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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3월 02일 06시 44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5월 02일 14시 12분 KST

인지과학으로 본 '드레스 색깔 논란'

swiked

색깔(color)이란 두 가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정의될 수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물리적 특성 (physical attribute) 으로 정의되는 것이고 - 예를 들어, 빛의 파장 (frequency of light) - 다른 하나는 우리가 그 물리적 특성을 어떻게 인지하는가(what is perceived or recognized)에 따라서 정의됩니다 - 예를 들어, 우리가 '빨강' 또는 '파랑'이라고 이름 붙이고 느끼는 색깔.

재미있는 것은, 정확히 똑같은 물리적 특성을 가진 빛의 파장을 100명의 사람에게 보여주더라도 (예를 들어, 700nm), 그들이 인지하는 색깔(예를 들어, 빨강)은 100명 모두가 약간씩 다르다는 것입니다.1) 이미 몇십년 전부터 신경과학자들이 이러한 연구들을 해왔는데, 똑같은 빛의 파장을 보여주더라도 여러 사람의 뇌에서 정확히 똑같이 공통되게 반응하는 세포의 신호가 없다는 거예요.2) 이상하죠? 700nm라면 분명 '빨강' 이어야 하고, 눈에도 이 파장에 반응하는 원추세포가 있고 또 우리가 '빨강'이라고 인지하긴 하니까, 뇌에도 그 '빨강'에 반응하는 신경 세포의 신호가 있어야 할텐데, 왜 공통의 신호를 찾을 수 없었던 걸까요? 답은 의외로 간단했어요. 먼저 여러 종류의 빨강을 보여준 다음에, "당신에게는 어떠한 색깔이 정확히 '빨강'이라고 느껴집니까?"라고 하는 테스트를 먼저 해서 '가장 정확한 빨강이라고 인지하는 색'을 각각의 사람들에게서 찾아내고, 그에 해당하는 빛의 파장(650 nm에서 750 nm까지 참가자마다 제각각 다른 파장)을 보여줬더니 우리가 '빨강'이라고 느끼는 공통적인 신호를 찾을 수 있었다는 거예요. 즉, 똑같은 물리적 특성을 지니고 있는 사물이라 할지라도 우리 인간이 '인지'하는 특성은 제각각 다르다는 것이죠.3) 이것이 바로 인간의 뇌가 사물을 인지하는 방식이 로봇 또는 컴퓨터와 다른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예요.4) (그리고 제가 전공하고 있는 '인지과학'이라는 학문이 흥미로운 이유이기도 하구요). 로봇이나 컴퓨터는 정직하게 사물의 물리적 특성을 코딩하지만 인간의 뇌는 그것을 보다 유연하게 코딩해요. 왜 그럴까요?

다시 한 번 '빨강'의 예로 돌아갔을 때, 우리의 경험을 한 번 돌아봅시다. 예쁜 빨간색 드레스를 샀는데, 이 드레스를 낮에 보았을 때와 밤에 보았을 때 그 색깔은 같을까요, 다를까요? 백화점 진열대에서 보았을 때 보이는 빨간색의 밝기와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 안방에서 입어봤을 때 보이는 빨간색의 밝기는요? 그 색깔의 물리적 특성(즉, 빛의 파장, 명도, 채도 등)은 분명히 다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인지하는 색깔은 늘 '빨강'입니다. 이를 인지 과학에서는 'color constancy(색의 항상성)'이라고 부르죠.

우리의 뇌가 색깔을 이와 같이 코딩하는 이유는 간단해요. 만약 모든 서로 다른 파장의 색을 모두 각각 다른 색으로 인지한다면, 우리의 뇌가 저장해야 하는 정보의 용량은 말도 안 되게 늘어날 겁니다. 또한 낮과 밤에 각각 서로 다른 색을 본다면, 사람들의 얼굴도 매 순간순간 달라 보이게 되지 않을까요? 그건 우리의 삶을 훨씬 불편하게 만들겠죠. 그래서 진화생물학적으로 보았을 때, 우리의 뇌는 가장 유연하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외부의 사물들의 특성들을 코딩하게 된 거죠. 환경이 변하더라도, 빛의 세기와 주변의 상황이 바뀌더라도 사물들의 기본적인 특성들을 효율적으로 알아볼 수 있게 말이죠. 'color constancy(색의 항상성)'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할 수 있기 위해서는 시각 세포 등에서 전해오는 bottom-up 신호들을 뇌가 효과적으로 걸러내야만 하게 되었구요. 따라서 어떠한 새로운 정보가 들어올 때 뇌 자체에서 top-down 으로 판단을 하고 정보가 미리 들어오기도 전에 빠르게 인지할 수 있게 정보를 처리합니다.

다만, 일부 상황에서 이와 같은 우리 뇌의 인지적 특성이 재미있는 상황을 연출하게 되지요. 예를 들어서, 정확히 똑같은 색깔의 회색을, 어떠한 때에는 검은 색으로, 어떠한 때에는 흰색으로 인지하게 된다든지요. 우리의 뇌가 top-down으로 정보를 거르기 때문에 생겨나는 효과입니다. 밝은 곳에서 주변에 흰색이 있으면 검은색으로 보이는데, 그림자가 걸려 있어서 주변 색들과 비교해 그 그림자 때문에 가려졌다고 판단되면, 흰색으로 보이는 거죠. (링크의 Checker Shadow Illusion 을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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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최근에 본 화이트-골드 또는 블루-블랙 드레스의 경우도 이와 똑같은 illusion입니다. 이 사진에 보여지는 드레스 사진은 어떠한 빛의 세기로 언제 찍혀졌는지 정확히 알기 어려운 경우입니다. 따라서 이 사진의 색깔을 보고, 일부 사람들의 뇌는 그 드레스가 주변이 상대적으로 약간 어두운 실내에서 찍혀 있다고 판단하고 파란색을 일종의 그림자로 판단해 화이트-골드로 보게 되는 것이고, 다른 이들의 뇌는 이 사진이 인공조명 하에 찍힌 것이라고 판단해서 파란색을 좀 더 강하게 인지하게 되어 블루-블랙으로 보게 되는 것이죠. (링크에서 색의 항상성과 관련된 또 다른 예를 참고해주세요. 물리적으로는 정확히 똑같은 파장을 가진 색깔이 주변의 빛의 밝기가 다르게 처리된 사진에서 어떻게 전혀 다른 색으로 보이는지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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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색을 보게 되는 이유는 우리의 뇌가 외부 세계의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 때문이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람마다 정말로 제각각 약간씩 다르게 외부세계를 인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뇌가 외부 세계의 정보, 특히 색깔을 어떻게 인지하는지에 대해서 더 궁금하신 분들은 다음의 TED Talk을 강추합니다. 다양한 예를 들어가면서 아주 명쾌하게 설명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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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외부 세계의 물리적 신호가 우리의 뇌에서 인지하는 바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은 인지심리학자들이나 신경과학자들에게는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인데요. 바로 그렇기에 외부의 물리 신호가 우리의 마음(뇌)에서 어떻게 인지되는지를 연구하는Psychophysics(정신물리학)이 '인지과학'의 가장 기본적인 방법론 중의 하나입니다. 인지과학에서의 기본적인 방법론이라든지, Psychophysics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들은 국내에서 인지과학의 선구자로 꼽히시는 성균관대 이정모 교수님께서 상세하게 정리해 놓으신 여러 블로그 기사들을 참고하셔도 좋습니다.

2)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너무 간단하게 적은 것이 아닌가 좀 걱정되기는 합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뇌 전체로 봤을 때 공통되게 반응하는 세포의 신호는 늘 있습니다. 다만, 시각을 처리하는 부위에서 '빨강'이라는 색에 특이적으로,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서 공통되게 반응하는 그러한 세포의 신호를 찾기 어려운 것이죠. 따라서 위에서 설명한 대로 그 신호를 찾기 위해서는 물리적 신호와 인지되는 신호가 어떠한 부분에서 일치하는지를 Psychophysics를 통해서 먼저 알아내야만 그러한 공통된 신호를 찾아낼 수 있다는 겁니다.

3) 사실 이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많은 동물들에게도 해당됩니다. 예를 들어, Maturana와 Varela는 이러한 똑같은 실험을 비둘기로 한 적도 있습니다. 색깔의 인지와 관련된 신경 세포를 직접 비둘기의 뇌에서 찾아내기 위해서 말이죠. 하지만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먼저 훈련을 통해 '빨강'을 구분할 줄 알게 된 비둘기가 정확히 '빨강'이라고 선택하는 빛의 파장을 가지고 연구해야 그 신호를 뇌세포에서도 찾을 수 있었어요.

4) 최근에는 로봇이나 컴퓨터들도 사물들을 인지하는 방식을 보다 유연하게 하기 위해서 'Computer Vision' 이라는 분야에서 많은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기는 합니다. 인간의 뇌가 외부 사물을 인지하는 방식을 로봇이나 컴퓨터들에게도 적용하려 하는 거죠.

References:

Gegenfurtner, K.R. and Sharpe, L.T. "Color Vision: From Genes to Perception"

Goldstein, E.B. "Sensation and Perception"

Maturana, H.R. and Varela, F.J. "The Tree of Knowledge: The Biological Roots of Human Understanding"

Maturana, H.R. and Varela, F.J. "Autopoiesis and Cogni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