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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1월 09일 10시 37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1월 10일 14시 12분 KST

'월화수목금금금'은 정답이 아니다

OrangeDukeProductions via Getty Images

오는 3월이면 어느 굴지의 포털사이트 대표이사가 변경된다고 하는데, 그분께서 인터뷰 중 아래와 같은 말씀을 하셨다.

왜 운동선수가 더 뛰어난 성적을 위해 밤새 훈련하는 일은 칭찬받고 직장인이 새로운 프로젝트를 위해 야근하는 일은 흠으로 볼까요?" O대표 내정자의 평소 지론이다.

언뜻 보면 별 문제가 없는 말로 들린다. 하지만 시가총액 25조원 규모의 코스피 Top10 안에 드는 대기업 대표이사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니 무언가 일개 월급쟁이로서 힘이 쭉 빠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글을 풀어가기 앞서, 하기의 생각은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한국의 어느 월급쟁이 생각일 뿐, 요것도 정답이 아닐 수 있음을 전제로 한다. 즉, 내 기준에 있어 상기 생각은 정답이 아닌 것이지, 내 생각도 정답이라 주장하고 싶은 생각은 그다지 없다. 그럼 내 생각을 이야기해 보자.

인류는 선사시대 수렵활동을 시작으로 꾸준히 노동을 해왔다. 돌도끼를 가지고 사냥을 하고 채집을 하러 다니던 이 원시인의 노동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다만 그 노동의 강도는 심해, 맹수와 싸우다 죽을 수도 있었다. 어떤 분들은 이 시기엔 인구밀도가 낮아 식량도 부족하지 않고 현대인보다 풍족하게 살았다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동물의 세계만 보더라도 사자의 무리는 엄마사자가 2-3일에 한 번 사냥을 하고 온가족이 먹고 살지만, 사냥에 실패하는 날이 계속되면 아기사자는 굶어 죽게 된다. 그렇게 아기사자(Cub)가 제대로 어미사자로 장성할 확률은 50%도 채 되지 않는다.

그러면 농경사회는 어떠했을까. 이때부터 인간은 장기노동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하루종일 구부리고 노동을 해야 하는 까닭에 병도 발생하기 시작했다. 놀라운 수확량으로 인해 인구는 증가했지만, 간간이 불어닥치는 흉년 혹은 범람, 가뭄으로 인해 굶어죽는 일도 발생했다. 일례로 아일랜드 대기근을 들 수 있는데, 18-19세기 아일랜드에 발생한 이 기근으로 나라의 인구는 1/3이상 사망했다고 한다. 원인은 감자역병 때문이었다.

현대인은 생물학의 발달 및 의학, 토목공학 등의 발달로 인해 더 이상 역병이나 기근에 시달리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장시간 노동에는 노출되어 있다. 현재 근로기준법 제50조(근로시간)에 따르면 1주간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즉 주5일로 따지면 1일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이란 말이다. 물론 제53조(연장근로의 제한)에 따르면 당사자 간 합의를 하면 1주간 12시간을 한도로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걸 또 주5일에 적용해 보면, 일 근무시간은 10.4시간이 된다. 그러니까 7시에 출근해서 점심시간 한 시간을 제외한다면 5시 반 정도에는 퇴근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 이게 최대다.

하지만

대부분의 연봉근로자 혹은 월급근로자는 그러한 근로시간을 준수하지 못하고 있다. 최소한 시급제의 경우엔 철저히 지켜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 이랜드 사건에서 본 바와 같이 고용주도 그다지 근로시간에 대해 깊은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 최저임금도 최저임금이지만, 근로시간에 대한 개념 자체가 변화해야 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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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 언급한 주 52시간의 근로시간은 그나마 몇 년 전 법령의 변경으로 축소된 것이다. 이전엔 68시간으로 기억한다. 이처럼 근로시간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FRED의 표에서 보여진 바와 같이 이는 전세계적인 추세도 우하향에 있다. 참고로 20세기 초반 영국의 근로시간을 보면 이게 과연 1백년 전의 세계인가 눈을 의심케 한다. '게으름은 왜 죄가 되었나'의 저자 이옥순 교수는 책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영국에서 티타임이 생긴 것은 산업현장과 관련이 깊었습니다. 19세기 초 영국의 노동자는 하루에 열다섯 시간 일했습니다. 일의 강도가 떨어지는 오후 네 시에 설탕을 넣은 카페인이 많이 든 홍차는 지친 노동자들에게 에너지를 보급하고 기운을 북돋우는 흥분제로서 이중의 역할을 했습니다."

하루 열다섯 시간. 탄광 막장에서 15시간. 심지어 그때는 미성년자들도 물론 그 막장에서 15시간 동안 일을 했다. 물론 당시엔 한 달 내내 일했겠지만, 고냥 주6일만 잡아도 90시간이다. 당시엔 오히려 그게 정상이란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전세계 인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랜 노동시간이 높은 생산성으로 이어지지 않음을 인지하게 되었고, 인간의 기본권 개념이 도입되면서 노동시간을 줄여나갔다.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아래 두 번째 표와 같이 근무시간이 긴 국가일수록 시간당 노동 생산성은 떨어진다. 이는 상관관계(correlation)에 불과하지만, 스탠퍼드 대학의 John Pencavel의 논문 등을 보면, 노동시간이 길어질수록 사람들은 에너지를 잃게 되고 이것이 생산성 저하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NewsPerppermint, 저녁이 있는 삶이 생산성 향상에 더 좋습니다. Economist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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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거시적이고 현학적으로 접근했나? 그럼 이제 나의 경험으로 들어가 보자.

나는 건설회사에 입사한 후 본사를 거쳐 지하철 현장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당시엔 정말 하루종일 일만 했다. 비 오면 비 와서 근무하고 눈 오면 눈 와서 근무했다. 명절이라도 비가 많이 오면 복공판에 물이 새니까 수방대책 한다고 출근했다. 피크 때는 정말 새벽 4시에 출근하여 밤 12시 넘어 퇴근을 한 적도 부지기수다. 그렇게 갓 태어난 아이의 자는 모습만 보다 보니, 이게 과연 사람 사는 것인가 하는 회의감도 들더라. 그러다 해외현장에 갔다.

야근을 하던 관성이 있어 나는 선배들이 퇴근을 해도 남아서 업무에 대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해외업무를 처음 하다 보니 간단한 약어도 모르겠고,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공부밖에 없다 생각했다. 당시 팀장님은 그냥 들어오라고 했고, 나는 그래도 야근을 해야겠습니다 하고 고집을 부렸다. 그러던 어느 날. 야근이 누적되어 그런지 늦잠을 잤고, 지각을 하고 출근을 했는데, 당시 팀장님한테 엄청나게 혼났다. 그날은 아침부터 콘크리트를 치는 중요한 날이었다.

"내가 야근 하라 그랬어? 하지 말라 그랬어? 왜 쓸데없이 야근하다가 중요한 순간을 놓치냔 말이야!" 하며 말이다.

문득 혼이 나면서. 이건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업무시간은 많지만, 나는 정작 무엇이 현장에 중요한 포인트이고, 집중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간과하고 있었다는 사실. 사실 일이란 그렇다. 뭐든지 하나하나 중요하다 싶으면 한도 끝도 없이 중요하지만, 시간과 예산은 한정되어 있어 무언가 정리하며 해야 하는 게 일이다. 정 시간이 없거나 예산이 없다면 중요하다 싶은 일도 어서어서 Decision making을 해 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중요한 판단을 하고 중요한 업무에 에너지를 쏟기 위해서 필요한 건 무얼까. 휴식이다.

여튼 그때부터 나의 생각도 변화했다. 업무시간에 최선을 다해 일을 하되, 휴식시간이 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냥 쉬었다. 책을 읽든, 만화를 보던, TV를 보든, 생각 없이 바다를 보든, 어쨌든 쉬었다. 사실 중요한 일이 있을 때는, 그렇게 쉴 때도 일 생각을 버리기 어렵다. 하지만 책을 읽다가, 만화를 보다가, 멍을 때리다가 그 일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게 되고, 종종 이런 경우 일을 더 쉽게 풀어나가게 되기도 했다. 아울러 쉬고 나면 일을 하고 싶다는 욕구도 더 생겼다. 무기력한 예전과는 상이한 인생의 시각이었다. 사람의 육체와 정신은 한계가 있어 기계와 같이 24시간 풀가동하지 못한다. 하물며 기계라 할지라도 무리하게 가동을 하면 결국 퍼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터널공사 등의 장비공사를 하게되면 Mechanic이 현장에 상주를 하거나 Back-up 장비를 준비해 놓는다. 사람도 기계도 휴식이 필요하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왜 운동선수가 더 뛰어난 성적을 위해 밤새 훈련하는 일은 칭찬받고 직장인이 새로운 프로젝트를 위해 야근하는 일은 흠으로 볼까요?" O대표 내정자의 평소 지론이다.

운동선수도 계속해서 밤새 훈련을 하다 보면 본게임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는 못한다. 순화해서 이 대표님의 생각을 이해하자면, 새로운 프로젝트를 위해 야근하는 일은 때로 필요하다는 말일 것이다. 인정한다. 매번 노동자의 관점에서 근무시간 딱딱 맞춰가며 일을 한다면 자기계발 측면이나 몰입의 측면에서 뒤떨어질 수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게 중요한 시기에 야근이나 주말근무를 시킨다면 그만큼의 보상을 주어야 한다. 예컨대 추가근무가 1-2주간 주어졌다면 대체휴무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추가근무가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되고 관성처럼 계속 이어진다면, 그 직원은 제대로 된 Decision making도 높은 생산성을 보이기도 어려울 것이다. 물론 단기간에야 가능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는 Burn-out되어 퇴직을 하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도 분명히 존재한다.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가.

사회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지난 70-80년대 산업화 시대엔 일이 곧 가장의 생명이었다. 회사는 직원에게 과도한 업무를 부과하여도 따박따박 주는 월급과 정년을 보장해 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작금의 시대는 그러한가. 구조조정은 국가도 회사도 언제든지 하고 싶은 욕망을 드러낸다. 사실 나도 정규직으로 가득한 사회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한 논리를 내세우려면 직원에게도 직원 나름의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그렇게 혹사만 시키다가 구조조정 당하거나 병에 걸려 회사를 나가면 회사가 책임져 줄 것이냔 말이다. 직원도 한 사람의 인간이기에, 취미생활도 해야 하고, 연애도 해야 하고, 육아도 해야 하고, 운동도 해야 한다. 업무시간 외에는 친구들과 스트레스를 풀 필요도 있고, 자기계발을 할 필요도 있고, 멍 때리고 TV예능이나 볼 필요도 있다. 그러한 휴식시간이 모두 모였을 때, 다시 업무시간에 집중할 가능성도 높아지기 마련이다.

아인슈타인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If A is success in life, then A equals x plus y plus z. Work is x; y is play; and z is keeping your mouth shut."

A=X+Y+Z

즉, 성공을 A로 놓는다면 이는 X+Y+Z의 합이고, X는 일, Y는 놀이, 그리고 Z는 묵언이다. 물론 아인슈타인이나 잡스 같은 천재의 예를 드는 건 그다지 와닿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처럼 천재적이고 세계를 뒤집어 놓을 이론을 발견한 사람도 놀이의 중요성은 인지하고 있었고, 실제로 바이올린을 켜거나 명상을 하며 많은 시간을 휴식에 할애했다고 한다. 일에 대한 열정, 좋다. 하지만 그것이 위에서 아래로 강요될 때, 그것은 잘 못 작용할 수도 있다고 본다. 끝.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