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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남을 연설" : 오카시오-코르테스가 성차별적 막말 내뱉은 남성 의원에 완벽하게 대응했다

오카시오-코르테스는 "양심의 가책" 없이 성차별적 발언을 일삼는 남성들의 문화를, 그들의 뻔한 핑계를 차분하고 품위있게 저격했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미국 하원의원(민주당, 뉴욕)이 의사당 회의장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그는 최근 동료 남성 의원으로부터 성차별적 막말을 들었고, 이 사건을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며 발언을 자청했다. 2020년 7월23일.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미국 하원의원(민주당, 뉴욕)이 의사당 회의장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그는 최근 동료 남성 의원으로부터 성차별적 막말을 들었고, 이 사건을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며 발언을 자청했다. 2020년 7월23일. ⓒASSOCIATED PRESS

최근 동료 남성 의원으로부터 성차별적 막말을 들었던 미국 하원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민주당, 뉴욕)가 23일 의회에서 이 시대에 남을 만한 가장 신선하고, 힘있고, 페미니즘적인 정치 연설을 선보였다.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은 자신을 향해 비속어가 섞인 성차별적 막말을 내뱉었던 테드 요호(공화당, 플로리다) 하원의원을 향해 공개 발언을 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이건 늘상 일어나는 그런 정치적 말싸움이나 ‘티격태격‘이 아니었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정치적 기회주의’도 아니었다.

그는 요호 의원의 성차별적 막말을 단순히 맞받아친 게 아니었다. 이건 소셜미디어에서 큰 화제를 모으기 위한 그런 장면도 아니었다. 오카시오-코르테스는 남성들이 수백년 동안 여성을 ‘기어오르지 못하게 하기 위해’ 써왔던 전통적인 수법을 능숙하고도 완벽하게 무너뜨렸다. 

 

(오른쪽) 테드 요호 하원의원(공화당, 플로리다)은 최근 의사당 앞에서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을 향해 비속어가 섞인 성차별적 발언을 했다. 논란이 된 뒤에도 그는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다.
(오른쪽) 테드 요호 하원의원(공화당, 플로리다)은 최근 의사당 앞에서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을 향해 비속어가 섞인 성차별적 발언을 했다. 논란이 된 뒤에도 그는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다. ⓒASSOCIATED PRESS

 

“Fucking Bitch” 

우선 간단한 배경을 설명하면 이렇다.

요호 의원은 지난 월요일(20일) 워싱턴DC의 의사당에서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에게 ”역겹다(disgusting)”는 말을 했다. 빈곤에 대한 의견을 밝힌 발언을 문제삼으면서다. 요호 의원은 항의를 받고 물러서면서 성차별적인 욕설(“fucking bitch”)을 내뱉었고, 이걸 의회전문지 더힐의 기자가 들었다.

이 발언이 알려지고 며칠 뒤, 요호 의원은 의회에서 뻔한 ‘사과 아닌 사과‘를 했다. 요약하면 이런 얘기였다. ‘나는 그런 말을 한적이 없다. 만약 그렇게 들렸다면, 그래서 상처를 받은 사람이 있다면 미안하다. 나에게도 딸들이 있(으므로 내가 그런 말을 할 리가 없다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미투’ 운동 이전이었다면, 그리고 여성들이 이렇게 많이 의회에 진출하지 못했다면 요호 의원은 이 정도의 사과로 대충 퉁치고 넘어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원에서 두 번째로 높은 지위(다수당 원내대표)에 있는 민주당 스테니 호이어(메릴랜드) 의원도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이 ”사과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본다고 했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이건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그게 바로 문제입니다.'
"이건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그게 바로 문제입니다." ⓒASSOCIATED PRESS

 

여성들이 수없이 들어야만 하는 ”이 작은 발언” 

″요호 의원은 기자들 앞에서 저를 이렇게 불렀습니다. ‘A. FUCKING BITCH.’ 이게 바로 요호 의원이 한 여성 의원에 대해 쓴 단어들입니다.” 발언대에 선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이 이 단어들을 또박또박, 한 음절씩 다시 읊었다.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은 우선 자신이 요호 의원의 ”이 작은 발언(little comment)”에 깊이 상처를 받지는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건 안타깝게도 요호 의원의 성차별적 발언이 그리 새로운 일도, ”단 하나의 사건”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의원이 되기 전에 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할 때나 뉴욕 지하철을 탈 때, 거리를 걸을 때 이런 종류의 말들을 수도 없이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저를 희롱하면서 요호 의원과 똑같은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은 남성들”을 수없이 마주쳐야 했고, ”요호 의원이 썼던 그런 말을 하는 남성들을 술집에서 쫓아낸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건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그게 바로 문제입니다.”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이 말했다.

그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다른 수많은 남성들이 그랬 듯) 요호 의원이 여성을 비인간화 하고,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지 않게 만든 ”문화”와 ”패턴”을 언급했다.

″이건 문화적인 겁니다. (그런 행위를 해도) 무사히 넘어가게 해주고, 여성에 대한 폭력과 폭력적 발언을 용인하는 문화, 그리고 그 권력을 지탱하는 전체 구조의 문제입니다. (...) 이건 여성을 대하는 태도에서 나타나는 패턴이자, 그밖의 다른 사람(소수자)들을 비인간화하는 패턴입니다.”

이제 남성들의 그 뻔한 핑계를 언급할 차례다.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은 남성들의 뻔한 변명을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서' 공개 발언을 자청했다고 말했다.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은 남성들의 뻔한 변명을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서' 공개 발언을 자청했다고 말했다. ⓒASSOCIATED PRESS

 

″나도 딸이 있는 사람이다” : 여성을 방패 삼는 전형적인 핑계에 대하여

그는 요호 의원의 ‘사과 아닌 사과’를 보고는 공개적으로 발언에 나서야 할 필요를 느꼈다고 설명했다.

″요호 의원은 하원 연단에 서서 자신의 행동에 대해 변명을 하기로 하셨던 모양인데, 저는 이대로 넘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의 말이다.

″저는 제 여자 조카들이, 제가 방문하는 (유권자들의) 집에 있는 어린 소녀들이, (성차별적) 언어 폭력과 그보다 더 나쁜 일을 겪은 피해자들이 그 변명을 보게 내버려둘 수 없었고, 의회가 그걸 타당한 말로, 사과로, 침묵을 수락의 뜻으로 인정하도록 내버려둘 수가 없었습니다.”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요호 의원의 사과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실 생각이 없다는 건 분명하고요. 분명 그럴 기회가 주어져도 하지 않으실 겁니다. 여성에게 욕설을 하고 폭력적인 말을 쓰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그런 남성의 사과를 제가 밤 늦게까지 잠도 안 자고 기다릴 생각도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불만인 것은,”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이 운을 뗐다. ”자신의 형편없는 행동을 변명하기 위해 여성, 아내, 딸을 방패막이 삼는 것입니다.”

그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요호 의원께서는 아내와 두 딸이 있다고 언급하셨습니다. 제가 요호 의원의 막내딸보다 두 살 어립니다. 저 또한 누군가의 딸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저희 아버지는 돌아가셔서 요호 의원이 자신의 딸을 이렇게 대하는 걸 보지 않아도 됐습니다. (하지만) 제 어머니는 요호 의원이 이 의사당 회의장에서 저에게 무례를 범하는 모습을 TV로 지켜보셔야만 했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 선 것은, 저희 부모님에게 제가 그들의 딸이고, 남성들의 모욕을 그냥 넘기도록 그분들이 저를 키우지 않았다는 걸 보여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은 ”딸이 있다고 해서 좋은 남성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남성들의 뻔한 변명(‘나도 집에 딸이 있는 사람이다‘)을 직접적으로 ‘저격’한 것이다.

″딸이 있다고 해서, 아내가 있다고 해서 좋은 남성이 되는 건 아닙니다. 존엄과 존중으로 사람을 대할 때 좋은 남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좋은 남성은 큰 잘못을 저질렀을 때, 우리 모두가 그렇게 해야하는 것처럼 최선을 다해서 사과합니다. 그저 체면을 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표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잘못과 그로 인한 피해를 회복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보통 여성 정치인들은 이런 상황을 겪어도 정면 대응을 피해왔다. 오카시오-코르테스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보통 여성 정치인들은 이런 상황을 겪어도 정면 대응을 피해왔다. 오카시오-코르테스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ASSOCIATED PRESS

 

오카시오-코르테스가 무너뜨린 것

오카시오-코르테스의 이날 연설은 몇 가지 지점에서 과거 여성 정치인들의 대응과 달랐다.

보통 이런 일이 벌어지면, 사건은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

우선 힘있는 여성, 그러므로 ‘무섭다’고 간주되는 여성은 ”미친 xx”나 그밖의 다른 여성혐오적 비속어로 비인간화 된다. 여성 정치인, 특히 유색인종은 끔찍한 혐오 발언과 희롱성 발언을 듣는다. 문제를 제기하면 보통은 문제적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남성이 도리어 조절되지 않는 분노를 드러내고, 그들의 분노는 전적으로 ‘괜찮은 것’으로 용인되곤 한다.

여성 정치인들은 이런 상황을 겪어도 정면 대응을 피해왔다. 일례로 뉴욕타임스(NYT)의 리사 레러 기자가 지적한 것처럼, 힐러리 클린턴은 “xx(b*tch)”라는 말을 수없이 많이 들었음에도 단 한 번도 직접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몇몇 여성들은 우회적인 경로를 택하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워렌 상원의원을 겨냥한 성차별적 표현이었던 “nevertheless she persisted(말을 안 듣고 집요하게 계속했다)”를 지지자와 여성들이 구호로 활용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오카시오-코르테스는 그렇게 하는 대신 정면으로 맞섰다. 차분하고, 품위있게.

″끝으로 저는 요호 의원께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그가 연설을 마무리하면서 말을 이었다.

”권력을 가진 남성이 여성을 함부로 대할 수 있다는 것을 만천하에 보여주신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딸을 가진 남성도 여성을 함부로 대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내가 있어도 여성을 함부로 대할 수 있습니다. 가정적인 모습을 만천하에 보여주는 사진을 찍고도 여성을 함부로 대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아무일 없이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나라에서 이런 일은 매일같이 벌어집니다.”

 

″이 시대 가장 중요한 여성주의적 연설이었다고 본다.” 버지니아대 교수(정치학) 제니퍼 로리스가 말했다. 그는 이번 연설이 1995년 당시 퍼스트 레이디였던 힐러리 클린턴이 유엔에서 ”여성의 권리는 인간의 권리”라고 말했던 획기적인 연설에 비견할만하다고 설명했다.

로리스 교수는 정치권에서 성차별적 행위를 한 남성을 직접적으로 지목해 문제를 제기하는 게 이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사회적 관점이 좋게 바뀌었고 그 결과 이제는 (여성에 대한) 희롱에 반격한다고 해서 그게 여성 정치인의 당선 가능성이나 지지율, 정치적 미래에 해를 끼칠까봐 걱정할 이유가 전혀 없어졌다.”

물론 여전히 뭐가 뭔지 모르는 사람(남성)들도 있다.

″사람이 사과를 하면 용서를 해주는 게 맞다.”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인 케빈 맥카시 의원(캘리포니아)이 기자들에게 말했다. ”사과가 충분했는지 아닌지를 두고 우리가 또다시 회의장에서 한 시간 동안 토론을 벌여야 한다니 이해할 수가 없다.”

 

* 허프포스트US의 AOC Gave The Most Important Feminist Speech In A Generation을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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