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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병 걸린 남편 어떻게 하나요?' B급 며느리는 '대리효도'를 참지 않는다 (인터뷰)

추석 앞둔 며느리들의 고민에 답했다.

  • 박수진
  • 입력 2020.09.29 09:38
  • 수정 2020.10.01 00:45
'B급 며느리' 주인공 김진영씨
'B급 며느리' 주인공 김진영씨 ⓒHUFFPOST KOREA/HANGANG KIM

2년 전 설날을 앞두고 화제가 된 영화 ‘B급 며느리’를 기억하는가? 실제 가족의 일상을 담은 이 다큐멘터리 영화에는 집에 불쑥불쑥 찾아오며 참견하는 시어머니, ‘그냥 좀 참고 전화 자주 드리라’고 말하는 남편, 그리고 시어머니에게 당당하게 따지는 주인공 김진영씨가 등장한다.

[영화 ‘B급 며느리’ 예고 영상]

영화가 화제가 된 당시 허프포스트와 만난 진영씨는 어머니와 아내 사이의 갈등에 손 놓고 있는 남자들에게 ‘남편은 고래싸움에 등 터진 새우가 아니라 문제의 당사자’라는 일침을 놓은 바 있다. (????관련 기사: [인터뷰] ‘B급 며느리’는 ”새우등 터졌다”는 말이 화가 난다)

그 후 네 번의 명절이 지났다. 명절 당일은 무조건 시가에 먼저 들르고, 여자들만 부엌에서 일을 하는 가부장들의 명절 풍경에 반기를 드는 사람들도 늘었다. 20대에서 30대 초반의 1990년대생 며느리들은 특히 더 그렇다.

영화 개봉 당시 ‘사이다 한 사발’ 혹은 ‘싸가지 없는 며느리’라는 엇갈린 반응을 마주했던 그 때 그 ‘B급 며느리’ 진영씨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어느덧 결혼 10년차를 맞은 그를 강화도 자택에서 다시 만났다.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 막 발을 들인 ‘후배 며느리’들의 고민과 함께.

'B급 며느리' 주인공 김진영씨
'B급 며느리' 주인공 김진영씨 ⓒHUFFPOST KOREA/HANGANG KIM

기자: 영화가 개봉하고 1년 반이 지났네요. 요즘은 시어머니와 어떻게 지내시나요?

진영: 지금은 예전과 같은 갈등은 겪지 않고 있어요. 제가 가장 폭발했던 일 중에 하나는 어머니가 아기를 보러 저희 집에 자주 오시는 걸 제가 불편하다고 했을 때인데요. 매번 불편하다고 말씀을 드리고, 또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관계가 바뀌었어요.

 

기자: 어떻게 바뀌었나요?

진영: 지금은 어머니가 저를 대할 때 어떤 선은 넘지 않으세요. 또 제가 어머니가 집에 너무 자주 오는 문제로 고민할 당시 주위에서 ‘아이 크면 나아진다’고 했는데, 아이가 크니 정말 그렇게 되더라고요.

남편도 바뀌었어요. 남편과 두 가지 합의를 봤어요. 첫째는 어머니와 나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확실하게 중재에 나설 것, 둘째는 어머니 전화는 무조건 남편이 받는다는 것. 이 두 가지를 정한 후로는 어머니가 제게 전화해서 무언가를 요구하는 일이 완전히 없어졌어요. 무리한 요구가 혹시 있다고 해도 남편이 전달 안하면 그만이니까요.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저는 지금도 제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어머니도 본인의 삶의 방식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90년대생 며느리의 고민 1. ‘시가 먼저, 친정 나중이 당연하다는 남편에게 뭐라고 해야 할까?’

ⓒ한겨레 일러스트

기자: 이제 막 결혼한 여성들이 갖는 고민들이 몇 가지 있어요. 먼저 싸워보신 며느리로서, 몇 가지 조언을 주셨으면 해요. 젊은 며느리들이 가장 의아해하는 것 중에 하나가 시가는 명절 당일에 가면서 처가는 다음날 가는 풍습이던데요. 비슷한 경험 있으신가요? 어떻게 바꾸셨나요?

진영: 저는 근본적으로 왜 힘들게 명절날 바득바득 가야 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시부모님이랑 명절 때만 만나는 것도 아니고, 또 어린 아기 데리고 며칠 먹을 분유, 삶아 쓸 예비젖병, 기저귀, 여벌 옷, 아기가 익숙한 장난감, 요람, 이런 것들 차에 바리바리 싸서 가는 게 힘들거든요.

그래서 제가 한번 명절에 다같이 식사하는 자리에서 ‘앞으로 저희는 명절을 피해서 올게요’ 했더니 난리가 났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우리만 명절에 아무도 찾아오지 않으면 동네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냐고.

저는 부부도, 아기도 그렇게까지 고생하면서 가는 게 이해가 안 되고, 그렇게 고생해서 가야 하는 거면 저희 부모님도 보고 싶거든요. 사실 명절이 옛날 농경사회 땐 농한기에 온가족이 모인다는 개념이었는데, 지금 직장인들은 농번기 농한기 없잖아요. 그런데 남편이 “명절은 무조건 가는 거야”라고 하니까 싸움이 되더라고요.

이건 싸움이 되더라도 피하지 말고, 자기 파트너랑 꼭 이야기해야만 해결되는 문제예요. 기존 한국 문화라는 게, 여성이 무언가를 얻으려면 어떤 각오는 해야 할 필요가 있어요. 저도 남편과 싸움을 반복하고 언성을 높이다보니 사실 남편과의 관계가 처음 같진 않아요. 많이 안타깝지만, 그걸 각오하지 않으면 얻기 힘든 게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90년대생 며느리의 고민 2. ‘결혼하더니 갑자기 ‘효자병’에 걸린 남편, 어떻게 해야 할까?’

김진영씨의 책 '<a href='http://m.yes24.com/Goods/Detail/78519816'></div>슬기로운 B급 며느리 생활</a>' 중에서
김진영씨의 책 '슬기로운 B급 며느리 생활' 중에서 ⓒHUFFPOST KOREA/HANGANG KIM

기자: 원래 가족 문제에 무관심하던 남편이 결혼하더니 갑자기 효자가 돼서는 아내한테 ‘대리효도’를 시켜서 갈등이 생긴다는 분들도 많더라고요.

진영: 저희 남편도 그랬어요. 저보고 그렇게 시부모님에게 전화를 드리라고 하는 거예요. 정작 자기는 결혼 전에 엄마 전화 안 받으려고 3일씩 휴대폰 꺼놓기도 했던 걸 제가 다 알거든요. 그런데 결혼하고 나니까 저한테 “전화 좀 해” 그래요. “오빠도 안 했잖아?” 그러니까 아니래요. 원래 했대요. 그러면서 제가 전화해야 부모님이 좋아하신다는 거예요.

저는 시부모님 즐겁게 하려고 결혼한 것도 아니고, 남편 즐겁게 하려고 결혼한 것도 아니거든요. 제가 즐거우려고 결혼한 거지. 아내를 통해서 부모님을 즐겁게 하겠다는 심보가 너무 고약한 거예요. 그래서 정말 많이 싸웠는데, 결국은 제가 시위하듯이 어머니 전화를 아예 안 받아버리면서 남편의 습관이 고쳐졌어요. 이건 시부모님과 남편, 부모자식 간 문제이기도 해요.

 

90년대생 며느리의 고민 3. ‘아직 시댁과 딱히 갈등은 없었지만, 한국사회에서 며느리라는 것 자체가 주는 부담감이 심하다. 명절이 되면 마음이 무겁고 시댁에 가기 싫다.’

기자: 시부모님이나 시가 식구들과 관계가 좋아도 명절은 부담이라는 분들도 있어요. 잘 보여야 할 것 같고, 혼날까봐 예쁨 받는 행동만 골라해야 할 것 같아서 힘들다고요.

진영: 시부모님과 맺는 관계도 하나의 인간 관계라고 생각하면 좋겠어요. 사실 잘 보이기 위해 나의 어떤 부분을 타협하는 건 굉장히 흔한 일이잖아요. 친구와 친하게 지내기 위해서, 혹은 애인을 위해서 좋아하지 않는 호러영화도 보고 야구도 보러가고 그런 것처럼. 일단 가보고, 가서 불편한 일이 생기면 그때 불편했다고 이야기해보면 될 것 같아요. ‘잘 보여야 할 것 같다’가 아닌 ‘잘 보이고 싶다’ 정도의 마음은 인간 관계에서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요.

결혼이라는 것 자체에 지레 겁을 먹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반드시 결혼해야 할 필요도 없고, 또 결혼했다고 해서 평생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에요. 이혼이라는 제도도 있고, 혼인신고 안 하고 사는 사람들도 있고. 결혼생활도 한 가지 길만 있는 게 아니니 주눅들지 말고 그때그때 부딪히면 될 것 같아요.

 

90년대생 며느리의 고민 4. ‘코로나19 유행 때문에 이번만큼은 정말 시댁에 가지 않고 싶은데, 안 간다고 말하는 쉬운 방법이 있을까?’

추석을 일주일여 앞둔 23일 오전 울산 울주군 삼동면사무소 앞에 고향 방문 자제 내용이 적힌 현수막이 붙어 있다. 2020.9.23
추석을 일주일여 앞둔 23일 오전 울산 울주군 삼동면사무소 앞에 고향 방문 자제 내용이 적힌 현수막이 붙어 있다. 2020.9.23 ⓒ뉴스1

기자: 올해 추석은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유행 때문에 정부에서도 친척집을 가지 말자고 권유하는 상황이죠. 그런데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보면 아기 건강이 걱정돼서 가고 싶지 않지만 시부모님에게 대놓고 안 간다고 말을 못 하겠어서 갈 거라는 이야기를 많더라고요.

진영: 명확하고 직설적으로 말할 때 가장 효과가 좋아요. 아기 걱정이 아니어도 가기 싫으면 안 간다고 할 수 밖에 없지 않나요? ‘사실은 제가 몸이 안 좋아요,’ 이런 식으로 둘러대서 한 번 넘어간다고 해도 다음 명절이 돌아오잖아요. 불편함을 계속 숨기는 인간 관계는 왜곡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애인에게도 불편한 게 있는데 기분 상할까봐, 헤어지자고 할까봐 일방적으로 참는 게 쌓이면 그 관계는 왜곡된 길로 갈 수 밖에 없거든요. 시댁과의 관계도 그래요. 핑계가 쌓이고 쌓이다가 어느 순간 모래성처럼 무너져버리는 거죠. 저는 예전에 그렇게 싸웠지만, 1년 참지 말고 더 빨리 터트렸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해요.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 시간이 쌓일 수록 감정도 더 나빠질 수 밖에 없어요. 불편한 건 바로 얘기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HUFFPOST KOREA/SUJEAN PARK

90년대생 며느리의 고민 5. ‘나는 직업도 있고 사회에서 이뤄온 성취도 있는데, 결혼하는 순간 과일 깎는 모양으로 평가받는 사람이 될까봐 두렵다.’

기자: 결혼하면 온전히 며느리 역할로만 평가되는 게 싫다는 분들도 있어요. 예를 들어 과일 못 깎고 상차림을 잘 못하면 미움 받을 수 있다는 거요.

진영: 며느리는 그 집안에서 얼마나 유용한가로 평가될 때가 많아요. 예를 들어 그 집의 대를 이을 아이가 필요하면 ‘맏며느리상’이라는 후덕한 며느리를 높이 평가하고, 경제적 안정이 필요하면 일하는 며느리가 좋고, 집안 대소사 챙겨야할 때는 와서 일하는 며느리가 좋고 이런 식으로요. 그런데 며느리는 우리의 여러 정체성 중에 하나일 뿐이잖아요. 그걸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아마 이번 추석에 어른들은 과일을 잘 깎으면 잘했다고 하실 거고, 못하면 못 했다고 하실 거예요. 그건 맞아요. 그런데 다음 명절에 가잖아요? 그럼 그때 또 과일 깎을 줄 아냐고 물어볼 거예요. 저번에 사과를 사슴 모양으로 깎았어도 기억도 못 하고 의외로 관심 없어요. 그러니까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박수진 에디터: sujean.park@huff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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