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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위적으로 귀여워 보이도록 연출하는 건 가능한 배제한다" 이은솔 '애니멀봐' PD가 특별히 성인 성우를 섭외한 까닭

1500만 반려인 시대, 미디어에서 포착된 아주 중요한 변화다.

드라마 <내일> 한 장면 갈무리.
드라마 <내일> 한 장면 갈무리. ⓒMBC

“끼익!” 갑자기 차도로 뛰어든 사람 때문에 차가 급정거를 했다. 그 사람은 차에 치여 죽으려고 한 것일까? 아니다. 차가 빠른 속도로 달리는 데도 차도에서 꿈쩍 않는 개를 구하려고 뛰어든 것이다. 개는 왜 도망가지 않는가? 놀랍게도, 자살을 시도한 건 그 사람이 아니라 개다.

스스로 죽고자 했던 포메라니안 콩이(달이)는 김훈(차학연)의 유년 시절부터 함께 한 반려견이다. 노견이 된 콩이는, 자신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자신이 떠난다는 사실보다, 훈이 자신의 죽음을 지켜보는 게 더 마음이 아프다. “콩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상상을 하는 일조차 버거워”하는 훈을 위해 일부러 ‘가출’을 한 것이다.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이별의 순간. 지난달 1일 시작한 드라마 <내일>(문화방송)은 9회(29일) 방영분에서 노견 콩이의 이야기를 다뤄 시청자들의 눈물을 쏙 빼놨다.

이처럼 반려동물의 내면을 일인칭 시점에서 담아내며 극을 이끌어가는 작품이 최근 눈에 띈다. 반려인의 시점에서 반려동물의 마음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반려동물의 시점에서 그의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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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내일> 속 장면 갈무리. ⓒMBC

■ 죽음, 일상을 개와 고양의 시점에서

대표적인 작품이 <내일>의 9회다. <내일>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사람들을 살리는 특별 임무를 맡은 ‘위기관리팀’ 소속 저승사자들이 주인공인 판타지 드라마다. 이번에는 자살 예정자가 아닌, 자살 예정견(犬) 콩이를 살리려는 위기관리팀의 활약상을 다뤘다. 원작인 네이버 웹툰에서는 콩이의 말을 통역해주는 다른 저승사자가 등장하지만, 드라마는 죽음을 앞둔 콩이의 주마등 같은 기억을 영상으로 재연하는 방식으로 각색해 일인칭 반려동물 시점을 한층 부각했다.

드라마에서 동물을 ‘귀여운 소품’으로 소모하는 대신, 사람처럼 풍부한 감정을 지닌 생명체로 담으려는 시도는 또 있다. <티브이(TV) 동물농장>(에스비에스)의 에스엔에스(SNS) 버티컬 브랜드 <애니멀봐>는 지난달 29일 웹드라마 <방구석 아리랑>을 선보였다. 세 마리 고양이(아리, 리랑, 아랑)와 집사의 일상을 담은 숏폼 형식으로, 실제 고양이들의 주인이자 펫튜브(Pet+Youtube)를 운영 중인 배우 남기형이 집사 역할로 출연한다. 고양이마다 인간 성우가 매칭돼, 고양이 시점에서 대사를 읊는다.

기획·연출을 맡은 이은솔 애니멀봐 피디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티브이 농물농장> 조연출을 하는 동안 동물들과 촬영하다 보면 ‘저 친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보통 우리는 인간의 시선으로 동물을 보는데, 동물의 감각이나 시선으로 세상을 보면 좀 다르지 않을까 생각하다가 고양이 시점 드라마를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동물의 시점에서 다양한 감정을 전달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 1500만 반려인 시대가 가져온 변화

개와 고양이는 물론, 다람쥐까지 드라마에서 동물이 주요하게 등장한 지는 오래됐다. 2014년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에스비에스)에 나온 반려견 ‘달봉’은 주인공들의 사랑을 이어주는 역할을 했다. 같은 해 <압구정 백야>(문화방송)에서는 반려견을 둘러싼 에피소드가 몇회를 이끌기도 했다. 지난 1월 <고스트 닥터>(티브이엔)에서 다람쥐는 주인공과 함께 사는 가족이었다. <내일>과 <애니멀봐>는 여기서 더 나아갔다. 반려견을 주인공으로, 반려견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펼쳤다. 특히 <내일>은 콩이를 마치 한 사람의 인격체처럼 대하며 그의 아프고, 슬픈 내면을 담아냈다.

드라마에서의 이런 변화는, 우리 사회가 ‘1500만 반려인 시대’에 들어선 현실을 반영했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들은 1448만명에 달한다. 반려동물이 ‘애완’이 아닌 ‘가족’의 개념이 되면서, 시청자도 동물의 감정을 표현하는 설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됐다. 수년 전부터는 ‘펫로스’(Pet Loss, 반려동물의 죽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한겨레> ‘애니멀피플’팀이 여러 단체와 실시한 ‘한국 반려동물 장례 인식조사’를 보면 ‘펫로스 증후군’을 경험한 반려인들이 일상을 회복하는 데 걸린 시간은 평균 2년. 반려인들한테 반려동물의 죽음은 인간 가족의 죽음과 다르지 않았다. <내일> 방송이 나간 뒤 “이별한 강아지가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거나 “지금 내 강아지가 그런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됐다”는 등 “감동이었다” “슬펐다” 등의 시청자 반응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웹드라마 <방구석 아리랑>의 한 장면. 애니멀봐 유튜브 갈무리.
웹드라마 <방구석 아리랑>의 한 장면. 애니멀봐 유튜브 갈무리. ⓒ애니멀봐 유튜브

■ 동물 배우의 감정 연기 관건

하지만 동물을 주인공으로 감정적인 이야기를 살리는 것은 쉽지 않다. <내일>에서 이 에피소드가 자연스럽게 흐른 데는 콩이를 연기한 동물 배우 ‘달이’의 섬세한 감정 연기가 좋았기 때문이다. 가만히 앉아서 훈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장면, 저승사자들의 진심 어린 ‘설득’에 갈등하는 장면 등은 따로 연기 훈련을 받은 동물 배우이기에 가능했다. 동물 배우의 부담을 최소화는 촬영도 중요했다. 콩이가 자동차에 치일 뻔한 장면 등 위험 부담이 큰 경우, 동물 배우가 직접 등장하지 않아도 되는 구도로 촬영했다. 김영재 <내일> 조감독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시청자의 동물 배우 안전에 대한 의식이 과거보다 높아졌다. 그런 시청자의 눈높이를 맞추려고 고민했다”며 “콘티 단계부터 동물 배우에게 무리한 표정, 움직임 등을 주문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애니멀봐>도 기존 유튜브의 펫 콘텐츠들이 반려묘의 귀여운 모습을 부각하는 것과 달리, 성인 성우들이 성인 목소리를 내는 등 새로운 느낌을 표현한다. 이은솔 피디는 “흔히 볼 수 있는 동물 콘텐츠에서 인위적으로 귀여워 보이도록 연출하는 건 가능한 배제 하려고 했다“면서 “동물에게 아기 목소리를 입히는 대신 성인 성우를 섭외한 것도, 동물이 인간 시점에선 귀여워 보일지라도 각자의 삶을 살고 있다는 걸 강조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덧붙였다. <애니멀봐>는 매주 금요일 아침 8시에 공개되는 ‘방구석 아리랑’은 총 6회로 마무리할 예정이다.

한겨레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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