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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쿠데타: 왜 지금 일어났나? 앞으로는 어떻게 되나?

터키는 전례없는 국가 안보 위기를 맞고 있다. 에르도안에 대한 금요일의 쿠데타 시도는 기나긴 정치적, 사회적 불안의 최근 사례에 불과하다. 쿠르디스탄 노동자당(PKK)에 대한 터키의 전쟁은 남동쪽에서 진행 중이며, IS는 터키 전역에서 폭탄 테러를 벌이고 있다. 에르도안은 이제까지는 전략적 동맹을 임시로 맺어가며 권력을 유지해 왔지만, 그런 식으로 이 정도 규모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헌법을 바꾸고 대통령 책임제를 확립해서 권력을 더 끌어 모으려는 에르도안의 계획 역시 성공할 수 없다.

ⓒASSOCIATED PRESS

이스탄불 - 터키는 70년 전인 1946년에 다당제 민주주의로 넘어갔다. 그 이후 터키 정치는 몇 번이고 군사 쿠데타의 망령에 시달려 왔다. 그동안 정식 쿠데타는 4번, 실패한 쿠데타 시도는 3번, 그보다 작은 계획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금요일 저녁 터키 군 안의 한 파벌이 21세기 들어 최초의 대규모 쿠데타를 시도했다.

금요일 밤은 혼돈으로 소용돌이쳤다. 쿠데타 공모자들은 이스탄불의 공항과 다리, CNN 터키와 터키의 국영 방송 TRT 사무실을 점거했다. 참모총장이 인질로 잡혔으며, 전투기와 헬리콥터로 앙카라의 의회를 폭격하기까지 했다. 쿠데타는 결국 진압되었으나, 민간인과 군인을 포함해 최소 290명 이상이 사망했다. 6천 명 이상의 군인들이 유치되고서야 사태가 진정되었다. 총 358명의 장군 중 70명, 즉 5명 중 1명이 유치 혹은 체포되었으며, 법관 수천 명이 해임되었다.

지휘 계통에서 벗어나 움직인 쿠데타 가담자들은 1960년대에 권력을 차지하려 했던 터키 군내 파벌과 비슷하게 행동했다. 터키의 현대사를 보면, 실패한 이번 쿠데타로 군내 서열이 크게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이미 위태로운 터키의 법치가 더욱 망가질 수도 있다. 여당 정의개발당과 야당들은 모두 이 점을 인식하고 있다. 소원한 사이였던 이들은 민주주의를 지지하고 쿠데타를 규탄한다는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터키의 수상 비날리 일디림이 수도 앙카라에서 열린 쿠데타 희생자의 장례식에서 기도하고 있다

쿠데타 가담자들의 무모한 모 아니면 도 식의 전략은 ('제정신이 아니'라고 한 우밋 둔다르 장군의 말은 적절했다) 계획이 부족했으며 설명이 필요할 정도의 절박함을 보여주었다. 아마도 그들은 저명한 수니파 무슬림 집단인 귈렌 운동에 관련된 장교와 장군들이 주말 중에 체포될 예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깨닫고 카미카제와도 같은 쿠데타를 감행한 것으로 보인다. 계획도 부족했고, 타이밍도 나빴으며 전략적 실수도 있었다. 에르도안은 자신과 동료들에 대한 2013년의 부패 수사는 경찰과 사법부 내의 귈렌주의자들에 의한 '쿠데타' 시도였다고 자주 말했다. 그 이후 경찰, 검찰, 판사 수백 명이 체포되고 해임되었다. 벌써 몇 달 째 터키 언론에서는 군내의 귈렌주의자들이 다음 차례라고 암시해왔다.

1980년대에 귈렌 운동은 교육, 은행, 매체 등의 부문에서 특히 눈에 띄었다. 90년대에는 경찰, 사법부, 군대, 정보부에서 강한 조직력을 얻었다. 표면상으로는 시민 사회 단체였지만, 국가가 아닌 귈렌 운동의 지도자인 이슬람학자 페툴라 귈렌에게 가장 충성하는 세력이 안보 및 정보 부서 안에 생겨났다. 귈렌은 1999년부터 미국에 살고 있다. 좌파와 세속주의자들은 귈렌 운동이 터키의 세속주의 체제를 전복하려 한다며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수십 년 동안 주장해 왔다. 귈렌이 재판을 두려워해 터키에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많다.

에르도안은 '정부 및 사회 각계의 귈렌주의자들의 고무와 조종을 받은' 이들이 쿠데타를 시도했다고 주장한다. '공유가치연합(AFSV)'이라는 귈렌 관련 조직은 쿠데타 시도 가담을 부인했다. 군사 전문가들은 체포 및 구류된 고위 장교들 중 귈렌주의자들이 상당히 많긴 하지만, 기회주의적으로 행동한 군인 등 귈렌주의자가 아닌 세력도 쿠데타에 일부 동참했다고 밝혔다. 에르도안은 군대 및 국립 기관에 뿌리내린 귈렌주의자들을 '씻어낼 것'이라고 선포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에 살고 있는 페툴라 귈렌의 2013년 모습

2013년까지는, 즉 정의 개발당이 집권한 14년 동안 거의 내내 귈렌주의자들은 에르도안의 가장 가까운 동맹이었다. 2008년부터 귈렌주의자들은 에르도안의 도움 아래 반정부적이며 세속주의적인 것으로 알려진 장교와 장군들을 수백 명 체포했다. '에르게네콘'과 '발료즈(대형 망치)'라는 이름이 붙은 이 쿠데타 시도 혐의 건에서 이들은 이스탄불의 모스크에 폭탄을 설치하고 혼란을 일으키려 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에르도안은 그 이후 옛 동료들이 자신을 '호도하고 속였다'고 주장해 오고 있다. 그러나 2013년 무렵부터 귈렌주의자들이 너무 강력해지고 더 이상 쓸모가 없어졌다는 게 더 간단하고 그럴싸한 설명일 것이다.

2013년의 부패 수사가 귈렌주의자들과 에르도안의 관계를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악화시켰다면, 금요일의 쿠데타 시도는 귈렌을 '제1의 공적'으로 만들었다. 터키는 현재 귈렌의 본국 송환을 정식으로 준비하고 있다. 술레이만 소일루 터키 노동부 장관은 미국이 쿠데타의 배후라는 말까지 하며 페툴라 귈렌을 송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터키가 증거를 제시할 경우 미국은 무엇이든 하겠다고 밝혔다. 터키가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미국이 귈렌 송환을 거부할 경우 두 국가는 앞으로 몇 달 동안 심각한 갈등을 겪을 수 있다. 그러나 이에 관한 가장 큰 문제는 귈렌 운동은 회원 명부가 있는 공식 단체가 아니기 때문에, 누가 귈렌주의자인지 아는 게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아무나 지목해 귈렌주의자라고 몰 수는 있지만, 그걸 입증하는 건 또다른 문제다.

한편 터키는 전례없는 국가 안보 위기를 맞고 있다. 에르도안에 대한 금요일의 쿠데타 시도는 기나긴 정치적, 사회적 불안의 최근 사례에 불과하다. 쿠르디스탄 노동자당(PKK)에 대한 터키의 전쟁은 남동쪽에서 진행 중이며, IS는 터키 전역에서 폭탄 테러를 벌이고 있다. 에르도안은 이제까지는 전략적 동맹을 임시로 맺어가며 권력을 유지해 왔지만, 그런 식으로 이 정도 규모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헌법을 바꾸고 대통령 책임제를 확립해서 권력을 더 끌어 모으려는 에르도안의 계획 역시 성공할 수 없다. 잠든 터키의 민주주의를 깨우는 유일한 방법은 법치의 보편적 원칙, 언론과 개인의 자유를 다시 소중히 하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아무리 요원해 보인다 해도 말이다.

* 이 글은 허핑턴포스트 US에 게재된 글 Turkey's Kamikaze Coup Attempt: Why Now and What Next?을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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