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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6월 20일 16시 44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6월 20일 16시 44분 KST

버려진 아이, 버림받은 엄마 -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든 비극

[다른시선⑦]

altmodern via Getty Images
huffpost

서울 관악구에는 ‘베이비박스’가 있다. 아이를 낳았지만 부득이한 사정으로 아이를 키울 수 없게 된 부모가 아이를 두고 갈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이다. 이 베이비박스를 생각해낸 사람은 이종락 목사. 그는 2007년 교회 앞에 버려진 장애를 가진 미숙아를 보며 이 베이비박스를 만들어야겠다 결심했다. 지금까지 이 박스를 거쳐 간 아이는 1300여 명. 어쩌면 꺼져버렸을지도 모르는 1300여 명의 생명을 살려냈다.

하지만 그간 베이비박스를 향한 비난의 시선도 만만치 않았다. 가장 큰 비난의 이유는 바로 베이비박스가 아이 유기를 조장한다는 것이었다. 쉽게 아이를 버리겠다 마음먹을 수 있고, 책임감 없는 출산을 방조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열 달간 아이를 뱃속에 품은 어느 부모가 감히 그 생명을 가볍게 여기고 아이를 버린다는 것을 결정할 수 있겠느냐만 그런 비난 속에서 이 목사는 꿋꿋이 베이비박스를 운영해왔다. 바로 버려지는 아이들 대부분은 미혼모, 그 중에서도 10대 미혼모들이 낳은 아이들이었기 때문. ‘학생이 감히 어떻게’, ‘집안 망신이야’라는 인식 속에서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보호받지 못한 10대 미혼모들은 떠밀리듯 이곳을 찾았다. 출생신고도 할 수 없고, 키우기는 더더욱 막막한 현실에서 그래도 아이를 살리기 위해 이곳을 찾는데 도저히 그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마당을 나온 암탉>의 황선미 작가는 10년 전 바로 버려지는 아이들이란 주제를 접하고 소설 <엑시트>를 구상했다고 했다. 한 시청 직원과 나누게 된 입양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과 입양인을 엄연히 구분지으려 하는 시청 직원의 말투 속에서 황 작가는 얼굴이 뜨거워짐을 느꼈다고 했다. 그렇게 황 작가는 <엑시트> 의 주인공인 10대 미혼모 ‘장미’들에 관한 이야기를 취재했고,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 할 수 있는 소설을 탄생시켰다.

“장미는 내내 혼란스러웠다. 이제껏 이성적으로 안다고 믿어 온 것들이 정말 그러냐고 되묻는 듯했다. 아기를 어디론가 보내는 게 그렇게 중요할까. 학생이 임신한 게 잘못이 아니라는 말을 누가 믿는다고 뻔한 거짓말을 하고 또 하고. 장미가 아는 사람들은 학생의 임신을 잘못으로 쉽게 규정했고 그것을 빌미로 학교에서 추방했다. 친구들을 잃었고 고모 집을 떠나야만 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51쪽)” 

장미는 10대 미혼모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자신이 좋아했던 J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배가 불러와 아이를 낳아버린 미혼모다. 어린시절 장미의 부모는 할머니에게 장미를 맡긴 채 떠났고, 할머니마저 돌아가시자 고모네에 맡겨졌다 그것도 임신 사실을 알고는 그 집에서도 쫓겨난다.

아픈 기억으로 낳은 아이지만 장미는 아이에게 하티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직접 키워보려 노력한다. 그래서 시설에도 들어갔지만 시설에서조차 비난의 시선을 보내자 견디기 힘들어 친구와 함께 도망친다. 먹고 살아야 했기에 핏덩이를 집에 두고 사진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가는데 쉽지가 않다. 가혹한 세상의 시선, 약자임을 알고 더 달려드는 하이에나같은 사람들, 하루하루가 아슬아슬하다.

소설은 장미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진관을 중심으로 장미 인생에 전반에 걸쳐 있는 여러 문제들 미혼모, 청소년 문제, 입양 문제, 성폭력 등을 다룬다. 장미가 겪는 세상은 참으로 가혹하다. 학생을 보호해야 할 학교가 임신을 했다는 이유로 밖으로 쫓아내고, 미혼모를 끌어 안아야 할 시설 원장이 은근히 입양을 권하고, 피해자에게 돌봐줄 가족 하나 없다는 사실을 안 가해자의 부모는 오히려 피해자에게 그 원인을 돌리며 압박한다.

세상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가혹하다. 아무 잘못없이 아이를 가졌고, 그렇게 낳은 아이지만 키워보려 노력했지만 세상 사람들은 모두 장미를 손가락질하며 벼랑 끝으로 내본다. 그리고 그 장면들에서 우리는 우리의 낯부끄러운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 장미에게 아무 잘못이 없다는 걸 알지만, 나 역시 현실에서 소설 속 그 사람들처럼 행동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렇게 나도 또 한명의 가해자로 살아왔던 건 아닌지 돌이켜보게 하기 때문이다. 아마 황 작가가 시청 직원과의 대화에서 얼굴이 뜨거워짐을 느낀 것도 비슷한 이유 때문일 거다.

베이비박스로 내몰리는 아기들, 그리고 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수많은 미혼모들은 어쩌면 우리가 만들어낸 건 아닐까. ‘처신을 어떻게 했길래’, ‘10대가 임신이라니 말도 안돼’ 라고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비난의 시선이 베이비박스를 탄생하게 했고, 입양수출국이라는 오명도 얻게 된 건 아닐까. 그래서 <엑시트>는 분명 읽기 힘든 소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읽어야 할 소설이다. 또 다른 장미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 베이비박스가 사라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