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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의 민족'에서 '식당 복사' 꼼수가 발각됐지만 불법은 아니라고 한다

메뉴와 음식 사진이 비슷하고 대표자와 식당 주소는 똑같았다.

'배달의 민족' 애플리케이션 주문 화면.
'배달의 민족' 애플리케이션 주문 화면. ⓒ배달의 민족

동네 맛집을 모아 놓은 ‘배달 책자‘엔 좀 먹어본 사람만 안다는 ‘야식집의 비밀‘의 존재한다. 하나의 식당에 전화기 10대를 갖다 놓고 마치 다른 가게인 척하는 야식집이 여럿 숨어있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빨간족발’ 이란 상호명으로 배달책자에 광고를 낸 A가게가 뒷장엔 ‘파란족발‘로 그 뒷장엔 ‘노란족발’로 광고를 내는 식이다.

열 곳에서 주문해도 결국 한 곳에서 배달 오는 일명 ‘야식집의 꼼수‘가 배달앱 시장을 파고들었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동 배민 근황’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화제가 됐다. 하나의 한식업체가 무려 90여곳에 달하는 식당을 등록했기 때문이다. AA, AB, AC처럼 이름은 교묘하게 달랐다. 그러나 메뉴와 음식 사진은 대부분 겹쳤고, 대표자와 식당 주소는 모두 똑같았다.

실제 1일 배달의 민족 앱에서 서울시 ○○구 ○○동으로 지역을 설정하고 ‘한식’ 카테고리에 들어가자 상위에 노출되는 ‘오픈리스트’ 광고엔 국X식당, 길X식당, 명X식당 3곳이 나타났다. 이름은 달랐지만, 사업자 정보를 확인하니 모두 동일한 가게였다. 오픈리스트 광고 아래 ‘울트라콜’ 광고에도 동일 사업자가 운영하는 식당이 수십개 나타났다. 하나의 사업장을 복사해 배달 앱을 장악하는 일명 ‘식당 복사’다.

 

 ‘야식집’의 전문화?

지난 31일 낮 12시, 해당 업체 입구엔 오토바이 헬멧을 쓴 수십 명의 라이더가 줄지어 있었다. 성인 남성의 가슴 높이만 한 ‘서빙 로봇‘이 복도 안쪽에 위치한 주방에서 입구로 음식을 실어 날랐고, 라이더는 봉투에 적힌 ‘업체명‘과 ‘주소’를 확인하고 있었다. 복도 너머의 주방에는 100여대 육박하는 모니터가 종합정보교통센터처럼 설치돼 있었다.

뉴스1 인터뷰에 응한 업체 관계자는 ‘야식집의 전문화’를 주장했다. 그는 ”과거 배달전문 야식집에서 한 매장에 전화기 여러대를 놓고 운영하는 방식을 전문화했다”며 ”우리 스스로 시장 논리에서 앞서나갈 수 있는 방식을 찾았다”고 말했다. 이어 ”이 동네에서 가장 주문이 많은 분야가 한식이었고, 우리는 한식을 베이스로 90개 정도 사업자등록을 냈다”며 ”저희가 불법을 저지른 게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방법이다. 다만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한 걸 우리가 먼저 하는 것이다”고 했다.

이름만 바꾼 식당을 수십 개 내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은 없느냐는 질문엔 ”어차피 모든 식당이 배달의민족에 광고를 수십 개씩 내놓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배달의민족은 광고 1건당 월 8만8000원을 내면 되는 ‘울트라콜’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자영업자들은 광고 노출을 높이기 위해 적게는 수십 개, 많게는 수백 개의 광고를 신청한다. 배달업계는 이를 ‘깃발꼽기’라 부른다. 이어 업체 관계자는 ”저희는 배달의민족에 건당 8만8000원을 주고 90개의 광고를 노출하는 것보다 차라리 사업자 등록을 90개 내는 방식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전략 vs 꼼수

물론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일종의 ‘전략’으로 볼 수도 있다. 실제 관할구청 관계자도 ”최근 한 곳에서 동시에 20~30개씩 사업자 등록을 신청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면서 ”하나의 사업장과 동일한 메뉴라고 하더라도, 주방시설 기준과 위생 기준을 충족하면 여러 개의 사업자 등록을 신청하는 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배달의민족 관계자도 ”앱내 식당을 등록하기 위해서는 사업자등록증, 영업신고증 등의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며 ”서류에 문제가 있으면 입점할 수 없지만, 적법하게 발급받았다면 저희가 입점을 거부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배달앱 노출 확대를 위한 ‘식당 복사‘가 전국 곳곳에서 나타난다면 자금력이 떨어지는 영세 자영업자들은 불리해줄 수밖에 없다. 선택의 폭이 제한된다는 점에서 소비자들의 불만도 동시에 터져나올 수 있다. 극단적인 경우지만, 김치찌개 식당 90곳에 주문해도 결국 한 곳의 ‘맛’만 볼 수 있는 음식이 배달되는 상황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외식업 사각지대 살펴야

자영업자들은 하나의 메뉴로 여러 상호를 내는 건 ‘편법‘이라 입을 모았다. 인근에서 배달전문 쌀국수집을 운영하는 박모씨(35)는 ”최근 유행이 된 ‘샵인샵’(shop in shop) 매장이라 하더라도 다른 메뉴로 3~4개의 상호를 운영하는 게 일반적이다”면서 ”거대한 한식업체가 김치찌개로 20개, 냉면으로 20개, 비빔밥으로 20개 이렇게 상호를 등록하니 같이 장사하는 입장에선 황당할 수밖에 없다. 옛날 야식 배달집들이 하는 꼼수 영업이 되살아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인근에서 배달전문 한식집을 운영하는 김모씨(40)도 ”소위 돈 좀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영업을 한다면 우리 같은 소상공인들은 열심히 해볼 희망을 잃는다”면서 ”똑같이 따라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식당에도 좋지 않고, 자영업 생태계를 망치는 일이다”고 꼬집었다.

한국외식중앙회 관계자는 ”한 가게에서 상호 3~4개를 내는 경우는 있어도 90개까지 내는 경우가 발생했다면 심각한 문제다”며 ”제도적인 사각지대가 있는지 살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근욱 기자 ukgeu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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