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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씽에이즈살롱 시즌 2를 시작하며

ⓒhuffpost

우리는 서로 섞여있고, 자주 부딪히고 있다.
- 청소년, 청년 감염인 ‘찰리, 소리’의 이야기

HIV/AIDS 인권활동가 네트워크는 작년 한해 에이즈에 대해 더 친숙하게 말하기, 더 많이 알기, 감염인과 함께 살기, 적극적으로 알리기라는 목표로 ‘키씽에이즈살롱’ 이라는 오픈토크를 진행했다. HIV/AIDS 이슈를 좀 더 생생하고, 친숙하게 알리기 위한 시도였다. 올해 ‘키씽에이즈살롱 시즌2’는 이전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기획으로 HIV 감염인 당사자들이 직접 나와 이야기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HIV 감염인들의 삶을 공유하여 HIV 감염인에 대한 전반적인 해를 높이기 위함이다. 4월 21일 그 첫 번째 시간 “청소년, 청년 감염인을 만나다”의 담담하면서도 당당했던 그 순간의 이야기를 담아본다.

좋아하는 드라마 새 시즌의 첫 에피소드를 기다리는 순간(주로 미드,영드에 적용된다.)은 여러모로 설렌다. 무엇인가 극적인 오프닝을 기대하기도 하고, 아슬아슬하게 끝난 전 시즌의 마지막 에피소드를 기억하며, 주인공들의 새로운 패션과 헤어스타일이 어떤지 보는 것도 쏠쏠한 재밋거리다. 키씽에이즈살롱 시즌2 첫 번째 시간 역시 그러했다. 직접 감염인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자리인 만큼 설렘과 기대감, 초조함도 있었다. 키씽에이즈살롱의 첫 진행을 맡은 진행자 ‘소주’의 목소리에서도 약간의 떨림이 있었다. 감염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 주인공은 청소년, 청년 감염인 ‘소리’, ‘찰리’다. 진행자, 패널들 서로가 한국청소년,청년감염인 커뮤니티에 ‘알’에서 활동 중이라, 편한 말투로 말들이 오갔다. 진행자가 평소에 가지고 있었던 궁금한 질문들에 패널들이 답했다. 키씽에이즈살롱 시즌2는 어느 새 그렇게 유유하게 시작됐다. 참가자들은 귀를 쫑긋하며 자연스레 세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감염 사실 오롯이 홀로 감당해야

소리와 찰리는 감염 사실을 받아들였던 순간들을 솔직 담백하게 이야기했다. 소리는 너무 몸이 아파 병원에 진료차 갔다가 의사로부터 감염 사실을 들었고, 찰리는 우연히 친구와 보건소에서 HIV 검사 후 알게 됐다. 감염인 저마다 감염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들은 예상치 못한 순간들이었을 것이다. 찰리의 이야기처럼 게이로 정체화하면서 HIV 바이러스에 취약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가능하고, 약을 꾸준히 복용하면 생활할 수 있는 기타 여러 만성질환과 같은 병이라고 이해하는 것도 가능하다. 또한 소리는 이를 홀로 감당하기 어려워, 한 달여 동안 고민했다고 기억했다. 중고등학교 성교육시간에서 HIV에 대해서는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고, 본인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로 생각했던 차에 접한 감염사실이라 힘든 시간을 보냈다. HIV에 대한 공포심을 유발하는 정보들로 가득했던 성교육으로 인해 감염 사실을 홀로 감당하기란 더욱 어려웠다. 정보 격차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현실 때문이다.

군 입대 전 확진판정을 받은 소리와 찰리는 군에 입대 할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다행인 것 같지만, 한국사회에서 군대 면제 사유는 취업 면접 시 단골 질문이다. 소리는 세 번의 취업과정에서 매번 군 면제 이유를 묻는 질문을 받았다. 개인사정으로 에둘러 말했다. 그런데도 집요하게 개인적으로 묻는 직장도 있었다고 한다. 명확한 이유 없이 국가가 감염인의 군 입대를 막았는데, 결국 감염인만 피해를 입는다. 군면제 사유에 대해 소리와 찰리는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국가 역시 근거 없는 공포를 갖고 있는 데, 굳이 부모에게 말할 이유는 아직 없다. 부모는 부모고 나는 나인데, 굳이 말하지 않고, 나름대로 행복한 모습 보여주는 것이면 되지 않겠냐고 말한다. 사실 말하고 싶지만, 모르는 편이 아직은 더 나은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여전한 현실이고, 고민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부모님의 지지를 바라는 마음도 크다. 게이 정체성에 대해 눈치를 채신 분도 있고 그렇지 못한 분도 있다고 한다. 아직 넘을 큰 산이 많아 보이지만, 부모님에게 커밍아웃 한 뒤에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잘 이야기해주고, 인권단체 활동에 같이 참여해보고 싶은 꿈도 있다. 부모님이 감염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혹시 모를 지나친 관심과 간섭은 벌써부터 싫다고 솔직하게 답했다. 너무 많은 걱정이 오히려 더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곁은 필요하다

가족에게 아직 말하지 못했지만, 이들에게도 곁은 필요하다. 찰리와 소리는 위로를 받고 싶은 사람들이다. 주위에 친한 게이 친구 한 둘에게 감염사실을 알렸다. 소리는 친한 형에게 말했고, 따뜻한 마음과 지지를 얻었다. 대화 나누고, 밥을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세상이 끝난 줄만 알았다가 이야기를 들어주는 누군가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찰리는 사랑하는 연인에게 감염사실을 알렸고, 둘은 서로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보듬고 달랬다. 그렇지만 감염 사실이 원치 않는 상황에서 친구들에게 알려지기도 했다. 성소수자 인권활동을 한다는 친구여서 믿고 이야기했다가, 친구들과 어울리는 술자리에서 감염 사실이 알려졌다. 곁을 내어 줄 수 있는 친구가 있기도 하지만, 그것을 약점 삼아 말하는 친구들도 있다. 찰리는 당황하기도 했지만, 감염사실을 말한 친구에게 뺨을 한 때 때리며 술집을 나왔다고 한다. 곁을 기대했던 친구로서는 아무래도 그것이 가장 깔끔한 정리가 아니었을까.

소리와 찰리의 섹스는 감염 전과 이후가 달라졌을까? 특별하게 달라진 것은 없다고 한다. 섹스는 섹스이기에. 초박형 콘돔을 열심히 쓰는 것이 큰 차이라고 한다. 소리는 감염 후 초기에 항문 성교는 피했다고 한다. 섹스를 섹스 자체로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좀 필요했다고 한다. 감염 초기 보건소에서 상담 받을 때 웬만하면 섹스를 하지 말라고 했단다. 콘돔을 끼면 괜찮지만, 웬만하면 피하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소리는 지지자를 만난 뒤 보건소의 상담 보다 더 중요한 정보를 알 수 있었다고 했다. 감염인들과 교감하고, 자신을 지지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면서부터 섹스에 대해 불편했던 마음들이 조금씩 풀어졌다고 한다. 그렇지만 감염 이후에 들었던 가장 속상한 질문이 바로 감염 경로를 묻는 것이다. 누구랑 관계해서 어떻게 걸렸냐고 서슴없이 묻는 질문 말이다. 궁금해야할 필요도 없고, 알아도 말해줄 이유가 없는 질문들이다.

진행자 소주는 과거 감염 초기였을 때의 자신, 10·20년 뒤의 자신들에게 어떤 말을 건네고 싶은지 물었다. 이 질문들은 앞으로 감염 사실을 알게 될 누군가에게 건네고 싶은 말이기도 했고, 앞으로 이들이 꿈꾸는 희망에 대한 질문이기도 했다. 자신을 낙천적 성격이라고 말한 찰리는 너무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완치제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사랑하는 파트너와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소박한 소망을 전했다. 소리는 과거의 그 때가 힘든 순간이지만, 곁에 누군가 사람이 있을 거라고 전했다. 그리고 또 미래에는 자신을 곁에서 다독여 줄 사람이 있기를 바랐다. 꾸준하게 인권활동을 할 수 있도록 너무 힘든 순간에서도 잘 견디며 자신을 잘 관리하는 사람이 되길 원했다. 찰리는 처음 감염 사실을 알게 됐을 때 힘들었겠지만, 충분히 아파하면서 받아들이는 시간 필요하다고, 과거의 소리, 그리고 자신 찰리에게 곧 좀 더 나아질 것이라 응원의 말도 보탰다.

바이러스 미검출 상태에서는 결국 감염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찰리와 소리는 게이 커뮤니티, 일반 대중들에게 당부의 말들을 보탰다. 찰리는 게이 커뮤니티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을 위해서든 모두를 위해서든 공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소리는 감염사실을 본인 동의 없이 말하는 것에 대해 인간의 대한 예의를 지켜야한다고 부탁한다. 동의 없이 말하는 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아는 감수성이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또한 둘은 치료약 복용 등 관리를 잘 하고 있는 감염인과의 섹스가 가장 안전한 섹스라고 말했다. HIV 바이러스 미검출 상태에서는 결국 감염될 수 없다. (HIV Undetectable = Untransmittable) . 콘돔 착용이 HIV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문제만이 아닌 다양한 성병 등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볼 때 콘돔이 본인에게 어떠한 의미인지, HIV 바이러스 감염은 이제 어떠한 문제인지 고민해보길 권했다.

2시간 동안의 토크, 긴장된 순간도 있었다. 공개된 장소에서의 토크임에도 찰리와 소리는 차분하고, 솔직하게 말들을 이어갔다. 그들의 말들이 공기 속 먼지처럼 한 공간에서 유유히 섞이면서 함께 호흡하고 소통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영화<120BPM>의 클럽 장면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섞여있고, 자주 부딪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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