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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지자체 86개 동물축제와는 전혀 다른 신기한 동물축제에 가봤다

혹독한 동물체험이나 잡아먹기 없어도 재미있었다.

7일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파크 피아노숲에서 열린 제1회 동물의 사육제-동물축제 반대축제.
7일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파크 피아노숲에서 열린 제1회 동물의 사육제-동물축제 반대축제. ⓒ한겨레

흙바닥의 작은 무대에 동물 분장을 한 배우 넷이 나란히 앉았다. 고래, 나비, 낙지, 산천어. 국내 동물축제를 대표하는 동물들이다. 나비가 입을 뗐다. “나는 전남 함평 나비축제에서 겨우 탈출했어요. 나비를 먹는 사람은 없지만 살아 돌아온 나비는 없었어요.” 지친 나비를 보며 다른 동물들이 말했다. “인간들은 재미를 위해 축제를 벌이지만 동물들은 버려지고 죽습니다. 이런 축제들이 어떻게 생태 체험이 될 수 있겠습니까?“

7일 오후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파크에서 열린 ‘제1회 동물의 사육제-동물축제 반대축제’(동축반축)의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인 풍자극 ‘동물연합 대표 후보 토론회’의 한 장면이다. 동물들은 기존 동물축제의 잔혹성을 토로했다. 하지만 현실의 동물들은, 축제에 동원돼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 한마디 못하고 죽어 나간다. 이들을 위해 사람들이 대신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 이번 축제는 특히, 지난 5일부터 열린 ‘울산고래축제’를 겨냥해 그에 대항하는 내용으로 채웠다. 생명다양성재단, 시셰퍼드 코리아, 아름다운 커피, 라온버스 등의 주최로 약 500명의 시민들이 축제에 참여했다.

동물축제 반대축제에서는 동물체험에 동원되는 동물은 없었지만 스태프로 참여한 개는 있었다.
동물축제 반대축제에서는 동물체험에 동원되는 동물은 없었지만 스태프로 참여한 개는 있었다. ⓒ한겨레

동축반축은 이름 그대로 동물을 혹사하지 않아도 가능한 축제였다. 동물은 한 마리도 동원되지 않았지만 연극, 공연을 비롯해 다양한 참여 프로그램으로 축제가 촘촘히 채워져 있었다. 생명다양성재단에서는 ‘나비 방사의 실상’을 통해 나비축제의 화려함 뒤에 숨은 잔인한 그림자를 비췄고, 사람들이 흔히 징그럽게 생각하는 나방의 아름다움과 다양성을 알리기 위한 ‘나방 색칠 놀이’도 마련했다. 시셰퍼드 코리아는 ‘고래 잔혹사 교실’을 통해 고래의 종류와 역사를 설명하며 고래가 사람들에 의해 어떻게 고통받고 있는지 알렸다.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동물의 고통을 이해하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산천어 축제장에서 살아남기’를 통해서는 낚싯바늘로 고통받는 산천어들의 기분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축제에 참여한 이혜수(20)씨는 “여름이어서 축제가 많이 열리는데, 동물을 학대하지 않는 축제라 참여했다. 동물이 소비되고 오락거리로 전락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동물 축제의 문제를 짚은 ‘릴레이 토크’도 이어졌다. 생명다양성재단 김산하 사무국장, 동물을위한행동 전채은 대표, 경제학자 이석훈, 기생충학자 서민, 남양주YMCA 이승희 사무총장, 동물구조119 이명기 대표 등은 한국 동물축제 문화를 비판적으로 성찰했다. 김 사무국장은 “(동물축제에) 사용한 동물들은 죽음으로 끝난다. 동물을 가해하고 심각하게 고통을 준다. 집단적인 죽음의 제삿날을 축제라고 부르는 것은 못할 짓”이라고 비판했다.

“동물주의자는 인간만이 특별하다는 우월감을 버린다. 우리 모두 지구라는 한배를 탔음을, 모든 동물이 선원처럼 각자의 역할을 열심히 수행하고 있음을…” 이번 축제의 총괄기획자인 김한민 시셰퍼드 활동가와 스태프들이 무대에 모여 ‘동물주의자 선언’을 낭독했다. 인간과 동물의 공생을 강조하는 내용의 선언문이었다. 김한민 활동가는 “동물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더 나은 인간, 인격체가 되는 길이다. 수많은 축제를 끝내기 위한 하나의 축제가 탄생하는 것”이라며 이번 축제의 의미를 설명했다.

동물축제 반대축제를 기획한 김한민 시셰퍼드 활동가와 축제 스태프가 ‘동물주의자 선언’을 하고 있다.
동물축제 반대축제를 기획한 김한민 시셰퍼드 활동가와 축제 스태프가 ‘동물주의자 선언’을 하고 있다. ⓒ한겨레
동물축제 반대축제에서는 말하지 못하는 동물들을 대신해 사람들이 목소리를 냈다.
동물축제 반대축제에서는 말하지 못하는 동물들을 대신해 사람들이 목소리를 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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