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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04일 06시 03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1월 04일 14시 12분 KST

지루한 불의 지루한 고발

바뀌지 않는 세계에서 사회비판물은 장르화된다. 그리고 그건 별로 좋은 장르도 아니다. 드래곤과 마법사와 엘프가 등장하는 판타지 장르와는 달리 대한민국 사회비판물 장르에서 소재로 가져오는 건 딸 뻘인 젊은 여자들을 만지작거리고 폭탄주나 마시는 게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줄 아는 지루하고 못생긴 늙은이들뿐이다. 이들이 하는 짓은 늘 똑같고 이들과 맞서는 사람들의 승리와 좌절의 코스도 비슷하다. 지루한 악당은 지루한 이야기를 만들고, 지루한 세상은 지루한 예술을 만든다.

쇼박스

우민호 감독의 <내부자들> 시사회에서 돌아왔다. 윤태호의 미완성 웹툰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부패한 정치가, 언론인, 기업가들에 맞서는 검사와 정치깡패 이야기다. 같이 간 동행은 다르게 각색한 부분을 지적하며 원작이 얼마나 나은지 열변을 토했는데, 원작을 읽은 적이 없지만 같은 작가의 <이끼>를 읽은 적이 있는 나로서는 조용히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내부자들>이 잘 캐스팅된 배우들의 호연이 빛나고, 지금 세계에 대해 의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잘 만든 영화이며, 우민호 감독의 영화 중에는 가장 좋은 작품이라는 것이다. 적어도 전에 나온 <이끼> 영화판보다는 훨씬 좋은 각색물이다.

그러나 위에 적은 수많은 긍정적인 표현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영화를 그렇게 즐기지는 못했다. 재미가 없어서는 아니다. 반대로 상당히 재미있는 편이고, 다소 도식적이고 예측가능한 결말에도 관객들을 움직일 만한 나쁘지 않은 카타르시스가 있다. <내부자>라는 영화 자체에는 잘못이 없다. 문제는 이 이야기 자체가, 심지어 그 도발성마저도 식상해졌다는 데에 있다.

재벌을, 정치가를, 언론을, 썩어빠진 역사를 고발하는 영화를 만드는 것은 이제 아주 쉬운 일이 되었다. 올해는 그런 영화들 중 두 편(<베테랑>, <암살>)이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난 지금 이 글을 쓰면서 <화려한 유혹>이란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여기에도 부패한 정치가와 썩은 언론 그리고 척 봐도 몇 시간이면 풀 수 있는 유치한 암호를 갖고 몇 년 째 쩔쩔매는 무능한 검·경찰이 등장한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나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이나, 이 작품들에서 슬쩍 바꾼 정당명이나 기타 고유명사가 실제 세상의 무엇과 연결되는지 다 알고 있다. <화려한 유혹>의 애들 장난 부호가 진짜 암호가 아닌 것처럼 이런 것들은 암호가 아니다.

어떤 이야기건 할 수 있는 자유를 준다면 그 자유를 갖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세상이 바뀌었다. 무슨 이야기든 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오로지 이야기로만 소비한다.

<도가니>처럼 구체적인 대상을 지목하는 작품은 어느 정도 대중을 움직일 수도 있다. <소수의견>이 개봉까지 그렇게 애를 먹었던 이유도 대상이 그만큼 구체적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화려한 유혹> 정도만큼 타겟이 넓어져도 대중은 오로지 그것을 이야기 재료로만 보며 현실과의 연결성을 끊어버린다. 나로서는 <내부자들>이 이보다는 선전하며 세상 밖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기 바란다. 하지만 이미 <베테랑>을 거쳐왔기 때문에 큰 기대는 없다.

바뀌지 않는 세계에서 사회비판물은 장르화된다. 그리고 그건 별로 좋은 장르도 아니다. 드래곤과 마법사와 엘프가 등장하는 판타지 장르와는 달리 대한민국 사회비판물 장르에서 소재로 가져오는 건 딸 뻘인 젊은 여자들을 만지작거리고 폭탄주나 마시는 게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줄 아는 지루하고 못생긴 늙은이들뿐이다. 이들이 하는 짓은 늘 똑같고 이들과 맞서는 사람들의 승리와 좌절의 코스도 비슷하다.

지루한 악당은 지루한 이야기를 만들고, 지루한 세상은 지루한 예술을 만든다. 잘못된 세상에 대한 분노를 느껴야 할 타이밍에 경멸과 생물학적 혐오감이 먼저 찾아온다면 장르의 기능을 재점검할 수밖에 없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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