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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의 교훈 : 디폴트가 그리스의 '끝'은 아닐 수도 있다

부채가 지속 불가능하면 새 출발을 해야 한다. 이것은 기본적이고 널리 알려진 원칙이다. 지금까지는 트로이카는 그리스에게 이런 가능성을 배제해왔다. 그리고 긴축정책을 펼치며 새 출발을 할 수는 없다.

ⓒARIS MESSINIS via Getty Images

5년 전 그리스의 위기가 시작되었을 때, 유럽은 도움의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리스가 원했을 도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인간성이, 유럽의 연대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그런 도움을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최초의 제안은 독일과 다른 '구조자'들이 자본 비용보다 훨씬 더 높은 금리를 매겨 그리스의 고통에서 이익을 얻는 안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그리스에 돈을 빌려주며 거시정책과 미시정책을 바꾸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이런 조건부 융자는 IMF와 세계은행의 표준 관행이었다. 이런 조건을 제시할 때 보통 그들은 해당 국가의 경제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다. 요구 조건에 정치적 요소가 꽤 들어가는 경우도 잦다. 신식민주의의 요소가 있을 때도 있다. 유럽의 백인들이 예전 식민지들에게 다시 한 번 이래라 저래라 하고 있는 것이다. 흔한 경우, 정책들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서구 전문가들의 예측과 실제 일어나는 일 사이에는 커다란 불일치가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의 유로존 '파트너'들이라면 좀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은 그리스에게도 전혀 다를 바 없이 간섭적인 요구를 했고, 결함이 많은 정책과 모델들이 그대로 사용되었다. 트로이카가 예측했던 것과 실제 일어난 일의 차이는 굉장히 컸다. 그건 그리스가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이행했기 때문이었고, 모델들에는 결함이 정말, 정말 많았다.

몇 년 간 그리스를 비방하고 긴축 정책을 요구해 재앙에 가까운 경제 침체를 가져온 트로이카는 마침내 그리스를 디폴트 직전까지 몰아갔다.

이 상황에는 2001년 아르헨티나의 디폴트와 중요한 유사점들이 있다. 그리고 차이점도 있다. 두 국가 모두 긴축 정책의 결과 경기침체가 불황으로 이어졌으며, 부채는 더욱 지속 불가능해졌다. 두 경우 모두 지원에 대한 조건으로 일정한 정책들이 요구됐다. 두 나라 모두 환율이 경직되어 있어 불황 중 통화팽창 정책을 펼치는 것이 불가능했다. 두 경우 모두 IMF는 요구한 정책 실행의 결과를 예측하는데 있어 놀랄 만큼 결함이 많았다. 실업과 빈곤이 치솟았고, GDP는 곤두박질쳤다. 심지어 GDP 감소율과 실업률 증가 규모마저 굉장히 비슷하다.

아르헨티나에서는 특히 청년 실업률이 치솟았고 몇 년 동안 높은 수치에 머물렀다. 기회가 없으니 동기 부여가 사라졌고, 수백만 젊은이의 재능이 엄청나게 낭비되었다. 그리스의 청년 실업률은 50% 정도이고, 비슷한 이야기가 진행 중이다.

디폴트는 힘들다. 하지만 더 힘든 것이 긴축이다. 그리스에게 있어 좋은 소식은 아르헨티나가 보여주었듯이 부채와 디폴트가 끝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리스의 디폴트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우리가 과거의 이런 일을 통해 진작 배웠어야 했을 국가채무 위기 관리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준다. 첫째, 경제 회복이 없다면 채무 상환 능력의 개선도 없다는 것이다. 동시에 부채 지속성을 위한 재조정이 없이는 경제 회복도 없다.

아르헨티나와 그리스 모두 부채 지속 능력을 복구하려면 심도있는 국가 채무 재구성이 필요했다. '좋은' 채무 재구성, 국제 신용 시장에 접근할 수 있고 경제 회복에 도움이 되는 시기적절하고 충분히 심도있는 채무 재구성을 완료한다는 것은 두 나라 모두 비현실적이었다. 두 국가의 잘못은 아니었다. 교섭이 진행되는 프레임에 부족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두 경우 모두, 채권자 집단은 '구조조정'을 통해 지속 가능성을 다시 얻을 수 있는 척 했다. 강한 압박 아래, 그들에게 떠넘긴 프로그램은 수용되고 시행되었다. 그러나 효과는 없었다. '구제금융' 자금 - 거의 자금을 제공하는 채권자들에게 진 부채를 갚는데 사용된 - 과 조정(그리고 더 많은 조정을 하겠다는 약속)을 맞바꾸며 두 나라의 경제는 점점 더 약해졌다. 아르헨티나의 경우, 몇 년 동안 고통을 겪은 뒤 사람들은 거리로 나섰다.

예금 인출 사태가 벌어져 예금을 일부 동결하는 결과가 일어났고, 아르헨티나의 경우 이로 인해 완전히 은행 공황이 벌어졌다. 이어서 외화로 표시된 예금액이 국내 통화로 전환되었고, 그에 따라 국내 부채의 재구성이 이루어졌다. 소규모 국내 예금자들이 큰 손해를 보았다. 그리스에서는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아직 더 지켜보아야 한다.

채무계약은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자발적 교환이다. 불확실성의 맥락 안에서 이루어진다. 채권자가 일정 금액을 미래에 상환하겠다고 약속하면, 그 약속은 채무자의 상환 능력에 달려 있다는 걸 모두가 이해한다. 리스크가 있기 때문에 채권자는 리스크가 없을 때에 비해 더 큰 보상(더 높은 금리)를 요구한다.

부채 재구성은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에 있어 필요한 부분이다. 이제까지 그런 일은 수백 번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것이다. 어떤 식으로 해결되느냐가 피해의 크기를 정한다. 불황일 때 긴축정책을 요구하는 것과 같이 부채 위기를 잘못 관리하면 - 불황일 때 긴축 정책을 펴면 불황이 더 심해질 뿐이라는 이론과 경험적 증거에도 불구하고 - 더 큰 손실과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다.

긴급 구제의 이득을 보는 측(그리스의 경우 독일과 프랑스 은행들처럼)은 보통 채무 재구성을 피해야 할 이유로 모럴 해저드를 꼽는다. 그들은 채무 재구성은 역 인센티브를 낳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채무자들도 상환하지 않음으로써 차입을 '남용'하려 할 거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모럴 해저드 논쟁은 동화 같은 이야기다. 아르헨티나와 그리스는 디폴트 시점까지 이미 부채 문제 때문에 굉장히 비싼 대가를 치렀다. 이 세상의 어떤 국가도 같은 길을 따르고 싶어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스의 경험은 채무 재구성에서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준다. 2012년에 채무를 '재구성'했지만, 잘못 했다. 경제 회복이 될 만큼 충분히 심도있지 않았을 뿐 아니라, 채무의 구성 요소도 바꾸었다. 채권자가 민간 투자자들에서 기관 투자자로 바뀌어서, 더 이상의 재구성이 더 어려워졌다.

그리스는 아르헨티나가 2001년에 겪었던 것보다 어느 정도 더 복잡한 상황에 처해 있다. 아르헨티나의 디폴트는 상당한 통화 평가절하를 동반했기 때문에 국가 경쟁력이 높아졌고, 채무 재구성도 함께 이루어져 지속되는 경제 회복 조건이 갖춰졌다. 그리스 경우, 디폴트와 그렉시트는 국내 통화를 다시 도입해야 가능하다. 위기를 겪는 와중에 새 통화를 만드는 것은 기존의 통화를 평가절하하는 것과는 다르다. 불확실성이 한 겹 더 있기 때문에 트로이카가 치프라스 정권을 더 강하게 압박할 수 있었다.

부채가 지속 불가능하면 새 출발을 해야 한다. 이것은 기본적이고 널리 알려진 원칙이다. 지금까지는 트로이카는 그리스에게 이런 가능성을 배제해왔다. 그리고 긴축정책을 펼치며 새 출발을 할 수는 없다.

이번 일요일에 그리스 시민들은 두 가지 대안을 검토할 것이다. 끝없는 긴축정책과 불황이냐, 엄청난 불확실성을 안고 자신들의 운명을 직접 결정하느냐. 둘 다 좋은 옵션은 아니다. 둘 다 더 큰 사회 혼란을 가져올 수도 있다. 하지만 둘 중 한 가지에는 희망이 조금 있는데, 다른 한 가지에는 없다.

* 이 글은 허핑턴포스트US에 게재된 'Argentina Shows Greece There May Be Life After Default'(영어)를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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