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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18일 05시 54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1월 18일 14시 12분 KST

호러영화가 더 이상 무섭지 않은 건

왜 제대로 된 장르 호러는 만들어지 않는 걸까? 유행이 지나서? 흥행 안전주의 때문에? 모두 맞는 이유겠지만 나는 다른 하나를 지적하고 싶다. 더 이상 한국인들은 장르 호러 따위에 공포심을 느끼지 않거나, 굳이 공포를 느끼기 위해 영화관을 찾을 필요가 없는 부류가 되었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호러는 사치스러운 장르이다. 스크린에서만 존재하는 극단적인 자극을 추구하려면 권태가 필수다. 하지만 현실이 공포이고 증오와 불안이 당연한 삶의 일부가 된 사람들이 굳이 그것만을 찾아 극장을 찾을 이유가 있을까?

한국 사람들이 만드는 '장르 호러' 영화에 기대가 컸던 적이 있었다. <여고괴담>시리즈가 나오고 <장화, 홍련>이나 <4인용 식탁>과 같은 영화들이 나오던 무렵이다. 그때부터 나는 해마다 한국 호러 영화 결산을 했는데, 점점 재미가 없어졌고 최근 들어서는 "왜 이런 걸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올해 나온 한국 장르 영화로는 <검은 손>이라는 게 있는데 혹시 들어보셨는지? 처음 들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굳이 알 필요 없는 형편없는 영화이다. 그 영화를 제외하면 장르 호러로 만들어진 영화는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올해 한국 영화계에서 호러 영화의 성과가 나쁘다고는 못하겠다. 순수한 장르 호러로 만들어진 영화는 극히 적으며 무시해도 된다. 하지만 호러에 절반 정도만 발을 걸치고 있거나 호러 영화이면서도 호러로 소비되고 있지 않는 영화들은 의외로 많다. 그리고 그 성과도 괜찮은 편이다.

예를 들어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은 <서스피리아>스타일의 기숙사 호러인 것처럼 흐르다가 중간에 갑자기 에스에프(SF)로 방향을 전환한다. 이 때문에 호오가 심하게 갈리긴 하는데, 이 영화에 부정적인 관객이라도 안이한 장르 영화라는 소리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올해 최고 컬트 영화였던 <무서운 집>은 세상에서 가장 안이하고 성의없어 보이는 장르 아이디어와 이야기를 갖고 전혀 새로운 종류의 영화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여기서 호러는 분명 배꼽을 잡을 정도로 웃기지만 그렇다고 온전한 코미디는 아닌 이상한 영화를 만들기 위한 재료로 사용된다.

최근 개봉작에도 호러는 있다. <그놈이다>는 겉보기엔 <추격자>스타일의 스릴러를 의도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호러다. 귀신과 예언이라는 초자연현상을 소재로 도입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이 영화에는 마리오 바바, 다리오 아르젠토로 이어지는 이탈리아 호러 전통, 앨프리드 히치콕의 <싸이코>를 기반으로 삼은 할리우드 호러의 전통이 단순한 복사를 넘어 자연스럽게 영화적 언어를 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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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인기를 끌고 있는 <검은 사제들>은 <엑소시스트>의 전통을 이은 정통 호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호러 팬보다는 넓은 관객층에 호소하고 있으며 그게 먹히고 있다. 물론 이 영화의 인기에 가장 큰 공헌을 하고 있는 것은 주연배우 강동원의 스타 파워이다.

이들은 모두 흥미로운 영화들이지만 여전히 우리에겐 장르 호러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렇게 충분한 재료들이 있는데도 왜 제대로 된 장르 호러는 만들어지 않는 걸까? 유행이 지나서? 흥행 안전주의 때문에? 모두 맞는 이유겠지만 나는 다른 하나를 지적하고 싶다. 더 이상 한국인들은 장르 호러 따위에 공포심을 느끼지 않거나, 굳이 공포를 느끼기 위해 영화관을 찾을 필요가 없는 부류가 되었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호러는 사치스러운 장르이다. 스크린에서만 존재하는 극단적인 자극을 추구하려면 권태가 필수다. 하지만 현실이 공포이고 증오와 불안이 당연한 삶의 일부가 된 사람들이 굳이 그것만을 찾아 극장을 찾을 이유가 있을까? 이열치열을 노리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 소수의 관객들을 만족시키려면 현실의 공포를 넘어서는 극단적인 충격 효과를 끌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상업영화의 테두리 안에서 그런 모험을 할 강심장들이 얼마나 될까. 그런게 가능한 사람들은 몇이나 될까.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