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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11일 12시 05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9월 11일 14시 12분 KST

받아라, 김치펀치

gettyimagesbank

경고: 내 글을 통해 대화가 싹트길 바라는 의도 하에 어느 정도 정치적 올바름을 배제하고(언pc하게) 썼고, (글의 논리적 일관성을 위해) 일반화의 오류를 가차 없이 범했으니 이해를 바람.

Disclaimer: In order to instigate numerous dialogues, I have intentionally quoted and utilized some un-politcally correct terminologies and have also made generalizations for the sake of logical coherence.

크리스마스 이브의 하루 전인 12월 23일, 학교 친구들이 크리스마스를 남자끼리만 보낼 수 없다고 난리이기에 함께 홍대 떨스데이 파티(Thursday Party)에 갔다. 이곳은 국내 거주 중인 외국인들의 합석 스팟(Pickup Spot)으로 손꼽히는 곳인데--서울 내엔 이태원 점과 홍대 점이 있다--교포가 대부분인 동창 및 후배들과 홍대에서 놀다보니 자연스레 그 장소로 넘어가게 되었다. 시간은 자정이 넘어 어느새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었고, 술 집을 가득 메운 외국 남성들과 한국 여성들, 그리고 몇 안되는 한국 남성들은 코 앞으로 다가온 크리스마스에 같이 지낼 "미래의 짝"에게 Thursday Party를 랑데부로 정해놓기라도 한 마냥 짝지어 부대끼며 어울리고 있었다.

친구들끼리만 놀러왔다는--사실은 남자들의 추파를 받지 못한, 혹은 '남자 차단(cock-blocking)'하느라 남자들의 관심을 다 떨친--울트라 에스트로겐 무리와 이들에게라도 말을 걸어볼까 고민의 눈길을 흘기며 진토닉을 홀짝대는, 맹수들이 남긴 먹이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 같은 베타 메일들도 군데군데 보였다. 애석하게도 후자의 대부분이 한국 남성들이었고, 그 중 몇몇만이 아이돌 스타를 보기 위해 한국으로 여행 왔을 법한 동남아 여성 세 명과 합석에 성공했을 뿐이다. 그 날 새벽의 기억이 뚜렷하진 않지만, 짝을 찾지 못한 대부분의 한국 남성들은 술집 입구에 있는 테라스에서 줄담배를 피우다가 하나둘씩 떠났다.

나는 한국에서 외국인들을 만나면 친절하게 대하는 스타일이다. 아마도 오랜 유학생활의 영향으로 깨닫게 된, 외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타지에서 사는 것의 고단함에 대한 동병상련과 이들에게 한국인들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 싶은 심리의 조합일 것이다. 그 날 밤에도 여느 때와 달리 새로운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다. Dave는 30대 초반 정도의 외모와 180cm 내외의 신장에 건장한 체격의 백인계 미국인이었고, 그보다 조금 더 어려보이는 Jojo는 키는 작지만 몸이 단단해 보이는 흑인계 미국인이었다. 그들의 짧은 스포츠 컷 헤어스타일이나 다듬어진 체격 덕에 미군이라고 생각했지만, 한국에서 뭘 하냐는 나의 질문에 그들은 영어 강사라고 대답했다. 새벽 2시 경, 학교 친구들과는 이미 뿔뿔이 흩어진 상태였고, 새로 사귄 외국인 친구들의 클럽에 가자는 말에 혹한 나는 자주 가는 힙합 클럽으로 그들을 인솔하길 자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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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wikipedia

몇 분 후, 우리는 클럽에 도착했지만 안타깝게도 문이 열리지 않았었다. 화요일인 탓이었다. Dave와 Jojo는 나에게 괜찮다며 자기들이 자주 가는 클럽에 가자며 날 회유했고, 우리는 발길을 돌렸다. 그때였다. 클럽에서 발을 돌린 후 몇 발짝 떼자마자 무언가가 내 왼쪽 턱을 강타했다. 고개를 돌려보니 검은 뿔테 안경과 유행이 지난 지 오래인 야상 자켓을 입은 20대 중후반 정도의 한국인 남성이 날 잡아 삼키겠다는 듯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취기에 붉어진 얼굴과 광기 어린 눈빛은 흡사 사극에서 클리셰(cliché)처럼 쓰이는 장면인 퇴폐한 사또가 "저 죄인의 주리를 틀어라!"라는 대사를 외칠 때나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의 뒤에 간신처럼 옹기종기 모여있던 열댓명의 친구들은 아마도 인사불성인 그의 폭력적 만용을 배로 부풀려주었을 것이다.

이런 식의 '묻지마 폭행'은 처음인 데다 술 마시다 싸움에 휘말린 적도 없는 내가 잠깐 벙쪄 있는 사이, 옆에 있던 Jojo가 날 대신해 그의 도발에 응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민한 Dave가 "Jojo, 우리 잘못하다 사고 치면 한국에서 추방될 수도 있어"라며 Jojo를 말렸고, 날 때렸던 남성은 그의 친구들에 의해 우리에게서 멀리 격리되었다. 얼마 후, 그의 친구 무리 중 한 명이 우리에게 다가와 나에게 사과를 구했다. 나 또한 적잖이 술에 취해 있었고, 취하면 조증에 가까울 정도로 기분이 좋아지는 성격 탓인지 보살 같은 너그러움으로 용서했다 - "친구분 술 취해서 그런 것 같은데 다음엔 그러지 말라고 하세요." 그 후, 나는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Dave와 Jojo와 함께 그들이 자주 가는 클럽에서 신나게 논 뒤 귀가했다.

다음날 아침, 왼쪽 턱의 통증에 신음을 내며 눈을 떴다. 너무 아파서 기억을 더듬어보니 전날 밤의 '묻지마 폭행'이 떠올랐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기에 날 도대체 왜 때린 건지 물어볼 새도 없었고, 흥분 상태에 그럴 생각도 못했는데, 이제는 턱의 통증이 전 날에 마비되었던 궁금증을 깨워 자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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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wikipedia

'왜 때린 걸까?'

사건 당시 날 가격한 장본인(A라고 지칭하겠다)과 대면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폭행의 정확한 이유는 알아 낼 수 없다. 그렇기에 내가 유추할 수 있는 최선의 결론은 귀납적 추리에 의한 추론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내가 살면서 경험하고 관찰한 사례들의 일반화를 토대로 일반원리를 생성하는 귀납추리의 특성상, 내가 내린 결론이 참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또, 이 일이 다른 어느 누구에게 일어난다면 그 사람 개인의 환경, 배경, 교육 등의 요소에 따라 나와는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다. 한마디로 A가 나타나서 자백을 하지 않는 이상, 그 어떤 결론도 참과 거짓의 잣대로 판명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난 이 이슈에 대한 글이 'DISSLIKE' 매거진의 필진으로서 기고하는 첫 글로 제격이라고 생각했다. 사회적 논쟁을 점화해 줄 "생각의 양식(Food for Thought)"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고 해야 하나.

가장 간단한 추리로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은 이유 없는 '묻지마 폭행'일 것이다. 술로 인한 사건 사고가 넘치는 애주가들의 나라인 한국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 단순한 전제들--"날 때린 A는 '묻지마 폭행범'이다," "'묻지마 폭행범'들은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때린다"--로 유추 가능한 결론--"'묻지마 폭행범'인 A는 아무 이유 없이 날 때렸을 것이다"--이다. 이 결론이 참일 가능성도 낮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이 정도로 단순한 추측이 나의 부어 오른 턱의 통증을 극복하게 해줄 명쾌한 해답이 되어주지는 않는다. 게다가 정말 아무런 이유, 동기 없이 맞은 것이었다면 나의 너그러운 용서가 결국엔 자존심도 없는 호구의 침묵밖에 더 되나.

사실 내게 더 큰 확신을 안겨준 다음의 추론은 이유 없는 '묻지마 폭행'보다 더러운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지 않나 싶다. 나는 홍대 취객 A의 '묻지마 폭행'의 동기가 아마도 민족주의, 인종차별주의, 제노포비아, 여성혐오증 등의 여러 차별적 주의(-ism), 혐오(-phobia)와 동일 선상에 있다고 추측한다. 그리고 그에서 비롯된 열등감의 폭발도 한몫 했을 것이다. 한국의 남초커뮤니티에서 생성되었다는 '보혐' 혹은 '김치녀' 담론을 보자. 한국의 20대 여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스테레오타입의 응집체이다. 그중 항상 언급되는 포인트는 '외국인들만 보면 다리를 벌리는' 소위 '김치녀'들의 '국제적 걸레성'이다. 특정 그룹에 대한 혐오가 기반이 된 편견의 일반화를 지적인 훈련이 되지 않은 이들은 필터링 없이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것이고, 이는 한국 남성들이 가진 특정 부류--'김치녀'--의 여성에 대한 혐오를 넘어 보편적 여성 혐오, 외국인 혐오를 낳는다. 한국의 남초사회에서 (안타깝게도) 꽤나 보편화 되어버린 '한국 여자들은 개념이 없고, 이기주의적이며, 여자라는 우월감에 도취해 한국 남자들을 착취한다'식의 여성 혐오주의, 그리고 이리도 상대하기 힘든 한국 여자들을 손 쉽게 '낚아채가는' 외국인 남성들에 대한 질투와 그에서 비롯한 열등감을 더하면 'A의 폭행 동기'라는 해답에 어느 정도 근접해진다.

그렇다면 20대 한국인 남성인--아마도 정치적 올바름과 거리가 있을 것 같은--A가, 여성도 아니고 외국인도 아닌, 같은 한국인 남성인 나를 때린 이유는 뭘까? 세 명 중에 제일 덩치가 작은 내가 가장 만만해 보여서? 같은 20대 한국 남자라 만만해 보여서? 일리가 있는 추측이지만, 외국인들 두 명 사이에서 걸어가는 한국인, 그 한 명만 골라서 주먹을 날린 데에는 좀 더 구체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한국 남자들의 보편적인 여성혐오와 외국인 혐오를 베이스로 둔 나의 추론의 연장선상에서 본다면, 만취한 A의 눈에는 외국 남성들을 한국인 클럽으로 인도하는 내가 우리나라 여성들을 마구 '채가는' 미국'놈'들의 앞잡이 정도로 보였을 것이다. 일본군 성노예 동원/납치 및 착취에 가담한 친일파 한국인 브로커들이 천하의 죽일 놈들인 것처럼 말이다. 그의 머릿속엔 '감히 한국인 새끼가 외국놈들 앞잡이 짓을 해? 내 뒤에 친구들도 있겠다, 이 새끼한테 한번 본때를 보여줘야겠군' 정도의 영웅심리가 존재했을 것이다. A의 여성 혐오와 외국인 혐오, 그리고 그에 비롯된 열등감의 폭발이 외국 남성들의 '앞잡이'처럼 보이는 '나'라는 사람을 폭행함으로써 비로소 조금이나마 해소되었을 것이다.

'...불쌍한 새끼... 그랬었구나. 그럼 이해가 좀 되긴 하네.'

만약 위의 이유에서 나에게 공격을 가한 것이라면 A의 미션은 얼추 성취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미국인 친구들이 나에게 클럽을 같이 가자고 한 데엔 '너가 한국인이라 잘 알테니 물 좋은 클럽에 데려다 줘' 정도의 의미가 붙어있었을 테고, 난 그에 응한 것이니까.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우월한 천조국 남성들'에게 '쉬운 김치녀들'을 바치려는 속셈 따위는 일절도 없었고, 또한 나는 그런 식의 찌질하고 패배주의적인 사고 자체를 하지 않는다.

애초에 나도 걔네를 이용한 것이 아니라면 거짓말일 것이다. 리비도가 피크에 달한다는 20대 중반의 기로에 선 '나'라는 남자의 무의식 속엔 '외국인 친구들이랑 다니면 여성들에게 더 돋보이겠지' 식의 계략이 어느 정도 존재했으리라. 그렇다고 해서 서로의 본능적인 욕망충족을 위한 조건--그들에겐 내가 한국인인 점, 나에겐 그들이 외국인인 점--이 Dave와 Jojo, 그리고 나의 새로운 우정을 성립시켜주었다는 건 큰 오산이다. 우리는 그저 술집에서 애기를 나누다 말이 잘 통해 'bros'가 되었고, 때마침 크리스마스 이브였기에 클럽으로 넘어간 것일 뿐이다. 그들이 외국인이라거나, 황인종이 아니라거나하는 외적요소들은 그들과의 첫 건배 이후 나의 안중에 있지도 않았다.

사실 정작 한국에서 많이 안 좋게 비치는(looked down upon) 관계는 한국인과 외국인 동성끼리의 친구 관계보다는 한국 여성과 외국 남성의 성관계, 혹은 이성교제일 것이다. 이러한 '국제 커플Interracial couple'을 싫어하는 한국 남성 중에는 크게 두 부류가 있는 것 같다. 첫째로는 국내의 외국 남성들이 한국 여자를 쉽게 보고, 한국 여자 꼬시는 방법에 대해 토론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드는 둥, 지네 멋대로 행동하는 게 눈꼴사나운 타입이다. 이 경우에 해당하는 외국 남성들은 대부분 백인계 서양인일 것이다. 사실 나 또한 고등학교까지만 해도 이러한 정서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그들 중 대부분은 딱 봐도 현지에선 별 볼일 없는, 여성편력 따위는 상상도 하지 못 할 이들이 태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어찌 보면 이 또한 자연의 섭리와 개인의 선택이기에 이해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오랜 사대주의의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의 특성이나 한국 전쟁의 참상에서 우리를 구해준 미국인에 대한 동경, 혹은 수백 년의 역사로 다져진 백인우월주의 등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데올로기를 고려한다면, 한국 여성의 눈에 한국 남성보다 외국 남성(특히 백인계 서양인)이 '생존'에 있어서 더 '적자(適者)'로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 놀랍지는 않은 사실이다. 그리고 흔히 남성의 본능은 본디 최대한 씨를 많이 뿌리는 것이라고들 하는데, 그 논리가 맞다면 외국인 남성들이 자신에게 열광하는 이성이 비교적 많은 곳으로 이동하는 건 극히 자연적인 현상이 아닌가? (글의 흐름을 위해 '정신적 교감,' '로맨스' 등의 연애에 있어 당연시 되는 요소들은 생략한 점 양해바란다).

모순적인 지점은, 한국 남성들도 외국 남성들이 한국에 놀러오는 것과 똑같은 이유로 동남아로 놀러간다는 것이다. 게다가 일부 남성들은 단순히 '연애'가 목적이 아니라 '성매매'를 목적으로 '관광'을 다니기도 한다. 엇비슷한, 혹은 더욱 왜곡된 논리로 동남아 여성들을 철저하게 성적 대상화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많은 한국남성들은 자국의 여성들을 '침탈'하는 '양놈'이나 '깜둥이'들에 대해서만 편견 가득한 시선을 가지는 것 같다. 결국, 일부 한국 여성이 외국 남성을 비교적 쉽게 만난다는 편견 아닌 편견은 철저히 개인적인 선택에 대한 올바르지 못한 낙인찍기일 뿐이다. 그렇다면 국제 커플에 대한 불만의 표시는 결국 치졸한 이중잣대이며 인종적 열등감의 분출일 수밖에 없다.

두번째 부류는 여성혐오주의자들이다. 대한민국 여성들이 꼴도 보기 싫은 이들. 한국 여자들이 국가적 망신이라고 생각하는 이들. 외국'놈'들만 보면 '환장'해서 '다리 벌려준다'라고 표현하는 이들. 과연 외국인 남성과 섹스를 하거나 교제를 하는 게 '김치녀'의 '걸레성'이 발현된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나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은 무의식적으로든 의식적으로든 특정 인종에 대한 페티시를 가지고 있다. 오리엔탈리즘에서 비롯된 동양인 페티시를 '황인종 열풍(Yellow Fever)'이라고 하지 않는가. 아무래도 미국에서 가장 일반적인 것은 백인 남자의 동양 여자에 대한 페티시나 흑인 남자의 백인 여자에 대한 페티시일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대개 상호적으로도 작용한다. 안타깝게도 동양 남자들은 미국 내 인종별 남성의 성적 매력 순위에서 가장 하위를 차지하지만, 그렇다고 동양 남자를 좋아하는 비동양인 여자가 적은 건 아니다. 실제로 요즘들어 K-pop 등 한류 열풍 덕에 한국 남자 만나러 한국에 비싼 비행기 티켓 끊고 날라오는 외국인 여성도 날이 갈 수록 느는 추세이다.

'김치녀' 담론을 펼치는 이들의 논리로 따진다면, 인종적 페티시에 대한 욕구를 실현시키는 모든 사람들은 다 '걸레'인가? 아마도 '김치녀' 혐오론자들은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사실 그들 대부분의 논리는 '김치녀는 걸레다. 김치녀는 걸레이기 때문이다' 정도의 순환논리에 불과하다. 결국, 한국 여성이 외국인과 관계를 갖는 걸 가지고 '걸레'라고 하는 건, 외국인과 관계를 갖는 행위 자체의 문제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눈엔 그녀가 '김치녀'로 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과연 외국인과 섹스를 하는 혹은 교제 중인 한국 여성 중에서 그들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김치녀'가 아닌 예외도 있을까? 내 예상은 부정적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우리나라 여성과 외국인 남성의 관계가 한국 남성과 외국 여성의 그것보다 더 두드러져 보이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녀-외국남 커플이 외국녀-한국남 커플보다 많이 보이는 것은 실제로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남자가 더 많고, 또 정식 교제든 엔조이든 이성 관계에 있어서--특히 보수적인 한국 같은 경우에--보통 남자가 먼저 다가가야 하기에, 외국남과 만나는 한국 여자가 외국녀와 만나는 한국 남자보다 많아 보이는 건 당연한 일 같다. 또, 국내 거주 중인 외국 남자들 중에 평상시 한국 여자들에게 적극적으로 대시하는 남자들의 분포도와 한국 남자들 중 외국 여자에게 대시하는 남자들의 분포도를 비교한다면 단연 전자가 압도적으로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가 많으니, 또 그렇다고 보편으로 불릴 만큼 많진 않으니, 일반화적인 혐오주의 담론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또, 한국에서 여러 외국인 여성 친구를 사귀다 보니 알게 된 건데, 그들 대부분이 한국 남자친구를 사귀고 싶어 했지만 대부분의 한국 남자는 외국 여성들을 성적판타지의 대상으로 소비하고 진지하게 보지 않았다고 한다. 더 나아가, 대부분의 여자들은 파트너와의 미래에 대해 남자보다 많이 고려하는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한국인 남자친구들은 보통 부모님께 외국인 여자친구에 대해 숨기거나, 밝힌다 해도 부모님의 반대가 심해 관계유지가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 내 국제 커플(Interacial couple)을 보면 거진 다 외국남-한국녀 커플이고 그 반대는 찾아보기 힘들다. 사실 외국의 이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는 한국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심하면 더 심했지 덜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백마' '흑마' 등 여러 색깔의 '말'들의 존재가 증명해주듯 말이다. 외국인 여성을 성적 판타지로 소비하는 대부분의 한국 남자들이 외국인 남성과 정식으로 교제하는 일부 한국 여자들을 무시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한다. 방에서 불 끄고 인터넷에서 불법 다운로드한 아메리칸 포르노를 보며 자위하는 게 현실세계에서 외국인 이성친구를 만나는 것보다 더 의미 있는 사회가 아닌 이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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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wikiwand.com

'김치녀 혐오론'을 옹호하는 이들을 '김치남'이라고 일컫는데, 그들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다. 혐오주의와 열등감을 떠나서, 이 이슈를 민족단위체의 문제로 본다면, 내국인 여성의 타인종 외국인 남성과의 교제에 대한 반발정서는 성적으로 보수적인 나라 대부분에 존재하는 정서이다. 예외이지만 나 같은 경우엔 한국에서 백인 여성 친구와 다닐 때 백인 남자들이 뚫어라 쳐다본 적도 있다. 아마 그건 열등감의 시선보다는 '동양인인 너가 어떻게 금발녀를?' 식의 무시와 경외심이 공존하는 눈빛이었을 것이다. 여하튼, 이러한 단위체 보존 의식은 씨족(Clan)이나 부족(Tribe)이 단위체일 때부터 내려온 남성에게 내재된 본능일 수도 있다. 끊임없는 해외의 침략과 민족 분단의 아픔을 가진 우리나라의 역사 특성상 민족단위체의 중요성은 가정, 학교, 등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강조된다. 게다가 효순이 미선이 사건이나 이태원 살인 사건, 수원 토막살인 등의 외국인이 일으킨 사건 사고들은 국내에 제노포비아를 확산시켰다. 그렇기에 외국 남자들과 '놀아나는' '김치녀'들이 소위 '김치남'들의 반발정서를 사는 건 자연스런 이치이다.

개인적으로 모든 사람이 인종차별주의에서 벗어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인종차별주의는 사회적으로 생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부모님, 선생님, 친구들, 혹은 책, tv, 라디오 등의 미디어에서 인종에 관한 사회적 기준에 끊임없이 노출되며 자랐을 것이다. 그렇게 축적된 정보들은 의식해서 걸러내지 않는 이상 무의식에 내재된 인종차별주의적인 편견일 수밖에 없다. 인종차별주의는 특정 인종의 사람들은 어떤 특징을 공유할 것이라는 사회적 편견을 일컫는다. '흑인들은 다 머리가 덜 떨어졌다' 같은 차별주의적 편견도 인종차별인 반면, '흑인들은 다 운동을 잘한다' 정도의 부정적이지 않고 나름의 생물학적, 유전학적 사실을 고려한 선입견도 인종차별에 해당한다. 결국 타잔처럼 정글에서 인간과의 교류 없이 자라지 않은 이상, 이러한 선입견과 편견의 영향에서 벗어나 살기는 불가능하다. 어찌 보면 모든 사람이 인종차별주의자인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Politcal correctness)이 중요시 되는 21세기에서 인종차별주의자로 낙인 찍히기 싫다면, 사회적으로 구성된 인종 편견을 우선 인지하고 해당 편견을 몰아내거나 아예 피하면 된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미국만큼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의식이 없어서 '김치녀 혐오론'을 옹호하는 '김치남'이 만연하고 인종차별주의적 발언이 수용되지만, 멀지 않은 미래에 성평등이나 인종간 평등에 대한 의식이 어느 정도 미국과 근접한 레벨에 도달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된다면, 그때 가서도 '김치녀 혐오론'을 펼치는 이는 사회의 진보에 뒤쳐진 찌질한 편견주의자로 낙인 찍힐 것이다. 혹시 '김치남'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찔린다면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여유를 가지고 쿨해지길 바란다.

그러고보면 사람들 오지랖도 참 넓다. 남들의 삶에 관해선 이래야지 저래야지 자기네 나름의 이성의 잣대를 들이대놓고선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양은 부족한 것 같다. 한 개인이 자기가 좋은 사람 만나겠다는데 거기다 대고 욕하는 것보다 쓰잘데기 없는 심보는 없을 것이다. 남의 밭에 배놔라 감놔라 하기 전에 자기 밭 부터 열심히 갈고 봐야하지 않겠는가?

논쟁에 있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반박은, '싫으면 시집가' 혹은 '짜증나면 너가 해보시든가' 류인 것 같다. 이 지극히 한국적 논리를 적용시켜 말해보겠다. '외국놈'들이랑 어울리는 '김치녀'가 그렇게 싫은가? 그렇다면 '백마'나 '흑마'를 '타'보시던가. 적어도 앞 뒤 꽉 막힌 찌질한 '김치남' zone에선 탈출할 수 있을 것이고, '김치녀' 까는 게 얼마나 쓸 데 없는 일인지 깨달을 것이다. (텍스트라서 못 알아챌까봐 말하지만 비꼬는 것 sarcasm이다.)

글쓴이 : The Korean Guru

프로필 : 1991년생. Flyest AZ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