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2018년 05월 16일 16시 44분 KST

나는 임신 17주차에 '임신 중절 수술'을 선택한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기 때문에, 그 어떤 여성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쓴다.

나로선 세 번째 임신이었다. 임신 12주차였다. 나는 배에 바르는 젤리, 내 뱃속에서 꼬물거리는 아기에 대한 한가한 농담과 잡담을 나누겠거니 생각했다. 초음파 기사는 우리에게 초음파 DVD를 맥 용으로 줄지, PC용으로 줄지 묻지 않았다.

기사가 검사를 마친 뒤, 의사가 스캔 결과를 검토한다. 의사가 소식을 전한다. 그 소식을 전하는 기분이 어떨까 나는 생각해본다. 우리의 얼굴과 눈물을 보고, 희망이 검사실 바닥에 떨어져 쏟아지는 걸 본다는 건 어떨까. 그는 우리 아기에게 염색체 이상이 있을 확률이 80%라고 알린다.

우리는 병원 깊숙한 곳의 어두운 사무실로 안내받아 유전학 상담사를 만난다. 앞으로 있을 테스트와 진단 절차 이야기를 듣는다. 다른 (행복한) 예비 부모들이 있는 대기실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도록 뒷문으로 나가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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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집으로 차를 타고 돌아오며 조용히 운다. 집에 와서는 우리 아기가 겪고 있을지 모를 모든 유전질환을 구글로 검색해 본다. 13번 3염색체증, 18번 3염색체증, 21번 3염색체증(다운 증후군), 터너 증후군 등이다. 관련 검색 결과들을 잘 알게 된다.

다시 병원을 찾는다. 아기의 세포를 채취하고 이 괴로운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내 배에 큰 주삿 바늘을 꽂는다.

유전학 상담사가 결과를 알린다. 나는 흐느끼고 만다. 상담사는 내가 우는 것을 모르는 척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내 뱃속의 딸이 비 모자이크형 터너 증후군(non-mosaic Turner Syndrome)에 걸렸다는 걸 알게 된다. 모든 세포에 X 염색체가 두 개가 아닌 하나만 있다는 뜻이다. 태어날 경우 여러 가지 일이 생길 수 있다. 대부분의 여성은 자기의 딸이 터너 증후군에 걸렸다는 걸 모른 채(혹은 딸이라는 것조차 모른 채) 유산한다. 태어나서 아무 증상도 없이 살다가, 임신이 잘 안 될 때야 자신에게 터너 증후군이 있다는 걸 알게 되는 여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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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나는 우리의 작은 딸이 희망을 주는 한 임신 상태를 유지하자고 동의했다. 태어나지도 않은 딸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거는 것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딸의 상태를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클레멘타인이라는 이름을 짓고, ‘타이니’[Tiny, 작다는 뜻]가 적절한 별명일 거라 생각했다.

우리는 해답을 기다리며 몇 주 동안을 걱정하며 지냈다.

터너 증후군이 있는 여성들의 온라인 포럼에 들어갔다. 그들의 미소짓는 얼굴을 바라보고, 모임과 행진 사진들을 클릭했다. 터너 증후군 진단 때문에 임신 중단을 결정한 부모들의 이야기, 자궁에서 아기가 죽어가고 있어 중절 수술을 한 부모들의 이야기를 읽었다.

맞벌이인 우리 가족의 경우, 웅크리고 울며 걱정만 하면 네 식구의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계속 일하러 갔고 두 아이를 돌보았다.

그래서 울고 걱정하는 것은 밤늦게, 혹은 샤워를 하며 했다. 차를 몰고 출근하는 길에. 공포가 너무 심해지면 화장실에서 문을 잠그고.

클레멘타인의 생존 가능성을 알아보려고 우리는 임신 16주차에 태아 초음파 심장진단을 받았다. 심장이 어떻게 발달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병원으로 가는 길에 고속도로 출구 근처에서 차가 막혔다. 나는 고속도로 중앙선을 따라 깡충깡충 뛰어가는 검은 까마귀를 조용히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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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체를 너무 많이 마셔서 검사 전에 급히 소변을 보아야 했다. 방광의 압박이 참기 힘들 지경이라 화장실에 갔다. 그리고는 병원 엘리베이터에서 검사 전에 다시 방광을 채우려고 물을 마구 들이켰다. 검사는 연기해야 했다. 나는 태어나기도 전부터 이 아기를 실망시키고 있다.

검사가 시작된다. 아주 조용하다. 검사실에는 고래, 돌고래, 금붕어, 거북이 등이 그려져 있다. 모두 끔찍할 만치 친절하다. 더 좋은 장비가 있는 다른 방으로 안내한다. 이 방은 원숭이와 치타 그림이 있는 정글 테마 방이다.

평범한 초음파 진단을 할 때의 한가한 잡담은 기대하지 않았다. 잡담은 없었다. 실내는 어둡고 조용하고, 남편은 슈퍼 볼 경기라도 보듯 초음파 모니터를 들여다본다. 이게 남편이 클레멘타인과 보내는 유일한 시간이고, 남편은 단 한 순간도 놓치려 하지 않는다. 남편은 클레멘타인을 기억에 담는다. 나는 화면을 보다가, 시선을 돌린다. 살아있는 클레멘타인이 꼼지락거린다. 나는 클레멘타인에게 ‘제발 우리한테 희망을 달라’고 빌지만, 나 스스로도 믿지는 않는다.

간호사가 검사가 끝났다고 알리자, 나는 화장실로 달려간다. 방광이 터질 듯한 상태로 결과를 듣지 않아도 된다는 게 고맙다. 의사가 들어와 아기의 영상을 살피고,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의학 용어를 써서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의사는 이렇게 말한다.

 

심장은 현재 없는 셈이다

폐가 망가지고 있다

부종이 심각하다

 

20분쯤 후, 의사는 “안타깝지만 더 지켜볼 것이 없다.”고 말한다. 실내를 둘러보다 휴지를 찾아내고, 초음파 간호사에게 나가도 된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를 돌아보며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나는 조금밖에 알아들을 수 없다.

 

피부밑의 체액

폐 안과 주위

폐 발달 불가능

신장 문제

심실 하나가 훨씬 더 작다

종교적 믿음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임신 중절을 권한다

 

그리고 마침내 “이 임신을 계속해서 좋을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소아과 의사로서, ‘아기의 고통을 끝내주라’고 추천하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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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나가고 난 뒤 우리는 어두운 검사실에 앉아 조용히 흐느끼며 천천히 마음을 추스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주차장에 내려가서, 주차비를 내고 집에 간다.

임신 중절 결정은 결정 같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우리는 상처 받았고, 슬펐다. 아기가 서서히 죽어가는 걸 지켜보기엔, 우리는 아기를 너무나 사랑했다. 이토록 가슴 아픈 결정을 내리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있고 그걸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었다.

사흘 뒤 나는 초밥과 맥주를 먹었다.

나흘 뒤 나는 라미나리아를 자궁경관에 넣고 확장했다. 닷새 뒤, 임신 17주차인 나는 임신 중절 수술을 받았다.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내 아기의 죽음을 허락하는 서류에 서명했다.

울지 않으려 애썼다(이 글을 쓰는 지금은 울고 있다). 내 딸을 위해 조심스레 E. E. 커밍스의 시를 써둔 종이를 꼭 쥐었다. “나는 너의 마음을 지니고 다닌다…”

한심한, 땀에 젖은 구겨진 종이였다. 따돌림당하는 고등학생의 메모 같았다. 내가 링거를 맞기 위해 내려놓자 간호사는 종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얼굴이 창백해진, 슬픔에 잠긴 내 다정한 남편은 의료용품 쓰레기통에서 종이를 건져냈다.

남편과 나는 어린이용 의자가 있는 괴상한 옆 방에 앉아 호출을 기다렸다. 의사가 들어왔다. 나는 시를 적은 구겨진 종이를 의사에게 건넸다. “이걸 아기 곁에 놓아둘 수 있을까요?”

간호사가 들어와 내게 “시술 시간입니다.”라고 말했다.

남편에게 인사하고 복도를 걸어 시술실로 들어갔다. 누워서 나는 조용히 울었다.

마취과 의사가 마취 주사를 놓았고,  나는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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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후 젖이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내 아기가 죽기 전의 내가 그립다.

나의 강함이 자랑스럽지만, 내 내면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아무도, 그 누구도, 이걸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내게 선택지가 있었고 임신 중절 수술을 선택할 능력이 있었다는 건 고맙게 생각한다. 지금 고통받는 건 나고, 내 딸이 고통받지 않아도 된다는 게 고맙다.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기 때문에, 그 어떤 여성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쓴다.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들려주는 것이다.

 

* 허프포스트US의 을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