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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5월 24일 15시 10분 KST

'원숭이두창이 동성 간 성접촉으로 확산된다'는 보도에 전문가들이 경악하며 '왜곡 보도'라는 소견을 밝혔다

"아직 국내에선 감염자가 나오지 않았지만 국내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CDC / Getty
원숭이두창 바이러스.

유럽·미국·중동 등에서 바이러스성 질환인 ‘원숭이두창(monkeypox)’이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성소수자의 성접촉’을 주요 전파 원인으로 지목한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성소수자 차별과 혐오 조장이라고 비판하며, 밀접 신체접촉으로 누구나 감염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23일 질병관리청과 세계보건기구 등의 말을 종합하면, 이날 기준 원숭이두창은 영국, 포르투갈, 이탈리아, 미국, 호주, 이스라엘 등 14개 나라에서 확인됐다. 원숭이두창은 세계적으로 근절이 선언된 ‘사람 두창(천연두)’과 유사하지만 전염성과 중증도는 낮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발열과 오한, 두통, 수포성 발진 등의 증상이 나타나며 대부분 자연회복된다. 최근 치명률은 3~6% 안팎이다. 아직 국내에선 감염자가 나오지 않았지만 지난 22일 질병관리청은 “국내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검사·진단체계를 구축하고 상황을 주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재 전 세계에서 100여건의 감염이 보고됐는데, 문제는 일부 언론이 ‘동성 간 성관계로 원숭이두창이 확산됐다’고 보도한 데 이어 일부 커뮤니티가 이를 확대·재생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주장은 영국과 포르투갈 등에서 발생한 확진자 중 다수가 성소수자라는 점을 근거로 하고 있다.

CDC/ 신시아 S. 골드스미스
원숭이두창 바이러스는 천연두 바이러스와 같은 계통으로 증상도 비슷해 '천연두의 사촌'이라고 불린다.

대부분은 호흡기-접촉 감염

전문가들은 동성 간 성관계를 원숭이두창 전파의 원인으로 규정하는 것은 사실 왜곡이라고 지적한다. 원숭이두창은 사람의 피부, 호흡기, 점막을 통해 체내로 들어오는데, 바이러스에 감염된 동물, 바이러스에 오염된 물건 등을 통해서도 전파가 이뤄진다. 전문가들은 특히 호흡기로 전염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백순영 가톨릭대 의대 명예교수(미생물학)는 “역학조사 결과 ‘남성 간 성관계로 감염된 케이스가 있다’는 정도이지, 대부분의 경우는 호흡기 감염과 접촉 감염”이라며 “성관계로 인한 감염은 아주 극소수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홍윤철 서울대 의대 교수(예방의학)도 “초기 확진자 중 성소수자가 있다라는 이유로 그런 말이 나오는 것 같다”면서 “호흡기 바이러스이기 때문에 성소수자와 직접 연관성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천연두는 백신으로 박멸된 최초의 바이러스다.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코로나처럼 확산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유엔 에이즈 대책 전담 기구인 유엔에이즈계획(UNAIDS)도 일부 보도가 혐오를 조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엔에이즈계획은 전날 보도자료를 내고 “원숭이두창 관련 언론보도와 논평, 사진에서 성소수자와 아프리카인을 묘사하며 성소수자 혐오와 인종차별적 고정관념을 부추기는 것에 우려를 표한다”며 “세계보건기구(WHO)가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가장 감염 위험이 큰 사람은 감염자와 밀접한 신체접촉을 한 사람들이지만 그것이 남성과 성관계를 갖는 남성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호림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상임활동가는 “‘동성애’라는 키워드를 이용해 이미 존재하는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강화하는 보도는 문제가 있다”며 “만에 하나 위험이 있다고 해도 질병청과 언론은 어떤 예방적 조치가 필요한지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질병관리청은 원숭이 두창 예방 효과가 있는 두창백신 3502만명 분을 비축하고 있다고 밝혔다. 생물테러 대응 등 비상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비축분인데, 정부는 원숭이두창에 약 85%의 예방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겨레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