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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30일 19시 12분 KST | 업데이트됨 2020년 12월 30일 19시 15분 KST

"우리가 해냈다" : 아르헨티나가 마침내 낙태(임신중단)를 합법화 하다 (화보)

임신중단을 범죄로 규정해왔던 오랜 역사에 종지부를 찍었다.

ASSOCIATED PRESS
아르헨티나 상원이 임신중단(낙태) 합법화 법안을 통과시킨 직후, 의회 바깥에서 표결 결과를 지켜보던 여성들이 기쁨을 나누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아르헨티나. 2020년 12월30일.

가톨릭 신자가 인구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아르헨티나가 초기 임신중단(낙태)을 합법화했다. 가톨릭 전통이 강한 남아메리카 주요 국가들 중에서는 처음이다. 

아르헨티나 상원은 29일(현지시각) 오후 4시부터 이어진 마라톤 토론 끝에 자정을 넘겨 찬성 38명 대 반대 29명, 기권 1명으로 임신중단 합법화 법안을 통과시켰다.

대통령의 서명과 함께 발효될 이 법안은 임신 14주차까지의 임신중단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만 의사가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시술을 거부하는 것은 처벌하지 않는다. 

그동안 아르헨티나는 임신중단을 엄격히 금지해왔다. 임신부의 생명이 위험에 처했을 경우, 성폭행에 따른 임신일 경우 등에 한해 극히 제한적으로 임신중단이 허용됐지만 이마저도 시술을 꺼리는 병원이 많았다.

결국 임신중단이 필요한 여성들은 음성적인 경로를 통해 시술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그에 따른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되곤 했다. 매년 수백명이 여성들이 임신중단 시술 도중 사망한 것으로 집계된다. 2016년에 불법 시술 도중 합병증 등으로 치료를 받은 여성은 4만명에 달한다.

″나는 음성적으로 임신중단 시술을 받다가 사망한 모든 여성들을 대표해 오늘 이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다.” 이날 상원 토론의 첫 발언자로 나섰던 노르마 두랑고 의원이 말했다. ”임신중단은 태곳적부터 있었던 현실이다.”

ASSOCIATED PRESS
아르헨티나 상원이 임신중단(낙태) 합법화 법안 놓고 토론을 벌이는 모습을 시민들이 의회 바깥에 마련된 스크린으로 지켜보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아르헨티나. 2020년 12월30일.
Marcelo Endelli via Getty Images
아르헨티나 상원이 임신중단(낙태) 합법화 법안 놓고 토론을 벌이는 모습을 시민들이 의회 바깥에 마련된 스크린으로 지켜보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아르헨티나. 2020년 12월30일.
EMILIANO LASALVIA via Getty Images
아르헨티나 상원이 임신중단(낙태) 합법화 법안 놓고 토론을 벌이는 모습을 시민들이 의회 바깥에 마련된 스크린으로 지켜보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아르헨티나. 2020년 12월30일.

 

평범한 아르헨티나 여성들은 직접 행동에 나섰다. 2015년 시작된 ‘단 한 명도 잃을 수 없다’ 운동이 전국으로 번지면서 임신중단 합법화 여론에 불이 붙었고, 정치권도 느리지만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2018년 초 임신 14주차까지의 중절 수술을 허용하는 법안이 제출돼 하원에서 통과됐다. 보수적인 가톨릭의 전통을 고려할 때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법안이 상원에서 7표 차이로 부결되면서 임신중단 합법화는 무산됐다.

논의에 다시 속도가 붙은 건 임신중단 합법화를 약속한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2019년 말 취임하면서다. 정부가 사상 최초로 직접 임신중단 합법화 법안을 발의했고, 하원은 지난 11일 법안을 찬성 131표 대 반대 117로 통과시켰다. 그리고 이날 상원은 2년 전과는 달리 다수의 찬성으로 임신중단을 범죄로 규정했던 오랜 역사에 종지부를 찍었다.

법안이 통과된 직후, 의회 바깥에서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수천명의 시민들은 임신중단권을 상징하는 녹색 깃발을 흔들며 환호했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속한 중도좌파 성향의 집권 선거연합 ‘모두의 전선’ 모니카 마차 의원은 ”자매들이여, 우리가 해냈다”고 트위터에 적었다. ”우리가 역사를 썼다. 우리가 함께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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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상원이 임신중단(낙태) 합법화 법안을 통과시킨 직후, 의회 바깥에서 표결 결과를 지켜보던 여성들이 기쁨을 나누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아르헨티나. 2020년 12월30일.
Marcelo Endelli via Getty Images
아르헨티나 상원이 임신중단(낙태) 합법화 법안을 통과시킨 직후, 의회 바깥에서 표결 결과를 지켜보던 여성들이 임신중단권을 상징하는 녹색 연막탄을 터뜨리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아르헨티나. 2020년 12월30일.
RONALDO SCHEMIDT via Getty Images
아르헨티나 상원이 임신중단(낙태) 합법화 법안을 통과시킨 직후, 의회 바깥에서 표결 결과를 지켜보던 여성들이 기쁨을 나누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아르헨티나. 2020년 12월30일.
RONALDO SCHEMIDT via Getty Images
아르헨티나 상원이 임신중단(낙태) 합법화 법안을 통과시킨 직후, 의회 바깥에서 표결 결과를 지켜보던 여성들이 기쁨을 나누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아르헨티나. 2020년 12월30일.

 

로이터는 아르헨티나의 결정이 다른 남아메리카 국가들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남아메리카에서 부분적으로나마 임신중단을 허용하고 있는 국가는 쿠바와 우루과이, 멕시코 일부 지역 등에 불과하다.

가톨릭은 임신중단을 확고히 반대해왔던 역사를 지니고 있다. 다른 사회적 이슈에서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발언을 아끼지 않아왔던 프란치스코 교황도 마찬가지다. 그는 산전 검사를 통한 임신중단을 ″유아 살해”로 지칭하기도 했다. 

이날 프란치스코 교황은 모국 의회에서 벌어지는 표결을 앞두고 트위터에 합법화 반대를 독려하는 듯한 글을 올렸다.

″하느님의 아들은 모든 버림 받은 자들은 신의 자녀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기 위해서 버림 받은 자로 태어났다. 그는 다른 모든 아이들처럼 연약한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다.”

그러나 아르헨티나 의회의 선택은 달랐다.

휴먼라이츠워치의 선임연구원 후안 파피에르는 ”아르헨티나처럼 거대한 가톨릭 국가가 임신중단을 합법화하는 법안을 채택한 것은 남아메리카 여성의 권리를 위한 싸움에 힘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말했다.

″분명 저항이 있겠지만, 2010년에 아르헨티나가 동성결혼을 법제화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 (임신중단 합법화) 법안이 이 지역에 도미노 효과를 일으킬 것이라고 예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미 멕시코를 비롯한 남아메리카 다른 국가에서도 임신중단권 확대를 촉구하는 ‘녹색운동(green movement)’이 퍼지고 있다고 전했다.

‘우먼스이퀄리티센터’의 소장 파울라 아빌라-기옌은 ”아르헨티나에서 시작된 녹색운동이 이 지역(남아메리카) 전체에 상륙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