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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프인터뷰] 영화 '죽여주는 여자'의 트랜스젠더 집주인 안아주 "이 영화로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 박수진
  • 입력 2016.10.07 16:33
  • 수정 2016.10.07 16:43

배우 윤여정이 60대 성매매 여성을 연기한 이재용 감독의 새 영화 '죽여주는 여자'(10월 6일 개봉)에는 눈에 띄는 여성 캐릭터가 또 있다. 등장인물들이 모여 사는 이태원의 오래된 다가구 집주인, 트랜스젠더 '티나'다. 트랜스젠더 클럽 마담으로 일하는 티나는 종로 여인숙 주인들과 면을 트고 지내는 '박카스 할머니' 소영(윤여정 분), 그리고 장애인 청년 도훈(윤계상 분)과 한 가족처럼 산다. 이야기는 소영이 이런 티나의 집에 우연히 만난 코피노 아이를 데려오면서 시작되고, 노인들의 죽음에 동참하면서 이어진다. 티나를 연기한 배우 안아주를 한남동의 한 옥상에서 만났다.

- '안아주'라는 이름이 기억에 남아요.

= 원래 '아주'라는 이름을 좋아했는데,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쓰게 됐어요. 우리들의 아픔과 핸디캡을 좀 안아달라는 의미에서 '안아주'라고요. 발음하기도 좋고, 귀엽다고도 하고요.

- 연기가 처음이라고 들었는데, 전엔 어떤 일을 하셨어요?

= 영화 찍기 직전까지 유흥업소에서 관리실장으로 일했어요. 지금은 당분간 안 하고 있고요. (연기 경험이라면) 고등학교 때 청소년 연극을 한 적이 있는데 소질이 없어서 더 안 했고요. 무대 연출이 좋아서 연극영화과에 가서 기획이나 연출을 배우는 게 꿈이었는데 그 길도 못 갔어요. 일하던 업소에서 쇼를 할 때 제가 무대 구성하고, 음악에 맞춰 무용을 짰는데 그 일 할 때를 가장 좋아했어요.

이재용 감독은 처음에는 티나 역에 남성 혹은 여성인 직업 배우를 쓸 계획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다들 호들갑스럽게 여장 남자의 이미지만을 연기할 뿐 마땅한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다." 이후 티나의 캐릭터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실제 클럽에서 일하는 트랜스젠더들을 찾아가 오디션을 봤고, 트랜스젠더 공연자로 전성기를 지나 마담이 된 티나와 같은 나이대에, 비슷한 경험을 가진 안아주가 역할을 맡게 됐다.

왼쪽부터 안아주(티나), 윤계상(도훈), 윤여정(소영), 최현준(민호)

- 영화 속 '티나'로 출연하기로 결심한 이유가 뭔가요.

= 조감독님이 시놉시스를 들고 찾아왔어요. 사실 지금까지 저 같은 사람들이 나오는 건 주로 코미디, 아니면 주제가 없는 영화인 경우가 많았는데, 읽어보니 이 영화는 그런 게 아니었어요. 저를 노출하는 게 싫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나의 이야기를 전달할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저도 나이가 들면서 노년이 된 후의 내 삶에 대한 불안을 생각하던 때였거든요. 죽음을 어떻게 맞이하는 게 행복할까 고민도 해보고. 그러던 중에 노인들의 죽음과 삶의 고통을 다룬 이 영화의 대본을 받게 된 거예요. 모든 노인들이 다 삶을 힘들어하는 건 아니잖아요. '죽지 못해 산다'는 말처럼 고통스럽게 사는 사람들 이야기라서 하고 싶었어요.

- 클럽에서 무대에 서던 트랜스젠더 댄서들이 40대에 들어서면서 주방으로 자리를 옮기는 모습이 안타까웠다는 얘길 하신 적이 있던데, 비슷한 맥락이겠네요.

= 우리 세계도 경쟁사회잖아요. 그래서 젊고 예쁜 친구들이 올라오면 젊었을 때 인기 많았던 사람들이 뒤로 처지죠. 우리나라는 나이가 들면서 일할 기회가 좁아지는 게 현실이니까. 먹고 살기 위해 주방으로 가기도 하고, 다른 쪽으로 가기도 하고. 그런 게 참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회적으로 설 자리가 더 많아진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우리 같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 중에 제일 나은 게 자기 자산 모아서 하는 자영업인 것 같아요.

'죽여주는 여자' 예고 영상

- 티나라는 인물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 풍족하지 않지만 나름의 프라이드도 있고, 겉으로는 떽떽거리고 까칠하게 굴어도 사실은 정이 많고 사랑에 약한 사람이에요. 실제 저와 비슷해요. 영화에서는 티나의 내면은 많이 안 나왔지만요.

연기는 아쉬워요. 정말 톱배우들이 시사회에 와서 잘했다, 수고했다, 칭찬 많이 해주셨는데 전 영화 시작하고 20분 동안 고개를 못 들겠더라고요. 식은 땀이 나고 창피해서. 연기라는 게 내공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았어요, 다시 촬영한다면 진짜 잘 할 거 같아요.

- 영화 속 '티나'를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자신의 이야기가 뭔가요.

= 그동안 사회적으로 트랜스젠더에 대한 언급이 없었던 게 아니에요. 그렇지만 방송에서는 재밌거나 억척스러운 캐릭터로만 어필하고 있어서 아쉬워요. 영화에서 티나는 소영, 도훈, 민호랑 한 집에서 특별한 문제 없이 살잖아요. 현실에서도 그래요. 주변 친구나 선후배 만날 때도 당연히 그렇고요, 전 성수동 주택가에 사는데 동네 슈퍼마켓, 미용실, 반찬가게 아주머니 아저씨들하고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어울려서 살거든요. 벽을 하나 치고 거짓으로 친절하게 대하는 거 안 했으면 좋겠어요.

- 티나를 넘어서, 영화 전체를 통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미디어에 많이 등장한다고는 하지만 독거 노인, 장애인, 트랜스젠더, 코피노가 주인공인 영화가 흔하지는 않으니까요.

= 다리가 하나 없어도 사는 데 불편할 뿐이지 사는 것 자체를 못하는 게 아니거든요. 도훈이는 도움이 필요한 거지 도움 없이는 못 사는 건 아니에요. 부잣집 사람들, 공부 잘하는 사람들만 주인공으로 나올 게 아니라 결점이 있지만 사회에 잘 적응하고 사는 사람들이 나오는 영화, 드라마, 방송이 있다면 참 좋다고 생각해요. 현실에서처럼요.

우리 사회가 각박하잖아요. 저만 해도 TV 보다가 불우이웃돕기, 봉사하는 사람들이 나오면 나도 해야지 생각은 하지만 실천이 어렵거든요. 또 겉으로는 괜찮지만 내면이 힘든 사람들도 많고요. 그런 사람들하고 옛말처럼 콩 한 쪽이라도 나눠먹을 수 있고, 관심 가질 수 있는 훈훈한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티나를 통해서든, 영화 전체를 통해서든 결론은 같아요. 다같이 어울려 사는 사회, 다같이.

- 윤여정 씨, 윤계상 씨와 일하는 건 어땠나요?

= 영광이죠. 윤여정 선생님은 너무 잘 해주셔서 어떻게 감사를 표현할 길이 없었어요. 전 연기도 처음이고, 그리고 편을 가르면 안 되지만, 전 사실 일반인과는 좀 다른 사람이잖아요. 그런데도 자상하게 식사도 매번 챙겨주시고, 추울 때 따뜻한 데 오라고도 챙겨주시고 너무 고마웠어요. 시사회 때도 많은 분들 앞에서 절 소개해주시는데 엄마 같고.

윤계상 씨는 연예인 같다는 생각보다는 옆집 동생 같아요. 마냥 편하다는 얘기가 아니라, 정감 가는 사람이요. 첫 촬영이 윤계상 씨와 둘이 나오는 장면이었는데 저 때문에 NG가 몇 번 났어요. 미안하다고 했더니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말고 열심히 해요"라고 웃어주시는데 그런 말 하기 쉽지 않잖아요.

-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은요?

= 제일 좋아하는 장면은 파주에서 운전하고 돌아오는 장면이에요. 도훈은 옆에서 피곤해서 자고, 소영은 앞으로의 자신을 걱정하면서 아이를 바라보고, 티나는 소영을 백미러로 쓸쓸하게 바라보는 그 장면이 전 참 마음에 들어요. 파주 장면들이 제일 좋았어요.

- 나이가 들면서 달라지는 점이 있나요.

= 숙연해지는 것 같아요. 어릴 땐, 누구나 비슷하겠지만 자신감이 넘쳐서 교만하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나도 모르게 상대를 무시하고, 도와주는 척만 하고, 다른 사람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척만 했는데 저도 살면서 실패를 하고, 상처를 받고, 이 나이가 되다보니까 다른 사람의 고통을 느끼려고 하는 마음이 생기고 정말 아파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말만이 아니라 진짜로 이해해주려고 노력하게 됐고, 참을성이 늘었어요.

- 영화 이후로 기회가 된다면 다른 일을 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지금 다음 계획이 뭔가요?

= 연기는 잘 못 하니까 다시 하게 된다면 많이 배워야 될 거 같고요. 희망이 있다면 방송 토크쇼에 패널로 나가보고 싶어요. 일본 방송에 토크쇼에 많이 나오는 트랜스젠더가 있거든요. 그 사람은 시사적인 주제로 얘기할 때도 잘 나와요. 말하는 걸 좋아해서 그런 일을 하고 싶어요.

영화 속 4인 캐릭터 소개 영상

사진/ 윤인경 비디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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