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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13일 06시 21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12월 13일 14시 12분 KST

영문 독해는 그렇게 가르치는 것이 아니었다

떨쳐낼 수 없었던 의구심은 선생님에게서 배운 영어가 그 다음에 혼자서 해야 하는 감각 훈련 단계에서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키지는 않았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영어교사들이 학생들에게 문장을 한 줄 한 줄 읽어가며 독해 방법을 가르칠 때 어린 아이들의 두뇌에 어떤 영향을 끼쳤기에, 영어가 늘 국가적인 고민거리로 남아 미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이 글은 앞서 발표한 "우리나라 영어 교육, 이래서 거품이다."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떨쳐낼 수 없었던 의구심

2006 년 11월에 삼성경제연구소가 발표한 보고서, '영어의 경제학'에 의하면 당시 우리나라의 연간 영어 사교육비가 14 조원이었던 반면에 2.6 배의 인구를 가진 일본은 5 조원에 불과했습니다. 이것을 환산하면 우리나라가 일본에 비해 1 인당 평균 7 배가 넘는 영어 사교육비를 지출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사교육비가 대체로 사교육을 받은 시간에 비례한다고 가정하고 일본 인구의 고령화가 우리보다 심한 점을 크게 고려해서 우리가 영어와 씨름한 시간이 그네들의 5 배였다고 줄여서 생각해도, 얻어지는 결론은 마찬가지입니다. 그건 선생님 앞에 아무리 오랜 시간을 앉아 있어도 영어 실력이 일정한 한계 이상으로 향상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보고서가 나오고 8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 영어가 일본인들의 영어보다 나아졌다는 증거가 아무데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건 선생님에게서 영어를 하나의 지식으로 배우는 동안 영어가 감각으로 숙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되지만, 또 한 가지 떨쳐낼 수 없었던 의구심은 선생님에게서 배운 영어가 그 다음에 혼자서 해야 하는 감각 훈련 단계에서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키지는 않았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영어교사들이 학생들에게 문장을 한 줄 한 줄 읽어가며 독해 방법을 가르칠 때 어린 아이들의 두뇌에 어떤 영향을 끼쳤기에, 영어가 늘 국가적인 고민거리로 남아 미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그 원인이야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이 글에서는 그 중 하나만을 함께 추적해보고자 합니다.

우리나라의 영어교육을 가두고 있는 미로, 감각 영어로 깨뜨려야 한다.

(사진출처: Depositphotos.com)

영어의 어순과 우리말의 어순이 크게 달라서 증폭되는 어려움

영어와 우리말의 어순이 서로 크게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특히 불리한 조건에서 영어를 배우는 셈입니다. 우리와 어순이 완전히 같은 일본인들 역시 불리한 여건에 있음은 마찬가지입니다. 이 원천적인 어려움을 학생들로 하여금 극복하게 하려면 영어교사들이 교육 현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가르쳐야 할 것인가? 이런 근본적인 문제점에 대해서 영어교육계 지도자들이 대책을 세워보겠노라고 고뇌한 적이 있었을까? 아니면 "그런 것쯤이야 각자 개인적으로 알아서 해결할 사안이지, 학자들이 나설 문제가 아니다."라고 생각했을까? 별의별 생각들이 스쳐 갑니다.

일상 대화 수준의 영어나 짧은 단문으로 된 영어의 경우, 어순의 차이가 주는 어려움은 그다지 크지 않습니다. 그런데 긴 글을 읽을 때에는 문장 하나가 5~10 줄이나 될 만큼 구조가 복잡할 때가 있지요. 그걸 우리말 순서로 모조리 다 바꿔야 이해가 가능하다면, 그건 사실상 영문 독해가 불가능하다는 말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어순을 우리말로 재배열하고, 단어들의 의미를 우리말 뜻으로 옮기고, 관계대명사, 접속사 등이 이끄는 절을 문법에 맞춰서 분석하고 그것도 우리말 순서로 바꾼 다음에야 해석이 가능하다면, 이전 글에서 말했던 두뇌의 여러 가지 복합적이고 다양한 정보 처리 작업들은 정작 이루어질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어느 누구라도 이런 상황에 갇혀 있다면 분당 600 단어 이상을 읽어낸다는 것은 실현 불가능한 유토피아일 뿐입니다. 특히 문장을 오디오로 전환시켜 놓은 것에 대한 청취력은 들리는 순서대로 이해하는 능력인데, 그때는 귀에 끊임없이 들려오는 것을 우리말 순서로 재배열할 시간도 없기 때문에 귀로 알아듣는다는 것은 더욱 어려워지지요.

영문 독해는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영어 문장을 해석해줄 때에 영어의 어순을 완전한 우리말 어순으로 바꾸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우리말로 해석하는 순서를 영어의 어순에 맞춰서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영어 선생님들은 언제나 어순을 우리말로 완전히 바꾸고, 심지어는 의역까지 하면서 멋을 부렸습니다. 그건 영어공부 시간이 아니라 차라리 우리말 작문 시간에 가깝다고 해야겠지요.

영어를 이해하는 순서는 단어가 적힌 순서로 해야 한다는 불문율을 깨뜨려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선생님들이 문장 해석을 최대 한도로 영어 단어가 적힌 순서대로 하려고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학생들이 영어의 어순을 익히는 것부터 선생님들의 방해를 받은 셈입니다. 물론 우리말 구조를 기준으로 생각하자면 그런 해석은 정상적인 구성이 안되고 어색할 건 당연합니다. 그래도 우리 두뇌를 영어의 어순에 적응시키지 않으면 영어로 읽고 쓰고 말하고 듣고, 또 그 순서로 생각하고 이해하는 교육의 기초가 없어지기 때문에 이것은 반드시 해내야 하는 숙제입니다.

흔히 "영어는 영어로 배워야 한다"고 하지요. 참으로 지당한 말입니다. 그러나 영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처음부터 영어를 영어로 가르치기란 참으로 난감한 과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 이전 예비 단계로 먼저 영어의 어순으로 읽고, 영어의 어순에 맞추어 이해하고, 영어 단어가 적힌 순서대로 생각하는 것을 가르치는 과제부터 해결했어야 합니다.

나의 영문독해는 정상인가?

글을 읽을 때에 눈은 단어 하나 하나를 스치고 지나가면서 우리의 뇌 안으로 그것들을 전달해주는 도구의 역할을 하지만, 두뇌가 그 정보의 조각들을 얼마나 신속하게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처리해야 하는지 지난 번 글에서 이미 말씀 드렸습니다. 내가 영문을 읽고 이해하는 독해능력이 정상인가 하는 의문에 대한 답변은 다음의 체크 리스트를 통해서 측정할 수 있습니다.

1. 글을 읽고 있으면 영어 단어 하나 하나에 대한 우리말 단어들이 머리 속을 스친다.

2. 글을 읽을 때에 영어 단어들이 하나 하나 독립적으로 감지된다.

3. 문장을 읽으면 부분 부분에서 해당 문법이 뚜렷하게 떠오르면서 그 뜻이 명백해진다.

4. 구조가 복잡한 긴 문장을 만나면 순서를 우리말 식으로 바꿔야 하기 때문에 이해하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5. 문장에 포함된 영어 단어들을 보는 순간 그 의미가 문맥 안에서 동시에 느껴지지는 않지만, 내가 외웠던 단어의 뜻으로 떠오른다.

위의 다섯 조항에 대해서 "Yes"라는 대답이 늘어날수록 독해능력에 대한 비정상 판정의 강도가 높아집니다.

글쓴이와 함께 걸으며 대화하듯 몰입할 수 있는 경지가 독해 훈련의 목표이다.

(사진출처: Depositphotos.com)

결론 및 해결책

영문 독해 방법을 가르치실 때 선생님들이 항상 염두에 두셔야 할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영어 단어들이 적힌 순서대로 읽고, 그 순서대로 이해시키고, 그 순서대로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으면 학생들의 영어가 향상되기 어렵다는 것과, 학생들의 두뇌는 영어의 어순 그대로 받아들여도 그걸 이해하는데 아무 어려움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읽는 순서대로 이해하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으면 영문독해나 영작문 능력에서 학생들이 목표하는 수준 또는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그만큼 늦어지니까요.

늘 드리는 말씀이지만, 세상 모든 언어가 그렇듯이 영어 역시 감각입니다. 단, 그 감각은 각 개인이 마음대로, 독창적으로 만들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고유 감각'이라고 부릅니다. 그 안에는 그 나라의 문화, 역사, 희노애락이 얽혀있는 삶 등, 모든 것이 녹아 스며 있어서, 말을 하거나 글을 읽고 쓸 때에 그 감각의 바깥으로 벗어나면 그 언어를 공유하는 구성원들과의 소통이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영어를 습득할 때에 명심해야 할 부분은 바로 그 고유감각이 완벽하게 살아있는 글의 패턴을 익히는 일인데, 많은 양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원어민이 아닌 우리가 반드시 병행해야 하는 일은 가끔 완전한 문장이나 문단 또는 글 전체를 입으로, 그것도 빠른 속도로 반복해서 읽고, 가능하다면 전체를 암송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언어의 네 가지 기능을 한꺼번에 높은 수준에서 익히는 지름길입니다. 암송하는 글이 길수록 효과는 증폭됩니다. 스스로 해야 하는 이 반복 리딩은 이 글에서 지적한 어순의 문제점도 자연스럽게 극복하게 해주는 훌륭한 감각 훈련입니다.

글을 읽을 때에 눈은 부지런히 문장을 훑어나가고, 두뇌는 심층 의식 속에서 글쓴이와 함께 걸으며 대화 하듯이 이야기의 흐름 속에 몰입되어 있어서 단어나 문자를 의식하지 못하는 경지. 이것은 우리가 도달할 수 없는 피안의 세계가 아니고, 수많은 사람들이 쉽게 찾아가고 있는 강 건너 마을 같은 곳입니다. ♣

반복 리딩 효과에 관한 참고 문헌

1. Fluency and Comprehension Gains as a Result of Repeated Reading

2. Fluency and Comprehension Gains as a Result of Repeated Reading: A Meta-Analysis

3. The effect of practice through repeated reading on gain in reading ability using a computer-based instructional system. Reading Research Quarterly, 16, 374-390.

4. The Effects of Repeated Readings and Attentional Cues on Reading Fluency and Comprehension.

(다음 회에 게시될 글 "영어 단어 학습은 반드시 이렇게 하라."에서는 우리나라 영어 교육 시장을 뒤덮고 있는 단순 주입식 단어 공부가 왜 영어 공부가 아니었으며, 영어의 4가지 기본 기능의 향상에 왜 아무 보탬이 안 되었는지 밝히고, 올바른 방법을 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