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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9월 17일 23시 07분 KST

국회 앞 인도에 코로나19 생활고 겪다 세상 떠난 자영업자들을 기리는 분향소가 마련됐다

추모하는 시민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한겨레
최근 생활고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난 자영업자들을 추모하고 정부의 영업제한 조치 철폐를 요구하며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앞에 설치한 합동분향소에서 17일 오전 김기홍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 공동대표(앞쪽)와 오세희 소상공인연합회 회장이 분향과 헌화를 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힘들게 가신 분들 마지막 길까지 이렇게 초라해야 할까요.”(조지현 코로나19 대응 전국 자영업자 비상대책위원회 공동대표)

17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 인도 한켠에 하얀 천막용 천이 깔렸다. ‘코로나19 대응 전국 자영업자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그 위에 천막을 여러 겹 접어 만든 임시 제단을 차렸다. 제단에는 ‘근조 대한민국 소상공인·자영업자’라는 문구가 적힌 액자가 영정 대신 놓였다. 검은 상복을 입은 비대위 관계자들은 액자 앞에 흰 국화를 올리고 모래가 담긴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향을 살랐다. 1평(3.3㎡) 남짓한 이곳은 코로나19로 생활고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자영업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합동분향소다.

‘코로나19 대응 전국 자영업자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전날 경찰과 8시간가량 대치 끝에 밤 9시40분께 약식으로나마 어렵게 합동분향소를 설치했다.

분향소에는 숨진 자영업자들을 추모하는 시민 발걸음이 이어졌다. 경기도 안양에서 10년째 술집을 운영하고 있는 장준(41)씨는 “왜 그런 선택을 하셨는지 너무 잘 아니까 왔다”고 말했다. “요즘은 내가 아무리 애를 쓰고 열심히 해도 안 되는구나 하는 벽이 보일 때가 많아요. 자영업자들끼리 너무 힘들어서 죽으려고 해도 가게 월세 내고 직원들 급여 줘야 한다는 걱정에 죽지도 못하겠다는 말도 합니다.” 장씨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한겨레
지난 7일 숨진 채 발견된 자영업자 ㄱ(57)씨가 운영하던 서울 마포구의 맥줏집 문 앞에 17일 오후 ㄱ씨를 추모하는 포스트잇과 조화가 놓여 있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분향소 설치를 막은 경찰 처사에 분노와 안타까움을 나타내는 이들도 있었다. 김아무개(51)씨는 “유명한 사람들은 넓은 곳에서 추모하는데, 다 버리고 가신 분을 이렇게 좁은 공간에 가둬야 하느냐”고 했다. 김기홍 비대위 공동대표는 “혼자 쓸쓸히 돌아가신 자영업자들이 안타까워 가시는 길이라도 제대로 보내드리고 싶었는데, (경찰 제재로) 초라한 분향소밖에 차리지 못해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직접 조문하지 못한 자영업자들은 배달앱을 이용해 분향소로 음식을 보내며 추모의 뜻을 표하기도 했다.

정치인 조문 행렬도 이어졌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자영업자들의 희생이 더는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좀 더 제대로 된 분향소를 설치할 수 있도록 영등포구청에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김기현 원내대표, 유승민 전 의원, 황교안 전 대표, 정의당 여영국 대표와 심상정 의원 등도 분향소를 찾았다.

조지현 비대위 공동대표는 “자영업자들의 죽음이 계속되면 안 된다. 이는 자살이 아닌 사회적 타살이다. 정부와 방역당국이 자영업자들의 현실을 보고 하루 빨리 방역지침을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대위는 “자영업자 최소 22명이 코로나19 이후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숨진 이들을 기리기 위해 16일부터 18일까지 3일간 분향소를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김윤주 기자 ky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