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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1월 31일 10시 56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2월 01일 14시 12분 KST

'도련님 기자'의 자기기만에 대하여

오드

리베카 밀러의 〈매기스 플랜〉을 더 많은 사람이 보았으면 좋겠다. 정말 사랑스럽고 재미있는 영화이기도 하지만, 이 영화처럼 인문학적 매력이 철철 넘쳐흐르면서도 가차없이 인문학자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인문학 하는 남자들을 까대는 영화도 흔치 않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그만큼이나 스템(STEM, 과학·기술·공학·수학) 전공 남자들의 매력을 아름답게 홍보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중간엔 좀 감동스럽기까지 하다.)

이 영화에서 폭격의 대상이 되는 인물은 이선 호크가 연기하는 존이라는 인류학자다. 유명한 아내 조젯의 그림자 밑에 깔려 있던 그는 자신의 소설 초고를 읽고 좋아하는 매기라는 대학 직원과 사랑에 빠진다. 그는 아내와 이혼하고 매기와 결혼하는데..., 이 영화를 나보다 먼저 보고 여러 차례 언급한 허지웅의 표현을 빌린다면, 그는 그 순간부터 '한남이 된다'. 돈도 안 벌고 애들도 안 돌보고 집안일도 안 하고 소설만 쓰는데, 그 소설도 제대로 풀리지 않아 성질만 내고 억울해한다.

인문학도처럼 자기기만에 빠지기 쉬운 부류는 없다. 그들은 언어와 개념을 잘 다루기 때문에 언제든지 이 둘을 이용해 자신을 방어할 수 있다. 이 익숙함이 지나치면 아무리 공허한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도 자기 말을 정말로 믿어버리기 마련이다. 이런 자기기만은 남자들이 더 심한데, 비슷한 생각을 나누는 더 큰 동아리의 지지를 받고 있고 여자들보다 자기검열과 덜 마주치기 때문이다.

존이 요새 우디 앨런 영화 속 주인공이었다면 끝까지 자기연민과 자기기만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매기스 플랜〉에서 그는 이 악순환에서 빠져나갈 기회와 마주친다. 우디 앨런 영화와 〈매기스 플랜〉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그건 이 영화가 존에게 감정이입할 생각은 티끌만큼도 없는 여성 작가/감독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영화는 존이 자신에게서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 연구 결과를 존에게 통보한다. 그리고 존은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너 자신을 알라'는 글귀가 델포이에 있는 아폴론 신전의 앞마당에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자성하라는 뜻이다. 모든 사람의 의무겠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은 이에 도달하려면 결국 다른 사람의 관점과 생각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존의 경우 그 도움은 여자들에게서 온다.

이 글을 마무리지으려는 동안 오늘 트위터에서 화제가 된 한겨레에 실린 '〈뉴스룸 토크〉 도련님 기자단 설전'을 읽었다. 명절 문제를 '구조적 불평등과 비합리가 분명히 내재하는데 나만의 문제는 아니고 아내와 딸들을 포함한 우리의 문제'라고 우기는 ㅁ기자의 기름 바른 장어 같은 글을 읽고 이거야말로 '인문학 하는 남자들의 자기기만'을 대표하는 사례라고 생각했다. 아마 그는 이 답변을 쓰면서 비슷비슷한 생각을 공유하는 비슷비슷한 남자 동료들의 든든한 지지를 얻었을 것이며 이 글의 불쾌함을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끼리끼리만 노는 이 무리들에게 의미있는 자성이 과연 가능할까?

한 설날 예능에서 강호동이 "부족한 사람끼리 모여서 완성하는 거야"라고 말하자 텐이라는 아이돌이 "부족한 사람끼리 모이면 더 부족해지지 않나요?"라고 물었다는 전설이 온라인에 떠돈다. 나로서는 이 청년이 존과 '도련님 기자단'을 다 합친 것보다 현명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