과 전쟁‘을 그려냈으며, 영화 ‘옥자‘의 주인공 폴 다노(Paul Dano)가 피에르 베즈호프(Pierre Bezukhov) 역을 맡아 체중 증량을 하며 미모 대신 정말 뻔하게도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다.

‘전쟁과 평화’ 바로 보기 왓챠플레이 / 웨이브

오만과 편견 Pride & Prejudice(1995)

스토리 계층, 사랑 작가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오만과 편견'

‘다아시 마니아(Darcy Mania)‘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며, ‘콜린 퍼스(Colin Firth)‘신드롬을 낳았다. 1995년 방영 당시 무려 1천만의 영국인들이 시청했으며, 콜린 퍼스는 극 중 이름인 ‘다아시‘로의 개명을 진심으로 고민했다고 알려졌을 만큼 당시 인기가 대단했다. 그리고 그의 인기를 드높이는데 ‘레이크 씬(Lake scene)’이 큰 역할을 했다. 다아시가 호수에서 수영을 한 뒤 저택으로 걸어오다가 엘리자베스를 만나는 장면인데, BBC가 뽑은 20세기 100대 명장면에 베를린 장벽 붕괴와 나란히 2위에 선정되었으며, 유튜브 BBC 공식 계정을 검색해보면 25년이 지난 지금도 해당 영상 조회 수가 790만 회가 넘는다.

하지만 원작에는 다아시가 물에 뛰어드는 등의 장면은 전혀 없다. 이는 작가 앤드루 데이비스가 각색해서 넣은 장면이기 때문이다. 데이비스는 훗날 그 장면은 본래 ‘재미있는 장면‘이었다고 평했다. 다아시가 더운 날 호수에 뛰어들었다가 그 후에 예의 바르게 행동해야 하는 상황이 우스꽝스러웠다는 것인데, 당시 소녀들의 마음을 흔들었던 ‘섹시한 장면’이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고 회고했다. 거짓말이라는 합리적인 확신이 들지만. 물론 옷이 물에 젖은 상황에서도 격식을 차리고 대화를 나누던 펨벌리의 신사는 매너를 잊지 않고 킹스맨이 되었다.

“In vain have I struggled. It will not do. My feelings will not be repressed. You must allow me to tell you how ardently I admire and love you.”

▶ ‘오만과 편견’ 바로 보기 왓챠플레이 / 웨이브

크랜포드 Cranford(2007)

스토리 사랑과 오해, 이웃의 정, 산업화 작가 엘리자베스 개스켈

'크랜포드'
'크랜포드'

영국판 ‘대추나무 사랑걸렸네’라고 말하면 나이를 들키게 되는 걸까. 크랜포드는 1840년대 빅토리아 시대의 작은 시골 마을 크랜포드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코믹한 드라마다. 엘리자베스 개스켈의 소설 크랜포드를 비롯해 그의 소설 3개를 각색해 5부작 시대극으로 완성했다. 영국 아카데미상과 에미상(Emmy Awards)을 수상하면서 내용과 완성도는 이미 검증받았다.

유독 노처녀와 과부가 많이 살던 크랜포드에 젊고 잘생긴 의사 해리슨(Harrison)이 찾아오면서 드라마는 시작된다. 반한 여자는 따로 있으나 친절한 성격 때문에 다른 여자에게 오해를 사는 장면이 우스꽝스럽게 그려지지만, 그 모습이 귀엽고 안쓰럽기도 하다. 이 밖에도 작은 마을 안으로 철도가 들어온다는 소문에 우려하는 주민들의 모습에서 변화의 과정속에서 사람들의 대처 방식을 엿볼 수 있으며, 당시 빈부 격차, 남녀 차별 등 사회의 여러 문제를 다양한 계층의 삶 속에 녹여내며 진정한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톰 히들스턴을 비롯해 주디 덴치(Judi Dench),이멜다 스턴트(Imelda Staunton), 짐 카터(Jim Carter)까지 아주 유명인들만 모여 사는 마을이다.

“I’ll not listen to reason... reason always means what someone else has got to say.”

▶ ‘크랜포드’ 바로 보기 왓챠플레이 / 웨이브

제인 에어 Jane Eyre(2006)

스토리 계급 사회, 자아 찾기 작가 샬롯 브론테(Charlotte Bronte)

'제인 에어'
'제인 에어'

제인 오스틴이 중산층 여성의 삶을 다뤘다면, 샬롯 브론테는 하층민의 삶이다. 고아로 외롭게 자란 소녀가 당당한 삶을 쟁취하기까지의 삶을 파격적으로 그려냈으며, 곧 작가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역시나 고전 소설의 극작 전문인 샌디 웰치가 각색을 맡았으며, 과감하게 소녀가 여성이 되기까지의 삶은 짧게 그리고 본론으로 들어가는 형식을 취한다.

제인은 명문가 가정교사로 들어가 그 집의 주인이자 남자 주인공인 에드워드 페어팩스 로체스터와 사랑에 빠지지만, 그가 이미 정신병을 지닌 부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를 떠난다. 제인이 특별한 이유는 그녀가 가진 독립심과 판단력에 있다. 19세기 보수적인 영국 사회에서 여자에게 주어진 범위는 한없이 좁다. 남편에 의해서 행복이 결정되고, 유산이 아니라면 스스로 경제활동으로 부를 축적하는 것도 어려웠던 시대. 그런 상황에서 제인은 자신의 신념을 믿고 판단대로 나아간다. 200년이 지난 지금도 제인 에어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묵직한 울림을 주는 것은 고전이 가진 힘이자, 지금도 변화하고 있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Do you think, Because I am poor, plain, obscure and little that I have no heart that I am without soul?”

▶ ‘제인에어’ ″제인에어도 없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