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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츠하이머 카페

ⓒhuffpost

최근에 나온 책 <엄마의 공책>(이성희·유경 지음, 부제 ‘치매환자와 가족을 위한 기억의 레시피’)과 3월 개봉 영화 <엄마의 공책>(김성호 감독)의 등장인물을 따라가다보면, 치매를 쉽게 이해하게 된다.

30년 넘게 반찬가게를 하며 아들딸 공부시키고 결혼시킨 72살인 영화 속 주인공 엄마 애란. 어느 날부터 애란은 꼼꼼하게 요리법(레시피)을 적는다. 그에게 요리는 가족과 지냈던 따스했던 날의 기록이다. 나이 들어도 제 앞가림 못하는 아들은 어느 날 밤, 냉장고 안에 있는 엄마의 양산과 지갑을 본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가끔 이상한 행동을 했지만 늙음의 현상이려니 치부해왔다. 엄마와 병원을 찾고서야 아들은 현실을 냉정하게 인정한다. 아들에게 칼국수를 끓여 내놓으며 엄마는 혼잣말로 뱉는다. “너희는 내가 바본 줄 아니? 나 치매라지?” 그리고 말한다. “잊어버리고 싶은 건 안 잊히고, 잊어버리면 안 되는 건 다 기억 안 나니…. 죽을 때가 된 거지.”

ⓒ한겨레21

이제 ‘은둔의 언어’가 아닌

글쓴이들은 가족이 이상을 느끼면 곧바로 긴장하고 세심한 관찰에 들어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치매는 어떤 병보다 절망스럽게 다가오지만,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병이다. 그렇기에 누구나 기본적인 것은 알아야 한다. 같은 말을 반복하거나, 자주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는 것 등이 초기 치매의 주요 증상이다. 무엇보다 예방과 조기 발견이 중요하다.

치매는 한 가족이 감당할 수 있는 질병이 아니다. 그렇다고 운명이라고 체념할 수도 없다. 고령화 시대에 전세계가 치매와 싸우고 있다. 문재인 정부도 지난해 9월 치매 부담 없는 행복한 나라를 만들겠다며 ‘치매 국가책임제’를 선언했다. 치매안심센터 10개소를 열었고, 내년까진 전국 시·군·구로 확대한다고 한다. 한꺼번에 효과를 낼 수 없겠지만 기대해볼 일이다.

빠름의 문화가 만들어낸 일상 속에서 치매 문제를 찬찬히 생각해볼 여유가 있었을까.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65살 이상 노인 열 명 가운데 한 명이 치매 환자라 한다. 이를 수치로 옮기면 72만 명이 치매 환자라는 뜻이다. 2050년에는 전체 노인의 15% 정도인 270만 명이 치매 환자일 것으로 예상된다. 치매는 이제 은둔의 언어가 아니다.

치매는 뇌에 생긴 병이다. 이 병에 걸리면 한 인간이 살아온 세월을 모두 잊을 수도 있고, 걸어온 생의 수많은 곡절이 사라질 수도 있다. 10여 년 치매를 앓던 시어머니를 모신 친구는 그 시간 자신의 모든 삶은 오로지 시어머니와 함께였다고 했다. 툭하면 밖으로만 나도는 시어머니와 오랜 세월 숨바꼭질을 했다. 친구는 그저 한숨만 쉬었고,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며칠 전 오래 알고 지내던 또 다른 지인에게 어머니의 안부를 물었다. 그는 이제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셨다고 했다. 어머니가 젊은 시절에 겪었던 기억을 떠올리면 무서워하신단다. 우리 어머니 역시 치매를 늦추겠다며 열심히 약을 드신다. 우리는 주변에서 치매 환자를 돌보는 수많은 가족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치유의 마을, 치유의 공간

치매 마을로 이름난 네덜란드 호그벡 요양원이란 곳이 있다. 이곳의 레스토랑 겸 카페에선 치매 어르신들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 놓고 차와 포도주를 마실 수 있다. 돈도 내지 않는다. <엄마의 공책> 저자 유경씨도 치매 환자와 함께 찻집에 가는 일이 쉽지 않은 현실에서 치매 환자를 위한 카페 하나를 꿈꿔본다고 했다. 공적 자금을 지원해서라도 알츠하이머 카페가 생겨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사람들과 만나서 큰소리를 쳐도, 크게 몸짓을 해도, 주변 시선에 가족들이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공간 말이다. 그런 아픈 가슴들을 녹여줄 치유의 마을, 치유의 공간이 곳곳에 생겨났으면 한다. 이 찬연한 봄날에.

* 한겨레21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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