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배종옥은 한 장면도 그냥 넘기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사력을 다해 연기해보려는 사람이다. 1985년에 데뷔해 지금껏 한 해도 자리를 비우지 않으며 60여편의 드라마와 20여편의 영화, 9편의 연극에 몸담아온 성실한 이력서가 이를 말해준다. 매 순간 진심이기 어려운 삶 속에서 제대로 된 연기를 위해 밀도 높은 시간을 살고자 한 그는 자신의 삶을 두고 ‘배우로서 자신을 실험하고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누군가는 ‘그 나이에 뭘 또 성장해?’ 할 수 있겠지만, 계속해서 성장하고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봐요. 남들 보기에 그런 게 아니라, 스스로 보기에 배우로서 배우고 발전하는 것이 나의 일이니까요.” 영화와 드라마로 익숙한 그이지만 배우 배종옥은 여전히 연극 무대를 지키고 있다. 많은 배우들이 ‘연극도 하고 싶다’고 습관처럼 말하지만 그처럼 두 장르의 균형을 맞추고 실천하는 이는 드물다. 지난달 말, 대학로 자유극장에서 8월7일부터 한달가량 선보이는 연극 <분장실> 첫 공연을 앞두고 연습 중에 있던 배우 배종옥을 청담동 한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의심, 갈증, 고민이 나를 만들었죠
―연기에 능숙한 배우들조차 연극을 준비하는 동안에는 무대에서 대사를 잊어버리는 등의 악몽을 자주 꾼다고 하던데요, 고생스러운 일을 최근 매년 하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주변에서 편히 지내라고 타박도 할 것 같은데요.
“대단하다고들 해요. 진짜 대단해서가 아니고요, ‘바쁜데 뭘 굳이 연극까지 해. 충분해’라는 의미를 담은 말들을 하죠. 무대 작업의 어려움이 있지만 드라마나 영화 현장이 주는 힘듦도 있거든요. 무대가 특별히 더 힘들다고 느끼지는 않아요. 연극 작업 자체가 좋아서 하는 거예요.”
―1999년 장진 감독의 연극 <아름다운 사인>으로 처음 무대에 올랐습니다. 1985년 드라마로 데뷔한 뒤 14년이 지나 첫 연극을 한 셈인데요. 연극에서 출발해 영상 매체로 자리를 옮기는 배우는 많지만, 배종옥 배우처럼 반대의 경우는 드물어요.
“연극 무대에 서고 싶어서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입학했지만 막상 대학 다닐 때는 늘 기가 죽어 있었어요. 기라성 같은 친구들 사이에서 내가 저들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생각을 매일 했죠. 배우를 포기하려 하던 차에 우연히 드라마에 출연할 기회를 얻었어요. 그렇게 매체를 통해 먼저 연기를 했죠. 이후 배우로서 이름을 알리고 캐릭터도 얻었지만 늘 갈증이 생기더라고요. 스스로 반복적으로 연기를 답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에 무대에 오르면 그 답답함이 많이 해소가 되더라고요. 막연하게 무대를 동경하던 20대 초반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무대를 버리지 못하는 걸 보면 무대와 무슨 인연이 있긴 한가 봐요.”
―연영과 3학년 때 연기를 그만둘 생각으로 무대 장치로 전공을 바꿨죠? 재능에 대한 의심으로 늘 기가 죽어 있던, 의기소침한 모습이 상상이 안 되는데요. (웃음)
“그렇죠? (웃음) 동료들과 비교했을 때 내 연기는 늘 부끄럽고 부족했어요. 그 안에서 ‘지금 여기 나의 존재 가치는 무엇일까’를 고민하며 20, 30대를 보냈죠. ‘어떻게 하면 연기를 잘할 수 있을까, 내가 지금 뭐가 부족하지?’를 끊임없이 생각했어요. 돌아보면 그때의 고민이 저를 동료 배우들과는 다르게 만들어준 것 같아요. 저를 주눅 들게 하던 친구들은 지금 아무도 연기를 안 해요. 다 사라지고 없어요.”
―재능에 대한 의심은 언제 거둘 수 있었나요?
“30대 중반부터는 ‘그래, 그냥 열심히 하자’ 했죠.”
―꽤 오랜 시간 의심을 놓지 못했네요. 헌데 ‘연기를 잘한다’는 건 주관적인 판단이잖아요. 일찍이 20대 후반에 대종상 여우조연상(영화 <젊은 날의 초상>)과 백상예술대상 여자 최우수연기상(영화 <걸어서 하늘까지>) 등을 수상하며 두루 좋은 평을 받았음에도 자기 의심을 거두질 못했던 것이죠?
“모든 것에는 주관적인 판단이 들기 마련이고, 그 주관적인 판단으로부터 스스로 자유로워질 때 문제가 해결되는 것 같아요. 누군가가 ‘아니야, 너는 잘해, 재능이 있는데 왜 그렇게 생각해?’라고 한들 스스로 납득이 안 된다면 타인의 말은 큰 의미 없는 거죠. 당시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나는 아직 부족해.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 단계가 아니야’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자아가 강해서일까, 저는 제 판단이 중요한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그만큼 오래 고민했고, 스스로를 극단으로 몰아붙이기도 했어요. 젊었을 때는 굉장히 까칠했죠. 대사 하나 틀리는 것도 용납하지 않았으니까. 배우로서 현장에서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고요. 자학도 심했어요. ‘네가 그렇지, 잘하는 게 뭐가 있니?’ 하며 스스로를 할퀴기도 하고.”
―이쯤 되면 자학과 강박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을 것 같은데요.
“때때로 ‘너무 헐렁해진 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 만큼 풀어지기도 해요. 예전에는 고민이 들지 않는 캐릭터를 만날 때 두려웠거든요. ‘대충 하는 거 아니야? 이래도 되겠어?’ 하고 스스로를 추궁했고요. 지금은 헐렁함이 주는 여유를 배우고 있어요. 나이가 들고, 선배가 될수록 관용과 너그러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요. 그렇지 못한 어른들을 보면서 저의 어떤 부분은 수정하기도 해요.”
어떤 선택이라도 책임지는 게 어른 같아요
―앞의 대화에서 우연한 기회로 드라마에서 연기를 하게 되었다고 했는데요, 우연치 않던 그날로부터 36년이 흘렀습니다. 배종옥 배우의 사례만 봐도 ‘운 좋게 얻은, 우연한 좋은 기회’ 같은 건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모든 사람들에게 기회와 운이 주어진다고 생각해요. 기회가 드라마틱하게 ‘기회!’ 하고 올 것만 같잖아요. 근데 기회는 그런 얼굴로 오지 않아요. 때로는 그게 기회인지도 모르게 올걸요. 그걸 기회로 만드는 건 자기 몫이죠. 제가 특채로 데뷔를 했다고 해서 지금까지 배우 생활을 할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데뷔 후 3년간 엄청나게 고생을 했는데 그때 연기의 끈을 놓았다면 저는 배우가 안 됐겠죠. 그랬다면 그건 저에게 기회가 아닌 거예요.”
―전혀 기회라고 생각 안 했는데 돌아보니 기회였던 것들도 있었지요?
“배우니까 특히 작품을 하면서 그걸 많이 경험해요. 드라마 <거짓말>(배종옥의 배우 이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노희경 작가를 처음 만나게 한 작품이다) 제작 당시 저는 캐스팅 순위에 없었어요. 제가 먼저 제작진에게 연락해 들러붙어서 참여하게 된 거예요. 저에게 좀처럼 주어지지 않던 장르인 멜로를 극복하고 싶었고, 배우고 싶었어요. 돌아보면 그 작품을 통해 배우로서 큰 전환점을 맞았어요. 기회죠. 만약에 ‘그래, 내가 별로야? 그럼 나도 안 해도 돼. 다음 작품 하지 뭐’ 하고 포기했다면 배우로서 제 인생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렀을 것 같아요. 기회는 스스로 오기도 하지만 잡기도 해야 하는 거죠.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의 지수 역할 역시 물망에 올랐던 모든 배우가 안 하겠다고 해서 저에게 온 거였어요.”
―그해 방송 3사를 통틀어 드라마 시청률 1위를 기록했던 작품이죠.
“당시에 정경호 배우와 영화 <허브>라는 작품을 찍었어요. 정을영 감독님(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 감독이자 배우 정경호의 아버지)이 캐스팅 난항을 겪던 중에 아들의 영화를 보러 왔다가 저를 발견한 거예요. ‘아, 배종옥이 있었지!’ 하고 연락을 한 거죠. 그때 ‘다른 배우들이 다 안 하겠다고 하는 걸 내가 왜 해?’ 했다면 그 역시 내 기회가 아니었겠죠. 그간 해보지 못했던 순종적인 역할에 호기심을 느꼈고, 도전하고 싶어서 제가 선택을 한 거예요. 기회는 그렇게 오는 거죠. 가만히 앉아 있는데 기회는 오지 않아요.”
―반대로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기회가 아니었던 일도 있나요?
“있죠. 근데 생각나지 않아요. 굳이 생각하려 하지 않고요. 저도 다 성공한 건 아니에요. 실패한 작품도 있죠. 어떻게 매번 선택에 성공해요? 그럴 때는 ‘내가 옳다고 생각해서 선택했지만 아닌 것도 있는 거지’ 하고 작품이 끝날 때까지 잘해요. 일상에서도 틀린 선택을 하더라도 책임지는 게 어른 같아요. 무슨 일이건 마무리를 잘 짓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참여한 작품이 비난받을 때 혹은 작품 안에서 배우로서 질타받을 때도 묵묵히 받아내려 해요. 이런 태도를 취하는 게 처음부터 쉬웠던 건 아니에요. 오래 일하다 보니까 이게 옳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미루고 회피한들 제가 거기로부터 빠져나갈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후로요.”
―오랜 시간 다양한 역할을 통해 주체적인 여성상을 제시해왔습니다. 1990년대 초부터 전문직 역할을 주로 맡으며 ‘자기 말을 선명히 하는 사람’으로 등장했지요. 최근까지도 드라마 <우아한 가(家)>를 통해 자기 욕망에 충실한 새로운 여성 캐릭터를 만들었다는 평을 받았고요. 한 인간이 주체성을 갖는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정의하나요? 자기 자신의 주인이 나라는 것은 언제 자각된다고 봅니까.
“이어지는 대답인데요, 자기 선택에 대한 책임이죠. ‘나는 그때 안 하고 싶었는데, 너 때문에 했잖아. 그러니 이건 내 잘못이 아니야’라고 하는 게 제일 비겁한 거 같아요. 어떤 상황 안에서 내가 행동했다는 건 나의 선택이거든요. 그걸 정확히 인지하고 책임지는 것이 주체성을 가진 인간이라고 봐요.”
―법륜 스님이 이끄는 정토회의 마음공부가 삶의 큰 변화를 만들어줬다고 했습니다. 요즘도 매일 108배를 하고 있나요?
“그럼요. 매일 아침마다 하죠. 벌써 18년 가까이 됐네요. 무릎에 굳은살이 생겼어요. 촬영 있는 날도, 또 너무 하기 싫은 날도 그냥 해요. 운동처럼. 법륜 스님이 명상과 108배를 매일 하라고 하시거든요. 기도라는 게 사회적으로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 기원하는 게 아니라 지금, 여기에 온전히 머무르며 어떤 상황이든 잘 받아들이고 버틸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한 것이라고 하시죠.”
―지금 여기에 온전히 머무른다는 말이 새삼 와닿습니다. 철학자 몽테뉴도 ‘나는 춤을 출 때는 춤만 추고, 잠을 잘 때는 잠만 잔다’는 말을 했죠.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금을 제대로 사는 것은 누구에게나 큰 숙제입니다. 온전히 머무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들도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고요.
“하루에도 틈틈이 자신을 인지해야 해요. 무슨 일을 하다가도 다른 생각이 끼어들면 ‘아니야, 나 지금 이거 하고 있는데’ 하고 깨어 있으려고 하는 것이 지금 여기에 머무를 수 있는 방법 같아요. 밥을 먹을 때도 의식적으로 밥만 먹으려고 해보고요. 최종적으로는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것 아닐까요? 흔히 미래를 걱정하느라 현재를 놓치지 말라고 하잖아요. 미래는 모르는 거니까. 저 역시 젊을 때는 내가 계획한 대로 다 될 줄 알았어요. 그래서 계획했고, 목표를 향해 달렸는데, 돌아보면 작은 일에 있어 내 계획대로 된 게 별로 없어요. 그런데도 크게 보면 내가 품었던 목표점을 향해 가고 있어요.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거예요. 경로만 다를 뿐 종착지는 같은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