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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20일 06시 12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12월 21일 14시 12분 KST

아, 의미없다 '올해를 빛낸 영화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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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은 없다〉의 손예진.

연말이 되면 한국갤럽에서는 올해를 빛낸 영화배우를 발표한다. 올해는 〈곡성〉 〈아수라〉에 나왔던 황정민이 1위였고, 2위는 송강호, 3위는 공유였다. 여자는 9위에 오른 전지현 한명이다.

이 리스트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게 정답이다. 기사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좀 진지하게 반응하려 해봤다. 〈비밀은 없다〉 〈덕혜옹주〉의 손예진이 빠져 있는 2016년 배우 리스트가 과연 정상인가? 〈아가씨〉의 배우 중 유일하게 순위에 오른 사람이 하정우라는 게 말이 되나? 하지만 9위에 전지현이 오른 걸 보고 조용히 포기해버렸다. 전지현은 지금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맹활약하고 있긴 하지만 올해는 영화 작품이 없다.

이런 경우가 한둘이 아니다. 예를 들어 원빈은 2011년에 올해의 영화배우 1위였지만 출연작이 하나도 없었다. 한국갤럽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은 사람들은 그냥 생각나는 배우 이름을 말했던 거고, 그게 고스란히 집계된 것이다. 이런 게 보통 한국 사람들 머릿속에 흐릿하게 모양 잡혀 있는 '유명한 영화배우'의 이미지에 대해 어떤 정보를 제공해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런 정보를 어디다 쓸까?

질문의 범위를 조금 구체적으로 좁혀볼 수는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올해 나온 영화의 출연배우로 제한하고 배우 추천과 함께 출연작을 말하게 한다든지. 하지만 그렇게 좁힌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게 뭐가 있을까 싶다. 관심 없는 사람들의 성의 없는 의견을 반영한 리스트는 여전히 무의미하다.

얼마 전 한국갤럽 배우 리스트만큼 무의미한 리스트가 하나 더 나왔으니, 그건 대종상 후보작 명단이다. 작년 대종상 영화제는 정말 다시 생각해도 낯 뜨거운 망신의 연속이고 결과도 어처구니없었지만 그래도 후보작 리스트는 그럴싸했다.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더라도 국내 최고의 영화상의 후보들처럼 보였다. 하지만 올해는 심지어 후보작 리스트부터 이상하다.

여기서 말을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자칫하면 이 리스트에 오른 영화인들의 성취를 깎아내리게 될 테니까. 예를 들어 〈터널〉에서 배두나의 연기는 훌륭했다. 〈널 기다리며〉 〈계춘할망〉에서 심은경과 윤여정이 보여준 연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손예진이 〈비밀은 없다〉 대신 〈덕혜옹주〉로 후보에 오르고 〈걷기왕〉 〈죽여주는 여자〉에서 심은경과 윤여정이 보여준 연기가 무시된다면 이상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거의 모든 영화상에서 신인여우상을 휩쓸었던 〈아가씨〉의 김태리는 어디에 있는가?

이 리스트가 비정상적인 것은 대종상이 영화제이기 때문이다. 굳이 영화제일 필요가 없는 행사인데도 영화제다. 후보가 되려면 만든 사람들이 출품을 해야 한다. 하지만 올해는 〈비밀은 없다〉 〈아가씨〉 〈동주〉처럼 중요한 영화들이 처음부터 출품을 안 했다. 지난해엔 시상식 때 사보타주를 당했다면 올해는 후보작 선정 때부터 사보타주를 당한 것이다. 자기가 만든 함정에 빠진 셈이다. 지금 대종상은 반쯤 불구가 된 군소 영화행사다.

올해의 여성영화인 시상식을 미리 비교 대상으로 놓아도 될까. 텔레비전 중계도 되지 않았고 미리 수상자가 발표된 조촐한 행사였지만 수상자들의 선정은 완벽했고 시상식 진행도 훌륭했다. 목적이 분명하고 수상자들을 존중하는 행사와 왜 자기가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행사의 차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