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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공화국의 가족주의

  • 김동춘
  • 입력 2018.03.28 11:33
  • 수정 2018.03.28 11:34
ⓒhuffpost

서울시교육청은 26일 오전 강서구 옛 공진초등학교에서 ‘주민과 교육공동체가 함께하는 서울 특수학교 설립추진 설명회’를 열었으나 ‘특수학교 설립 반대 추진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소속 회원과 주민 20여명은 ‘설명회 즉각 철회하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내걸었고, 결국 설명회에 입장하려는 조희연 교육감을 막아섰고, 몸싸움까지 일어났다. 지난해 설명회에서 장애학생 부모들이 무릎까지 꿇고 학교 설립을 호소한 적이 있었으나 소용이 없었다. 두번째 설명회도 무산되었다.
특수학교가 들어서면 아파트값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주민들의 특수학교 설립 반대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강남 아파트 수억원 올라도 자기 동네 아파트는 그대로이기 때문에 큰 손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박탈감을 달래기 쉽지 않다. 작년 말부터 시작된 강남과 서울의 아파트 가격 폭등을 주도한 사람들은 50대 이상의 장노년층이라고 한다. 이들은 운이 좋으면 아파트 사서 수억원 벌고 불안한 노후를 확실하게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을 수십년 동안 체득한 사람들이다. 그렇게 재테크에 성공한 이들은 재산을 자녀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부모로서 할 일 다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2006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뉴타운 건설을 약속한 오세훈을 밀었던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가졌고,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몰표를 던져준 사람들도 그렇다. 60~70년대 뼈저린 가난을 체험했을 이 세대들은 이명박이 그러했듯이 개발 정보를 얻어서 해당 지역 땅을 미리 사두어 수십 수백 배의 차익을 얻은 다음, 주식 등에 투자해서 자녀들에게 편법 상속을 시도한다. 별로 가진 것이 없는 보통의 이명박 세대들도 공공복지가 취약한 이 나라에서 아파트 한 채 자녀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가장 확실한 복지라는 것을 안다.

부동산 투자로 수억원 벌 수 있는 것을 행운이자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에게 토지공개념이니 부동산 보유세 인상이니 하는 정책은 ‘빨갱이’들의 주장으로 들릴 것이다. 70년대 이후 역대 정부의 도시 재개발 정책이나 빈 구멍 많은 조세정책이 그들에게 이렇게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그리고 가족 외의 옆집 사람을 돌아볼 여유가 없으니 그들의 가족 투자, 가족 상속 행동은 그들이 살아온 세상에서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뉴스1

그런데 그들이 생각지도 않은 일이 생겼다. 며칠 계속되는 이 최악의 미세먼지는 그들과 그들의 손자녀들을 피해가지 않는다. 그뿐인가? 모든 것이 오염된 세상에서 그들의 손자녀들도 안전한 물, 음식과 생선을 즐길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의 손자녀는 이제 일자리도 못 구하고, 결혼도 하지 못하고, 결혼해도 자녀도 출산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정말 생각해보지 않은 더 심각한 일은 매일 벌어지고 있다. 그들이 불로소득을 얻는 동안 비싼 임대료를 감당할 자신이 없는 자영업자들은 문을 닫고 거리로 내몰리고, 집 없는 친구의 손자녀들은 주거난민이 되어 떠돌거나 서울에서 점점 더 먼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하고, 하루 2시간 이상 출퇴근길 버스에 지친 몸을 의탁해야 한다.

지금 한국의 갑남을녀 중산층 장노년 수백만명으로 하여금 이렇게 특수학교 설립을 결사반대하거나 아파트 투기 대열에 들어서게 만든 것은 역대 정부나 정치권의 부동산 부양, 재벌 특혜, 규제완화 정책이었다. 그러나 충분한 노후보장을 받을 수 있는 고학력 판검사, 의사, 고위 공직에 있었던 사람들이 오히려 그 대열에 앞장선 것이 우리 사회의 비극이다. 그것은 유교 전통이나 기독교 사상과도 전혀 무관한, 그저 동물적인 삶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받은 고등교육이나 지금 그들의 직업적 업무는 공익을 무시하고 자신의 손자녀들만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행동에 올인하라고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성공한 장노년층은 자신의 삶의 방식을 바꾸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40대 이하 청년들에게 이렇게 살도록 신호를 줘서는 안 된다. 수억원 현금이 없어 돈 벌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하는, 노후의 생계만이라도 보장받기를 원하는 대다수 장노년층의 박탈감을 달래야 한다. 그러자면 아파트 분양 정책, 조세 정책, 도시 개발 정책을 전면 재고해야 한다. 공공복지를 더 확충해야 하며, 재력은 있으나 자녀들에게 상속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노인들이 공익기부를 통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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