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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18일 09시 16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1월 18일 14시 12분 KST

영어 회화 교습 '광풍'에 감춰진 허점

외국인을 만나 "오늘 날씨가 좋습니다. 화장실은 저 쪽에 있습니다. 이 셔츠는 값이 얼마입니까?" 등등의 대화를 영어로 나눌 수 있다면 물론 좋은 일이지요. 그러나 외국인들과 그런 대화나 하자고 우리가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뿌리고 개인별로 1만 5천 시간 이상을 영어 공부에 퍼부은 것이라면, 그건 단순한 손실이 아니라 교육계 지도자들의 무책임, 무감각, 무대책, 그리고 대다수 사교육 업자들의 상혼이 함께 뭉쳐서 일으킨 총체적 재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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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앞서 발표한 "연례행사가 된 SAT 부정행위, 무엇이 문제인가"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영어교육의 최종목표는 500 단어 수준의 단문 대화가 아니고, 인터넷에 넘쳐나는 영문 정보를 정확히 소화하고 다양한 환경에서 자신의 의견을 영어로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사진: Depositphotos.com

"경제전쟁" 상황에서 영어의 역할

정규교육 과정에 영어가 포함되어 있어서 국민 모두가 최소한의 외국어 소통능력을 갖도록 하자는 정책은 전 세계 어느 나라나 똑같습니다. 타문화와 선진 기술문명의 도입에 영어가 필수 수단이어서, 국민이 영어를 모르면 사실상 문호가 닫히는 것과 다름 없기 때문에 취해진 것이겠지요.

다른 한편으로는 전 세계 국가들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치열한 경제전쟁을 치르는 중입니다. 이 아귀다툼 바닥에서 생존하는 길은 우리가 가진 인적자원을 최대한 발굴해서 키워나가는 것입니다. 이제는 잠 적게 자고, 일 열심히 하고, 공부 열심히 한다고 해서 대외적으로 국가 경쟁력이 저절로 고양되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각계의 전문인들 뿐만 아니라 국민 전체가 해외에서 일어나는 모든 소식과 정보를 눈과 귀를 활짝 열고 받아들여서 각자 타고난 재능을 키워 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인터넷은 스피드로 말하자면 세계 최 첨단이지만, 그 용도가 주로 유흥, 오락, 사교에 집중되어 있지요. 그리고 소수의 전문 분야 종사자를 제외하고는 인터넷 검색은 우리말로 표기된 정보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터넷 상에 다양하고 유익한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지만 대부분 영어로 표기되어 있어서 쉽게 읽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인간이 일으킨 총체적 재앙

영어는 장식품이 아니라 우리나라가 경제 전쟁에서 살아남는데 필수 불가결한 무기입니다. 그런데 지난 IMF 위기 때에 "강대국이 기침 한번 하면 우리나라 경제가 몸살을 앓는" 경험을 하고서도 영어 교육계는 나아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른바 "영어회화 교습 광풍"이 우리나라 사교육 시장을 뒤덮었다는 것이겠지요. 외국인을 만나 "오늘 날씨가 좋습니다. 화장실은 저 쪽에 있습니다. 이 셔츠는 값이 얼마입니까?" 등등의 대화를 영어로 나눌 수 있다면 물론 좋은 일이지요.

그러나 외국인들과 그런 대화나 하자고 우리가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뿌리고 개인별로 1만 5천 시간 이상을 영어 공부에 퍼부은 것이라면, 그건 단순한 손실이 아니라 교육계 지도자들의 무책임, 무감각, 무대책, 그리고 대다수 사교육 업자들의 상혼이 함께 뭉쳐서 일으킨 총체적 재앙입니다. 왜냐하면 그 때문에 우리나라 국민이 그 많은 시간을 돌이킬 수 없이 낭비했고, 과도한 비용 지출로 인해 여러 가정이 경제파탄의 위기로 내몰렸으며, 한국인의 뛰어난 잠재력이 동면에서 깨어나는데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에게서 배우는 영어 회화의 한계

어느 외국인이 "이순신 장군이 누굽니까?"하고 물었을 때, 그런 영어는 회화 선생님이 안 가르쳐줬다고 해서 "나는 그 분이 누군지 잘 모릅니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면 우리 각자가 쏟아 부은 1만 5천 시간은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됩니다. 외국인이 물었을 때, 4대강이 왜 저 지경이 됐는지 영어로 설명할 수 있다면, 또는 "한국인들은 사람의 인격이 그 사람이 소유한 재산에 비례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 라는 질문에 영어로 항변 또는 변명할 수 있는 실력이 된다면, 잃어버린 저 많은 시간의 의미를 다소 살려낼 수 있을지 모르지요. 그런데 그런 능력은 선생님이 가르쳐서 쌓이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스스로 수행한 감각적 독해 훈련을 통해서 터득 되는 것이기 때문에, 불행히도 우리나라 영어교육의 현 체재에 큰 변화가 없이는 실현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외국인과 대화한다는 것은 영어로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작문을 입으로 하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그런데 어느 언어권에서나 대화에서 주로 사용하는 문장의 골격은 중문이나 복문이지요. 그런데 영어 회화 선생님이 가르치는 형식은 대부분 주어와 술어가 하나 뿐인 단문(Simple Sentence)이기 때문에, 성인이 영어 회화 선생님에게서 배운 토막 영어만으로 나눌 수 있는 대화는 지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영어 교육계 지도자들의 4무주의(四無主義)

대한민국 영어 교육계 지도자들의 무책임 무감각 무대책의 3무주의(三無主義)가 반세기가 넘는 세월을 거쳐오면서 무저항 정신마저 거기에 곁들여져 4무주의(四無主義)로 완성된 오늘날, 우리나라 전체 사교육비의 절반 가량이 영어 한 과목에 집중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1인당 지출한 영어 사교육비에서, 사교육이라면 한가락 한다는 일본마저 7배로 멀찌감치 따돌리기에 이르렀지요. 이런 전대미문의 코미디 극을 보면서 떠오르는 의문이 많습니다.

어느 바람잡이 집단들이 무슨 목적으로 저리도 맹렬한 영어회화 "광풍"을 몰고왔는지, 왜 그 많은 돈 들여가며 외국으로 어학 연수를 가야 하고, 왜 저 많은 무자격 원어민 교사들을 비싼 값에 국내로 모셔와야 하는지, 그렇게 배운 기초 영어회화가 우리 국민이 인터넷에 홍수처럼 넘치는 공짜 정보를 마음껏 열람하여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데 도움을 주었는지, 이런 문제점들을 이슈화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을 텐데 그 동안 우리가 그걸 듣지 못했던 것은 혹시 그것이 어떤 특정 집단에 의해 통제됐기 때문은 아니었는지...

영어 통달의 비결

우리나라에서 제가 가장 존경하는 영어 선생님들은, 아직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학생들에게 영어책을 통째로 외우라고 강요하는 "무자비"하신 분들입니다. 이런 방법이라도 쓰지 않으면 영어 감각이 늘 제자리 걸음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학생들은 사설 영어학원의 단골고객으로 전락하는 수순을 밟게 될 것이고, 그 다음엔 온갖 시험 준비반에 등록해서 1만 5천 시간을 채워가며 배우고 또 배우는 단계를 밟으리라는 것을 아시는 분들입니다. 그리고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결국 영어로 편지 한 줄 자신있게 쓸 수 없는 신세가 된 것이 자신의 게으름 탓, 또는 타고난 무능력 탓이라고 오해한 나머지 스스로를 책망하는 것이 그 다음 수순이라는 것 또한 아시기 때문에 차라리 무자비함을 선택하신 분들이지요.

이분들이 강요하시는 방법 안에 전통적인 영어 통달의 비결이 숨어 있습니다. 입으로 읽고, 반복해서 읽고, 최대한 표준 발음으로 읽고 (왜냐하면 나쁜 발음이 습관화 되면 후에 고치기 어려우니까), 가능하다면 통째로 처음부터 끝까지 외우는 것이 영어 감각을 단련시키는 최상의 비결입니다.

영어 교육계 지도자들께 드리는 말씀

제 글이 너무 냉소적이라고 탓하실 분들이 많으시겠지만, 공교육의 파탄 덕택에 사교육 업체들의 탐욕은 맘모스처럼 커지고, 귀중한 시간과 돈을 탕진해가며 수능, TOEFL, TOEIC 점수는 올렸으나 진짜 영어 실력은 늘 제자리 걸음인 신세를 한탄하는 저 젊은이들이 뒤늦게 영어 교육계를 향해 터뜨리는 분노를 달리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그것은 "영어 무용론"을 외치는 사람들의 가슴에 쌓인 분노이고, 교육계 지도자들과 정부가 영어교육 파탄에 대하여 짊어졌어야 할 책임을 애꿎은 피해자들이 끌어안고 터뜨리는 분노입니다.

어느 미국인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착한 정치인을 만난다는 것은 풀 뜯어 먹는 늑대를 만나기만큼 어렵다." 선거철이면 서민들 곁에 찾아와 온갖 아름다운 노래를 지저귀다가 표 하나 물고 날아가면 다음 선거철까지 감감 무소식인 철새들. 미국은 이제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정치인에게 희망을 두거나 그들에게 책임을 추궁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이와 크게 다르지는 않겠지요.

그래서 문제점을 찾아내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일은 늘 각 분야의 지도자들과 전문가들의 몫이었습니다. 영어 교육계 지도자들에게는 Thomas Hardy의 작품을 분석하고 Shakespeare를 가르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대한민국의 영어 교육을 정상화 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영어 또는 영문학을 전공하신 교수들께서 영어교육계의 지도자로서, 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마땅히 완수하셔야 할 임무입니다. 우리나라의 영어교육이 처해있는 막다른 골목에서 이제 함께 고뇌하셔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

(다음 회에 게시될 글 "영재를 망치는 영재교육과 올바른 영재교육" 에서는 외국의 영재교육 방식을 소개하고 우리나라에서 간간이 츨현했던 신동들을 모두 단기간에 훼손해버린 "한국형 영재교육"의 결정적인 결함에 대하여 말씀드릴 예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