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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6월 18일 10시 30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08월 18일 14시 12분 KST

괴물쥐가 아니라 슬픈쥐를 보았다

올무를 치켜들자 뉴트리아가 "꿰엑 꿰엑" 고통스러운 소리를 낸다. 종편 프로그램에서 떠들어대듯이 위협적인 모양새는 아니다. 이틀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갇혀 있던 뉴트리아는 그저 생존에 대한 욕망을 꿰엑거리는 소리로 내뱉고 있을 따름이다. 선생은 뉴트리아를 철창에 넣으려다 가져온 당근을 하나 던져줬다. 앞다리가 잘리고 하반신이 올무에 걸린 채로 뉴트리아는 허겁지겁 당근을 먹어치웠다. 나는 어떤 존재가 그토록 무언가를 비참할 정도로 급히 먹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곧 죽을 것을 예감하고도 생존에 대한 욕망을 뿌리치지 못해 애절하게 목숨을 이어가는 존재를 이처럼 눈앞에서 똑똑히 본 적이 없다.

한겨레

다시 뉴트리아 사냥이 시작됐다. 낙동강유역환경청은 얼마전 뉴트리아 퇴치를 위해 뉴트리아를 한 마리당 2만 원에 사들이는 광역 수매제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해당지역 주민은 뉴트리아를 잡아 지자체에 갖다주면 돈을 받을 수 있다. 수매제 대상지역은 창원, 진주, 밀양, 김해 등 경남, 부산 강서구와 사상구 등 13개 기초자치단체다.

해당 지역에는 모두 1만 마리 정도의 뉴트리아가 서식하고 있다. 이 정도로 거대한 군락을 이루어 사는 동물이 광역 수매제로 완벽하게 사라질 수 있을까? 지난해 'GEEK'이라는 남성지에서 일하던 나는 뉴트리아 사냥을 취재하러 경남 밀양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글을 썼다. 합법적인 뉴트리아 사냥(혹은 학살)철을 맞이해서, 당시 잡지에 실렸던 르포르타주를 수정해서 싣는다.

시장에 뉴트리아가 있었다. 1990년대 초반, 나는 부산의 가장 큰 재래시장 중 하나인 동래시장 근처에 살았다. 흥청거리는 시장이라 별의별 게 다 있었다. 닭 파는 집에는 닭은 물론이고 오골계들이 철창 속에서 빼곡하게 고개를 내밀고 울어댔다.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오늘은 닭죽이라도 할까?"라고 중얼거리면 닭집 아저씨는 가장 튼실하게 생긴 닭을 쑥 잡아 들어 올린 다음 흥정이 끝나기도 전에 털을 뽑기 시작했다. 닭집보다 더 무시무시한 건 보양식집이었다. 간판에는 '개소주'라는 글이 벌건 필체로 쓰여 있었다. 엄마는 나에게 종종 개소주를 먹였는데, 나는 개소주에 진짜 개가 들어간다는 건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물론 이후 우리 집안은 개를 키우기 시작하면서부터 개에 관련된 모든 음식을 끊었다).

어느 날 그 보양식집에 기묘한 동물이 하나 들어왔다. 보양식집 주인은 거리에 철창을 내놓고 하얀 쥐 한 마리를 홍보용으로 전시했다. 쥐는 아니었다. 실험용 하얀 쥐에게 매일같이 개소주를 먹여서 덩치를 열 배로 불려놓은 듯한 동물이었다. 이름이 뉴트리아라고 했다. 이름도 외모도 가히 초현실적이었다. 동래시장의 하얀 뉴트리아가 어떻게 됐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새로운 보양식을 찾아 헤매는 중년 남자나, 그 남자의 아랫도리가 영 못마땅한 아주머니의 주문에 따라 뉴트리아는 압력밥솥처럼 생긴 거대한 찜통에 온갖 약재와 함께 들어가 푹 고아진 뒤 30개 들이 진공 비닐 팩에 나눠 담겼을 것이다. 그 시절 부산 어느 아파트의 저녁 자리에서 있었을 법한 대사를 한번 떠올려보자.

"여보. 정력에 좋다는 거 고아왔는데 한번 잡솨보소."

"이기 먼데? 개소주 아이가. 인자 개는 안 묵는다 안카나."

"개 아이라. 이기 남미에서 온 뉴트리... 머라 카데예. 몸에 억수로 좋은 기라."

"뉴트리... 머? 뉴트리라이프?"

"뉴트리라이프. 맞다. 뉴트리라이픈가 누텔란가 그거 맞다. 고마 쭉 들이키소."

"이놈의 마누라가 밤마다 내를 잡을라꼬 아주 환장을 했는갑다."

그 뒤로 뉴트리아를 잊고 살았다. 뉴트리아를 다시 본 건 종편 채널의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였다. '갈 데까지 가보자'라는 제목의 그 다큐멘터리는 아주 종편다운 프로그램이었다. 카메라는 낙동강 부근의 마을로 들어가 낯선 동물들이 뛰어다니는 모습을 호러 영화적 테크닉으로 찍어댔다. 괴물 쥐라고 했다. 십수 년 전 시장 어귀에서 철창에 갇힌 채 압력솥에 들어가길 기다리고 있던 뉴트리아가 거기 있었다.

뉴트리아는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칠레 등 남미에 사는 동물이다. 1980년대 중반에서 1990년대 초반은 버블 경제를 맞이한 한국 농가들이 또 다른 수익 사업에 열중하던 시기다. 소와 돼지 말고 다른 동물들을 키워서 부수입을 올리고 싶었던 농가들은 타조, 오소리 등 많은 외래종을 한국으로 들여왔다. 뉴트리아도 그중 하나였다. 2001년 정부가 뉴트리아를 축산법상 가축으로 지정할 당시에는 470여 농가에서 무려 15만 마리를 사육했다. 사람들은 뉴트리아를 먹지 않았다. 모피도 사지 않았다. 아무리 '민물물개'나 '늪너구리'라는 애칭을 지어준들, 사람들 눈에 뉴트리아는 거대한 쥐일 뿐이었다.

수익이 안 나오자 많은 농가들은 사육을 포기하고 뉴트리아를 축사에서 내보냈다. 뉴트리아는 열대 동물이다. 기온이 영상 5도 이하로 떨어지면 동상에 걸려서 죽거나 생식 능력을 잃어버린다. 뉴트리아를 내보낸 농장주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어차피 다 얼어 죽거나 스스로 멸종할 테니 그냥 내보내도 큰 문제는 없을 거라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생명은 신비하다. 인간이 적응하듯 동물도 적응하고, 인간이 진화하듯 동물도 진화한다. 야생화된 한국의 뉴트리아는 몇 세대를 지나오면서 겨울에 완전히 적응을 한 채 급속하게 퍼져나갔다. 수천 마리가 낙동강을 중심으로 번성하기 시작했다. 2009년 6월 환경부는 결국 뉴트리아를 생태계교란종으로 지정했다. 축산법상 가축으로 지정한 지 겨우 8년 만의 일이다.

그 뉴트리아를 보러 낙동강으로 내려갔다. 물론 뉴트리아를 취재하기 위해서는 먼저 취재원을 찾아야 했다. (2013년 당시) 부산시는 뉴트리아 박멸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시민들이 뉴트리아를 잡아 관할 구청에 신고하면1마리당 3만원의 포상금을 준다. 부산시 환경정책과에 전화를 걸었다. "저는 기잔데요, 뉴트리아 대책 관련 기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관계자와 통화할 수 있을까요?" "외근 나갔습니다." 이틀을 전화기에 매달려 있다가 겨우 통화가 성사됐다. "요즘 낙동강에 생태교란종 뉴트리아가 번식해서 골치가 아프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뉴트리아를 잡는 일을 하시는 분을 만나 뵙고 싶은데요." "그분들 연락처는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뉴트리아 문제의 심각성과 시의 노고를 치하하는 기사를 쓰고 싶은데요." "개인정보라 연락처는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아 그래도. 제가 직접 내려가서 만나 뵙기라도 할 수 없을까요?" "곤란합니다. 감사합니다.(철컥)"

왜 취재를 원하지 않는지는 짐작이 갔다. 언론에 A씨 혹은 B씨로만 등장하는 뉴트리아 사냥꾼들은 한 달에 100~200마리를 잡는다. 마리당 3만원이니 한 달에 300만에서 600만원의 수익을 거둘 수 있다. 여러 기사에 따르면 이들은 석궁이나 몽둥이, 골프채 등을 사용해서 뉴트리아를 때려잡는다. 뉴트리아는 순하고 동작이 굼떠서 잡기 그리 힘들지 않다. 시청 공무원들에게도 가장 중요한 건 실적일 것이다. 얼마나 많은 숫자의 뉴트리아를 잡았는가가 중요하다. 얼마나 인도적으로 뉴트리아를 잡았는지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들로서는 동물 보호 단체의 눈길이 꽤 골치 아플 것이다. 서울에서 온 기자 역시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대신 나는 경상남도 창녕군 우포늪에서 뉴트리아를 잡는다는 한 남자를 찾기로 했다. 즉시 창녕군청에 전화를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의 기잔데요, 뉴트리아 문제가 심각하다면서요?" "낙동강유역환경청으로 전화하세요.(철컥)" 낙동강유역환경청으로 전화했다. "저는 서울의 잡지 기잔데요, 뉴트리아 취재를 위해 전화를 드렸습니다. 뉴트리아를 전담으로 잡으신다는 선생님 전화번호를 알고 싶습니다." 환경청 직원은 친절히 번호를 알려줬다. 취재의 의도를 이해한 것 같았다. 환경 관련 단체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일지도 모르겠다.

우포늪까지 가는 방법은 간단하다. KTX를 타고 밀양으로 들어간 뒤, 시외버스를 타고 다시 창녕읍으로 간다. 거기서 또다시 시외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타면 된다. 밀양에 도착하자마자 택시를 잡았다. "우포늪 가주세요. 1시간 안에는 가야 합니다." "무신 일로 오셨능교?" "우포늪 취재 왔습니다." "사진 찍으러 왔는가." "아뇨. 뉴트리아 잡으시는 분이 있다고 해서요." 뉴트리아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기사의 말이 쏟아졌다. "글마들 억수로 많다 아입니까. 낙동강 변에 가면 마 드글드글하다더라꼬." "직접 보신 적 있으세요?" "봤지예. 쥐는 쥔데 억수로 큰 쥔기라. 그것들 마 다 잡아 죽이삐야 되는데."

여기서 나는 궁금함을 참을 수가 없었다. 뉴트리아가 매일같이 도로를 달리는 택시 기사에게 직접적인 위협이나 영향을 끼친 적은 없을 것이다. 왜 기사는 모조리 잡아 죽여야 한다고 흥분을 하는 걸까. "뉴트리아를 다 그렇게 잡아 죽여야 할 이유는 뭐가 있을까요?" "테레비 안 봤는교. 괴물 쥐 아이가 괴물 쥐. 사람 손가락도 짤라 묵는다데." 남미의 뉴트리아는 비교적 온순하기로 유명하다. 자기보다 덩치가 큰 사람은 공격하지 않는 동물이다. 온순한 성질 덕분에 한국에서도 가축으로 사육이 가능했다. 그러니까 지금 한국인에게 뉴트리아는 본래의 모습이 아니라 TV 카메라가 온갖 영상과 음향 효과를 넣어서 '사람 손가락을 절단할 만큼 이빨이 큰 괴물 쥐'로 홍보한, 일종의 미신적 괴물에 가까운 존재인 셈이다.

우포늪에 도착하자마자 뉴트리아 선생이 작은 스쿠터를 타고 왔다. 이 남자는 매일 배를 타고 우포늪을 순찰하며 불법 낚시꾼을 감시하고 쓰레기를 제거한다. 물론 뉴트리아 포획도 주요 일과 중 하나다. 그는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큰 상을 받은 적도 있다. "뉴트리아가 많나 봅니다?" "처음에는 많았어요. 지난 5년 동안 600마리 넘게 잡았으니까. 내 덕분에 우포늪에는 뉴트리아가 더 못 들어와." 순간 저널리스트로서의 공포가 급습했다. 뉴트리아가 우포늪에 더 들어오지 못한다고? 그렇다면 여기까지 내려와서 뉴트리아를 보지 못한다는 소린가? 주영학 선생이 내 얼굴에 드리운 그늘을 감지한 듯 말했다. "그래도 매주 한두 마리씩은 잡재. 내일 아침 일찍 이 자리에서 만납시다. 운이 좋으면 잡을끼고, 운이 없으면 우짜겠노."

선생이 떠난 다음 우포늪 주변을 혼자 걸었다. 이름이 늪이라고 조그마한 늪을 상상해서는 안 된다. 우포늪은 대한민국 최대의 내륙 습지다. 전체 면적은 무려 70만여 평이다. 1억4000만 년 전에 생성된 이 늪에는 환경부가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는 340여 종의 식물과 62종의 조류, 28종의 어류가 살고 있다. 주변을 잠시 걷기만 해도 이 거대한 늪의 가치를 알 수 있다. 쇠백로가 날갯짓을 하며 내려앉고, 고니와 청둥오리가 열심히 물질을 한다. 족제비와 너구리는 물론, 한국의 다른 지역에서는 거의 멸종된 삵도 빈번히 발견된다.

거대한 늪 어딘가에 뉴트리아가 살고 있다. 낮에는 굴을 타고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뒷발의 물갈퀴를 이용해 헤엄을 치며 식물의 뿌리를 갉아 먹을 것이다. 뉴트리아는 분명히 여기에 있다. 나는 그걸 꼭 보고 올라가야만 했다. 다음 날 아침 다시 우포늪으로 향했다. 아침의 우포늪은 더욱 근사하다. 닦지 않고 내버려둔 욕실 거울을 70만여 평의 땅에 통째로 올려놓은 듯 탁하게 반짝인다. 선생이 스쿠터를 타고 약속 장소로 달려왔다. "준비 됐는교? 그라몬 저 배를 타고 한번 나가 보입시다." 배? 무슨 배? 늪 어귀에 배는 없다. 아, 있긴 있다. 어린아이들이 나무판자로 뚝딱뚝딱 하루 만에 만든 뗏목 비슷한 것이 하나 떠 있다. "이걸 타고 간다고요?" "그렇지" 사지가 덜덜 떨리지만 어쩔 도리 없다.

선생은 매일매일 덫을 놓는다. 작은 쪽배로 늪을 돌면서 작은 섬 위에 덫을 놓고, 아침이면 덫에 걸린 뉴트리아를 포획한다. 덫이 있는 곳은 노란 쇠막대기를 꽂아놓았기 때문에 멀리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뉴트리아가 잡히면 바로 알 수 있재. 요놈이 덫에 걸린 채로 쇠막대기를 짚고 서서 누가 오나 안 오나 감시하고 있거든." 첫 섬에 도착했다. 뉴트리아는 없다. 덫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고무 패킹이 씌워져 있다. 쇠갈퀴가 날카롭게 달려 있는 덫을 상상했는데 비교적 인도적으로 고안된 덫이다. 덫 옆에 뉴트리아가 누고 간 똥이 있다. 어른 남자 새끼손가락만 하다. "요놈들이 꽤 영리해서 요새는 덫을 피해서 이래 똥만 누고 가더라고." 덫 옆에서 시원하게 배설만 하고, 자신도 모르게 인간을 조롱하고 떠난 뉴트리아가 왠지 영특하게도 느껴졌다.

섬을 몇 군데 더 돌았다. 갑자기 배 옆에서 물장구가 튀어 오른다. 선생이 소리를 빽 지르며 놀란 나를 우습다는 듯이 바라봤다. "가물치요 가물치. 근데 기자님들 싣고 다닐라니 힘드네. 잠시만 기다리 보소." 선생이 갑자기 나를 섬에 떨어뜨려놓고 어디론가 배를 타고 가버렸다. 광활한 늪으로 둘러싸인, 코끼리 등만 한 섬에 홀로 앉아 20여 분을 기다렸다. 덫과 뉴트리아의 똥을 바라보며 앉아서는 유년기 내 무의식의 일부를 잠식한 소설을 하나 떠올렸다. <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는 1972년 발간된 리처드 애덤스의 소설로, 주인공 토끼들이 재앙이 닥친 고향을 탈출하는 과정을 그린 모험극이다. 토끼가 주인공이라고 얕봐서는 안 된다. 택지 개발로 위험해진 고향을 떠나는 이 토끼 모험담은 죽음과 피와 살상으로 넘치는, 이를테면 '생존에 대한 욕망'을 말하는 놀라운 걸작이다. 나는 그 순간 덫에 발이 걸린 채 불안에 떠는 뉴트리아가 된 기분이 들었다.

20여 분 뒤 선생이 뉴트리아를 배에 싣고 왔다. "한 마리라도 있어서 다행이네." 진짜 뉴트리아다. 몸집은 거대한 고양이만 하다. 둥글둥글한 생김새가 쥐보다는 오히려 수달이나 비버에 가깝다. 물갈퀴는 뒷다리에만 달려 있다. "이놈들은 수달처럼 헤엄을 잘 치지는 못해. 잠수는 못하고, 얼굴을 물 밖으로 내놓고 뒷발로만 헤엄을 치거든." 선생에 따르면 처음 뉴트리아가 우포늪에 나타난 12년 전, 마을 주민들은 처음 보는 이 동물을 수달로 착각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다들 수달이 나타난 줄 알았는데, 갑자기 정부에서 이거를 박멸해야 된다는 기라." "왜요?" "생태계를 해치니까 그렇지. 여기가 철새로 유명한 늪인데 철새가 묵어야 되는 식물 뿌리를 다 갉아 묵고...." "철새를 직접 먹지는 않죠?" "아이고. 묵지. 철새 새끼도 잡아 묵고. 배고프면 다 묵재." "사납지는 않아 보이는데요?" "그래도 이래 올무로 잡을라카몬 사나와." 물론이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존재는 사나워지게 마련이다.

선생이 잡은 뉴트리아는 앞다리 하나가 절단된 상태다. 아마도 덫에 걸린 다리를 빼려다 상처를 입은 모양이다. 선생은 직접 만든 올무로 뉴트리아를 잡고 있다. "목이 마를낀데 물이라도 묵게 해야지. 봐라 봐라. 목 많이 말랐는갑다." 뉴트리아가 하반신에 올무를 건 채 물속에 들어가더니 물을 벌컥벌컥 들이켠다. 아무래도 뉴트리아는 물속이 훨씬 편해 보인다. 선생이 올무를 치켜들자 뉴트리아가 "꿰엑 꿰엑" 고통스러운 소리를 낸다. 종편 프로그램에서 떠들어대듯이 위협적인 모양새는 아니다. 이틀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갇혀 있던 뉴트리아는 그저 생존에 대한 욕망을 꿰엑거리는 소리로 내뱉고 있을 따름이다.

선생에 따르면 잡은 뉴트리아는 뭍에 있는 철창에 가둬놓는다. 그렇게 산 채로 보관하다가 우포늪을 견학하러 온 관광객들에게 교육용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시간이 흘러서 죽은 뉴트리아는 비닐봉지에 싼 뒤 거대한 냉동고에 보관해두다가 서울로 올려 보낸다(살아 있는 뉴트리아가 어떻게 죽는지에 대해서는 선생도 별 설명이 없었다. 나도 그에 대해서 꼬치꼬치 캐묻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서울로요? 죽은 채로요?" "어떤 건 환경청에서 실험용으로 쓰기도 하고...." "그럼 남은 것들은요?" "서울에 있는 동물원에도 보내재." "죽은 채로 동물원에 보내면 뭐에 쓰나요?" "사자 먹이로 준다카데."

선생은 뉴트리아를 철창에 넣으려다 가져온 당근을 하나 던져줬다. 앞다리가 잘리고 하반신이 올무에 걸린 채로 뉴트리아는 허겁지겁 당근을 먹어치웠다. 나는 어떤 존재가 그토록 무언가를 비참할 정도로 급히 먹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곧 죽을 것을 예감하고도 생존에 대한 욕망을 뿌리치지 못해 애절하게 목숨을 이어가는 존재를 이처럼 눈앞에서 똑똑히 본 적이 없다.

선생은 뉴트리아를 철창에 넣고 스쿠터에 시동을 걸었다. "사진 잘 나왔는가 모르겠네. 잘 나오면 책 하나 보내주소." 선생은 스쿠터를 달려서 늪을 둘러싼 보 건너편으로 사라졌다. 나는 선생이 덫에 손수 달아놓은 고무 패킹을 떠올렸다. 그리고 뉴트리아를 가둬놓은 철창 속에 던져놓은 갖은 채소와 당근을 생각했다. 그는 마리당 3만원을 받기 위해 석궁과 골프채로 이 영문 모를 설치류의 머리를 내려치는 사냥꾼이 아니다. 늪을 지키기 위해 정부가 생태교란종으로 지정한 동물을 포획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적어도 뉴트리아의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덫에 고무 패킹을 다는 사람이다. 나는 선생 앞에서 뉴트리아의 생존권에 대한 인텔리적인 교화 따위 늘어놓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그는 우리가 벌여놓은 일을 묵묵히 대신 해결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말이다. 과연 뉴트리아가 완벽하게 사라지는 게 가능할까? 낙동강 유역에서 2012년 한 해 잡힌 뉴트리아만 1000마리에 달한다. 당연히 그 몇 배가 넘는 뉴트리아가 이미 자신들만의 생태계를 만들어 살고 있다는 소리다. 뉴트리아는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은 이미 1930년대에 모피를 얻기 위해 미시시피 지역에 뉴트리아를 방사했다(사육이 아니라 방사라니, 가히 미국적인 스케일이다). 1980년대 모피 가격이 폭락하자 누구도 방사된 뉴트리아를 포획하지 않았다. 미국 정부는 뉴트리아 퇴치 프로그램을 시행해서 거의 박멸 단계까지 갔으나, 애초에 생태계로 들어선 특정 종을 완벽하게 박멸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수만 마리의 뉴트리아는 태곳적부터 거기 있었다는 듯 여전히 미국 남부의 습지대에 살고 있다.

한국 역시 뉴트리아 박멸을 외치고 있지만 아마도 완벽한 박멸은 불가능할 것이다. 붉은귀거북, 황소개구리, 배스, 블루길 등 인위적으로 한국에 들여온 외래종 중 완벽하게 멸종하거나 박멸된 동물은 없다. 다들 어떻게든 자기들만의 방법으로 살아간다. 우리가 들여오고 우리가 때려잡는 뉴트리아 역시 그렇다. 박멸과 멸종은 가능한 일이 아니다. 가까운 미래에 우리는 뉴트리아와 함께 살아야 하는 법을 배워야 할지도 모른다.

나는 괴물 쥐를 보러 우포늪으로 갔다. 그러나 종편 프로그램과 뉴스들의 표현은 틀렸다. 낙동강에 괴물 쥐는 살지 않는다. 거기에는 슬픈 쥐가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