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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6월 24일 10시 54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6월 24일 14시 12분 KST

우리는 왜 먹는 것에 열광하는가

젊은이들이 '먹방'과 '먹스타그램'에 몰입하는 것은, 그것이 상대적으로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얻을 수 있는 쾌락, 놀이기 때문은 아닐는지요. 200만원도 되지 않는 월급으로 외제차와 아파트를 살 수는 없지만 한 끼의 근사한 저녁식사는 먹을 수 있지요. 매우 즉흥적이고 그 자리에서 즉시 얻을 수 있는 쾌락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이 가장 초라해지는 순간은 먹고 싶은 음식의 가격 앞에서 망설이게 되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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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하는 식탁 | 우리는 왜 먹는 것에 열광하는가

"밥은 먹고 다니냐?"

영화 <살인의 추억>의 가장 인상적인 대사 중 하나입니다. 봉준호 감독이 송강호 배우에게 즉석 애드립 대사를 요구했던 이 장면은 여러 버전의 컷을 다양하게 찍었는데, 현장 스태프들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웃어버렸던 이 대사를 정작 봉준호 감독이 최종 선택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상대의 끼니를 챙겨 묻습니다. 보릿고개가 존재하던 '못 먹던 시절'에는 확실히 그것이 보편적인 인사였습니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친한 사이는 물론이거니와, 직장 동료 같은 딱딱한 관계여도 딱히 할 말이 없는 상황이라면 밥 먹었냐고 괜히 물어보죠. 혹은 '썸 타는' 사이끼리 말 걸기 좋은 핑계거리가 되기도 합니다.

먹는 것은 때로 그걸 먹는 사람들의 정체성과 연결되기도 합니다. 내가 먹는 것 혹은 먹지 않는 것에 대해 누군가 비난한다면 상당히 불쾌할 것입니다. 유럽에서는 흔히 터키인을 비하할 때 케밥이라는 말을 쓰지요. 이탈리아인이 프랑스인을 욕할때 "개구리나 먹는 놈들"이라고도 합니다. 일본을 비하할 때는 스시입니다. 중국음식을 먹을때 "짱개 먹자"라고도 하는건 또 어떤가요. 외국인들이 흔히 한국인들을 비하하는 일반화는 '개고기나 먹는 놈들'(영국 프로축구리그 EPL의 위건 구단주인 데이브 웰란은 축구선수 김보경이 카디프시티와 계약했던 것에 대해 "카디프에 (한국인이 먹을) 개는 충분히 널렸지(enough dogs in Cardiff for us all to go round)"라고 발언함 :가디언)이지요. 박지성 선수의 소속팀이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팬들은 그를 응원한답시고 이상한 가사를 만들어 응원가를 불렀습니다.

"박지성, 박지성, 네가 어디에 있어도 너의 조국은 개를 먹지. 그래도 더 최악인건 리버풀놈이 되어서 공영주택에서 쥐나 잡아 먹는거야!"

(Park, Park, Wherever you may be, You eat dogs in your home country! But it could be worse, You could be a Scouse, Eating rats in your council house)

한편 요즘 한국 웹사이트에서 젊은 사람들은 스스로 한국적인 어떤 것이나 한국인을 비하하거나 푸념할때 '김치'를 접두어로 붙여서 씁니다.(요즘에는 특히 한국 여성을 일반화하여 모욕할 때의 용례로 굳어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몇 년 전에는 '된장~'을 붙였던 자리를 요즘은 김치가 대신한 모양새입니다. 일베 이용자들이 전라도를 모욕할때 자주 쓰는 수법도 특정음식 비하입니다. 먹을 걸로 장난치면 벌 받는다는 교훈을 깨치지 못한 애들이나 하는 못된 짓이지만, 어쨌든 우리는 우리가 먹는 것으로 스스로를 정의하고 있다는 방증인 셈입니다.

'먹는 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더럽고 치사한 '갑질'을 참아야 하는 것도, 때려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계속 그 일을 해야 하는 것도, 장그래가 바둑을 그만두고 비정규직 인턴이 되어야 했던 것도, 우리가 이렇게 지지고 볶고 사는 것이 전부,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입니다. 인간이 만약 식물처럼 태양 에너지를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는 광합성 능력을 가졌다면 인류 문명사회의 모습은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 분명합니다. 최소한 누구도 먹고 사는 문제로 걱정할 필요는 없을테니까요. 먹고 사는 문제는 문명사회의 가장 기초적인 토대를 이루는 일입니다. <인터스텔라>가 그려낸 디스토피아의 세계의 기본적인 출발이 '식량이 부족한 세상'임을 잊지 마세요. 아마도 인류의 종말적인 재앙에 대한 상상 중 가장 현실적인 위협은 외계인 침공이나 혜성 충돌, 세계 3차대전이 아니라 식량부족일지도 모릅니다.

재미있게도, 요즘 한국에서는 '먹방'이 인기입니다. 이것은 최근 3년 정도의 현상으로, 생각해보면 불과 4년 전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때는 '먹방'이라는 말은 쓰지도 않았습니다. 먹방으로 뜬 이름들을 쉽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윤후(아빠 어디가)와 사랑이(슈퍼맨이 돌아왔다)가 그렇고, 배우 하정우씨의 먹는 모습은 이미 그를 정의하는 하나의 코드가 되어버렸습니다.

채널을 돌리면 또 '먹방'이 얼마나 흔한가요. 지금 시점에서 가장 인기 있는 TV프로그램은 <삼시세끼>와 <냉장고를 부탁해>일 것입니다. 최근 1~2년 사이에 붐이 일기 시작한 먹방은 이 두 예능에서 절정을 찍고 있습니다. 신동엽 성시경의 <오늘 뭐 먹지>도 뺴놓을 수 없겠죠. 방송가 최고의 블루칩으로 떠오른 백종원씨도 마찬가지구요. 이 히트작들이 나오기 전에도 이미 <정재형의 프랑스식 가정요리>, <노 오븐 디저트>, <마트당> 등 먹는 프로그램들은 만들기만 하면 실패하지 않는 아이템임을 보여줬습니다. <테이스티로드>, <식신원정대> 같은 맛집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은 <수요미식회>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유효기간이 다 되어가는 것처럼 보였던 오디션 프로그램 포맷은 <마스터 셰프 코리아>나 <한식대첩>으로 수명을 연장했습니다.

이는 분명 예전과는 확연하게 다른 풍경입니다. 예전의 '먹는 방송'은 <6시 내고향>이나 <생방송 투데이> 같은 시청 연령대도 높고 '힙'한 것과는 거리가 먼 프로그램들에서나 주로 먹는 장면이 나왔고, 그것이 젊은세대들에게 어떤 현상이 된다거나 화제가 되는 일은 없었습니다. 요리 프로그램은 말 그대로 요리하는 레시피와 조리과정을 보여줬을뿐, 먹는 모습까지 보여주지는 않았죠. 아무리 출연자가 호들갑을 떨며 맛을 설명해도 TV화면만으로는 맛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요리 소재의 방송은 한계가 명백해보였습니다. 이제는 TV에 온통 요리판이고 일반인들도 '아프리카TV'에서 먹는 방송을 하고 있으니 이정도면 먹방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먹어야 사는 프로그램 : GQ, 혼자 먹는 사람들, '먹방'을 봅시다 : ize)

뿐만 아닙니다. 젊은 세대는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먹방에 직접 뛰어들고 있습니다. 우리가 싸이월드를 하던 시절에는 셀카는 올려도 우리가 먹는 음식을 올리지는 않았었죠. 지금 한국인이 인스타그램에 가장 많이 올리는 사진은 아마도 '지금 내가 먹는 요리'일 것입니다. #먹스타그램 이라고도 합니다. 자신의 일상을 경쟁하듯 스스로 보여주고 과시하는 소셜네트워크 문화와 '핫플레이스'가 되면 반드시 가봐야하는 힙스터 문화가 결합해서 더욱 상승효과를 가져오는 걸로 보입니다. 홍대가 상수 연남 연희 망원동으로, 압구정이 가로수길로, 이태원이 경리단길 해방촌으로, 인사동이 삼청동, 삼청동이 다시 부암동, 북촌, 서촌으로- 힙스터들은 유목민처럼 흘러다닙니다. ('뜨는 동네'의 역설 : 한겨레, 돈이라는 이름의 골목대장 : GQ , 어느 경리단길 사장의 고백 : ize) 그리고 경쟁하듯 거기서 '내가 먹는 것'을 찍어서 올립니다. 남들이 먹은 것이나 혹은 남들이 아직 먹지 않은 것은 반드시 먹어야 직성이 풀립니다. (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이고 힙한 고찰 : ize)

한 사람 한 사람 좋아하는 사람이 늘어나 마침내 유명해지는게 아니라, 일단 유명하다고 선포하면 줄부터 서는 풍토가 지금 이곳의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원하는 맛을 찾는 게 아니라, 남들이 맛있다고 하는 맛, 미디어가 유명하다고 소개한 집을 경험해야만 하겠다는 태도가 지금의 맛집 신드롬을 만든 기초다. 그게 왜 어떻게 좋은건지 개인이 판단한 게 아니라, 그걸 해야 겨우 대중의 흐름에 속하고 안 하면 무리에서 뒤떨어질 것 같다는 우려가 힘을 발휘한다. (내가 좋아하는 그 작은 집은 왜 자꾸 사라지는 걸까? : 장우철, GQ 2013년 4월호)

도대체 왜 이렇게 젊은 세대는 먹는 것에 매혹되었을까요? 끼니를 걱정하며 큰 세대도 아닌데. 혹시 이것은 어쩌면, 사회적인 욕망과 성취를 누리기가 현저하게 힘든 젊은 세대의 유일한 도피처이기 때문은 아닐까요?

부연할 필요도 없이, 한국은 폐쇄적이고 보수적이고 매우 작은 사회입니다. 물리적으로 사실상 섬나라나 다름없는 환경에서, 젊은이들은 무엇 하나 쉽게 성취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대학, 취업, 결혼, 내집마련 등 생애를 관통하는 통과의례였던 과업들의 장벽은 지금 젊은 세대가 감당하기 힘들만큼 너무 높아졌고 그것을 얻기 위해 투입되는 비용은 지나치게 과다합니다. 그에 반해 놀고 즐길 것은 너무도 없죠. 항공권을 살 돈이 없다면 다른 문화를 경험할 기회조차 없습니다. 중고 자동차 하나만 있으면 국경을 넘을 수 있는 외국의 젊은이들과는 환경 자체가 다릅니다. 놀 것이 없으니까 어쩌다 하나 걸리면 우루루 쏠립니다. 여의도 불꽃축제나 피카츄를 보러 가서 사람구경을 더 많이 하게됩니다. 허니버터칩이나 마이보틀이 단기간에 유행이 되는 것은 지극히 한국적입니다. 여기는 작고 쏠림이 심한, 신드롬의 사회입니다. (나는 왜 라이언 맥긴리의 전시에 가지 않는가 : GQ)

젊은이들이 '먹방'과 '먹스타그램'에 몰입하는 것은, 그것이 상대적으로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얻을 수 있는 쾌락, 놀이기 때문은 아닐는지요. 200만원도 되지 않는 월급으로 외제차와 아파트를 살 수는 없지만 한 끼의 근사한 저녁식사는 먹을 수 있지요. 매우 즉흥적이고 그 자리에서 즉시 얻을 수 있는 쾌락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이 가장 초라해지는 순간은 먹고 싶은 음식의 가격 앞에서 망설이게 되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아닐까요?

집에서 혼자 3분 카레 먹는 것과 괜찮은 레스토랑에서 근사하고 맛있는 식사를 하는 것과의 기분 차이는 지구와 토성의 거리만큼이나 멀겠지요. 좋은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그래도 내가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라고 스스로에게 보내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것은 어쩌면 다른 것을 얻기 힘든 젊은이들의 자기위안일지도 모릅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中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합니다. 그러므로 내 식탐은 실은 내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내 먹부림은 내 잘못이 아닙니다. 그런데, 밥은 먹고 다니십니까.