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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5월 13일 12시 15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5월 13일 14시 12분 KST

'내 멋대로 번역' 끔찍한 자막

체격이 있는 여자 코미디언을 '뚱땡이'라고 부르면 재미있을 거라는 기계적인 생각의 처참함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겠다. 하지만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남성 페미니스트로 지금까지 꾸준히 고정된 성 이미지 전복을 시도했던 감독의 영화에 이런 대사를 넣는 아이디어가 과연 정상인가? 이게 문제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번역을 맡은 사람들이야말로 관객들에게 바보 취급을 받아 마땅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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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나의 영화 불평 | 스파이

얼마 전에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블루레이 예매가 시작되었다. 비교적 늦게 나오는 이 블루레이의 가장 큰 장점은 새로 번역한 자막이다. 이 영화 극장판 자막 문제는 개봉 당시에도 꾸준히 지적되었다. 수세기 동안 살아온 뱀파이어들이 언급하는 사람들이 누구이고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관객들에게 알려주려고 안달이 나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지나치게 설명을 늘어놓고, 뉘앙스가 깨졌을 뿐 아니라 번역가의 착각과 실수, 자포자기한 태도 때문에 충분히 번역 가능한 대사들이 종종 엉뚱한 내용이 되었다. 이번 블루레이는 그 문제를 해결했다고 하니 다들 기대하는 것도 당연하다.

자막 번역에는 온갖 종류의 문제가 있다. 실수에 바탕을 둔 오역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다양한 모양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필자가 다룰 문제는 관객들의 편의를 봐준다는 이유로 들어가는 의식적인 의역과 창작이다. 이 문제 뒤에는 관객들을 형편없이 무식하게 보는 태도와 어떻게든 그런 관객들의 반응을 끌어내야 한다는 강박증이 깔려 있다.

자막 번역에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할 생각은 없다. 자막은 태생상 글자 수에 한계가 있다. 문화 장벽 때문에 직역만으로는 의미를 전달할 수 없는 단어, 고유명사, 표현이 분명히 있다. 소설 독자보다 영화 관객들은 훨씬 폭이 넓으며 그들은 이해 못하는 단어나 개념을 되씹을 시간 여유가 없다. 물론 주석도 없다.

하지만 여기에는 정도가 있다. 영화가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이야기만 할 수는 없다. 영화는 그렇게까지 천진난만한 매체가 아니다. 에스에프(SF)라면 평범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과학적 개념을 늘어놓을 수 있고, 전문가 영화라면 당연히 전문용어가 나온다. 이런 대사는 원어로 들어도 진입장벽이 있다.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의 자막 번역가는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누군지 모를 관객들을 위해 19세기의 페미니스트라고 설명을 붙여놓는다. 하지만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이름은 영어권에서도 어느 정도 진입장벽이 있는 교양에 속한다. 짐 자무시의 뱀파이어 영화를 보러 온 아트하우스 영화 관객들에게 굳이 그런 진입장벽을 낮추어 줄 필요가 있을까?

더 끔찍한 경우는 코미디 번역에 있다. 코미디는 시처럼 쉽게 번역되지 않는 장르다. 대중적인 장르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우디 앨런처럼 작정하고 '고급' 티를 내는 경우를 제외하면 각본에 손을 대고 싶어하는 건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들이 사용하는 도구들, 최신 유행어나 비속어, 재창조된 대사들이 내용을 살리는 데에 도움을 주는 경우가 얼마나 되던가? 과연 번역자들은 그 영화의 내용을 재창조할 만큼 영화에 대해 잘 알고는 있는 건가?

폴 피그 감독, 멀리사 매카시 주연의 <스파이>가 곧 개봉한다. 시사회에서 이 영화를 먼저 접한 관객들에게서 끔찍한 소리가 들려온다. <에스엔엘>(SNL) 작가들이 영화의 자막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다운튼 애비>를 <셜록>으로 번역한 건 위에서 언급한 관객 바보 취급에 들어간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나이차가 별로 안 나는 남녀 스파이에게 존대의 계급을 부여하고 원래 대사엔 있지도 않은 매카시의 캐릭터를 호칭하는 '뚱땡이'라는 욕설을 잔뜩 넣었다는 것이다. 그보다 더 비하하는 욕설도 있었던 모양인데, 여기서 언급하지는 않겠다.

체격이 있는 여자 코미디언을 '뚱땡이'라고 부르면 재미있을 거라는 기계적인 생각의 처참함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겠다. 하지만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남성 페미니스트로 지금까지 꾸준히 고정된 성 이미지 전복을 시도했던 감독의 영화에 이런 대사를 넣는 아이디어가 과연 정상인가? 이게 문제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번역을 맡은 사람들이야말로 관객들에게 바보 취급을 받아 마땅한 게 아닐까?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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