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총선거
2020년 04월 16일 04시 34분 KST

김민석이 박용찬을 제치고 18년 만에 국회에 재입성했다

30대에 재선했지만 서울시장 낙선 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뉴스1
4·15 총선 서울 영등포구을에 출사표를 던진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3월 30일 서울 영등포구 신길역 앞에서 출근 인사를 하고 있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서울 영등포을’에서 박용찬 미래통합당 후보와 이정현 무소속 후보 등을 제치고 당선됐다. 2002년 서울시장 출마로 국회를 떠난 이후 18년 만에 재입성한 것이다.

1964년 서울 출신인 김 후보는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했으며,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전학련(전국학생연합) 의장을 지내면서 서울 미문화원 점거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는 등 80년대 학생운동을 이끌었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DJ)과의 인연도 이때부터 시작됐다.

김 후보는 1990년, 당시 ‘3당 합당’ 반대파로 구성된 이른바 ‘꼬마 민주당‘에 입당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당시 그의 나이 26세였다. 이후 ‘꼬마 민주당‘이 ‘신민당’과 합당하면서 DJ와도 재회할 수 있었다.

대학 시절부터 김 후보를 지켜봤던 DJ는 ’28살‘의 김민석을 1992년 제14대 총선에서 서울 영등포을에 출마시켰다. ‘김대중 키즈’라는 별명도 이때 생겼다.

첫 도전에선 고배를 마셨지만, 이후 제15·16대 총선에서는 같은 지역구에서 내리 승리했다. 36살의 나이에 ‘재선’ 타이틀을 달게 된 것이다. 2000년에는 세계경제포럼이 선정한 미래를 이끌어갈 ‘세계 지도자 100인’에 선정됐으며, 한때 당내 차기 대권주자 2위까지 올랐다.

하지만 상승세는 여기까지였다. ’30대 기수론’을 내걸고 의원직을 사퇴하면서 2002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지만 이명박 당시 후보에게 10%p 넘게 패했다. 이후 제16대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을 탈당해 정몽준 캠프로 이적하면서 민주당 지지자들도 그에게 등을 돌렸다.

김 후보는 더불어민주당으로 복당한 뒤 한 인터뷰를 통해 노무현 후보와의 단일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정몽준 캠프로 갔다고 해명했다. 후보 단일화 후 복당하겠다는 성명도 냈다고 했다.

이때부터 그의 정치행보는 모진 풍파의 연속이었다. 제17대 총선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출마했지만 3등으로 패했고, 2010년 지방선거에선 부산시장 선거에 도전했으나 경선 과정에서 고배를 마셨다.

이후 2014년부터 ‘원외 민주당‘을 이끌며 정치생활을 이어가던 김 후보는 2016년 ‘원외 민주당’이 더불어민주당에 흡수되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추미애 대표의 당대표 특보단장을 거쳐 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의 원장을 맡기도 했다.

제21대 총선을 앞두고 20년 만에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서울 영등포을 재도전을 선언한 김 후보는 현역인 신경민 의원과의 치열한 경선을 거친 끝에 다시 기회를 얻었고, 결국 국회 재입성에 성공했다.

Δ경기 가평(1964년생) Δ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Δ하버드대학교 케네디스쿨 행정학 석사 Δ서울대 총학생회장 Δ새천년민주당 총재비서실장 Δ통합민주당 최고위원 Δ원외민주당 대표 Δ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특보단장 Δ제19대 문재인 대통령후보 종합상황본부장 Δ민주연구원 원장 Δ더불어민주당 포용국가비전위장 Δ더불어민주당 일본경제침략대책위원회 부위원장 Δ제15, 16대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