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2020년 06월 10일 10시 40분 KST | 업데이트됨 2020년 06월 10일 13시 26분 KST

"시대가 바뀌었다" : 미국의 인종차별을 상징하는 남부연합 기념물들이 속속 철거되고 있다

'블랙 라이브스 매터' 시위가 미국 사회의 오랜 논란거리였던 남부연합 기념물들을 하나 둘씩 무너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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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남북전쟁 당시 남부연합(Confederate States of America, 아메리카 연합국) 대통령이었던 제퍼슨 데이비스의 동상이 시위대가 뿌린 페인트로 뒤덮여 있다. 리치몬드, 버지니아주. 2020년 6월7일.

미국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인종차별에 대한 전국적인 항의시위가 미국의 과거 인종차별을 상징하는 것들에 대한 분노로 번지고 있다. 1700여개에 달하는 남부연합(Confederate States) 기념물들을 비롯해 미국 곳곳에 흩어져있는 상징물들이 바로 그 대상이다.

미니애폴리스 경찰관이 조지 플로이드를 숨지게한 사건 이후, 시위대는 미국 남부주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남부연합 기념물들을 그래피티로 뒤덮고, 쓰러뜨렸다.

노예제 존치를 주장하며 미합중국을 탈퇴해 남북전쟁(1861-1865년)을 일으켰던 남부연합의 수도였던 버지니아주 리치몬드를 비롯해 여전히 이 지역의 중심지인 앨라배마주의 버밍엄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지역 정치인들도 동상 철거 시도에 지지의 뜻을 밝히고 있다.

그밖에도 남부연합을 끝까지 탈퇴하지 않았던 다른 주들에서도, 여기에 더해  켄터키주인디애나주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미국 해병대에 이어 해군도 병사들이 남부연합의 전투깃발을 내거는 행위를 금지시켰으며, 군 관계자는 국방부가 남부연합 장군들의 이름을 딴 군 기지들의 명칭을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폴리티코에 말했다.

노예제 존치를 위해 싸웠던 이들을 응징하기 위한 시도는 미국 바깥에서도 나왔다. 지난 일요일, 영국 브리스톨에 모인 시위대는 노예무역으로 큰 돈을 벌어 지역사회 기부 활동을 벌였던 인물의 동상을 넘어뜨린 뒤 강물에 빠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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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브리스톨의 '블랙 라이브스 매터' 시위대가 에드워드 콜스톤의 동상을 끌어내린 뒤 항구로 이동시키고 있다. 콜스톤은 17세기 후반 노예무역으로 큰 돈을 번 인물로, 브리스톨 지역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2020년 6월7일.

 

미국의 공공장소들에서 남부연합의 상징을 없애자는 의견이 다시 힘을 받기 시작한 건 시위대가 거둔 여러 성과 중 하나다. 그밖에도 일부 지역에서는 경찰 예산을 삭감하겠다고 약속했고, 경찰 규제를 약속한 후보가 당선되기도 했으며, 플로이드가 목숨을 잃은 도시인 미니애폴리스의 시의회는 지방경찰을 해체한 뒤 재건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미 오래 전에 고인이 된 반역자들의 기념물들을 해체하는 건 상징적인 조치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활동가들과 역사가들은 남부연합 기념물들에 대한 투쟁은 다른 그 어떤 개혁 조치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이라고 말한다.

″이 상징물들은 지속적인 인종차별적 정책을 낳고, 인종차별적 정책들은 이 상징물들이 계속해서 유지되도록 한다.” 미국역사협회의 제임스 그로스먼이 설명했다. ”그 동상들은 인종주의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이것들은 흑인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한다. 노예제가 바로 흑인에 대한 폭력이라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그 동상들을 끌어내리는 것은 지역사회가 중요시하는 가치가 변화하고 있다고 선언하는 것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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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남북전쟁 당시 남부연합군의 총사령관이었던 로버트 E. 리 장군의 동상은 '블랙 라이브스 매터' 시위대에 의해 완전히 점령 당했다. 리치몬드, 버지니아주. 2020년 6월4일.

 

랠프 노덤 버지니아 주지사가 지난 4월에 서명한 법안에 따라 남부연합 기념물들이 철거되는 사례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버지니아주 전역에 여전히 자리하고 있는 200개 넘는 남부연합 상징물들을 주민들이 철거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이 법안은 7월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지만 시위대는 이미 이 기념물들을 겨냥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지난주, 노덤 주지사는 리치몬드에 100년 넘게 세워져있던 남부연합군 총사령관 로버트 E. 리의 동상을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철거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가 하면 지난주 리치몬드 시장 레바 스토니는 ‘모뉴먼트 애비뉴’를 따라 늘어서있는 네 개의 남부연합 동상을 철거하는 결의안을 제출했다.

버지니아주보다 많은 남부연합 기념물이 설치되어 있는 주는 없다. 그러므로 노덤 주지사의 결정은 ”티핑 포인트”가 될 수 있다는 게 노스캐롤라이나대 W. 피츠휴 브런디지 교수(역사학)의 말이다.

″앞으로 6개월이나 1년 안으로 버지니아에서 그 기념물들이 전부 철거되리라고 예상한다.” 브런디지 교수가 말했다. ”(버지니아는) 남부주들 중에서도 남부연합을 가장 크게 기념해왔던 곳이다. 티핑 포인트에 도달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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랠프 노덤 버지니아주 주지사는 세워진 지 100년이 넘은 로버트 E. 리 장군의 동상을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철거하겠다고 약속했다. 사진은 노덤 주지사의 기자회견에서 발언 기회를 얻은 리 장군의 후손 로버트 W. 리 4세가 동상 철거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는 모습. 리치몬드, 버지니아주. 2020년 6월4일.

 

현재 미국에 존재하는 거의 대부분의 남부연합 기념물들은 1800년대 후반이나 1900년대 초반에 세워졌다. 남북전쟁과 남부군의 투쟁 이유를 미화하려던 움직임이 있었던 이른바 ‘Lost Cause’ 시대의 일이다. (남부 역사학자들은 당시 남부주들이 노예제 존치를 원했기 때문에 남북전쟁이 벌어진 게 아니라 전쟁이 발발한 다른 배경이 있었다는 주장을 펼쳤다. 말하자면 역사를 새로 쓰려는 시도였다.)

노예제가 폐지됐음에도 당시 남부주들에서는 인종 간 분리를 규정한 ‘짐 크로(Jim Crow) 법‘이 시행돼 인종차별이 ‘합법적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식당이나 학교, 대중교통 같은 공공장소 뿐만 아니라 화장실과 식수대에서조차 ‘흑인 전용‘과 ‘백인 전용’을 분리했고, 흑인들은 열등한 대우를 받았다. 

당시 남부주 전역에 속속 들어섰던 남부연합 기념물들은 노예제 존치 시도라는 남북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을 덮으려고 했을 뿐만 아니라, 흑인들은 여전히 백인 우월주의적인 폭력과 억압의 대상임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했다.

민권운동이 벌어지고 인종 간 분리 정책을 철폐하라는 요구가 높아지던 1950년대에도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남부연합 기념물 설치가 마치 유행처럼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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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연합의 수도였던 리치몬드 도심의 '모뉴먼트 애비뉴'에 있는 남부연합군 총사령관 로버트 E. 리 장군의 동상은 1890년에 이곳에 세워졌다.

 

흑인 미국인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그것이 상징하는 힘에 맞서는 의미로 이 기념물들을 겨냥해왔고, 인종 불평등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이 기념물들은 집중적인 공격 대상이 됐다.

백인 우월주의에 빠진 딜런 루프(당시 21세)가 2015년 찰스턴의 한 흑인 교회에서 총기를 난사해 9명을 살해한 사건이 벌어진 이후, 남부연합 상징을 없애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가 남부연합기를 들고 찍은 사진들이 공개된 데 따른 것이다.

2017년 미국을 들썩이게 만든 샬러츠빌 백인 우월주의 시위(샬러츠빌에 있는 로버트 E. 리 장군의 동상 철거에 반대하는 시위였다) 이후에도 이와 비슷한 요구가 쏟아졌다.

스미소니언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8년 사이에 미국 전역에서 100개 넘는 남부연합 기념물과 상징들이 철거됐다. 하지만 800여개에 달하는 기념물을 비롯해 1700여개는 여전히 남아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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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정부 관계자들이 로버트 E. 리 장군 동상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리치몬드, 버지니아주. 2020년 6월8일.

 

각 지역들이 흑인과 백인의 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을 도입해왔지만, 이 기념물들이 계속해서 존재함으로써 변화를 가로막는 장벽으로 기능해왔다는 게 샬러츠빌 시의원 웨스 벨라미의 말이다. 미국의 인종차별 과거가 계속해서 현재의 진보를 방해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줘왔다는 얘기다. 그는 오래 전부터 리 장군의 동상 철거를 주장해왔다.

″이것들이 상징적인 것일 뿐이라는 건 알지만, 상징은 중요하다.” 벨라미 시의원이 말했다.

″이런 인종차별적 상징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주택 정책이나 교육 정책, 형사제도 개혁 같은 문제들을 다루려 할 때조차 말이다. 내가 광범위한 그런 법안들을 처리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거리를 걷다가도 공원에 세워져있는 이런 고통스러운 8.5미터짜리 동상들을 봐야 한다는 거다. 이건 ‘정책을 바꾸든 뭘 하든 우리들(남부연합의 상징들)이 이 땅을 지배하고 있다’는 매우 강력한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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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 로버트 E. 리 장군의 동상. 리치몬드, 버지니아주. 2020년 4월7일.

 

″(이 기념물들에서) 노예제와 짐 크로 법, 미국 사회의 계속되는 구조적 인종주의를 떠올리는 경향은 3년 전, 5년 전에 비해 훨씬 더 뚜렷해졌다.” 브런디지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또한 미국인들, 특히 백인 미국인들은 노예제와 현재의 문제들을 예전보다 더 쉽게 연관지어 생각하게 됐다.”

그와 같은 변화는 여론조사와 시위 현장에서도 발견된다. 미국인 대다수는 이번 시위가 정당하다고 생각하며, 경찰이 흑인과 백인을 다르게 대한다고 본다는 의견은 처음으로 절반을 넘었다. 경찰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도는 역대 최저치 근처까지 떨어졌고, 경찰에 예산 지원을 중단하거나 대폭 축소해 그 돈을 교육이나 복지 등에 투입하라는 요구가 들끓고 있다.

지난 일요일(7일), 공화당 밋 롬니 상원의원은 워싱턴DC에서 열린 시위에 참여했다. 뉴욕타임스 오피니언면 편집자 제임스 베넷은 시위 진압에 군 병력을 투입할 것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촉구한 톰 코튼 상원의원(공화당)의 칼럼을 발행한 것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자 사임했다. (이 매체의 흑인 직원들도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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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 주기적으로 기념 행사를 벌여온 'Flag Across the South' 회원들이 남부연합 기념물 앞에서 남부연합기를 흔들고 있다. 찰스턴, 사우스캐롤라이나주. 2019년 6월2일.

 

그동안 남부연합 기념물들을 철거하려는 시도는 반대편의 거센 저항에 부딪히기도 했다. 철거에 반대하는 쪽에서는 ‘역사를 지우려 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주의회 의원들과 지역 주민들은 철거를 막기 위해 법안을 통과시키거나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버지니아주의 공화당이 철거 시도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히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저항이 크지 않은 편이다. 브런디지 교수와 그로스먼은 그동안 남부연합 기념물 철거 운동이 계속되어 왔고, 경찰관이나 평범한 백인 미국인들이 흑인을 인종차별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널리 퍼짐에 따라 인종차별 문제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 기념물들을 수호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정말이지 불리한 상황이다.” 브런디지 교수의 말이다. ”시대가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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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 센테니얼 공원의 한 남부연합 기념물이 낙서로 덮여있다. 내슈빌, 테네시주. 2019년 6월17일.

 

샬러츠빌의 로버트 E. 리 장군 동상 해체를 주장해왔던 벨라미 시의원은 그 때문에 살해 협박을 받았고, 절대로 그렇게 될 일은 없을 거라는 냉소 섞인 말도 들었다. 벨라미 같은 흑인 미국인들에게, 속속 철거되고 있는 남부연합 기념물들은 다른 종류의 상징적 힘을 보여준다.

″우리는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뀐 새로운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 그가 말했다. ”이제 입법과 정책을 통해 변화를 만들어낼 기회가 우리에게 열려있다. 이제 우리는 ‘이렇게 하니까 된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

8일 아침, 평소처럼 샬러츠빌 시내를 조깅하던 그는 아마도 곧 사라지게 될 리 장군의 거대한 동상을 지나쳤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골리앗이 다윗을 만났군.”

 

 * 허프포스트US의 The Fall Of America’s Monuments To Racism을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