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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14일 10시 14분 KST

'성적 위조해 미국 명문대 합격' 미국 대학 불법 컨설팅 정황이 공개됐다 (대화 내용)

SAT 문제를 빼내 답만 외우라고 주문했다.

Klaus Vedfelt via Getty Images
기사와 무관한 자료사진. 

 

‘띠링~’ 2015년 4월2일 새벽 3시 지호(가명·당시 18살)한테 페이스북 메시지 한통이 도착했다.

“너 컨설팅받을래? 합격 보장이야. 100% 꽂아주는 거야. 입학사정관하고 네트워킹해서 무조건 보장.” 지호가 2년 전 서울 강남구의 한 유학원을 다닐 때 진로상담을 담당했던 정아무개(31)씨였다. 정씨는 학원을 그만둔 뒤 싱가포르에 있는 ‘패스웨이 컨설팅’이란 입시 컨설팅 업체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성적과 상관없이 원하는 대학에 합격시켜줄 수 있다”는 정씨의 말은 언뜻 허무맹랑하게 들렸다. 지호는 성적이 중요한 것 아니냐고 거듭 물었다. 정씨는 “점수도 만들어준다. 칼리지보드(미국 대학입학자격시험 SAT 주관 기관)에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고 약속했다. 실제로 2년 뒤 뉴욕대 스턴경영대와 존스홉킨스대에서 합격증이 날아왔다. 뉴욕대 스턴경영대는 미국 경영대 중에서 최상위권으로 평가된다. 지호 어머니는 “아들 성적이면 50위권 대학만 가도 만족하겠다고 생각하던 차여서 (합격 소식이) 정말 기적 같았다”고 했다.

‘기적’은 어떻게 가능했던 걸까. 또 정씨가 말한 ‘입학사정관 네트워킹’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한겨레>는 정씨와 지호네 가족의 진술, 그들이 주고받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대화 내용을 비롯해 뉴욕대, ㅇ고등학교, 입시업계 관계자 등의 증언을 바탕으로 정씨의 미국 대학 불법 컨설팅을 재구성했다.


“답만 외우면 된다”, “채팅 기록은 지워”

2015년 10월22일 정씨와 지호가 쓰는 공용 이메일 계정에 알림이 떴다. 11월에 치르는 에스에이티 시험을 보름 남겨둔 때였다. 정씨는 이 이메일 계정의 ‘내게 보내기’ 기능을 이용해 중요한 자료를 공유하곤 했다.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면 자신이 언제든 수신·발신 내역을 직접 삭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정씨가 보낸 파일은 에스에이티2 수학 기출문제 15개 세트였다. 에스에이티는 미국 대학들이 지원자의 성적을 평가하는 데 활용하는 시험이다. 과거에 나온 문제가 시간이 지난 뒤 다시 출제되는 문제은행 방식이어서 기출문제를 공개하지 않는다. 바꿔 말해 기출문제를 빼돌려 문제와 답을 외우면 고득점을 노릴 수 있다는 뜻이다. 정씨는 <한겨레>와 만나 “아는 브로커를 통해 기출문제를 구했다. 2000만원이 들었다”며 “지호에게는 문제랑 답만 외우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런 사실은 당시 두 사람의 대화 내용에서도 확인된다.

“쌤이 주신 수학2 문제 이해 안 가는 것도 있는데 답을 외우라고 해서 문제에 대한 답을 그냥 외웠어요.”

“외우세요. 그리고 화학도 있지? 화학도 그렇게 봐. 아니면 물리 할래? 아예 문제 세트를 통째로 올릴까? 온갖 거 다 있어. 마음먹으면 프랑스어도 가능함. (중략) 아 참, 채팅 기록 지워줘.”(2015년 10월28일)


“타이에서 요리 배워” 브로커가 꾸며낸 자기소개서

입시 브로커 정씨의 손길은 에스에이티 문제 유출에서 멈추지 않았다. 미국 대학 원서 제출 시즌이 되자 정씨는 지호의 인적사항을 모두 넘겨받은 뒤 제출 과정을 직접 진행했다. 에세이(자기소개서)도 정씨가 대필했다.

“에세이 나 지금 쓰려 하는데 그냥 대필해주면 되지? 내가 이야기 지어내?”
“에세이는 그냥 쌤이 끝내시기로 했잖아요.”(2015년 10월28일)

“근데 조금 지어내야 하는데 괜찮지?”

“당연하죠.”

“아버지 이야기 쓰고 막 팔아먹었어.”(2015년 10월30일)

 

그렇게 정씨가 작성한 에세이에는 ‘(지호가) 2016년 여름 타이 우돈타니 현지 시장에 직접 찾아가 커리 요리법을 배웠고, 한국의 맛을 가미해서 새로운 레시피를 개발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모두 거짓이었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 영향을 받았다거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생각 등도 정씨가 직접 지어냈다. 정씨는 지호 아버지가 기업을 경영한 덕에 지호가 자라면서 얻은 이점이 무엇인지도 꾸며 썼다. ‘아버지가 경영인이어서 한국과 미국의 여러 도시에서 거주했다. 일에 매진하신 아버지 덕분에 이사 갈 때마다 더 큰 집과 더 좋은 학교로 옮길 수 있었다’는 식이다.


‘뉴욕대=80만달러’ 뒷돈 거래 있었나

2016년 12월 지호는 뉴욕대와 존스홉킨스대 합격증을 받아들었다. 몸이 좋지 않아 에스에이티 시험을 몇차례 놓치고, 늦게나마 본 시험에서도 원하는 점수가 나오지 않은 지호로선 놀라운 결과였다.

하지만 합격증은 공짜가 아니었다. 12월31일 새벽 3시께 지호 어머니는 정씨가 보낸 메시지를 받았다. “통화가 필요합니다. 금액에 관한 부분입니다. 일반적으로 뉴욕대 스턴은 80만불, 존스홉킨스대는 50만불입니다. 1월6일 전에 통화 시간 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돈을 지급하지 않으면 합격도 없던 일이 된다는 것이었다.

정씨는 지호 부모한테 ‘기여입학제’라고 설명했지만 이는 사실과 달랐다. <한겨레>를 만난 정씨는 “사실 로비에 쓰려던 돈”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입학사정관으로 일했던 사람들, 아니면 대학교 이사회 통해서 (로비를) 하는 거예요. (미국 입시비리 주범) 릭 싱어처럼 코치를 매수하거나. 보통 중간에 브로커가 있죠. 어쨌든 현직 입학사정관한테 영향이 가도록 하는 게 핵심이죠.”

윌리엄 릭 싱어는 학생 서류를 위조하고 대학 관계자를 매수하는 방식으로 미국 상류층 자녀들을 명문대에 합격시킨 사실이 드러나 지난해 재판에 넘겨진 입시 브로커다. 정씨는 “입학사정관한테 돈을 주는 게 주가 되는 건 아니다. 합격시킬 명분을 만들어줘야 된다. 에스에이티 점수를 만들고 에세이를 써주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정씨에게 동업 제안을 받은 적 있는 한 국내 에스에이티 학원 원장은 “일부는 자신이 챙기고, 나머지는 대학에 뇌물로 줬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정씨가 하는 게 기본적으로 학교 관계자와 거래를 하는 건데, 서류상 학생의 스펙이 좋을수록 단가를 낮출 수 있다고 했다”며 “스펙을 조작해서 본인이 챙기는 몫을 늘리고, 나머지는 대학 관계자에게 줬을 것”이라고 했다.


“ㅇ과고 성적증명서, 학교장 추천서 위조”

지호 어머니는 고민 끝에 뉴욕대와 존스홉킨스대 진학을 포기했다. “정 선생한테 두 대학을 포기하겠다고 말하니 이미 기부금의 10%를 자기 돈으로 선지급했다면서 화를 내더라고요. 이렇게 거래를 파투 내면 다음부터 그 대학과 거래하기 어려워진다고도 했어요.”

정씨는 돈을 내지 않았으니 합격이 취소될 것이라고 했고, 그 말은 현실이 됐다. 이 과정에서 정씨가 뉴욕대에 위조된 고교 성적증명서와 추천서를 낸 정황도 발견됐다. 이듬해 3월 뉴욕대에서 온 전자우편에는 “지원 서류에 허위 사실(fraudulent material)이 발견돼 합격을 취소한다”고 적혀 있었다.

뉴욕대 관계자는 당시 지호한테 “(당신이) 한국의 ㅇ과고 성적증명서와 학교장 추천서를 냈는데 모두 가짜인 게 적발됐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서 고교를 다닌 지호는 난생처음 듣는 얘기였다.

ㅇ과고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실제로 미국 현지 대학 쪽에서 확인차 연락이 와서 그런 학생이 입학한 적도, 재학한 적도 없다고 확인해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정씨는 처음엔 서류 위조 자체를 부인하다 나중엔 “당시에 지호가 다녔던 유학원에서 위조했을 수도 있다. 뉴욕대 합격은 지호 쪽에서 동시에 두 대학에 보증금을 넣어놨기 때문에 취소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그가 담당한 ㄴ씨와 ㄷ씨 등 두 학생도 ㅇ과고 재학생으로 둔갑돼 미국 대학에 합격한 것을 고려하면 그의 해명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정씨가 담당한 학생 중 최소 3명이 같은 학교의 가짜 성적증명서로 대학에 합격한 셈이기 때문이다.


법정에서도 “기여금 입학 여러번 진행해” 주장

정씨는 2017년 2월 지호 쪽을 상대로 4억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뉴욕대 합격에 대한 보수 2억원과 지호 누나의 대학원 에세이를 첨삭해준 보수 등을 달라는 취지였다. 정씨는 소장에서 “미국 대학은 ‘기여입학’이라는 비공식적 제도를 두고 시행하고 있다. ‘기여금’을 지급받고 입학을 승인하고 있다”며 “2016년 12월 중순경 뉴욕대 비즈니스스쿨로부터 80만달러를, 존스홉킨스대학으로부터 50만달러를 기여금으로 지급하는 조건으로 합격증명서를 전달받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뉴욕대 입학처는 <한겨레>의 사실관계 확인 요청에 “기부금의 대가로 합격을 보장해주는 제도는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없다”고 밝혔다.

정씨가 대놓고 거짓말을 한 셈이지만 법정에서는 쟁점이 되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5부(재판장 유석동)는 지난해 11월 “뉴욕대와 존스홉킨스대의 경우 각 약 8억원, 5억원 이상의 기여금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입학 허가를 받았던 것”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다만 “기여입학 추진에 관하여 사전에 피고(지호네)와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지호네가 정씨한테 1억2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양쪽 모두 항소해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정씨는 법정에서 이런 ‘기여입학’을 여러번 진행했다고 진술했다. 당시 진술기록을 보면 “2015년 이전에 원고의 컨설팅으로 미국 대학에 기여금 입학을 한 학생이 있느냐”는 질문에 정씨는 “기여는 미국 대학에 들어갈 때 일반적으로 돈이 필요하다 보니까 필요에 따라 있었다”고 대답했다. 지호네 쪽 변호사가 다시 “(기여금 입학을 진행한 학생이) 2명 이상이냐”고 묻자 정씨는 그렇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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