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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을 '사서 버리는 일'을 멈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유기견 입양가구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 정지우
  • 입력 2019.01.15 14:18
  • 수정 2019.01.15 14:20
ⓒ뉴스1
ⓒhuffpost

어머니는 십여년간 유기견을 구조하는 봉사활동을 했다. 그동안 구조하여 새로운 가정을 찾아준 강아지들만 천여마리 정도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십만 마리 정도의 동물들이 버려진다. 유기된 동물들은 각지의 ‘유기견 보호소‘에 가는데, 보호소에서는 열흘이 지나면 차례대로 안락사를 시행한다. 어머니가 했던 일은 주로 그런 보호소에서 ‘안락사 직전’에 있던 강아지들을 구조하여 입양 보내는 일이었다.

강아지나 고양이가 일단 보호소에 들어가면, 멀쩡했던 동물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입양이 불가능한 상태가 된다. 대부분의 보호소에는 전염병이 돌고, 겨울에는 매일 새벽마다 수십 마리의 강아지들이 얼어 죽는다. 주인에게 버려진 충격으로 밥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아 웅크려 있다가 굶어 죽는 경우도 많다. 또한 대부분은 물품보관소 같이 늘어선 철창에 그냥 갇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제만 해도’ 깔끔하고 귀여운 강아지가 ‘오늘이면’ 거지꼴이 된다.

거의 모든 보호소 환경은 열악하다. 그런데 더 문제는 매년 발생하는 십만 마리 가까이 되는 유기견이다. 단순 계산하면, 10년이면 100만 마리의 유기동물이 발생한다는 뜻이 된다. 동물을 유기하는 이들은 1인 가구에서 4인가구 등 그 가구 형태도 다양할 것이므로,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몇 백만 명은 ‘동물 유기‘의 당사자였다는 대략적인 추론이 가능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충동적으로 ‘인형’ 같은 강아지나 고양이를 입양했다가, 얼마 가지 않아 처치곤란으로 느껴 길바닥에 버리는 것이다.

그런 유기견과 유기묘들이 보호소로 몰려든다. 우리가 평소에 유기동물들을 좀처럼 길가에서 볼 수 없는 이유는, 그런 동물들이 즉각적으로 전국 각지의 보호소에 수용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걔 중에서 새로운 가정을 찾는 경우는 정말 극소수다. 대부분은 안락사된다.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보호소도 매일같이 쏟아지는 그 무수한 동물들을 모두 감당할 수는 없다.

이번에 유기견 수백 마리를 비정상적인 과정으로 안락사시킨 동물보호단체의 대표가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런데 나는 이번 사건에서 사람들이 그를 ‘도살자 혹은 괴물‘이라 지목하고 비난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더 중대하게, 더 핵심적으로 이 유기동물이 ‘넘쳐나는 사태’ 자체를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의 근본은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강아지나 고양이를 갖다 버렸다는 것이고, 그렇게 매년 살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보호소나 안락사의 문제는 그에 따르는 필연적인 결과다.

보호소에는 매번 특정 품종의 강아지들이 넘쳐난다. 이를테면, 어떤 드라마에서 블랙탄 치와와가 나오면, 갑자기 애견시장에 그 품종이 넘쳐나고, 내년과 내후년 사이에 보호소는 온통 블랙탄 치와와로 가득 찬다. 비슷한 식으로 유행을 탔던 시츄, 코카스파니엘, 잉글리쉬 불독, 시바견 등이 시기마다 수천 수만 마리가 유기견 보호소를 가득 메웠다. 그 아이들은 곧 병에 걸리고, 탈골이 되고, 철창에 짓눌린 상처와 배변으로 거지꼴이 되어서 안락사 당했다. 우리나라에는 그들을 모두 입양할 수 있는 가정이 없다. 유기견 입양가구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문제는 안락사 자체가 아니다. 유행에 따라 물건 사듯이 동물을 구매하고, 곧 질려서는 길가로 집어던져 살해하는 사람들이다.

어머니는 그런 강아지들을 한 마리라도 살리고자, 보호소들을 찾아다니며,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아이들을 구조해 입양을 보냈다. 강아지들을 데리고 나와서 직접 미용을 시키고, 병원에 보내 병을 치료하고, 수술을 시키고, 예방접종을 맞혀 새로운 가정을 찾아주었다. 나는 지난 십여 년간 수백 마리의 개들을 만났는데, 눈이 하나 없거나, 다리가 없거나, 불치병에 걸린 아이들도 많았다. 많은 유기견들이 그렇게 불구가 되었다는 이유로 버려진다. 놀랍게도 그런 유기견들을 입양하는 기적 같은 사람들도 있지만, 대개는 작고 예쁘고 귀한 품종의 강아지들이 그나마 서둘러 입양을 갔다. 나이가 많고, 장애가 있거나, 품종이 한번이라도 섞인 강아지들은 입양을 못가 그냥 우리 집에 눌러앉아 사는 경우도 많았다. 나는 그 아이들의 이름을 거의 다 기억하고 있다.

유기견들을 만나다보면 알게 되는 것이 있다. 그들이 모두 저마다의 상처와 기억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분리불안, 인간에 대한 공포심, 의존심, 자폐성, 공격성 등을 보면, 그 아이들의 과거에 어떤 문제들이 있었는지를 ‘서사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각자의 이야기에 따라, 저마다의 마음의 병과 성격과 습관을 지닌다. 그리고 그런 상처와 성향은 대부분 치유가 가능하다. 열에 아홉은 사랑과 이해로 치유될 수 있다. 인간이 그렇듯이 말이다.

어머니가 강조하곤 했던 말은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였다. 달리 말하면, 사서 죽이지 말고, 살아 있는 아이들을 죽지 않게 해주세요, 였다. 무슨 보호단체 대표를 규탄하는 것, 필요한 일일 수 있다. 그가 법을 어기고 사람들 속이며 동물을 살해한 것, 나쁜 일이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사서 버리는 일’을 멈추는 것이다. 이미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자행해온 그 일을 멈추는 것이다. 이 사태가 겨냥해야하는 것은 안락사 될 수밖에 없는 동물들이 지금도 끝없이 양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쁜 일은 결코 홀로 일어나지 않는다.

*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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