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18일 오전 10시31분12초. 정신없이 셔터를 눌렀습니다. ‘지금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 건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차디찬 카메라는 그렇게 ‘초현실적’으로 따뜻한 장면을 담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사진뉴스팀 백소아입니다. 아스팔트를 출입하고 있습니다. 길 위 여기저기가 출입처라는 뜻입니다. 지난 월요일 눈 내리던 서울역광장에서 찍은 사진이 19일치 <한겨레> 1면에 실려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촬영한 저조차도 믿기 어려웠던 그날 이야기를 가감 없이 전합니다. 앞으로 사진기자를 계속하면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날 오전 저는 서울역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새해 기자회견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대합실에서 텔레비전 화면으로 지켜보는 시민들 모습을 담기 위해서죠. 서울역 2층에서 취재를 마친 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니 밖에 눈이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사진기자의 일상은 비가 내리면 비를 찍고, 날이 더우면 더위를 찍고, 바람이 불면 바람을 찍는 겁니다. 사진기자를 하면서 깨달은 것 한가지는 눈에 보였을 때 일단 찍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금 있다 찍지 뭐’라고 생각하는 순간 중요한 장면을 놓친 적이 한두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광장을 둘러보게 됐습니다. 다른 언론사 사진기자들도 무언가에 홀린 듯 소낙눈을 향해 걷고 있었죠. 그런데 내려도 너무 내리는 눈에 잠깐 에스컬레이터 지붕 밑에 서 있었습니다.
그때 그 모습을 만났습니다. 외투를 벗어 입혀주는 그 순간부터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습니다. 신사는 주머니 속 장갑을 꺼내 주고 또 무언가를 건네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뭔지 잘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옆에 있던 시민들이 마치 중계를 하듯 이야기를 나누어 상황을 파악하게 됐습니다. “잠바를 벗어 주네, 장갑도 줬어. 이야 5만원도 주네.”
망원렌즈를 다 당겨도 잘 보이지 않을 만큼 먼 거리였습니다. 이내 신사는 서울로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쫓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노숙인에게 다가갔습니다.
“이거 잠바, 장갑, 돈 다 저분이 주신 거예요?”
“네.”
그리고 서울로 쪽으로 쫓아갔지만 신사는 사라진 뒤였습니다. 그 순간 어떡하지 싶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선뜻 그런 행동을 했는지, 찍은 사진을 써도 되는지 물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때까지도 제가 무엇을 보고 찍은 건지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카메라를 확인해보니 사진은 딱 27장. 오전 10시31분12초부터 34초간 촬영한 것이었습니다. 보통 한 취재에서 100~200장을 찍는 것에 비하면 턱없이 적었습니다. 그마저 날리는 눈송이에 제대로 핀이 맞은 사진은 몇장 되지 않았습니다.
그날 저녁 다시 서울역을 찾았습니다. 믿기 힘든 일의 팩트체크를 위해서였죠. 사진 한장을 들고 그 노숙인을 찾아 나섰습니다. 사진 속 단서는 노숙인의 바지 하나였습니다. 다행히 평소 노숙인들을 봐온 서울역 경비 관계자 덕분에 서울역 지하도에서 그 노숙인을 만났습니다.
외투를 벗어 준 신사가 혹시 아는 분인지 등 오전 상황에 대한 자세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너무 추워 커피 한잔 사달라’는 부탁을 받은 낯모르는 사람이 베푼 선의에 그도 얼떨떨한 것 같았습니다. 오전에 허둥지둥하느라 보지 못한 것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얇은 수면바지, 겨울옷이라고 할 수 없는 초록색 군복, 얇은 운동화…. 저는 못 본 것을 그 신사는 봤다는 사실에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온라인에 쏟아진 댓글과 반응에 사실 많이 놀랐습니다. 따뜻한 댓글과 격려 메일에 감사했습니다. 한편으로는 혹시나 사진 속 주인공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이 지면을 빌려 전하고 싶습니다. 하얀 눈 속으로 홀연히 사라진 그 시민에게 저와 독자들의 감사한 마음을 담아 따뜻한 커피 한잔 대접하고 싶습니다. 부담스럽지 않으시다면 연락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