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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건 마클에게, "출산 당일에 '로열 베이비' 공개 사진을 찍지 않아줘서 고마워."

전 세계의 엄마들로부터.

  • 박수진
  • 입력 2019.05.10 11:39
  • 수정 2019.05.10 11:53
ⓒWPA Pool via Getty Images

첫 아이가 태어난 뒤 해리 왕자가 밝은 표정으로 가졌던 즉석 기자회견은 여러 모로 정말 멋졌다.

아내인 서섹스 공작부인 메건 마클이 ‘엄청나게 자랑스럽다’고 말한 부분. 첫 아들을 ‘이 작은 녀석’이라고 말한 부분. 자기가 둥둥 떠다니는듯 황홀한 기분이라고 했던 부분. 너무나 신나서 뒤에 서 있던 말들에게조차 감사했던 부분.

하지만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메건이 이날 기자회견에 등장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영국 왕실은 메건이 영국 시간으로 6일 오전 5시 26분에 4kg 가량의 건강한 남자아이를 낳았다고 밝혔다. 그리고 같은 날 오후 해리 왕자는 혼자서 기자들을 만났다.

같은 시간, 공작부인은 어디에 있었을까? 나는 메건이 어디엔가 누워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사랑스러운 아기를 끌어안고 있었거나, 꼭 필요했던 잠을 자고 있었거나, 출산 과정에서 예상보다 큰 타격을 입은 신체 부위에 얼음을 대고 있었을 것이다.

그가 뭘 하고 있었는지 나는 모르고, 아는 게 중요한 것도 아니다. 중요한 건 메건이 디자이너 브랜드의 원피스와 10cm 힐 차림으로 방금 태어난 아기를 안고 해리 왕자 옆에 서서 차분한 미소를 짓고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해리는 기자회견에서 아기를 이틀 동안은(물론 메건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모든 엄마들을 대표해 나는 메건에게 우리를 도와줘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3년 전 나 역시 건강한 4kg 남자아이를 낳았다. 다음 날, 나는 이제 막 아기를 낳은 사람의 모습으로 퇴원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출산 시간은 새벽 2시 53분이었다. 그 후 하루 동안 나는 거의 한숨도 자지 못했다. 병실 샤워실에서 직접 피를 씻어내기는 했지만, 메이크업을 하거나 머리를 빗지는 못했다. 헐렁한 회색 민소매 셔츠가 겨드랑이 땀으로 흠뻑 젖어버려서, 가디건을 걸쳤더니 아들 뺨에 난 가벼운 황달이 눈에 띄었다.

ⓒNATALIE STECHYSON

부어오른 발을 쪼리에 밀어넣고, 부어오른 다리를 임신부용 레깅스에 집어넣었다. 아들을 태운 카 시트를 들고 병원 복도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동안, 아들은 묶이는 게 괴로워 비명을 질렀다. 내 가슴도 수유용 브라에 꾸깃꾸깃 들어가며 비명을 질렀다.

자세히 보면 경막외 마취제 때문에 나는 저때도 아직 부어있다. 남편은 병원 팔찌를 차고 있다. 미소를 짓고 있긴 하지만, 아기를 집으로 데려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걸 믿을 수 없어하며 겁에 질린 부부의 눈빛이 읽힌다.

아이도 겁을 먹었고, 작고 예쁜 모자를 쓰기엔 머리가 너무 컸지만 나는 그냥 씌워버렸다(꼬마야, 나는 멜론 같은 저 머리를 방금 낳았단다. 모자 정도는 써도 돼.).

간호사가 찍어준 우리 새 가족 사진(우리 셋이 함께 찍은 첫 몇 장 중 하나)을 아무데도 올리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저런 모습인 게 당연했다.

아기를 낳은지 얼마 안되어 런던 세인트 메리 병원의 린도 윙 바로 앞에서 아기와 함께 포즈를 취하는 것은 왕실의 전통이었다. 케이트 미들턴 캠브리지 공작부인은 루이스 왕자를 낳고 같은 날 사진을 찍었다.

ⓒKGC-22/STAR MAX/IPx

미들턴은 출산 7시간 후 디자이너 드레스와 스틸레토 차림에 머리와 메이크업까지 하고 세상에 나타났다. 솔직히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여신 같은 모습이었다. 첫 두 아이를 낳고 찍은 사진들에서도 아름답고 멀쩡한 모습이었다.

(미들턴도 매번 그랬던 건 아니다. 2013년 조지 왕자를 낳은 뒤에는 하룻밤을 보내고 언론 앞에 섰다. 하지만 2015년 샬럿 공주를 낳고는 10시간도 되지 않아 등장했다.)

왕위 후계자들의 어머니로서 케이트에게 기대되는 의무적인 일들이 있다는 것은 나도 안다. 고 다이애나 황태자비도 윌리엄과 해리를 낳고 똑같이 포즈를 취했다. 하지만 세상이 ‘로열 베이비’ 사진을 요구할지라도, 이런 완벽한 사진은 출산한지 불과 몇 시간, 며칠 밖에 되지 않은 세상 밖 다른 산모들에게 해로울 수 있다.

3월에 육아용품 업체 프리다베이비의 CEO는 뉴욕타임스에 메건 마클에게 출산 당일 사진 촬영을 하지 말라고 권하는 공개 편지를 썼다. 이런 사진들이 지금 시대에도 여전히 말하기가 꺼려지는 ‘출산의 괴로움’을 덮는다는 이유였다.

“물론 병원 앞에서 사진 촬영을 하는 당신의 모습은 완벽하겠지만, 사람들은 여성들이 출산 중과 직후에 어떤 일을 겪는지에 대한 솔직한 대화 대신 잘못된 이야기들을 하게 될 것이다.” 첼시 허시혼 CEO가 편지에 쓴 글이다.

출산 후 얼음 위에 앉아서 꽤 긴 시간을 보내본 사람으로서, 나는 이 글을 읽었을 때 주먹을 쥐고 흔들어댔다.

오해하지 말라. 나는 아들을 낳고 퇴원할 때 왕족 같은 모습이길 바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출산 직후 사진들은 출산에서 회복하는 게 간단한 일이라는 잘못된 선입견을 계속패서 퍼뜨릴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산모들에게 자신의 신체에 일어나는 현실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나는 메건의 행동이 어마어마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놀랄 일도 아니다. 메건과 해리가 처음 임신 사실을 공개했을 때부터 이번 출산에 대해 사생활을 지키는 방향을 유지해왔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그들은 대중 앞에 공개하기 전에 가족끼리 축하할 시간을 가질 계획이라고 4월에 이미 말하기도 했으니까.

(*이 글은 아기 공개 기자회견 전에 썼다.) 메건 공작부인이 임신부 레깅스와 쪼리 차림으로 머리를 감지 않고 나올 것 같지는 않지만, 만약 그런다면 메건을 축복하리라.

솔직히, 메건은 늘 그렇듯 멋진 모습일 것이다. 우리 모두는 메건의 옷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며, 다이애나에게 경의를 표하는 드레스는 아닌지 궁금해 할 것이며, 로열 베이비의 얼굴을 들여다 보며 부모 둘 중 누구를 더 닮았는지 생각해 볼 것이다.

하지만 전통적인 병원 사진을 생략하고 불과 며칠이나마 기다린 다음 카메라 앞에 섬으로써, 메건은 전세계 어머니들에게 출산 후 잠시 쉬어도 괜찮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고맙다.

 

*허프포스트 캐나다판의 Thank You, Meghan Markle, For Not Doing A Same-Day Royal Baby Photo Op을 번역, 편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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