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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회사를 그만 두기로 결심한 부부가 은퇴 뒤 현실 생활비로 책정한 돈은 250만원이었다

20~30대에 열심히 돈을 모아 자립하는 조기은퇴자를 ‘파이어족’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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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사진 ⓒGetty Creative, 김다현 작가

회사원에서 은퇴해도 너무 큰 스트레스 받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돈벌이는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회사일 말고는 잘하는 것 하나 없는 우리가 돈을 버는 일이란 쉽지 않았다. 문득 고등학교 졸업 이후 가진다는 갭이어(Gap Year)를 은퇴 후 마흔에 보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은퇴 후 쓸 최소한의 생활비를 모은 뒤 은퇴하기로 생각을 바꿨다.

세금과 보험 비용 계산하기

월급을 받으면 세금과 보험 비용은 회사에서 알아서 떼어갔다. 그건 원래 내 돈이 아닌 것만 같았다. 떼어가는 돈이 얼마나 되는지 제대로 확인도 해보지 않았다. 1년에 한번 내는 세금도 한번 나가면 기억 속에서 잊혔다. 은퇴 후 생활비를 계산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나가는 고정지출 비용부터 파악해야 했다.

4대 보험료의 절반은 회사에서 부담한다. 은퇴하면 우리가 전액 부담해야 할 돈이다. 회사에 다니지 않으면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은 더 이상 지출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소득이 없다면 국민연금 역시 납부예외를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만 65살 이후 둘의 국민연금으로 생활비를 충당할 계획이었다. 지역가입자 자격으로 연금을 계속 납부하기로 했다.

국민연금 지역가입자가 납부할 수 있는 최소금액은 지역가입자 중위수의 ‘기준소득월액’을 기준으로 한다. 2020년 4월 ‘기준소득월액’은 100만원이었다. 국민연금은 소득의 9%를 납부하도록 되어 있으니, 최소 납부 연금액은 9만원이 된다. 국민연금 앱에서 예상 노령연금을 계산해보았다. 향후 예상 소득을 입력하면 만 65살 이후의 예상 연금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상 소득을 바꿔가면서 얼마가 적당할지를 논의했다. 고민 끝에 우리는 한달에 10만8000원을 납부하기로 했다. 은퇴하고 10년 정도 더 납부하면 만 65살 이후 생활할 만큼의 연금을 받을 수 있었다.(국민연금공단 누리집 참고)

은퇴 후가 가장 걱정되었던 비용은 ‘지역건강보험료’다. 회사에서 절반을 부담하는 ‘직장건강보험’과 달리 ‘지역건강보험’은 전액 자기 부담이다. 지역가입자의 보험료는 소득과 재산을 참작한 점수로 계산되는데, 소득이 없더라도 집과 차가 있으면 보험료가 올라갈 수 있다. 예상 보험료는 국민건강보험 사이트에서 모의 계산할 수 있었다. 우리는 집과 차의 예상 금액을 바꿔가면서 보험료를 계산해보았다. 지금 소유하고 있는 차는 10년 정도 되어 보험료 면제 대상이었다. 하지만 차가 오래되었으니 은퇴 후 한번쯤은 차를 바꾸게 될 것이다.

 

“1600㏄ 이하의 국산차는 과세되지 않네.”

“그럼 나중에 소형차로 바꾸면 되겠다!”

“당신, 레니게이드가 이쁘다고 하지 않았어?”

“갖고 싶은 건 아니야. 레니게이드는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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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사진 ⓒ지프코리아

궁금해서 모의 계산을 해보니 한달에 2만원쯤 보험료가 추가된다. 1년이면 24만원, 10년이면 240만원…. 생각에 따라 큰 비용이 아닐 수 있지만 은퇴 이후는 다르다. 차량 교체 시점에는 과세되지 않는 소형차를 사면 될 것 같다.

이 고민을 하던 시기가 2017년이다. 우리는 집을 사는 건 어떨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집을 사면 건강보험료도 올라가고, 재산세도 내야 한다. 우리가 더 내야 하는 세금보다 집값이 올라야 의미가 있다. 하루에도 몇번씩 집을 사는 것에 대한 서로의 생각이 바뀌고 있었다. 그때쯤 2018년, 2019년이 되면 집값이 폭락할 거라는 얘기가 떠돌고 있었다. 남편은 전세기간도 아직 남았고, 집값 폭락설도 있으니 천천히 고민하자고 한다. 재산세와 건강보험료는 집을 사느냐 전세로 가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 같았다.

자동차세와 자동차보험은 지금 자동차 기준으로 우선 계산했다. 주민세는 비용이 크지 않고 크게 변동도 없을 것이다. 설날과 추석 제사 비용과 양가 부모님 생신 비용도 고정지출로 추가했다. 아파트 관리비, 가스비도 지금 지출 금액의 평균으로 계산해 넣었다. 은퇴하면 핸드폰도 가장 싼 요금제를 쓰기로 했다. 인터넷은 필요했지만, 아이피티브이(IPTV)를 유지할지는 고민되었다.

 

“우리 텔레비전은 잘 안 보잖아.”

“영화나 드라마 다시보기 하는 건 넷플릭스로 충분하지 않을까?”

“축구나 야구는 라이브로 봐야지.”

“아 그러네….”

 

스포츠 방송 때문에 아이피티브이 비용도 일단 유지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매달 양가에 드리는 부모님 용돈도 고정지출 비용으로 추가했다. 고정지출을 계산하니 대략 월 140만원 정도 된다. 생각보다 많은 돈이다. 아무것도 안 하고 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이 월 140만원이나 된다. 월 변동지출은 우리가 아끼면 줄일 수 있는 돈이다. 최소한의 월 변동지출을 계산하면, 우리가 얼마를 모아야 은퇴가 가능할지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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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사진 ⓒ김다현 작가

결혼 이후 돈 관리는 내 담당이었다. 난 투명하게 가계 운영을 하겠다 선언하고 생활비 지출 내역을 구글 스프레드시트에 작성해서 남편에게 공유했다. 하지만 남편은 우리가 한달에 돈을 얼마나 쓰고 있는지, 내가 사적으로 돈을 낭비하는 건 아닌지 별 관심이 없었다. 남편은 오직 “이번달에 하이패스 요금 얼마 나왔으니 이체해줘”, “우유랑 식빵 없길래 내가 사놨어. 얼마 보내줘” 등 생활비로 지출되어야 할 비용을 본인이 썼을 때 제대로 돌려받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난 간혹 생활비로 하기로 했던 옷이나 화장품을 내 용돈으로 살 때도 있었다. 그런 얘기를 하면 남편은 “너도 그런 건 철저하게 생활비로 해”라며 가계의 재정 상태보다는 각자의 용돈 관리에 더 관심을 보였다.

은퇴 후 필요 예산을 정리하려니 그동안 열심히 작성한 가계부가 드디어 빛을 발했다. 가계부에 기록한 지출 내역을 살펴보며 월 변동지출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맞벌이라 한달 수입이 적지는 않았다. 그동안 우리는 물건을 살 때 가격은 보지도 않고 “사고 싶으면 사” 하며 살았다. 간혹 마음에 드는 물건을 발견하면 결제를 할 때서야 이렇게 비싼 거였나 하고 후회할 때도 있었다. 회사일로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충동구매 하는 일도 잦았다. 식사도 거의 외식을 했다. “몸보신해야 하니까 소고기 먹자”, “오늘은 월급날이니 소고기 먹어야지”, “힘든 하루였으니 소고기 먹자”라며 그 비싼 걸 자주도 먹었다.

물욕이 없는 편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가계부를 보니 아니었다. 우린 생각보다 한달에 많은 돈을 지출하고 있었다. 월별로 지출 금액의 편차도 심했다. 회사에서 유독 스트레스를 받았던 달은 지출이 많았다. 위로하는 마음으로 이 정도는 써도 괜찮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새삼 스트레스성 충동구매의 위험성을 깨달았다. 가계부를 쓰기만 했지, 돌아보며 반성하는 시간은 가지지 않았다. 이제야 깨달았다. 우리는 2인 가정치고 과소비하고 있었다. 한가지 다행이다 싶은 건 불필요한 쇼핑을 했을 때를 제외하고 보면, 지출 금액이 많지 않았다. 지출이 적었던 달을 기준으로 계획을 잡으면 될 것 같다.

가계부 세부 내역을 보면서 은퇴 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만 남겼다. 그렇게 계산한 월 변동지출 내역에 고정지출 비용을 더했다. 항목별로 정리한 생활비 계획을 보면서 더 줄이거나 늘릴 예산이 없는지 남편과 살펴보기로 했다.

‘은퇴 후 생활비 계획’을 보고 남편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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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사진 ⓒNora Carol Photography via Getty Images

“한달 용돈이 10만원이라고? 너무한 거 아니야?”

“지금 용돈도 거의 안 쓰고 모으고 있잖아. 충분할 거야.”

 

당시 우리가 쓰는 용돈은 각자 50만원이었다. 하지만 생활비에 포함되는 것이 많아서 둘 다 50만원을 채 쓰지 못하고 조금씩 모으고 있었던 것이다. 또 결혼 전부터 부모님에게 드리는 용돈이 있었다. 월급을 받을 때는 부담되지 않는 금액이었다. 하지만 은퇴 후 예산을 계산해보니 꽤 큰 돈이었다.

 

“은퇴하면 부모님 용돈은 안 드려도 되지 않을까?”

“에이, 그건 아니지. 일찍 은퇴하는 것도 죄송스러운데.”

 

남편의 얘기에 부담되지만 포함하기로 했다. 남편은 철없어 보이다가도 어른 같기도 하고 그렇다. 이렇게 최종 정리한 한달 생활비는 250만원이었다.

만 55살부터는 ‘개인연금+퇴직연금’을 받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는 둘 다 개인연금을 가지고 있었고, 퇴직금도 연금으로 받기로 했다. 남편과 나의 ‘개인연금+퇴직연금’을 더하니 연금만으로 어느 정도 생활이 가능했다. 국민연금 역시 은퇴 후 소액 납부를 계속하면 만 65살부터는 둘의 연금만으로 생활이 가능한 것을 확인했다. 은퇴 후 남편은 9년, 내 경우엔 15년이 지나면 연금을 받기 시작한다. 연금을 받기 전까지 생활할 돈을 마련하면 마흔에 은퇴할 수 있을 것이다.

은퇴 목표까지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우리가 모을 수 있는 돈을 계산했다. 은퇴 후 생활비가 풍족하지는 않아도, 연금을 받기 전까지 쓸 돈은 만들 수 있었다. 연금이 있어 다행이다 싶었다. 연금이 없었다면 우리는 은퇴를 위해 더 큰 돈을 모아야 했다. 연금 덕분에 우리의 은퇴 준비가 좀 더 수월해졌다. 은퇴 자금은 한 20억원쯤 필요한 거 아닐까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하지만 계산해보니 낭비만 하지 않으면 생활하는 데는 그리 큰 돈이 필요하지 않았다.

마흔에 갭이어를 가져도 괜찮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일을 대비하기 위한 여유자금이 필요하고, 물가인상률도 고려해야 한다. 단순히 월급을 모으기만 해서는 여유자금까지 마련할 수는 없었다. 우리에게는 은퇴 자금을 좀 더 마련하기 위한 투자가 필요했다.

▶20~30대에 열심히 돈을 모아 자립하는 조기은퇴자를 ‘파이어족’(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 경제적 독립, 조기은퇴)이라고 한다. 극단적인 절약과 재테크로 악착같이 돈을 모은 초기 파이어족들과 달리 최근엔 현실적인 돈 모으기와 생활비 계산으로 조기은퇴를 실천하는 것이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아이티 기업에서 근무하다가 조기은퇴한 부부의 경험담을 싣는다.

 

김다현 작가 huffkore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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