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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06일 05시 54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12월 06일 14시 12분 KST

우리나라 영어 교육, 이래서 거품이다.

영어 학습에 투입한 시간은 세계 1위. 영어 구사력은 아시아 12 개국 중에서 12위. 국내의 모든 시험문제는 우리의 결함투성이 영어교육 수준에 알맞게 정확히 조율되어 있음. SAT 등 타국의 시험에서는 대규모 부정행위. 외국에 유학 나가면 이 모든 것이 백일하에 탄로. 피해자들이 침묵으로 일관하기 때문에 타인들에게 계몽 불가. 세대가 바뀌어도 악순환의 연속. 이것이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영어 교육이 만들어온 거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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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두 글 "유학간 수재들, 왜 다수가 중도에 탈락하나?"와 "단순 암기식 영어교육의 실패 - 원인과 해결책" 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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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이 고뇌하지 않으면 제자들이 나락에 떨어진다.

고뇌하지 않는 스승 아래서는 훌륭한 제자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인가 봅니다. 위에서 물려받은 교육 기법을 그대로 제자들에게 되풀이하는 안이한 자세가 100년 가까이 이어져 내려온 결과가 이렇게 빈약하기 짝이 없으니 말입니다. 자부심이라면 전 세계 일등을 해도 시원찮을 우리 민족이 배출한 수재들이 미국 명문대학에 들어갔다 하면 거의 절반 가까이 중도에 탈락하는 사태. 그런 보도를 접하고도 일말의 반성도, 고민도 없어 보이는 영어 교육계를 바라보면서 변함 없는 확신 하나는 "저 고통스러워 하는 아이들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다."는 것입니다.

최근 20년 간은 나라 교육을 무슨 노름꾼들이 접수했는지, 수능시험 바꾸는 것을 화툿장 뒤집듯 하니 백년 뒤 나라 살림 널뛰는 소리가 벌써 들릴까 두렵습니다. 사실 '수능시험'이라는 것도 알고 보니 '주입식 교육'이라는 연극 무대 한가운데서 주연을 담당하고 있는 어느 3류 배우인 게 분명한데, 애꿎은 분장만 바꿔치지 말고 차라리 극장 문을 닫는 편이 착한 일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밖에서 표를 사겠다고 늘어서 있는 학생과 학부모님들의 부담을 덜어드리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제가 허핑턴포스트에 올리는 글들이 영어 교육자들의 직무유기를 비난하자는 취지에서 쓴 것은 아닙니다. 영어교육의 잘못된 틀을 바로 잡으면 학생들이 더 적은 노력으로 훨씬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충언을 드리자는 것인데, 그러자니 책임추궁이 자연스럽게 그분들을 향하게 됐을 뿐입니다. 지난 번 글에서는 영어의 고유감각을 무시한 교육, 즉 단편적 지식 전수형의 단순 기억 방식은 영어 교육의 매우 나쁜 틀이라는 지적을 했습니다. 그에 이어서 오늘은 "감각을 무시한 영어교육 개념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 즉 미국에 유학간 우리 수재들의 다수가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서 밝히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다는 것은 야구 타자가 공을 치는 타법을 익히는 과정과 유사하다.

읽기를 터득하는 과정은 지식 기반의 가르침에서부터 출발하지만, 실제로 글 읽는 실습을 통해서 그 지식을 감각 수준으로 향상시키지 않으면 실용성이 없습니다. 그것은 야구 방망이로 공을 때리는 타법을 익히는 과정과 유사합니다.

타자를 향해서 날아오는 공을 정확히 때리려면 방망이를 어떻게 휘둘러야 하는지 코치에게서 먼저 배우는 것이 순서입니다. 이것은 초기의 지식 전수형 교육 단계입니다. 그러나 코치의 가르침이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선수가 하루 아침에 명타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 타법의 감각이 근육 속에 깊이 각인되도록 배운 것을 열심히 실습해서, 실제로 공을 때릴 때에는 코치가 가르쳐준 지식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식이 근육 안에 감각으로 단련되어있는 것을 이용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시간의 제약성입니다. 공이 투수의 손을 떠나서 타자의 앞을 지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개 0.5~0.8초입니다. 공의 구질과 날아오는 정확한 방향을 이 짧은 시간 내에 파악하고 그에 알맞은 타법(지식)을 기억해 낸 후에 방망이를 휘두르기 시작한다면 공은 이미 타자 곁을 지나간 한참 후가 되겠지요. 이처럼 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의식적 분석은 너무 느리기 때문에 시간 제약이 극심한 활동에서는 실용가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보다는 월등히 빠른 직관, 즉 무의식적 감각을 이용해야만 공을 제 때에 쳐낼 수 있는데, 충분한 실습을 거치지 않고서는 이 경지에 다다르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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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는 것은 매 초마다 10 개 이상의 공을 쳐내는 것과 같다.

글을 읽는 것도 이와 유사합니다. 미국 대학생들의 글 읽는 속도가 분당 600~1,000 단어에 달하는데, 이것은 눈이 초당 10 단어 이상을 훑어나가는 것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눈이 하는 일은 리딩의 전체 과정 중에서 보조 역할일 뿐입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리딩 작업은 두뇌 안에서 이루어지는데, 매 초 눈을 통해서 연속적으로 들어오는 10 개 이상의 단어들이 여기에서 처리 됩니다. 그것은 야구 타자가 매 초마다 10 개 이상의 공을 때려내는 것에 비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루어지는 두뇌작업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리딩 두뇌는 눈을 통해 끊임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단어들을 문장으로 재조립해서 글 안에 흐르는 아이디어의 기본 골자를 이해해야 하고, 여러 문장을 재합성해서 문단을 만들어 이해하고, 이미 읽은 모든 문단들을 연결해서 이야기의 흐름을 엮어 나가고, 그 안에 흐르는 요점을 찾아내고, 글쓴이의 논지를 나의 경험에 비추어 평가하고, 다음에 이어질 문단을 예측하는 등, 여러가지 작업을 그것도 동시에 병렬 처리해내야 합니다. 이처럼 방대한 업무가 잠깐만 지속되고 끝나는 게 아니고 쉼 없이 연속적으로, 때로는 여러 시간 계속되기도 합니다.

물론 여기에서도 가장 중요한 변수는 시간의 제약성입니다. 만약에 리딩을 기억 창고에 쌓인 잡다한 지식을 기반으로 표층의식 속에서 진행시킨다면, 단어 하나 하나를 개별적으로 우리말로 인식해야 하고, 문법과 어순도 의식적으로 우리말에 맞춰 재배열해서 이해해야 하는 등, 과정이 너무 느릴 뿐만 아니라 두뇌도 쉽게 지치기 때문에, 바로 위에서 언급된 여러가지 중요한 병렬처리 작업들을 동시에 실행하기가 불가능합니다. 이렇게 머리에 단순 기억된 지식으로만 글을 읽는 사람은 경쟁력이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것이 "영어를 감각으로 익혀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우리나라 영어교육의 치명적인 단점이 왜 그 동안 드러나지 않았나?

학업차 외국에 나가기 전에는 이런 문제점들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이유는 국내에서 치르는 모든 영어시험이 국내 영어교육 체계의 낮은 수준에 정확히 맞춰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고교 교육 과정에 등장하는 시험들은 두말할 나위도 없고, 직장인의 영어 구사력 평가용으로 일본의 기업과 미국의 ETS가 함께 개발한 TOEIC이라는 시험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과 일본은 영어교육면에서 식별이 불가능할 정도로 완전히 똑같습니다. 일본에서 발간된 영어공부 참고서들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한국 시장을 뒤덮고 있는데도 그걸 알아차리는 사람들이 없는 것을 봐도 그렇지요. 그 TOEIC에 출제된 문제들을 보면 단어, 문장의 구조, 출제유형 등 모든 면에서 한국과 일본의 참고서들과 구별이 안될 만큼 낮은 수준에서 표준화 된 트랙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다시 말하자면 TOEIC의 개발 당시에 일본의 입김이 지나치게 크게 작용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에세이 시험을 치는 수험생들을 위해서 샘플로 제시해 놓은 에세이들을 봐도 참으로 가관인 것이 세계화된 표준이 아니라 일본화(한국화)된 낮은 표준에 맞춰져 있어서, 최고점을 받았다는 에세이 샘플이 결함 투성이입니다.

영어 학습에 투입한 시간은 세계 1위. 영어 구사력은 아시아 12 개국 중에서 12위. 국내의 모든 시험문제는 우리의 결함투성이 영어교육 수준에 알맞게 정확히 조율되어 있음. SAT 등 타국의 시험에서는 대규모 부정행위. 외국에 유학 나가면 이 모든 것이 백일하에 탄로. 피해자들이 침묵으로 일관하기 때문에 타인들에게 계몽 불가. 세대가 바뀌어도 악순환의 연속. 이것이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영어 교육이 만들어온 거품입니다.

시대가 급속히 달라지고 있습니다. 소위 '세계화'의 조류를 타고 국가 간의 울타리가 날로 낮아지고 있어서 예전에는 숨겨질 수 있었던 것들이 이젠 더 이상 비밀로 남아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영어 교육 담당자들도 더 이상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교육정책을 입안하는 정부의 관료들도 영어교육계 뿐만 아니라 모든 학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국내의 전반적인 교육체계를 밑바닥부터 점검하여 총체적인 변화를 시도할 때가 되었습니다.

혹시 우리 민족의 자질이 열등하기 때문인가?

아닙니다. 전 세계가 인정하는 사실이 하나 있지요. 그건 코리안이 전 세계에서 세 손가락 중의 하나에 꼽힐 정도로 자질이 우수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문제가 있다면 그건 앞장서서 우리를 잘못 이끌어 온 각계 지도자들 때문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겠지요. 그중에서도 특히 책망을 받아야 할 분들은 교육계와 학계의 지도자들입니다. 한류 열풍을 일으킨 우리의 젊은 예술인들, 세계 여성 골프 세계를 싹쓸이한 우리의 젊은 여성들, 전 세계 바둑계를 재패한 우리의 천재 기사들. 이 사람들이 만약에 학교의 정규 교육과정에서 예술을 배우고 골프를 배우고 바둑을 배웠어도 그렇게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을까? 다음은 이 의문에 대한 해답입니다.

외국의 한 평가기관이 7~8 년 전에 발표했던 내용인데, 전 세계에서 모든 분야를 통틀어서 5천 명의 뛰어난 학자들을 뽑은 적이 있었습니다. 선발 기준은 논문의 피인용지수였지요. 이게 뭔고 하니, 각자 그 동안 발표한 연구논문들을 다른 학자들이 얼마나 자신들의 연구 논문에 인용했는가를 나타내는 수치입니다. 좀 더 풀어서 말씀드리자면, 어떤 논문의 피인용지수가 높다는 것은 그 연구가 얼마나 남보다 앞서 있고 독창적이었는지 보여주는 수치이기 때문에 학문의 질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로 사용되고 있지요. 그때 일본 학자들은 300 명 이상이 5천 명 중에 포함되었고, 미국 학자들은 전체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절할 만큼 놀랍게도 우리나라 학자들은 불과 3 명에 불과 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전 세계 11 번째의 경제 대국이었고, 국내 언론에는 10명 이상이 차세대 노벨상 수상 예정자로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던 터였습니다. 물론 이 때문에 우리나라의 학자들을 비난해서는 안됩니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실태에 대해서는 우리 민족의 수재들을 어린 시절부터 사고력을 죽이고 창의력을 말살시켜온 주입식 교육체계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니까요. 이것이 바로 우리 나라 정규 교육의 얼굴입니다. "정규 교육에 포함시키면 오히려 망친다. 차라리 그냥 놔둬라." 안타까운 일이지만 지금으로서는 이것이 최선의 방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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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책

본론으로 다시 돌아와서, 대한민국의 무너져가는 영어 교육체계의 폐해로부터 벗어나는 학습방법은 간단합니다. 해결책은 바로 지난 주에 발표했던 "단순 암기식 영어교육의 실패 - 원인과 해결책" 에서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미국에서 독서광이라 하면 유치원에서 시작하여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동화와 소설 약 천 권을 읽고 신문과 잡지를 구독해서 읽습니다. 이제 와서 뒤늦게 그 아이들이 읽어온 과정을 똑같이 따라할 수는 없지요. 그나마 최대한 가까이 따라잡을 수 있는 지름길은 많이 읽고 또 반복 리딩을 통해서 리딩 감각을 열심히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다음 회에 게시될 글 "영문 독해는 그렇게 가르치는 것이 아니었다."에서는 우리말과 영어의 어순이 다르다는 점을 한국과 일본의 영어 교육계 학자들이 과소 평가한 실수가 얼마나 큰 비극의 씨앗이 되었는지 밝히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