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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넷은 '볼 넷'이 아니었고, 야구는 진화한다

볼 아홉 개였다가 1880년 여덟 개로 줄었다.

ⓒParalaxis via Getty Images
ⓒhuffpost

‘18.44’. ‘야생마’로 불린 이상훈(전 LG 트윈스)의 상징과도 같은 숫자였다. 모자에도, 사인공에도 그는 이 숫자를 새겨두었다. 18.44m는 투수판과 홈플레이트 사이의 거리. 투수의 손을 떠난 공은 0.4초 안팎의 찰나에 포수 미트에 꽂힌다.

만약 이상훈이 1890년에 야구를 했다면 그의 모자에는 15.24가 새겨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야구 초창기에는 마운드와 홈플레이트 사이 거리가 15.24m(50피트)였기 때문이다. 너무 가까워 보인다고? 이마저도 1881년 이전에는 소프트볼과 비슷한 거리인 13.71m(45피트)에 불과했다. 지금의 18.44m는 1893년에 정해졌다.

초창기 야구는 타자 중심이었다. 좌우 파울 라인도 없어서 크리켓처럼 타자가 어디로 공을 치든 ‘페어’ 선언이 됐다. 투수는 그저 타자가 잘 치도록 도와주는, 즉 지금의 배팅볼 투수 같은 역할만 했다. 1870년대 타자들은 높은 공을 원하는지 낮은 공을 원하는지 요청까지 할 수 있었다. 경기 전 타자들이 타격 연습을 할 때를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공격과 수비의 균형을 위해 점점 투수에 대한 제한을 풀어갔는데, 초기에는 토스하듯이 언더핸드, 사이드암 투구만 허용됐다가 1883~1884년에는 공을 어깨 위로 올렸다 던지는 오버핸드 투구가 가능해졌다. 마운드가 뒤로 옮겨진 것도 이런 변화와 함께 일어난 일이다. 투수 규제가 풀리면서 타자가 점점 불리해졌고 이에 투수판 위치를 18.44m 지점으로 조정했다. 1892년 리그 타율은 0.245였으나 투수판이 3m가량 뒤로 밀려 18.44m가 된 이듬해에는 0.280까지 상승했다.

볼넷 또한 처음부터 볼 ‘넷’이 아니었다. 맨 처음에는 볼이 아홉 개가 되어야 타격 행위 없이 1루로 걸어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1880년 여덟 개로 줄었고, 1884년에는 볼 여섯 개면 자동 진루권이 주어졌다. ‘볼넷’이 된 것은 1889년부터다. 투수 부담이 처음보다 절반 이상 줄었다. 1889년부터 볼넷은 안타가 아닌 볼넷으로 따로 표기되기도 했다.

스트라이크 아웃도 초창기와 달라졌다. 1874년에는 스트라이크가 4개 필요했다. ‘삼진’이 아닌 ‘사진’으로 불릴 수도 있었다는 뜻이다. 물론 그 전에는 헛스윙을 했을 때만 스트라이크로 인정했다. 1888년부터 스트라이크 아웃을 위한 스트라이크 개수는 3개로 줄었다. 1901년부터는 내셔널리그가 처음 두 번의 파울볼을 스트라이크로 선언하면서 투수들이 타자를 더그아웃으로 돌려보내기 한결 편해졌다. 스트라이크 아웃 비율 또한 덩달아 높아졌다. 그 이전까지 파울볼은 볼카운트에 들어가지 않았다.

수비를 서지 않고 공격만 하는 지명타자는 1973년에 등장했다. 느린 발과 늦은 타구 판단력으로 수비 기여도는 낮지만 ‘한 방’이 있는 타격 기술로 팀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선수들이 리그에서 살아남을 방법이 생긴 것이다. 나이가 제법 있는 베테랑 강타자가 조금 더 오래 야구를 할 수 있는 길이기도 했다. 수비는 아무래도 체력적인 부담이 있다.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나 국내 야구, 그리고 일본 야구 퍼시픽리그는 지명타자 제도를 활용하고 있으나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와 일본 센트럴리그는 지명타자 제도가 없어 투수가 타석에 서야만 한다. 투수 류현진이 LA 다저스 타석에 선 모습을 볼 수 있는 이유다. 투수는 보통 9번 타자로 나서는데 주자가 있는 경우 투수들에게는 1사 후에도 번트 지시가 내려온다. 타격이나 주루 도중 부상 우려 때문이다.

장비도 변했다. 포수가 최초로 마스크를 쓴 것은 1876년이었다. 하버드대 학생인 프레드 타이어가 하버드 야구팀 포수 알렉산더 팅에게 펜싱 마스크를 씌웠다. 야구 헬멧이 처음 선보인 것은 1941년. 그마저도 야구 모자 안에 단단한 삽입물을 넣는 식이었다. 1940년까지 타자들은 투수들의 빠른 공에 머리 등이 무방비로 노출돼 있었다. 1920년에는 양키스 우완 투수 칼 메이스가 던진 빠른 공에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유격수 레이 채프먼이 머리를 맞아 다음날 사망하기도 했다.

헬멧 착용이 의무화된 것은 1971년. 그러나 일부 선수들은 ‘조부 조항’(grandfather clause, 이전의 규칙, 계약 등을 인정하는 것)에 의해 헬멧을 쓰지 않고 플라스틱 내장재가 안감으로 쓰인 모자를 그대로 착용했다. 메이저리그에서 마지막으로 헬멧을 쓰지 않은 타자는 1979년까지 경기를 뛴 보스턴 레드삭스 포수 밥 몽고메리로 알려져 있다.

1982년 이후에는 메이저리그에 입성한 모든 선수가 한쪽, 또는 양쪽 귀덮개가 달린 헬멧을 써야 하는 조항이 생겼다. 대부분의 타자들은 한쪽만 귀덮개가 있는 헬멧을 쓰지만 마이너리그에서는 양쪽 귀덮개를 덮는 헬멧이 의무화되어 있다. 부상 방지 차원이다. 요즘에는 앞쪽에 안면 보호대를 덧댄 일명 ‘검투사 헬멧’을 선호하는 선수도 점점 늘고 있다. 다소 불편하지만 안전을 위한 선택이다.

 강속 타구에 머리를 다치는 사례가 발생하면서 투수도 안전 헬멧을 써야 한다는 여론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투수들은 투구 때 방해가 된다는 입장이다. 2007년 마이너리그 주루코치가 타구에 맞아 사망한 뒤 메이저리그는 주루코치의 헬멧 착용을 의무화했다. 한국 또한 2011년부터는 1·3루 주루코치 모두 헬멧을 써야 한다. 정강이 보호대는 1907년 뉴욕 자이언츠(1958년 샌프란시스코로 연고지를 옮겼다) 포수가 처음 사용했다. 그전까지 포수들은 바지 안에 신문지를 구겨 넣고는 했다.

과거에는 경기당 한 명의 선수만 교체가 가능했던 때도 있었다. 대타, 대수비, 구원 투수를 합해 단 한 번밖에 기용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지금은 25명 규정 엔트리(메이저리그 기준) 안에서 몇 번이든 교체 가능하다. KBO리그는 규정 엔트리가 27명인데 이들 중 미리 선택된 2명은 경기에 출전할 수 없다. 보통은 전날 선발 투수와 다음날 선발 투수를 출전 명단에서 제한다.

 일련의 과정들을 거쳐 지금의 현대 야구는 정립됐다. 하지만 야구공의 크기는 1876년부터 지금까지 둘레 9~9.25인치(22.9~23.5cm), 무게 5~5.25온스(141.7~148.8g)를 유지하고 있다. 정확히 108개의 바늘땀이 있는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야구공은 언제나 같은 크기로 둥글었고, 앞으로도 둥글 것이다. 그 작은 공이 만들어낼 드라마처럼.

* 필자의 블로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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