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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실험의 사각지대: 콘돔과 생리컵 등 생리용품엔 우리가 알지 못했던 토끼의 희생이 들어갔다

콘돔과 생리컵, 탐폰 등이 대표적이다.

  • 이인혜
  • 입력 2020.08.16 17:27
  • 수정 2024.03.27 16:33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상당수의 제품은 동물의 희생으로 만들어진다. 내 몸, 그중에서도 ‘소중한 부위’에 사용하는 제품은 인간의 몸과 직결된다는 이유로 더 가혹한 동물실험을 거치게 된다.

탐폰, 콘돔, 생리컵, 윤활제, 데오도란트 등 생리용품이 대표적이다. 2017년 화장품법 개정 이후 화장품에서 동물실험은 금지됐지만, 이 제품들은 의료기기 및 의약외품에 해당해 여전히 동물실험이 이뤄진다. 생리용품이 ‘윤리적 소비에 가려진 사각지대’라고 불리는 이유다.

토끼는 크기가 작고 다루기 쉽다는 이유로 각종 생리용품 동물실험에 이용된다. 콘돔의 ‘질 자극성 검사’를 위해 토끼는 5일 동안 질 내에 콘돔 조각을 삽입한 채 생활한다
토끼는 크기가 작고 다루기 쉽다는 이유로 각종 생리용품 동물실험에 이용된다. 콘돔의 ‘질 자극성 검사’를 위해 토끼는 5일 동안 질 내에 콘돔 조각을 삽입한 채 생활한다 ⓒ한겨레 / 동물권단체 어나니머스 오브 보이스리스(AV) 제공


균 번식한 탐폰 견디는 토끼들

 

특히 토끼는 여러 생리용품 실험에 광범위하게 희생되고 있었다. 수십 마리의 토끼들이 실험대에 묶여 있다. 실험은 14~16시간가량 이뤄진다. 토끼들은 박테리아 균을 묻힌 탐폰과 멸균 탐폰을 번갈아 질 내에 삽입 당한다. 밤새 반복되는 삽입과 제거 과정에서 토끼들은 치명적인 쇼크 증상을 보인다. 1989년 하와이대학 의대에서 공개한 탐폰 독소반응 실험 과정이다.

미국 제약회사 ‘존슨앤드존슨’이 미국 특허국에 제출한 서류에도 이와 비슷한 동물실험이 기술되어 있다. 토끼뿐 아니라 기니피그, 개코원숭이도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생리혈이 묻은 탐폰을 장시간 삽입한 채 견디는 실험에 동원됐다. 실험 결과가 불충분할 경우, 아예 토끼 목 뒤쪽 피하지방에 탐폰을 삽입하기도 한다.

인간의 피부에 직접 사용하는 윤활제 또한 토끼의 생식기에 먼저 실험된다. 제프 브라운 국제동물권단체 페타(PETA) 과학 고문은 “윤활제 실험은 토끼의 질에 윤활유를 주입하는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5일 연속 질에 윤활유를 주입한 뒤 어떤 자극을 주었는지 보기 위해 실험 대상을 해부하는 것으로 실험을 마친다”고 설명했다.

콘돔 실험도 예외가 아니다. ‘질 자극성 검사’를 위해 토끼는 5일 동안 질 내에 콘돔 조각을 삽입한 채 생활한다. 2014년 미국의 한 언론사가 폭로한 콘돔 실험에서 토끼들은 5일간의 실험을 마치고 모두 안락사당했다. 질 조직 또한 제거된 상태였다.

토끼는 눈물샘이 없기 때문에 자극성 실험에도 자주 이용된다. 토끼는 ‘드레이즈 테스트’(전신 구속 상태에서 눈에 화학물질을 떨어뜨리는 실험)에 자주 이용된다. 우리가 사용하는 데오도란트(땀 냄새 제거제) 또한 이 실험을 거쳐 생산된다.

눈물샘이 없는 토끼는 구속된 상태에서 눈에 화학물질을 투입하는 ‘드레이즈 테스트’에 자주 이용된다.
눈물샘이 없는 토끼는 구속된 상태에서 눈에 화학물질을 투입하는 ‘드레이즈 테스트’에 자주 이용된다. ⓒ한겨레/ 애니멀 오스트레일리아 제공


토끼가 실험에 동원되는 이유

 

일회용 생리대의 대체품으로 선호되고 있는 생리컵의 경우, 완제품이 동물실험을 하지 않더라도 재료가 동물실험을 진행했을 가능성이 크다. 생리컵은 주로 열가소성 엘라스토머(TPE)라는 친환경 소재나 실리콘으로 만들어진다. 생리컵 원재료 제조사 크라이버그(Kraiberg)는 “실험 물질을 토끼나 실험용 쥐의 척추 근육에 7일 동안 이식해서 출혈, 괴사, 변색, 감염 등의 징후를 관찰한다”고 밝히고 있다. 토끼가 실험에 많이 이용되는 이유는 명확지 않다. 국제 동물보호단체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HSI)은 “토끼가 작고 온화하며 다루기 쉽고, 번식력이 좋아 새로운 실험체 공급이 쉽다는 점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토끼의 희생 없는 생리용품을 사용할 수는 없을까. 최근에는 ‘크루얼티 프리’(Cruelty Free)가 윤리적 소비의 선택지로 등장했다. 크루얼티 프리는 완제품, 원재료 모두 동물실험을 거치지 않은 제품에 부여되는 인증이다. 국제동물권단체 페타, 영국채식협회(Vegetarian Society), 비영리 국제기구 크루얼티 프리 인터내셔널(Cruelty Free International) 등이 크루얼티 프리 인증을 진행하고 있다.

각 단체는 모두 ‘성분, 구성물, 완제품 모두 동물실험을 진행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공통 기준으로 내세운다. 크루얼티 프리 인터내셔널의 ‘리핑 버니’(leaping bunny·깡충 뛰는 건강한 토끼 상징)라는 어느덧 세계적인 동물실험 원료 무첨가 인증마크로 인정받고 있다. 국내에서는 동물권단체 카라가 2017년 화장품법 개정을 계기로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착한 회사 리스트’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국내 생리용품 업체 인스팅터스는 비동물성 실험 원재료를 이용한 제품으로 ‘크루얼티 프리’ 인증을 받았다
국내 생리용품 업체 인스팅터스는 비동물성 실험 원재료를 이용한 제품으로 ‘크루얼티 프리’ 인증을 받았다 ⓒ한겨레/ 이브 제공

 

하지만 여전히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의료기기, 의약외품은 필수적으로 동물실험을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다. 동물실험을 거치지 않은 제품을 허가받으려면 △기존 동물실험으로 안전성이 입증된 재료를 이용하고 △해당 재료와 동일한 제조과정을 거쳤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식약처, ‘의료기기 생물학적 안전성 통합 가이드라인’)

국내 생리용품 업체 인스팅터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콘돔·생리컵 등을 생산하는 이 업체의 ‘이브’(EVE) 브랜드는 국내 콘돔 제조업체 중 최초로 페타의 크루얼티 프리 인증을 받았다.


“추가 동물실험 없이 안전성 입증”

박진아 인스팅터스 대표는 “이브 콘돔은 기존에 확보된 안전성에 대한 자료를 토대로 의료기기 허가를 받았다. 이브는 과거 연구를 활용하거나 비동물성 실험 방식의 독성평가, 임상시험을 통해 추가적인 동물실험 없이 제품의 안전성을 입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브가 생각하는 크루얼티 프리의 본질은 동물실험 원료를 금지하는 것이 아닌, 추가적인 동물실험의 중단”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 식약처(FDA)는 약물, 의료기기, 의약외품에 대한 동물실험 대체 방안인 비동물성 실험을 활발히 연구 중이다. FDA는 공식 누리집에 “기업은 잘 확립된 과학 문헌, 원료 안전 검사 또는 임상시험을 통해서 동물실험보다 더 안전한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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