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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웨이스트 도전' 일회용기 안 쓰려 개인 용기 내밀었다가 들은 말은 씁쓸했다

거절은 디폴트, '유별나다'는 시선은 보너스 (체험기)

11월29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알맹상점에서 섬유유연제를 페트병에 담아 구입했다.
11월29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알맹상점에서 섬유유연제를 페트병에 담아 구입했다. ⓒ한겨레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에 따라 안전하게 포장주문 하세요.” 한 배달 애플리케이션의 광고문구다. 코로나 시대에 권장되는 배달·포장·택배가 지구에도 안전할까? 딸려 오는 일회용품을 고려하면 그렇지 않다. 환경부 자료를 보면 올해 상반기, 하루 평균 종이류 폐기물 발생량은 889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9.3%, 플라스틱 폐기물은 848t으로 15.6% 늘었다. 그만큼 생활 속 쓰레기 배출을 최소화하는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카페 ‘보틀팩토리’는 11월 한 달, 서울 서대문구·마포구 일대 50여개 가게와 함께 일회용품 없는 소비 캠페인인 ‘유어보틀위크’를 진행했다. 서울환경운동연합은 12월 한 달 시민들과 함께 플라스틱 쓰레기를 사진으로 공유하는 ‘플라스틱 일기’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이런 움직임에 같이하며 ‘쓰레기 없는 일상’이 가능한지 살펴보고 싶었다. 지난달 23일부터 29일까지 일주일간 일회용 용기를 전혀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다회용 용기와 에코백을 가방에 넣고 다녔다. 그러나 첫 도전부터 벽에 부딪혔다. 개인의 의지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전 첫날인 지난달 23일, 마포구 한 분식집에서 김밥을 사려고 하자 주인은 이미 김밥을 싸뒀던 은박지를 벗겨 쓰레기통에 버리고 내가 준비해간 용기에 담아줬다. 다회용기를 가져간 것이 무색하게 은박지 쓰레기는 어찌할 수 없었던 것이다. 비닐봉지와 일회용 젓가락을 받아오지 않았으니 ‘절반의 성공’이라고 해야 할까.

다회용기에 담아온 김밥(왼쪽), 다회용기에 포장해온 햄버거와 감자튀김 / 한겨레 
다회용기에 담아온 김밥(왼쪽), 다회용기에 포장해온 햄버거와 감자튀김 / 한겨레  ⓒ한겨레

일회용기를 안 쓰는 가게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25일 저녁 비닐·플라스틱 포장이 없는 가게를 찾아 길에서 40분 정도 헤매다 수제버거집에서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용기에 받을 수 있었다. 26일 한 도시락집에 들어가 개인 용기 사용이 가능한지 묻자 바로 거절당했다. “지금 바빠서 안 됩니다. 원래 쓰는 플라스틱 용기 아니면 계량도 어려워요.” 한참을 찾아 어느 한식집에서 제육덮밥을 개인 용기에 담을 수 있었다. 이 가게 주인 손유경(47)씨는 “원래 여러 명이 주문하면 반찬은 큰 용기 하나에 포장했는데, 코로나 이후 개별 포장해달라는 요청이 많아 일회용품을 더 쓰고 있다”고 털어놨다. 23~26일 빵집·식당 등을 다녀보니 코로나19 방역에 무게를 두면서 비닐·플라스틱 포장이 더 늘어난 모습이었다.

매일 거절 당하거나 ‘유별나다’는 시선을 받다가 27일 ‘유어보틀위크’에 참여하는 가게들을 찾자 환영을 받았다. 빵집 ‘폴앤폴리나’에서는 가져간 용기보다 더 큰 빵을 꾹꾹 눌러 담는 걸 직원이 ‘응원’해줬고, “버릴 것 없이 채우는 일상을 제안합니다”라는 문구가 곳곳에 붙어있는 슈퍼마켓 ‘사러가쇼핑센터’에서는 방울토마토와 아보카도를 일회용품 없이 구매할 수 있었다. ‘경복쌀상회’에서는 가져간 용기에 맞춰 찹쌀 600g을 샀다. 용기 무게를 빼고 계량이 가능하게 저울을 설정해놓은 김형진(54) 대표는 “비닐에 나눠 담아 팔다 보니 쓰레기가 너무 많이 나와 줄여보려고 유어보틀위크에 참여했다”며 “전체 고객의 10% 정도가 직접 용기를 가져와 사고 있다”고 했다.

11월27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폴앤폴리나에서 빵을 다회용기에 포장했다.(위) /11월 27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경복쌀상회에서 김형진(54) 대표가 다회용기에 쌀을 담고 있다. (아래)
11월27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폴앤폴리나에서 빵을 다회용기에 포장했다.(위) /11월 27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경복쌀상회에서 김형진(54) 대표가 다회용기에 쌀을 담고 있다. (아래) ⓒ한겨레

29일 찾은 서울 마포구 알맹상점은 고객들이 자발적으로 두고 간 플라스틱·유리공병을 세척해 다른 고객들이 세제, 로션 등 원하는 제품을 담아 g 단위로 구매할 수 있게 한다. 이날 누군가 두고 간 500㎖ 생수 페트병에 섬유유연제를 담아 구매했다. 폐점 시간인 오후 4시에 가까운 시간이었지만 상점은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려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온라인에서 #제로웨이스트, #용기내, #용기내서용기내 등의 해시태그를 사용하며 피자도 종이상자 대신 프라이팬에 담아 구매하는 ‘제로 웨이스트 선배’들을 보니 용기가 생겼다. 해장국을 집에서 가져간 냄비에 담아오는 ‘냄비에 국물 포장하기’로 도전을 마무리했다.

일주일간 일회용기를 덜 배출했다는 생각에 뿌듯했지만 ‘나 혼자 만족’으로 끝낼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환경단체들과 전문가들은 “일회용품을 안 쓰려는 소비자들의 선택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생산자가 생산 단계부터 리필이나 대용량 제품을 더 많이 만들게 하고, 다회용 배달·포장 용기를 빌려주고 세척해주는 산업을 키우기 위해 정부의 규제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11월27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연희사러가쇼핑센터에서 방울토마토를 다회용기에 담아 구입했다(위) /11월29일 서울 마포구 구수동 한 음식점에서 해장국을 냄비에 포장했다.(아래) 
11월27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연희사러가쇼핑센터에서 방울토마토를 다회용기에 담아 구입했다(위) /11월29일 서울 마포구 구수동 한 음식점에서 해장국을 냄비에 포장했다.(아래)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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