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호갱이된 흙수저 | 가격차별의 경제학

얼마전 스웨덴 가구업체 이케아는 국내 소비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었습니다. 일부 가구를 해외보다 국내에서 비싼 값에 팔았기 때문입니다. 국내의 많은 소비자들이 "한국 소비자를 무시하는 것이다", "우리만 호갱이냐"고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스타벅스 커피, 노스페이스 점퍼, 고급 유모차 등에 대해서도 비슷한 불만이 항상 제기되고 있습니다. 한국인 차별일까요. 가격차별일까요.

  • 김재수
  • 입력 2016.01.04 10:20
  • 수정 2017.01.04 14:12
ⓒgettyimageskorea

미국에서의 차량 구매 가격은 딜러와 소비자 사이의 협상을 통해 결정됩니다. 같은 차량을 같은 판매장, 같은 판매원에게 구입한다 해도, 소비자마다 다른 가격을 지불합니다. 손님이 매장을 들어서는 순간, 자동차 판매원은 곁눈질을 통해 손님이 타고온 차량을 확인합니다. 손님이 입고 있는 옷을 살피고,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중에 직업을 묻고, 사는 곳을 묻습니다. 자동차 판매원은 이러한 정보를 이용해서, 소비자가 얼마의 가격이면 구매할지 직관적으로 파악합니다.

‪인종차별, 장애인차별, 가격차별‬

경제학자 에이러스와 시즐먼은 38명의 가짜 소비자들을 고용하여, 시카고 지역 153개 자동차 매장에 보냈습니다. 이들은 30살 전후의 대학졸업자입니다. 거의 비슷한 종류의 차를 몰고 매장을 방문합니다. 자동차 판매원이 이런 저런 질문을 하면, 미리 교육받은 대로 비슷한 대답을 합니다. 즉, 가짜 소비자들은 비슷한 경제적 계층에 속해 있습니다. 그렇다면 백인과 흑인들은 판매원으로부터 비슷한 가격을 제시 받았을까요. 만약, 다른 가격이라면, 어느 그룹이 얼마나 더 높은 가격을 제시받았을까요.

경제학자 그니지, 리스트, 프라이스는 가짜 소비자들을 시카고 지역의 자동차 정비소로 보냈습니다. 절반의 사람들은 휠체어를 탄 가짜 장애인입니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은 같은 차를 몰고 36개의 정비소를 방문했습니다. 장애인은 힙겹게 차에서 내려, 휠체어를 타고 정비소로 들어 옵니다. 정비사는 장애인의 처치를 안타깝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십분, 이십분 정도 차량을 점검한 후, 장애인 손님에게 차량의 문제를 설명합니다. 이제 수리비를 제시합니다. 장애인에게 비장애인보다 더 높은 수리비를 요구할까요, 낮은 수리비를 요구할까요.

다시 자동차 매장입니다. 자동차 판매원들은 백인 남성보다 흑인 남성에게 평균 $935 정도 높은 가격을 제시합니다. 자동차 판매원들은 인종차별을 하는 것일까요. 연구자들은 판매원들이 손님과 얼마의 시간을 보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만약 가격차이가 흑인에 대한 적의나 편견에서 비롯되었다면, 흑인 손님과 짧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동차 판매원은 흑인 손님과 오히려 더 긴 시간을 보냈습니다. 백인 판매원과 흑인 판매원 사이의 차이도 살펴보았습니다. 흑인 판매원은 흑인 손님에게 다를바 없이 높은 가격을 제시했습니다. 결국 연구자들은 가격차이가 인종차별이 아니라 가격차별이라고 주장합니다. 자동차 판매원들은 흑인들이 가격협상을 잘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정비소를 방문한 장애인은 무려 30% 정도 높은 수리비를 내라고 요구받습니다. 자동차 정비사들은 감정이 메마른 사람들일까요. 왜 약자에게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하고, 장애인을 차별하는 것입니까. 정비사들은 합리적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있는 장애인은 값싼 가격을 찾아 또 다른 정비소를 방문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장애인이 정비소를 들어서면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벌써 몇 군데 다녀오는 중인데요." 이 말 한마디면,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똑같은 수리비를 제시받습니다. 장애인 차별이라기 보다 가격차별이라는 증거입니다.

왜 호갱이 되는가‬

얼마전 스웨덴 가구업체 이케아는 국내 소비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었습니다. 일부 가구를 해외보다 국내에서 비싼 값에 팔았기 때문입니다. 신문보도에 따르면, 조사 대상 126개 제품 중, 100개가 약 15-20% 정도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국내의 많은 소비자들이 "한국 소비자를 무시하는 것이다", "우리만 호갱이냐"고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스타벅스 커피, 노스페이스 점퍼, 고급 유모차 등에 대해서도 비슷한 불만이 항상 제기되고 있습니다. 한국인 차별일까요. 가격차별일까요.

소비자들의 불만 제기는 자연스럽지만, 냉정한 경제학자들의 질문은 다릅니다. 왜 한국인들이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하려고 하는가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호갱 논란이 있는 제품들이 지위재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상품의 가치가 본래의 기능에만 달려 있지 않고, 상품 소비를 자랑하는 것에도 달려 있습니다. 노스웨스턴 경영대학원 교수 럭커와 갤린스키는 사회 계층에 대한 인식이 제품에 대한 가격 지불의사에 영향을 미치는지 실험했습니다. 낮은 계층에 속했던 경험을 떠올리면, 소비자들은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겠다고 대답합니다. 같은 제품을 기능 중심으로 광고할 때보다 상위계층의 이미지 중심으로 광고할 때, 낮은 계층이라고 인식한 소비자들의 지불의사는 올라갑니다.

남보다 높은 가격을 지불하면 화가 납니다. 하지만 이것은 호갱이 된 증상이지 원인이 아닙니다. 비유하자면, 누군가에게 사기를 당했을 때, 사기친 사람에게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어려움을 토로하는 가족에게 화를 내는 것입니다. 사회가 금수저와 흙수저로 양극화될 때, 흙수저들은 예전이라면 사지 않을 것을 이제 비싼 돈을 내고 사려고 합니다. 기업들은 흙수저들에게 금칠이라도 약간 해야하지 않겠냐고 광고를 합니다. 흙수저들이 호갱이 된 이유입니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김재수 #경제학 #가격차별 #호갱 #금수저 #흙수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