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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1월 06일 09시 02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1월 07일 14시 12분 KST

정치적 알레르기와 함께 살아가는 법

Jasper James via Getty Images

일본 도쿄의 113년 된 전통의 소바집이 문을 닫았다. "점주의 메밀 알레르기 악화로 잠시 문을 닫게 됐습니다. 메이지 36년(1903년) 이후 113년 동안 사랑해주신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4대에 걸쳐 전통을 지켜오던 소바집이 주인의 메밀 알레르기로 문을 닫다니, 정말이지 슬픈 아이러니다. 당신이 알레르기를 앓고 있지 않다면 그깟 알레르기쯤 의지로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 알레르기는 완벽한 치료법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복숭아와 번데기 알레르기가 있다. 번데기가 더 치명적이다. 나이가 들어 생긴 번데기 알레르기를 처음 알게 된 건 2008년 광우병 시위에 나간 첫날이었다. 추운 겨울 촛불을 들고 이명박의 이름을 외치다가 온몸으로 스며드는 한기를 이겨낼 수가 없었다. 번데기 가판대가 보였다. 번데기 국물 한 사발만 들이켜면 괜찮아질 것 같았다. 번데기를 삼키자마자 목이 붓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지경이 됐다. 물을 한 사발 들이켜고 한참을 쉰 다음에야 부기는 가라앉았다. 번데기 먹고 죽을 뻔했다.

2017년은 희망의 해다. 촛불 민심은 현실정치를 바꿔 놓았다. 한국인들에게 일종의 고질에 가까웠던, 정치에 관계된 것들을 몸이 저절로 거부하는 정치 알레르기가 지금처럼 적었던 시절도 오랜만이다. 모두가 뉴스를 보고 촛불을 들고 스티커를 붙이며 진정한 민주주의를 부르짖는다. 세상이 당연히 바뀔 거라는 긍정의 힘이 가득하다.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하나 있다. 대통령이 탄핵된다고 곧바로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

브라질 노동자당의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은 경제적 무능과 국영 석유기업 관련 부패로 탄핵당했다. 그러나 탄핵은 브라질의 계속되는 정치적 위기를 전혀 해결하지 못했다.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된 우파 성향 브라질민주운동당의 미셰우 테메르는 공공지출을 동결하고 사회보장제도를 파괴하려 하고 있다. 동시에 테메르의 정당은 부패 혐의가 있는 정치인들을 오히려 보호하고 나섰다. 호세프 탄핵 이후에는 지자체 선거가 벌어졌다. 노동자당은1980년 창당 이래 최악의 참패를 당했다. 국민은 대통령을 탄핵시켰지만 브라질의 민주주의는 그다지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탄핵을 둘러싼 한국과 브라질의 정치 상황은 조금 다르다. 하지만 이런 질문은 던질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 탄핵 이후 진정한 정치적 개혁이 이루어질 것인가? 일단 야당은 앞서 나간다. 야당 후보들이 지금처럼 여당 후보들을 압도했던 적은 없다. 문재인이 앞서 나가지만 이재명은 만만찮다. 안철수, 안희정, 박원순, 김부겸, 손학규 등 다른 후보들에게도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힘을 무조건 하나로 모아야 할 때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몰아주기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경쟁은 중요하다.

그러나 야권 후보의 열성 지지자들이 지금처럼 서로의 후보와 지지자들에게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며 견고한 자기만의 소독구역에 높은 담을 쌓은 풍경도 드물어 보인다. 문재인 지지자는 이재명을 파괴하고 싶어한다. 이재명 지지자는 다른 모든 후보들이 구악이라고 말한다. 모든 후보의 지지자들이 다른 후보 지지자들을 밀어내고 싶어한다. 각각의 후보 진영은 지지자들의 이런 알레르기 반응을 순화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상대에게 보내는 분노를 전혀 컨트롤할 생각이 없었고, 그것이 어느 정도는 민주당 패배에 영향을 끼친 클린턴과 샌더스의 실수는 여전히 교훈적이다. 그러는 와중에 비박은 새누리당을 떠났다. 결국 같은 파워를 누리던 같은 조직이지만 막상 표를 던지는 오래된 여권 지지자들에게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반기문은 본격적으로 대선 도전을 선언했다. 6월항쟁으로 얻은 기회를 놓치고 구시대의 연장을 가져왔던 13대 대통령 선거의 기억은 여전히 쓰라리다.

알레르기는 치료할 수 없다. 그렇다면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113년 소바집의 4대 점주는 대를 이어 내려온 전통을 잇겠다는 의지로 모든 대책을 강구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어쩌면 비닐로 만든 작업복을 입고 메밀을 반죽할 수도 있다. 알레르기를 유발하지 않는 특정한 종류의 메밀을 고안할 수도 있다. 혹은, 자신은 가게를 소유한 관리자의 자리로 내려가고, 직접 메밀을 반죽하며 맛을 이어나갈 수 있는 전문가를 고용할 수도 있다. 제 손으로 꼭 전통을 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그게 누구든 전통을 이어나가는 것이다.

*이 글은 한겨레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