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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28일 08시 38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2월 28일 14시 12분 KST

착취형 성장정책의 파국적 종말

연합뉴스

언론 보도를 보니 박근혜 대통령이 소위 4대 부문 구조개혁, 24개 핵심과제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과 애착을 갖고 있는 모양이다. "정말 자식같이 생각할 정도로 소중한 정책"이라고 했다. 특히 "노동개혁은 우리 청년들의 생존이 달려 있는 문제"라고도 했다. 나름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마련한 정책이란 말 같은데 어쩐지 그 말에 소름이 끼친다. 박 대통령의 허황되고 과장된 말은 단순한 말버릇이 아니라 그 뒤에 박 대통령의 무지와 편견, 아집, 그리고 무모한 자기합리화와 자화자찬이 도사리고 있음을 익히 보았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 때 자기는 실천할 수 없는 것은 절대 약속하지 않는다고 했고, 그리고 모든 약속이 재정적으로 실행가능한지 한개 한개 모두 따져보고 또 따져봤다고 전국민에게 공언했다. 그러나 경제민주화는 시작도 전에 내팽개쳐버렸고, 세월호 약속은 대통령의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뒤에서 와해공작이 시작되었다. 반값 등록금은 무늬만 반값인 채 끝났고, '깃털 뽑기 식' 서민 증세와 담뱃세 인상으로 '증세 없는 복지'는 '복지 없는 증세'로 둔갑하고 말았다. 무상급식, 무상보육, 노인연금, 4대 중증질환, 행복주택, 행복전세도 대부분 변질되거나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말 뒤집기의 선수다.

그런데 박 대통령 자신은 약속을 못 지킨 걸 별로 개의치 않는 것 같다. 약속을 못 지킨 데 대한 미안함 내지는 말을 번복한 데 대한 수치심을 못 느끼는 건지, 혹은 정말 자신은 약속을 다 지켰다고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약속을 못 지킨 건 우매한 신하들과 무지몽매한 백성 탓이지 자기 탓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잘잘못 자체에 대한 판단력이 없는 건지. 이유는 알 길이 없지만 그중에서 박 대통령의 의중에 남아 맹목적으로 추진되는 건 편견과 무지로 가득한 비뚤어진 정책들뿐이다. 잘못에 대한 수치심을 못 느끼니 잘못된 정책에 대한 비뚤어진 신념은 더욱 강력하다. 그것들이 우리 경제를 망치고 있다.

'노동 개악'이 어찌 청년들을 위한 개혁이란 말인가. 비정규직과 자영업자를 양산하는 정책이 어찌 고용대책이란 말인가. 재벌들을 위한 무분별한 규제 완화가 어찌 창조경제란 말인가. 빚내서 집 사는 정책이 어찌 중산·서민층 주거대책이란 말인가. 부동산 투기 조장이 어찌 경기부양 수단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대기업 노동자의 3분의 1은 파견노동자 등 비정규직이다. 월급은 정규직의 3분의 2 이하인데 일을 더 많이 하고 위험한 일은 도맡아 한다. 닭값이 내려가도 치킨값은 올라간다. 양계농가와 치킨집은 수입이 주는데 프랜차이즈 본사는 돈을 더 번다. 정부의 각종 지원은 대기업 몫이고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횡포에 시달린다. 중소기업 노동자의 월급이 대기업의 3분의 2에도 못 미치는 건 당연하다. 그러니 가계소득이 줄어든다. 국민소득에서 가계와 자영업자의 몫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10%포인트 감소했다. 올해 소득 기준으로 150조원에 해당한다. 가계소득이 줄어드니 소비가 줄고, 수명이 길어지니 노후를 대비해 소비는 더욱 줄어든다. 국내총생산에서 가계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우리나라는 50.9%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61.9%에 비해 11%포인트 낮다. 우리나라는 국민소득에서 가계가 가져가는 몫이 그만큼 작다. 인구절벽에 소비절벽이 겹치니 국내 경제가 침체를 벗어날 수 없다.

노동자·자영업자들의 몫을 가져가야 기업이 성장하는 정책, 중소기업 몫을 앗아가야 대기업이 성장하는 정책, 가맹점주 몫을 가져가야 프랜차이즈 본사가 성장하는 정책, 이런 것이 착취형 성장정책이다. 국민들에게 돌아가는 몫을 줄여서 기업을 살찌우는 궁핍화 성장정책이다. 모두를 궁핍하게 만드는 악순환에 빠져든다. 그런 성장이 지속가능할까. 그런 성장을 하면 국민들의 삶이 나아질까. 청년들의 미래가 밝아질까. 가계부채 문제도 폭발한다. 그 끝에는 파국적 종말만이 있을 뿐이다. 박근혜 정부의 정책이 우리 경제를 죽이는 이유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